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서림스님의 '초기불교와 한국불교에 관하여', 출가는 세상속으로

담마다사 이병욱 2009. 5. 5. 12:58

 

서림스님의 '초기불교와 한국불교에 관하여', 출가는 세상속으로

 

 

 

 

 

무언가 알고 배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중에 부처님법을 아는 것 만치 가슴설레이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 것도 부처님의 음성이 생생히 담겨 있는 초기경전을 통해서이다. 법구경이나 숫타니파타, 니까야, 아비담마와 같이 부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접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 만치 남방근본불교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 왔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런 글과 자료 또는 동영상을 인터넷을 통하여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검색창에 해당 키워드만 넣으면 얼마든지 부처님의 원음을 생생 하게 만날 수 있다. 그런 동영상 중의 하나가 서림스님 법문이다.

 

초기불교를 전공한 서림스님의 강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읽고 댓글을 정성스럽게 달아 준 어느 네티즌의 블로그 (http://blog.daum.net/arrando/13756161) 를 방문 하였다. 목록에서 동영상강의가 올라와 있었는데 인도에서 초기불교를 전공한 서림스님의 강의 내용이다. 429일자 이니 올린지 몇일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내용이라 볼 수 있다. 부제는 '초기불교와 한국불교에 관하여'이다. 60여분 짜리 총 4개의 동영상인데 우선 첫번째 동영상 강의를 들었다. 습관대로 노트를 하였는데 15페이지나 되었다. 노트한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서림스님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서림스님은 본사가 수덕사이고 현재 수덕사주지스님의 맏상좌라고 소개 되고 있다. 참고로 동영상 강의가 열린 장소는 수덕사이다. 서림스님은 통도사의 강원을 나왔고, 십수년간 제방 선원과 선방에서 수행하였고 또 3년 이상 실상사의 화엄학림에서 공부 하였다고 한다. 화엄학림을 수료 하고 인도의 푸나 대학에서 4년동안 초기불교와 빨리어를 수학 하였다고 소개 되고 있다.

 

빨리어로 공부 하기를 잘 했다

 

먼저 언어에 대하여 말한다. 언어에 따라 불교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가 달라진 것일 뿐 불교자체가 달라질 수 는 없다고 한다. 또 불교의 앞에 붓는 수식어의 문제이다. ~불교, ~불교라고 하는 것이다. 즉 대승불교, 소승불교, 선불교, 유식불교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차이에 따라 또는 역사적인 상황과 필요에 따라 불교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언어가 개입 되어 있는데 언어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언어에 가려서 못 보는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불교를 다 알려면 30년 이상 공부 해야 한다고 한다. 한문을 알아서 한역경전을 보아야 하고, 일본어를 알아서 일본서적을 보아야 하고 이 뿐만 아니라 영어 경전, 티벳경전 까지 본다면 30년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님이 쓰던 언어로 공부 하는 것이다. 즉 빨리어로 공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빨리어로 공부 하기를 잘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언어를 만들었지만 또한 언어가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사상과 철학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어떤 학자의 이야기를 첨부 한다.

 

 

같은 언어를 쓴다면 같은 역사를 반복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떤 언어를 사용 하였을까. 부처님이 사용하던 말은 이 세상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을 사용 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예로 니까야를 든다. 니까야는 빨리어로 된 가장 오래된 경전이다. 부처님 당시의 마가다국에서 사용된 '마가디어'로 추정 된다는 것이다.

 

원래 성전이라는 뜻의 '빨리(Pali)'

 

빨리라는 말은 원래 성전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말씀'의 의미이었으나 지금은 '부처님 말씀의 언어'의 의미로 전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남방경전은 빨리어이고, 북방경전은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카니시카 대왕 시절의 4차 결집에서 성전을 산스크리트화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의 의미는 북방산스크리트어경전이 빨리어에서 가지쳐 나왔다는 의미와 같을 것이다. 이렇게 빨리어에서 갈라져 나온 산스크리트어 경전은 2세기 부터 10세기 까지 한역 되면서 한역 대장경이 만들어 지게 된다.

 

문제는 한자가 뜻 글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의미가 정화하게 전달 되지 못하였다는 것과 그에 따라 '직관에 의지 하는 불교'로 발전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선불교'라고 볼 수 있다.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 오면서 언어의 차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긴 것이 선불교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말이라도 알아 듣기 쉽게

 

그러나 니까야는 대화체이다. 즉 일상적인이야기를 사용 하였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철학적인 내용도 일상적인 대화체로 풀어 설명하였고 볼 수 있다. '열반이 무엇이냐'라고 물어 보았을 때 "탐진치가 소멸 된 것이 열반이니라" 하는 것이 대표적일 것이다. 여기서 탐내고 성내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다 아는 말이다. 그리고 소멸한다라는 말도 누구나 다 아는 말이다. 이렇게 심오한 철학적인 내용도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쉬운 말로 풀어 말한 것이다. 똑 같은 열반을 설명 하는 데 있어서 대승에서 말하는 '진여'가 어떻고 '불성'을 깨닫고 하는 식으로 말한다면 어려워 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언어의 차이라는 것이다.

 

교외별전이나 이심전심 직지인심과 같이 문자에 집착하지 말라라고 선불교에서는 이야기 하지만 문자로서도 얼마든지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언어라고 한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누구나 쉽게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을 하였고 그 말을 기록한 것이 니까야이다.

 

현재 동국역경원에서 번역된 아함경과 같은 경우도 니까야와 비교해 보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즉 한문으로 된 경전으로 불교를 아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이고 니까야와 비교하여 수정 되지 않는 한 애매모호 한 채로 남아 있기 쉽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루 빨리 비교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빨리경전에 없는 팔상성도(八相成道) 이야기

 

이러한 언어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팔상성도(八相成道)'의 예를 들어 이야기 하고 있다. 팔상도는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가지 주제로 하여 묘사한 그림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벽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팔상도는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으로 구성 되어 있다.

 

첫번째로  도솔래의상이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팔상도 방식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빨리 경전에는 없다. 다만 보살이 도설천에 있다가 내려 온다는 이야기는 빨리 경전에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서  디가니까야에 보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도솔천에 있다 인간세계로 내려 오셨다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비람강생상이다. 여기서 '비람'이라는 말은 '룸비니'를 뜻한다고 한다. 남전과 한역경전의 가장 큰 차이는 부처님의 선언에 관한 사항이다. 한역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선언 하지만 니까야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단지 비슷한 내용으로서 다음과 같은 선언이 있다.

 

 

“나는 세상의 제일 앞이다. 나는 세상의 제일 위이다. 나는 세상의 최고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생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Aggo 'ham asmi lokassa, jettho 'ham asmi lokassa, settho 'ham asmi lokassa, ayam antima jati na'atthi 'dani punabbhavo ti.)5)

 

 

위의 게송은 마하빠다나-숫따(Mahapadana-sutta)에 나오는 내용으로서 마성스님의 글([붓다의 생애와 사상(37)] 탄생게(誕生偈)에 대하여 http://blog.daum.net/bolee591/13041379)을 참고 하면 과거부처님 중의 한분인 비파시불이 읊은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옆구리에서 태어나서 일곱걸음을 걷고 선언한 내용 역시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장면이 아니라 비파시불의 탄생장면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불의 탄생 유형을 만들어 놓고 석가모니불도 역시 과거의 붓다와 똑같이 적용시킨 케이스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갓 태어난 영아(嬰兒)가 이런 게송을 외쳤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마성스님의 견해이다.

 

부처님은 설산에 간 적이 없다

 

세번째로 사문유관상이다. 출가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항은 깊은 산속으로 도 닦으로 가는 것으로 인식 되어 있다. 그러나 니까야에서는 깊은 산속이 아니라 '마을로 가는 것'으로 나와 있다. 부처님 출가 하여 가장 먼저 찾아 간곳이 설산이 아니라 마가다국의 수도 이었던 라자가하 이었다고 한다. 거기서 가장 유명 하다는 알라라 깔라마, 웃다까 라다풋다 같은 스승을 만나고 보드가야에서 고행을 하였지만 설산에서 눈맞으며 하는 수행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부처님은 설산에 간 적이 없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출가는 산속이 아니라 시내로 나아 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를 이끌어 주는 곳이 출가 장소 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숫타니파타에 나와 있는 게송을 예로 들고 있다.

 

 

405. 지혜로운 이는 왜 집을 버렸는가.

 

     그는 왜, 무슨 생각에서 미련 없이 집을 나왔는가.

 

     그가 집을 버린 그 내력을 여기 적으리라.

 

 

406. 이 집착의 생활은 고통이다.

 

     번거롭고 복잡하여 그 마음에 이는 것은

 

     오직 먼지뿐이다.

 

     그러나 이 집착의 생활을 벗어나게 되면

 

     우주 전체가 내 집이 된다.

 

     이를 깊이 생각하고

 

     그는 집 없는 구도자의 삶을 택한 것이다.

 

 

407. 이런 삶을 택하게 되면

 

     몸이 저지르는 모든 잘못과

 

     말의 실수가 더 이상 없게 되며

 

     그리고 자신의 삶은 다시 순결하게 정화될 것이다.

 

 

408. 지혜로운 이는 마가다국의 수도

 

     산으로 에워싸인 곳 왕사성으로 갔다.

 

     기품도 늠름한 그분은

 

     고행자의 생활을 하기 위하여 그곳으로 갔다.

 

 

409. 마가다국의 왕 빔비사라는

 

     그의 궁전 옥상에서 그(부처)를 봤다.

 

     풍채도 당당한 그를 보고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410. 그대들이여, 저 사람을 보라.

 

     멋지고 장엄하고 수려한 사람이

 

     모습도 당당하게 앞만 보며 가고 있다.

 

 

411. 그는 오직 아래만을 보면서 걸어가고 있구나.

 

     저 사람은 필시 비천한 가문의 출신은 아닐 것이다.

 

     그대들이여, 저 사람의 뒤를 따라가 보라.

 

     어디로 가는지 잘 살펴보라.

 

 

412. 왕의 어명을 받은 사람들은 그의 뒤를 좇아갔다.

 

     「그 수행자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어디쯤에서 살고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413. 그는 몸을 잘 절제하면서

 

     깊이 생각에 잠겨 흩어지지 않는 자세로

 

     이집 저집 밥을 얻으러 다녔다.

 

 

414. 그는 탁발을 끝내고 시가지를 빠져나가서

 

     판다바 산으로 올라갔다.

 

 

415. 그가 그의 거처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왕의 사자들은 그에게 가까이 갔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왕궁으로 돌아가 왕에게 이를 알렸다.

 

 

416. 전하, 그 수행자는 판다바 산의 동쪽에 있는

 

     한 동굴 속에서 호랑이처럼, 황소처럼,

 

     그리고 사자처럼 앉아 있습니다.

 

 

417. 이 말을 들은 대왕 빔비사라는

 

     장엄한 수레를 타고 급히 판다바 산으로 갔다.

 

 

418. 왕은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수레를 타고 올라갔다.

 

     길이 험하여 수레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데서부터는

 

     왕은 손수 수레에서 내려 걸어 그에게 가까이 갔다.

 

 

419. 왕은 먼저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가 끝나고 나서 잠시 후

 

     왕은 이렇게 말했다.

 

 

420. 수행자여, 그대는 아직 젊음으로 충만해 있다.

 

     이제 막 인생의 문에 들어선 젊은이여,

 

     그 용모가 단정한 것으로 보아

 

     그대는 필시 어느 고귀한 왕족임이 분명하다.

 

 

421. 나는 그대에게 군의 총사령관직을 주리라.

 

     그리고 많은 재물을 주겠노라.

 

     내 선물을 즐거이 받아라.

 

     젊은이여, 그대는 어느 가문에서 태어났느냐.

 

 

422. 스승의 대답 :

 

     대왕이여, 저 히말라야의 산밑에

 

     정직한 한 민족이 살고 있으니

 

     이 민족은 예로부터 부와 용기로 이름이 있는 민족이다.

 

 

423. 이 민족의 성은 <태양의 후예>이며

 

     석가족으로 알려져 있다.

 

     대왕이여, 나는 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내가 부귀영화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 것은

 

     결코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424. 욕망에는 필경 불행이 뒤따른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 욕망의 세상을 거부해 버린 그 행복을 만끽하면서

 

     나는 부지런히 노력하며 나아갈 것이다.

 

     그지없는 마음의 저 평안 속에서.

 

 

이 게송은 부처님이 출가직전에 빔비사라왕과 나눈 대화로 알려져 있다. 이 게송에서 보는 것과 같이 출가는 깊은 산속으로 도피 하듯이 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생노병사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하여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좋은 예가 화엄경 입법계품이다. 입법계품은 초기불교와 서로 통해 있고 부처님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양불교학자들은

 

네번째로 수하항마상이다. 여기서 언급한 것은 신통에 관해서이다. 보통 서양불교학자들이나 서양불교를 공부 한 사람들은 부처님의 신통에 대하여 그리 믿지 않는 분위기라 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에 환호 하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런 것은 싯달타의 출가가 중생구제보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너무나 보편적인 문제로 보았고 나중에 중생제도로 발전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어쩌면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경장이나 율장에서 보여지는 신통에 대하여는 후대에 각색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율장에는 신통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경장에 비교 하여 율장은 믿을 만 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오히려 경장 보다 율장에 신통에 대하여 더 많이 언급한 사항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이다. 만일 율장에서 신통력을 빼 버린다면 율장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경장이나 율장에 나오는 신통력에 관한 이야기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기이다.

 

부처님이 직접 설하였다면

 

이상으로 첫번째 동영상강의를 본 내용을 요약하였다. 남방에서 초기불교를 공부한 사람들의 생각은 일반적으로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철저하게 경전위주라는 것이다. 그 것도 부처님의 원음이 담긴 니까야이다.

 

니까야와 북방불교의 경전을 비교해 보았을 때 중생구제라는 대승보살사상이 강조 되다 보니 북방불교의 경전에는 여러가지 왜곡된 사실도 많이 발견 할 수 있었다. 특히 팔상도에서 보는 탄생이나 설산수도에 관한 사항이 그렇다.

 

사문유관상에서 출가의 의미를 깊은 산속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과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해석 한 것도 신선 하였다. 그러나 수하항마상과 같이 신통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는 여전히 논란 거리가 될 법 하다. 경장에는 물론 가장 공평하고 믿을 만하다는 율장에서도 신통에 관한 내용이 다수 나온 다고 하니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경전이고 부처님의 원음에 가깝고 또한 부처님이 직접 설하였다면,  천지장조와 같은 식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일단 믿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2009-05-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