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연예인 자살, 죽음보다 태어나지 않을 방법을 찾았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09. 3. 16. 10:07

 

연예인 자살, 죽음보다 태어나지 않을 방법을 찾았어야 

 

 

 

 

 

연예인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성상납과 관련된 비리 때문에 또는 빚을 많이 져서 쉽게 생을 포기했다고 언론에서 전하고 있다. 이미 몇 개월 전에도 국민배우라 불리우는 인기탤런트가 자살 하여 국민들을 '공황상태'에 빠뜨린 적이 있다. 특히 그녀를 아끼는 사람을 매우 허탈하게 만들었다. 자살은 한 개인의 차원을 떠나 팬들의 가슴에 멍을 들게 만드는 매우 좋지 않은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잊을 만 하면 터져 나오는 자살소식은 여로 모로 왜 살아야 하는가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살로서 고귀한 목숨을 스스로 끊고 이세상과 단절 하려 하는 것일까.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자살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는 '죽으면 끝이다' 라고 생각 할 지 모른다. 과연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 하는 것이 '단멸론(斷滅論)'이다. 오로지 현재의 생만 있을 뿐 내생은 없다고 생각 한다. 내생이 없다고 생각 하니 쉽게 생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만일 내생이 있다고 생각 한다면 쉽게 포기 할 수 있을까.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 날지 두렵다고 생각 한다면 쉽게 생을 포기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존재 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더 강해서이다. 존재하고 싶지 않은 욕망, 이것 역시 '갈애'라 볼 수 있다. 불교에서는 갈애를 크게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로, 감각적욕망에 대한 갈애이다.

둘째로, 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셋째로, 비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감각적욕망에 대한 갈애

 

갈애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욕망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갈애가 '감각적욕망'이다. '눈 귀 코 혀 몸' 5가지 감각기관으로 느끼는 욕망이다.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감촉을 느끼는 것이다. 이중 마지막 5번째의 몸으로 느끼는 감촉은 매우 강렬하다. 눈과 귀와 느끼는 느낌과 비할 바가 아니다.

 

눈과 귀와 코로 느끼는 느낌을 '맨느낌'이라 한다면  '코와 혀'로 느끼는 느낌은 '직접적인 느낌'이다. 그런데 몸으로 느끼는 신체적인 접촉은 새로운 욕망을 지속적으로 불러 오는 매우 '감각적 느낌'이다. 이런 감각적인 욕망에 대하여 누구나 갈망한다. 그리고 매우 집착한다. 집착하면 집착 할 수록 더욱 더 갈증을 느끼는 것이 감각적욕망이다. 감각적욕망에 집착 하면 집착 할 수록 의도적인 행위를 하게 되고 그에 따라 과보를 얻게 된다. 그런 과보가 쌓이고 쌓여서 업이 되고 '축적된 성향'이 되어서 다음 생을 결정 하는 요인이 된다.

 

존재에 대한 갈애

 

다음으로 '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존재의 대한 집착은 오래 살고 싶은 욕망과 죽어서 좋은 곳에 태어 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을 추구 한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면 영원히 계속 되기를 바란다. 지금 이대로가 좋지 않더라도 무언가 변하지 않은 영원한 세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 한다. 그래서 참고 인내하고 감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봉사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 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천국에 태어나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상주론(常住論)'이다. 몸은 비록 죽어도 정신만은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 한다. 이 것이'영원에 대한 집착'이다. 주로 유일신교 종교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원을 추구 하면 추구 할 수록 더욱 더 고통스러워 진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행복도 한 때 뿐이지 영원히 지속 되지 않는다. 좋았던 감정도 그 때 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모든 것은 무상 한 것이다. 불교에 영원한 천국도 없고 영원한 지옥도 없는 이유도 무상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원히 변치 않는 유일신이 있을 수 없다. 있다면 변하는 신만 있을 뿐이다. 색계나 무색계의 천신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무상 함에도 불구 하고 영원을 바라는 것이 '존재에 대한 갈애'때문이다.

 

비존재에 대한 갈애

 

마지막으로 '비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비존재에 대한 집착'은 죽으면 끝이다라고 생각에서 나온다. 잇따른 연예인들의 자살이 아마도 이런 생각에 지배되어서 일것이다. 이세상에 존재 하고 싶지 않은 욕망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 볼 수 있다. 툭하면 '죽고 싶다' 라는 말이 바론 '비존재에 대한 집착'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죽음을 두려워 하면서도 '죽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은 '탐심'이다. 죽고 싶은 갈애가 탐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의도적인 행위는 자신이 바래서 하는 것이다. 그 이면을 보면 탐심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라는 생각이 '단멸론(斷滅論)'이다. 오로지 현재의 이생만 있다고 여길 뿐이지 내생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어도 다시 태어 나게 된다

 

감각적 욕망과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갈에는 모두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행위를 함에 따라 그 과보로 인하여 다음 생이 결정 된다. 왜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태어날까. 그것은 전적으로 과거 전생의 축적된 성향에 기인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싫어서 더 이상 존재 하고 싶지 않아 자살 한다면 그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다면 큰 오산이다. 죽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 또 시작 되기 때문이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자살로서 세상과 인연을 끊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세상에 태어 나지를 않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다시는 이세상에 태어 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갈애을 끊어야 한다. 바로 위에 업급된 세가지 갈애이다. 감각적욕망,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에 집착 하지 않게 된다면 다시 태어 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살 하려고 생각 하는 사람들은 이세상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다시는 이세상에 다시 태어 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200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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