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사두 사두! 이 보시의 공덕으로 도과(道果)를 성취하시기를!

담마다사 이병욱 2009. 5. 4. 11:26

 

사두 사두!  이 보시의 공덕으로 도과(道果)를 성취하시기를! 

 

 

 

"사두 사두 사두" 도대체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그러나 조금 공부한 불자들이라면 "선재  선재 (善哉 善哉)" 라는 말은 안다. 금강경에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두 사두!, 선재 선재!

 

금강경에서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에게 법을 청하는 장면이 나오고 부처님이 이에 대하여 법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처님이 법문을 시작 하기 전에 먼저 수보리존자를 칭찬 하는 말이 "선재 선재" 이다. 우리말로 옮긴 다면 "착하고 착하도다" 이지만 또 달리 해석 하면 "기특하고 기특하도다" 가 될 수 있고 또 다른 말로 해석 한다면 "장하고 장하도다"가 될 것이다. 이렇게 아낌 없는 칭찬으로 상대방을 치켜 세우 주시는 부처님의 따뜻한 인간애를 경전속에서 확인 하는 순간이다.

 

선재는 산스크리트어인 '사두(sadhu)'에서 옮긴 말이다. '착하구나!' '좋구나!'라는 뜻이다. 이 선재라는 말은 불경에 자주 나오는 말로서 감탄의 느낌이 있는데 재()  이런 느낌을 표현 하는 것이다. 재와 같은 말을 어조사라 하며 말을 돕는 역할을 한다. 요즘으로 따지면 느낌표나 물음표와 같은 문장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선재로 번역 되는 사두는 '장하구나 착하도다' 등의 뜻으로 지금도 남방불교 국가에서는 많이 사용 된다고 한다. 즉 남방상좌부 불교국가에서는 어떤 공덕행을 하고 나서, 또는 법문이 끝나고 나서 이 말을 3번씩 합송하여 상대방의 선업과 공덕행을 칭찬해 준다는 것이다.

 

초치는 사람, 칭찬 하는 사람

 

재가불자들은 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열심히 보시하고 지계 하는 것을 최고의 공덕을 쌓는 것으로 생각 한다. 따라서 재가자들이 보시하고 지계하면 천상에 태어 난다고 말하는 사상이 소위 '시계생천(施戒生天)'사상이다.

 

불교의 최고 목표인 열반을 성취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보시하고 지계하는 삶을 살아 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 나리라는 것은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설령 목표로 하는 천상에 태어 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으로 태어난 다면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 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더욱 더 열심히 바라밀 공덕을 쌓으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불자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덕목은 보시 하고 지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시 하는 사람에게 초를 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즉 한마디 함으로 해서 보시공덕을 깍아 내리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어느 불자가 10만원을 보시 하였는데 옆에서 보고 있는 다른 불자가 "무엇하러 그렇게 많이 해, 5만원만 하지" 라고 말한다면 졸지에 그 보시의 공덕은 5만으로 내려 앉아 버린다. 그리고 부추긴 사람은 깍아 내린 과보로 공덕을 까먹는 것이다. 반면에 옆에 있는 사람이 "참 잘하였습니다.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 보시 공덕은 10만원 이상의 효과가 있게 되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옆에서 말한 사람 역시 똑같은 10만원 보시공덕의 효과를 받는 다는 것이다. 즉 칭찬 한마디 해 줌으로서 10만원을 내지는 않았지만 10만을 보시한 공덕의 효과를 그대로 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복 짖기로 말한다면

 

이와같이 칭찬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칭찬은 보시 뿐만 공덕을 쌓은 모든 공덕행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는 다는 것은 경전에서도 살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선불교에서 선문답을 보면 이와 정반대의 현상을 볼 수 있다. 법에 대하여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을 때 스승은 다짜고짜 몽둥이질을 하는 장면이다. "!" 하고 큰소리로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또는 아예 침묵으로 일관 하는 '양구'하기 이다. 이 모두가 깨달음에 이른 제자를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경전 속에 나와 있는 부처님의 자애로운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경전속의 부처님은 '선재 선재' 하면서 제자의 질문에 대하여 먼저 칭찬 해 주고 이어서 법문을 시작 하였다. 이런 칭찬의 공덕이 쌓이고 쌓여서 부처가 된 것일 것이다. 복 짖기로 말한다면 부처님 보다 더 많이 복 지은 사람이 없다라는 말이 맞는 말이 되는 것이다.

 

개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타종교를 믿다 불교로 개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부처님의 인간적인 매력에 반해서 결심하게 되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경전 도처에 보면 인간으로서의 부처님의 고뇌도 보이고 따뜻한 배려가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들이 믿었던 종교의 신은 자애롭기도 한 면이 있긴 있지만 분노하고 질투 하는 신이었고 또한 두려운 신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두려움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가 부처님의 자애로움을 경전 속에서 발견 하였을 때 인간적인 매력을 듬뿍 느껴 부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역사속의 부처님이다. 즉 스승으로서의 부처님모습이다. 우리와 똑같이 태어 나서 늙어 죽어 과는 과정이 인간 모습 그대로이다. 그런면으로 보았을 때 부처님은 역사속의 인물임에 틀림 없다. 경전에 자세하게 기록 되어 있고 또한 이를 입증 할 만한 유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타종교 같은 경우는 경전에는 물론 입증할 만한 유적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가공 인물로 보고 신화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적인 부처님의 모습은 대승경전에서는 신격화 되고 신화처럼 되어 있다. 법화경에 보는 '영산회상' 장면이나 화엄경에서의 '삼매'에 드는 장면 같은 경우이다. 즉 우주적인 스케일에 시간을 초월한 광대무변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런 스타일의 장면은 유일신교의 창세기나 천지창조와 같은 뉘앙스를 주어서 개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감명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을 때, 그리고 그 가르침이 우리의 현실의 가장 근원적인 고민을 해결 해 주는 스승으로 인식하였을 때 믿고 따른 다는 것이다. 특히 타종교를 믿다 불교로 개종한 스님이나 법사들로 부터 많이 듣는 이야기기이다.

 

이 보시의 공덕으로

 

재가불자들은 보시하는 것 외에 공덕 지을 일이 별로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계를 지키기도 힘들다. 가급적 지키도록 노력 하지만 생각 되로 되지 않는 것이다. 장사나 사업한다는 명목으로  어쩔 수 없이 어기게 되는 경우도 허다 하다. 이럴 때 보시 공덕이라도 열심히 쌓겠다고 하여 보시 하였는데 옆에서 초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격려 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것은 격려 하고 칭찬 하는 과보가 보시금 못지 않게 공덕을 쌓는 다는 사실이다.

 

불자들은 등을 하나 달고 나서도 축원해 주기를 바란다. 그 축원문을 듣기 위하여 귀를 종긋 세우기도 한다. 축원을 듣고 나면 많은 공덕을 쌓은 것 같이 느끼기도 하는 것이 불자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한편 축원을 하는 사람 역시 등다는 사람 못지 않은 공덕을 쌓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가끔 불사에 동참 하여 시주자 명단이 인터넷이나 관련 신문에 발표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명단만 발표 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으나 이왕이면 칭찬 하는 식으로 발표 하는 것이 더 의미 있으리라 생각 한다. 가장 좋은 예가 아마 이런 문장일 것이다.

 

이 보시의 공덕으로 도과(道果)를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재보시 뿐만 아니라 법보시, 무외시 등 갖가지 보시공덕을 쌓았을 때 '착하다' '장하다' '기특하다' '잘했다'라고 말한다면 똑 같은 공덕을 쌓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비록 경전상에서 보는 것 이지만 부처님의 축원의 말을 떠 올려 본다. 그리고 현대적인 의미로서 보시 공덕에 대하여 칭찬하는 말을 만들어 보았다.

 

 

사두 사두! 이 보시의 공덕으로 도과(道果)를 성취하시기를!

 

 

 

2009-05-0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