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어떻게 해야 시주를 많이 하게 할 수 있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09. 4. 25. 12:42

 

어떻게 해야 시주를 많이 하게 할 수 있을까

 

 

 

 

 

 

 

 

불교 신자들은 부처님께....

바라는 것은 엄청 많으면서도.....

절의 재정에 도움이 되어야 겠다는 의식도 인식도..없이....

약고 약삭빠른 계산으로,

자신의 돈은 마치 살을 떼어 주듯이 아끼고, 뼈를 발라 주듯이 진저리를 침 아끼면서도,

그저 부처님께 은혜는 무한정 받을려 애쓰며,

스님들의 살림살이들에는 도통 관심도 가지지 않은채.

지혜 있는 이야기 들으려고만 애쓰며,

무언가 얻어 갈것이 없는지만 애쓰며,

더 안주는 것에 안타까움들만 가지는

몹쓸 성정들만 가지고 살아 가는듯 합니다.

 

 

위 글은 불교신자들의 시주에 대한 행태를 비판한 글이다. 어느 인터넷카페에서  어느 스님이 기독교의 십일조 금액이 가구당 연간 344만에 달한다는 뉴스를 듣고 작성한 글이다.

 

불자들의 시주행태에 대하여 분노하는 어느 스님

 

2008 10월에 발표된 바른교회아카데미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한국교회의 일년예산이 약37천억원이고, 천주교가 약4천억원, 불교가 4700억원이라 한다. 기독교와 불교의 예산을 비교 해 보면 약7.8배 정도 차이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도 비율이 높은 종교라고 알려져 있으나 재정적으로 보았을 때는 기독교의 12%밖에 되지 않는다. 또 신자수가 불교의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천주교하고 비슷한 수준이다.

 

이렇게 예산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아무래도 신도들이 내는 헌금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자의 경우 신자들의 약 65%가 연간 360여만원을 내고, 자신의 수입에서 정확히 십일조를 낸다는 사람이 23%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십일조와 별도로 건축헌금과 같은 각종 헌금을 합하면 가구당 평균  400만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금액을 집계 하면 기독교의 연간 예산이 37000억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가능 한 것이다.

 

이런 내용에 대한 발표를 보고서 어느 스님이 카페에 올린 글을 보면 불교신자들은 한마디로 '내는 것도 없으면서 엄청나게 바라기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자들의 행태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며 다음과 말한다.

 

 

수행을 목표로 살아가는 수행승들이...

차마 그들에게 자존심을 상하지 않을려고...담담한척 하면서도,

얼마나 그 모든 것들이 필요한 시대를 같이 살아 가는 인간의 모습들과...

절에 당연하게 재정들이 필요함을 인정하지도, 알아주지도, 아니 알아도 모른체 하는 불교 신자들....

 

 

수행승들이 기거하는 절의 재정상태가 열악함에도 불구 하고 알아 주지도 않고 심지어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불교신자들의 행태에 대한 실망감을 여실히 표현 하면서

 

 

그러한 그들에게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는 말이

 

 

참 교회 의 재정들이 너무나 부러울 지경입니다.

그들 신자들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참여가 너무나 부럽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부럽고, 그에 따른 교회의 든든한 재정이 부러울 지경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불교신자들의 신행행태에 대하여 넌더리를 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지긋지긋한 형벌이 끝나면 반드시 진공묘유에 갈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

.

그대들과 나는 다시는 만날 필요도 없는 곳으로 가는 당연함을 저는 알기에.....

 

 

수행자가 되어 살아 가는 것을 지긋지긋한 형벌로 생각 하고 공으로 되돌아 갈 것을 확신 한다는 것이고, 다시는 염치 없는 불자들과 만날 일도 없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마무리를 짖는다.

 

 

너무나 비 양심적이고,

무지하며,

무식하고,

몰지각하게 그들을 만들어 버린 책임도

실상은 나와 전혀 무관 하지만은 않는 일입니다.

 

...그래도  .....기독교 신자들....부럽습니다.

목사들...부럽습니다.

 

 

너무나 비양심적이고 무지하고 몰상식한 불교신자들을 만들어 낸 원인이 승가 사회에도 책임이 있음을 통감하고, 그럼에도 불구 하고 기독교 신자들의 보시 행태가 너무나 부럽고 그들과 함께 있는 목사들 또한 너무나 부럽다고 강조 하고 또 강조 한다.

 

 

불교신자들의 연간 시주금은 얼마나 될까

 

통계에 나와 있는 불교신자는 1000만이고, 정서적인 불교신자까지 합하면 2000만불자라고 한다. 이들의 중간정도만 잡는 다고 해도 1500만 불자라고 볼 수 있다. 이중 재가불자가 차지 하는 비율은 99.9%이고 출가한 스님이 차지 하는 비중은 대략 0.1%이다. 99.9프로에 달하는 대부분의 불자들의 신행행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정기적으로 절에 다니는 사람은 드믈고 1년에 한 두 차례 다녀도 보통 불자라고 말한다. 따라서 시주 하는 금액 역시 얼마 되지 않는다. 앞서 통계를 보면 기독교신자의 가구당 일년 헌금액이 평균 360만원이라면 불자들은 약 12%에 해당 하는 43만원 정도가 될 것이다. 사실 이 숫자는 거의 맞아 들어 간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심있는 불자에 한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신심있는 불자라면 부처님오신날을 전후 하여 일년등을 다는데 약 10만원을 쓰고, 때때로 재일이나 불교명절 때 시주하는 금액을 합한 다면 대충 금액이 맞아 들어 간다. 그러나 일반불자나 정서상의 불자들의 시주금은 40여만원도 많은 축에 속한다. 10만원도 보시 못하는 불자들이 수두룩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통계로만 본다면 앞서의 스님이 기독교의 신자의 헌금과 목사들을 부러워 할 만 하다. 그런데 사찰의 주 수입원을 보면 다른 데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종단의 주수입원이 신도들이 내는 시주금이 아니라 입장료 수입이라든가 유명기도처에서 나오는 수입금, 그리고 천도재와 같은 재를 통한 수입금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런 특별수입금이 60%를 차지 한다고 하니 순수하게 신도들의 시주금이 차지 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승단이 결코 재가불자들의 시주에 의지 하지 않게 되고 시은(施恩, 시주의 은혜)을 모른 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목 좋은 기도처를 차지하려는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비불교적인 천도제나 망자에 대한 49, 입시기도와 100일기도등 기복적인 각종기도가 성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자들의 순수한 시주가 없어도 방편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 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연등이나 불전수입이 차지 하는 비중은 20%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님의 정법이 지켜질리가 없다. 영험이나 가피에 의존 하고 소원성취, 치료와 같은 대가를 전제로 한 시주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화되는 한국불교

 

스님들이 하는 법문 하는 중에 보시공덕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한다. 특히  법문할때 거의 빠지지 않고 가장 많이 인용 하는 문구가 금강경의 '무주상보시 (無住相布施)'에 관한 것이다. '바라는 것 없이 주어라' '티내지 말고 주어라' 등이다. 이렇게 보시에 대하여 강조 하는 이유는 대게 큰 불사를 앞두고 있을 때 더욱 더 그렇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보시한 금액의 천배 내지 만배의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젖소의 비유를 들기도 한다. 잔치날에 쓰기 위하여 젖짜는 것을 아꼇으나 정작 잔치날이 되었을 때 젖이 안나오더라는 것이다. 평소에 열심히 보시 할 것을 강조 하는 말이다.

 

그런데 가장 열등감을 주는 말은 타종교와 비교 하면서 말을 했을 때이다. 특히 교회 다니는 사람과 비교 하는 것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번 돈의 십분의 일을 헌금으로 바친 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에 비하여 불자들은 너무 인색하다는 것이다. 그 비유를 들기를 '마치 살점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까워 한다'고 말한다. 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잘 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열심히 헌금을 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보시를 하지 않는 불자들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부처님이 다 지켜 보고 있고 부처님이 다 알고 있다고 말한다. 금강경의 '여래실지실견(如來悉知悉見)'의 구절을 인용 하지 않았나 생각 되지만 여기서 부처님을 하나님으로 만 바꾸어 놓으면 교회에서 하는 말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불자들에게 열등감을 조장 하고 두려움을 주는 법문은 불자들의 수준을 낮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에는 불자들이 문자를 몰랐다. 따라서 법에 대하여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열심히 보시하고 계를 지키면 천상에 태어 난다고 하는 '시계생천(施戒生天)'을 강조 하였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 들어 와서도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정법을 펴는 법문을 하기 보다 기도 하고 재를 올리고 영험이나 가피에 의존 하는 기복적인 대가성의 신행생활을 강조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유일신을 모시는 기독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불교가 기독교화가 되고 있는 모습이다. 유명기도처만 찾아 다니다 보면 결국 교회에 앉아 있더라 하는 말이 실감 날 정도이다.

 

불자들이 시주를 많이 하지 않는 이유는

 

기독교 신자들이 십일조를 꼬박 꼬박 내고 연간 360만원에 달할 정도라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십일조가 연간360만원이라면 월간 30만원이 된다. 매월 30만월 낼 정도라면 어떤 내용이길래 가능할까.

 

고교3년을 미션스쿨에서 다녔다. '기독적 인격'이 교훈인 그 학교는 매주 2회 방송예배하고 월1회 전체예배, 3일간에 걸쳐서 수업을 전폐하고 집중예배를 하였다. 수업보다 기독교인을 만드는 것이 학교의 목표인 듯이 보였다. 그런 강제종교 교육을 받다 보면 신자가 되는 사람 못지 않게 안티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교리 자체가 유치원동화 같은 허접한 내용일지라도 한가지 본 받을 사항은 목사의 공부 하는 자세와 설교를 준비하고 설교 하는 열정이었다. 이런 모습은 아마도 대부분의 교회가 공통적인 모습일 것으로 생각 된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설교를 위해서 신자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동시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정신이 십일조 360만원의 기적을 낳았다고 생각 한다.

 

불자들이 시주를 많이 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감동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찰이 법회를 자주 열지도 않을 뿐더러 법문 하는 곳 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절에 들러서 3배나 하고 불전함에 시주 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매주법회가 열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법문을 들을 일도 없고 스님들 또한 법문할 일도 없어서 절에 자주 가지 않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수도 없이 강조 하는 사항은 보시에 관한 사항이다. 그 중에서도 법보시에 대하여 매우 강조 한다.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장엄하여 보시한다고 해도 금강경 사구게 하나 보다 못하다고 하였다. 그만치 재보시 보다 법보시의 공덕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찰에서 스님들의 정기적인 법보시가 없고 불자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십일조와 같은 수준의 시주금이 들어 오기 힘들 것이다. 고작 해야 일년에 등 하나 다는 것과 때때로 불전함에 보시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그나마 신심있는 불자가 이 정도 이면 다른 명목상불자나 정서성의 불자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절에 오게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기개발을 위하여 돈을 아끼지 않는다.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새로운 지식을 쌓고 기술을 익혀야 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 할 체력 또한 갈고 닦아야 한다. 그래서 매월 일정액을 자기개발에 쏟아 붓는 사람이 많다. 이런 자기개발에 들어 가는 금액을 보면 적게는 몇만원에서 많게는 수십만원에 이른다.

 

일과후에 외국어 학원을 다닌다고 해도 그 금액은 최소 10만원은 될 것이다. 건강을 위하여 헬스클럽을 다니고 수영을 배운다고 해도 10만원 가까이 될 것이다. 이렇게 무언가를 배우고 자기개발을 하는 사람들이 매월 쓰는 돈은 10만원 안팍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재미 있는 사실은 시간당으로 따져 보았을 때 만원 꼴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원에 1주일에 3일 나간다면 3시간 있게 된다. 한달이면 12시간이 된다. 시간당 만원으로 계산 하면 월 12만원이 되는 것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의 월간 십일조가 30만원이라면 시간으로 따져 보았을 때 30시간이 될 것이다. 일주일에 7시간 이상은 교회에 가 있는 것이다. 반면에 신심 있는 불자가 보시 하는 금액은 연간 43만이므로 월로 따졌을 때는 35,000원이 된다. 이 금액은 일주일 8,750원인데 절에서 한시간도 머물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같다. 비록 단순비교에 지나지 않지만 교회에 나와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 수록 헌금액 비율이 높고, 절에 나오는 시간이 적으면 적을 수록 시주금액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의 어느 스님의 한탄은 이런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먼저 절에 자주 나오고 오래 머물러 있어야 시주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절에 자주 나오게 하고 오랬동안 머물러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스님들이 앞장 서야 한다. 절에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심산유곡에 절이 있다면 절에 자주 갈 수 없을 것이다. 도심에 있어야 하고 교통도 좋아야 한다. 그리고 신자 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해야 한다. 바로 그것은 스님들이 신자들에게 보시를 하는 것이다. 그 보시가 무엇인가 가장 수승 하다는 법보시를 하는 것이다. 법보시를 하려면 법에 대하여 많이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선불교 전통이 있는 한국불교는 '교외별전''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강조 해 왔기 때문에 법에 대하여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법회를 해도 법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니 법에 대하여 말할 수 없고 신변이야기나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법회가 자주 열리지 않다 보니 절에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나 영험과 가피 같은 방편불교에 의존 하게 되고 일부 신심 있는 불자만 절에 다니고 대부분의 불자들은 절에 다니지 않게 되어서 시주금이 들어 올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미래는 '오브젝티브 메디테이션(Objective Meditation)'시대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이자 선불교라고 한다.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 하는 조계종도 선불교의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런데 불자인구는 정서적인 불자까지 합친다면 2000만에 이르지만 연간예산은 기독교의 12%에 불과 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불자들이 절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같다. 다녀도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 것이다. 불자들이 절에 다니고 오랫동안 머무르려면 도시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법회를 해야 한다. 매주 법회 하면서 공부 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불자들을 감동 시켜야 한다. 그리고 법문 뿐만 아니라 수행을 지도 해야 한다. 이제까지 기도나 영험, 가피, 치료, 천도와 같은 기복적이고 방편적인 요소에서 벗어나 수행위주로 가면 더 오랫동안 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수행이야말로 불교를 불교 답게 만들고 타 종교와 가장 차별화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미래는 명상의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 하고 있다. 이미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명상수행 열풍이 불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대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오브젝티브 메디테이션(Objective Meditation)'이 바로 그것이다. 보통 남방불교의 '위빠사나'를 말한다. 경행을 하고 좌선을 하고 인터뷰를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실제로 위빠사나 선원에서의 시간을 보면 법문 1시간 20, 경행 40, 좌선 1시간, 인터뷰 30분으로 구성 되어 있어서 일주일 한번에 지나지 않지만 총 3시간 30분을 머물러 있게 된다. 그런데 일반 사찰에서 매주 3시간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 108배를 하고 기도 하고 한다고 해도 1시간 이상 머물러 있을 콘텐츠가 없고 지도 할 사람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기독교의 십일조와 비교 하면서 불자들을 원망한다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였기 때문에 하는 말일 것이다.

 

불자들이 시주를 잘 하지 않는다고 타박 할 것이 아니라 시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절에 오랬동안 머물 수 있도록 신자들의 입장에서 장소를 선정 해야 하고 콘텐츠를 개발 하여야 한다. 신자들을 감동 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님 들이 법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리고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기도 보다는 가급적 수행을 지도 해야 한다. 이렇게 질적으로 바뀌게 되면 점차 절에 머무는 시간도 많아 질 것이고 많이 찾아 오게 될 것이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자기개발을 위하여 매달 10만원 안팍을 쓰던 사람들이 절에서 매주 3-4시간을 보내면서 전부 시주금으로 내게 될지.

 

 

 

2009-04-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