담마의 거울

부처님이 라훌라에게 "다시는 세상으로 되돌아 가지 말라"

담마다사 이병욱 2009. 3. 13. 10:21

 

부처님이 라훌라에게 "다시는 세상으로 되돌아 가지 말라"

 

 

 

 

 

 

고통에서 해방 되기 위하여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현재의 마음과 지금의 조건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거나 누군가에 의지 하여 답을 찾기 위하여 종교의 문을 두드린다고 볼 수 있다.

 

현실은 만족스런 것이 별로 없다. 도처에 불만 투성이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고 용을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악화 되기만 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불만과 스트레스, 자괴감, 허무감만 쌓여 간다. 현실은 힘들고 불편하고 짜증나고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이런 것들을 불교적인 용어로 고()라고 한다. 팔리어로 '둑카(dukkha)'라는 하는 고는 '무상 고 무아' 3법인 중의 하나이고 괴로움 고통 재앙 고뇌 불편 불만족 이라는 뜻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불교를 믿는 목표 또한 무엇일까. 유일신교와 같이 죽어서 천국에 태어나는 것이 목적일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 보거나 관련된 글을 보았을 때 공통적인 이야기는 고통에서 해방 되기 위해서이다. 고통에서 해방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이고 마음의 평화라 볼 수 있다. 고통에서 해방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구상에 수 많은 종교가 있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과학적으로 규명해 주는 종교가 있다면 불교가 유일하다. 그러나 정법을 만나지 않으면 그런 가르침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가르침을 찾기 위하여 선지식을 찾아 돌아 다닐 수 있지만 현실이 허용 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인터넷에서 좋은 법문을 보게 되었다. 각묵스님의 불광사 동영상법문(http://www.bulkwangsa.org/movie/?fdir=movie&sdir=movie&tfile=list&CID=2&start=15&s_area=&s_key=)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넷상에서 보게 되는 것은 행운이다. 굳이 멀리 가지 않고도 시간과 비용을 절감해 가면서 감동을 만난다면 그와 같은 행운은 없을 것이다. 새삼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한다.

 

인터넷으로 만난 '각묵스님'

 

흔히 소승과 대승을 나눌 때 그 기준 중의 하나가 '열반과 해탈'에 관한 문제이다. 소승은 자기 혼자만 열반을 성취 하여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대승은 모든 중생들이 성불할 때까지 함께 가기를 서원한다는 것이다. 대승을 주장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두고 대승이 소승 보다 도덕적으로 더 우월 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승에 대하여 마치 자기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 비슷하게 폄하해서 말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말하는 방식이었다. 괴로움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열반이 과연 소승적인 발상일까. 부처님은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 하였을까.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각묵스님의 불광사 동영상 강의로 알 수 있었다.

 

각묵스님의 동영상 강의는 매우 열정적이고 박학다식하다는 인상이다. 또한 성격도 소탈하고 특히 한국의 대승불교의 문제점에 대하여 날카롭게 지적 하기도 한다. 그런 스님의 강의에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 하였다. 그것은 열반에 관한 사항이다.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게송중에 '라훌라여 듣거라'가 있다. 그 게송 중에 "다시는 세상으로 되돌아 가지 말라"라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가장 사랑하는 외동 아들에게 사미계를 주면서 하는 말이 '다시는 세상에 태어 나지 말라'라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열반'을 말한다. 열반을 최고의 목표로 삼으라는 말과 같다. 이 세상에 다시는 태어 날 일을 하지 말고 열반을 향하여 나아가라는 말이다. 숫타니파타를 읽어 보았으나 자세한 내용까지는 기억 하지 못한다. 그러나 '라훌라여 듣거라'라는 제목은 알고 있었다. 각묵스님의 말대로 정말 "다시는 세상으로 되돌아 가지 말라"라는 내용이 들어 있을까 의문이 들어서 확인 해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진짜 그 내용이 중간에 들어 있었다!

 

 

 

다시는 세상으로 되돌아 가지 말라

 

 

 

나훌라여, 듣거라

 

 

335. 스승:

나훌라여, 같이 사는 현자들을 너는 멸시하지 않느냐.

모든 사람을 위하여 지혜의 햇불을 높이 든

저 사람을 너는 존경하고 있느냐.

 

336. 나훌라:

아버지, 현자들을 저는 결코 멸시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지혜의 햇불을 높이든

저분을 저는 언제나 존경하고 있습니다.

 

337. 스승:

아름답고 매혹적인 저 욕망의 유혹을 버려라.

아들아,그대는 진리의 길을 가기 위해서 집을 나왔느니

이 인간의 고뇌를 모두 없애 버리는 자가 되라.

 

338. 진실한 사람들과 가까이하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아라.

조용하고 평화로운 그런 곳에 머물러라.

그리고 음식은 언제나 양에 맞게 절제하라.

 

339. 의복과 음식, 그리고 환자용의 물건과 주거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욕심을 내지 말라.

그리고 다시는 세상으로 되돌아가지 말라.

 

340. 정한 규칙을 잘 다르고, 감관을 절제하라.

너 자신의 몸을 잘 관찰하고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모두 지워 버려라.

 

341. 예욕이 있으면 더러운 것도 신비하게 보이느니

이 매혹적인 겉모양에 사로잡히지 말라.

이 몸은 결국 덧없이 사라져 가는 것임을 알아서

마음을 잘 가다듬어 흩어지지 않게 하라.

 

342. 모든 형상은 덧없이 변한다는 것을 알고

마음속에 숨어 있는 자만심을 버려라.

자만의 마음이 모두 무너지게 되면

아들아, 그대는 조용하고 넉넉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스승은 이 시를 아들 나훌라에게 되풀이해서 들려줬다

 

 

위글을 보면 339번째 게송에 분명히 "다시는 세상으로 되돌아 가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각묵스님의 말을 확인 하는 순간 이었다. 이렇게 수 많은 말 중에 결정적인 한마디가 숨어 있는 것을 알아 내는 것도 어렵지만 그런 말이 있다고 알려 주는 사람 역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부처님 당시의 숫타니파타

 

숫타니파타는 부처님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한 대표적인 초기 경전이라고 한다. 이미 부처님 당시에 이 경전이 유포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애송 하고 있었고, 후대에 경전결집이 이루어 질 때도 숫타니파타의 내용을 예로 들어 가며 토론이 이루어진 장면이 경전에 나온다고 한다. 그만치 부처님당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경전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북방으로 불교가 전래 될 때 숫타니파타는 전래 되지 않은 모양이다. 따라서 한역경전은 존재 하지 않고 현대에 들어와서 알려 졌다.

 

남방불교의 경전과 주석서 그리고 수행법등과 함께 알려진 숫타니파타는 기존의 대승경전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매우 순수하고 순박한 느낌이다. 아마도 한문이 아닌 한글로 번역된 요인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런 숫타니파타의 내용 중에 부처님이 자신의 외동아들에게 말한 내용중에 "다시는 세상으로 되돌아 가지 말라"는 매우 의미있는 메세지라 볼 수 있다. 대승보살사상으로만 이해 한다면 부처님의 말은 소승으로 밖에 비추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열반을 추구 하는 것이 과연 소승적인 삶에 지나지 않다고 볼 수 있을까.

 

니르바나를 향하여

 

열반을 향해 나가는 것은 모든 불자들의 할 일이다. 열반이 저 멀리 있어서 도저히 다가 갈 수 없다라고 생각 한다면 도중에 포기 하기 쉽다. 그러나 초기불교에서는 누구나 노력하면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라밀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진'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보통 8정도에 기반을 두지만 가장 큰 특징은 '선법' '불선법'을 구분 하는 것이다. 이말 역시 각묵스님이 강조 하는 말이다. 즉 스스로 판단해서 불선법이라 생각 되면 가차 없이 내려쳐서 잘라 버리고, 선법이라고 생각 되면 더욱 더 증장시키면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선법과 불선법을 구분하여 선업을 쌓고 보시 지계와 같은 바라밀 공덕을 닦는다면 열반은 한층 더 가까이에 다가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열반에 이르는 수행을 해야 함도 물론이다.

 

이렇게 정진 하는 모습과 과정을 보여 주는 것 자체가 커다란 중생구제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열반을 목표로 나홀로 저 언덕으로 건너 가는 것이 결코 소승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이 자신의 외동아들에게 "다시는 세상으로 되돌아 가지 말라"라고 말한 것 역시 커다란 중생구제라 볼 수 있다. 다음 세상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서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천상에 태어나서 안락하게 살아 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부지런히 정진 하여 다시는 이세상에 돌아 오지 말라고 말하였다. 숫타니파타를 읽긴 읽었지만 놓친 부분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이 말 했다면 그 어떤 다른 말 보다 가장 먼저 부처님의 말을 새겨 들어야 하지 않을까.

 

 

2009-03-1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