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사회법의 로와 부처님법의 담마, 모르면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담마다사 이병욱 2009. 4. 29. 10:05

 

사회법의 로와 부처님법의 담마, 모르면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사업자들 치고 세금을 즐거이 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미루고 미루다 마감일이 되어서야 내는 것이 많은 듯이 보인다.

 

미루고 미루다 마감일이 지나고

 

1분기 부가세 납부기간이 지난지도 모르고 국세청 홈택스에 들어가 보니 접속이 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바로 전날이 마감일이라 입력이 되지 않은 것 이었다. 할 수 없이 양식을 내려 받아서 수작업으로 작성 하여 가까운 세무서에 제출 하였다. 불과 하루 차이이기 때문에 그냥 받아 줄줄 알았다.

 

그런데 제 때에 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산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1-2프로도 아니고 상상을 초월 하는 액수이다. 즉 분기 매출액의 1000분의 5를 더 내야하고 또 납부할 세액에서 또 10%를 징수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분기 매출이 천만원이라면 5만원이 더 붙고, 100만원이 납부할 부가세 라면 10만원을 더 내야 한다. 이렇게 도합 15만원을 안내도 되는 세금을 더 내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단 하루 차이 때문에 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10% 때리는 것도 한달 이내이기 때문에 그나마 봐 주는 것이라 한다. 한달이상 연체 하면 10% 이상이 된다는 것이다. 계속 해서 연체 하면 압류에 들어 간다고 세무서 직원은 사무적으로 설명 한다. 세무직원에게 좀 봐 달라고 말을 했으나 통하지 않는다.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매우 냉정한 법집행임을 확인 하는  순간이다.

 

모르기 때문에 당한다

 

사업을 한지 그다지 오래지 않지만 제때에 꼬박 꼬박 부가세를 내 왔다. 그 것도 마감일이 임박해서 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안이하게 대응하다 된 통 당한 느낌이다. 막연하게 하루 이틀 늦어도 내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 하였으나 이렇게 가산금이 높게 붙을 줄은 몰랐다. 누가 설명해 준 적도 없고 그렇다고 세무서에서 이런 점을 설명해 주지도 안았다. 당하고 나서 알게 된 것이다. 마치 법을 지키지 않아 범칙금을 호되게 물은 것 같은 씁쓸한 기분이다.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내고 나니 그 동안 아끼고 절약하였던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듯한 느낌이다. 무슨 일이든지 한번씩 큰 수업료를 지불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한번씩 크게 당하고 나면 그 다음 부터는 철저 하게 잘 지켜 나갈 것이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직접적인 손실로 다가 오기 때문이다.

 

모르면 당하게 되어 있다. 또 지키지 않으면 그에 대한 댓가를 받는 것이 사회이다. 비록 그 법이라는 것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 또는 그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악법이라고 할지라도 그 법에 대하여 무지 하면 항상 손해 보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의 안이하고 게으른 태도에 기인 한다. 법의 집행은 돈과 인신구속으로 귀결된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하고 더 심하면 인신구속까지 각오 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법에 대하여 잘 모른다는 것이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법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에 당한다.

 

법 조문에 그와 같은 강력한 구속력이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날자를 어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당장 손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의적으로 판단 하여 이 정도 되겠지 한다거나 봐 달라고 하면 봐 주지 않을 까 하는 막연한 기대 심리가 있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당하고 보면 법이라는 것이 매우 가혹하고 인정사정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회법이 이렇다면 부처님 법도 마찬 가지 일 것이다.

 

불교에도 법이 있다

 

사회에 법이 있듯이 불교에도 법이 있다. 모두 똑같은 법이라는 말을 쓴다. 사회법은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만 부처님 법은 구속력은 없다. 다만 부처님이 말한대로 살아가지 않는 다면 악도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불교에서 법은 부처님이 말한 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엄밀하게 말한 다면 두개의 법이 있다. 하나는 '부처님 말한 법'이 있고 또하나는 '존재일반으로서의 법'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서의 법은 84천가지나 된다. 부처님이 직접설한 82000법문에다 제자들이 설한 2000법문을 합하여 보통 84천법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난다 존자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로 시작 하는 초기경전의 내용이 부처님이 말한 법이 될 것이다. 이런 법을 서양에서는 '고유명사'로 취급하여 'Dhamma'로 표기 하는데 대문자를 사용함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존재일반으로서의 법이다. 서양에서는 이를 '일반명사'로 취급하여  'dhamma'라 하는데 소문자를 사용 했음을 알 수 있다. 존재일반으로서 법을 보통 '제법(諸法)'이라고도 말한다. '제법무상' '제법무아' 할 때의 제법이다. '일체개고' 할 때의 일체도 존재일반의 법으로 들어 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존재일반으로서의 법은 '정신과 물질의 모든 현상을 설명' 하는데 쓰임을 알 수 있다. 존재일반으로서의 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구경법(究竟法)'이고 또 하나는 개념법이다. 일반적으로 존재일반으로서의 법은 구경법을 말한다. 그렇다면 구경법과 개념법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구경법(究竟法)이란

 

일반적으로 법을 말할 때 법의 의미는 구경법을 말한다. 구경법은 빨리어로 '빠라맛따담마(paramattha-dhamma)'라 한다. 궁극적인 실재로서 오온, 12, 18, 사성제, 팔정도, 12연기, 선법, 불선법등을 말한다. 그리고 이 구경법으로서의 법은 '고유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정의 한다. 즉 특정 법이 가지는 자신에만 있는 고유한 성질을 말한다. 예를 들어 탐욕은 거머 쥐는 성질 또는 끌어 당기는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또 성냄은 분노 하고 밀쳐내는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탐욕이라는 법과 성냄이라는 법은 그 법의 고유한 성질이 판이 하게 다른 것이다.

 

구경법의 또 하나의 특징은 법의 '보편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생멸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법은 일어나고 유지하고 사라지는 보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보통 '찰라생' '찰라멸' 한다고 말한다. 즉 법은 '찰라적 존재'라는 것이다. 만일 모든 법이 찰라적으로 존재 하지 않는 다면 법을 달리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불교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인 열반에도 이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불교라고 볼 수 도 없다. 법이 영원히 존재 한다면 절대로 열반에 이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외도의 주장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아트만이나 자아, 참나는 법이 아닌 것이다. 즉 법은 해탈 열반을 실현 하는 토대 인 것이다.

 

존재일반으로서 법 중에 개념법은 빨리어로 '빤야띠담마(pannatti-dhamma)'라 한다. 보통 개념이라 부르는데 명칭, 개념, 서술, 술어, 용어 등의 의미로 쓰인다. 방편 내지는 가설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불교에서 법을 말 할 때는 개념법이 아닌 구경법을 말하고, 구경법으로 모든 현상을 분해하고 해체 하여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회에서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 하는 것 과 같이 불교에서도 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악도에 떨어진다고 말한다. 반면에 불법을 잘 지키면 사악도에 떨어지는 형벌은 면하게 될 것이다. 즉 사악도에 떨어질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말한 고유명사으로의 법(Dhamma)을 새겨 들어야 되고 또한 존재일반으로서의 일반명사로서의 법(dhamma)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존재일반으로서의 구경법 중에 선법과 불선법이 있다.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 열반을 실현 하려면 선법인지 불선법인지 판단 해야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선법과 불선법은 무엇인가.

 

꾸살라(kusala)

 

선법을 빨리어로 꾸살라(kusala)라 한다. 원어의 의미는 유익한, 숙련된, 능숙한, 이로운 등의 뜻이다. 기본적으로 도덕적으로 선한 것을 뜻하고 해탈 열반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꾸사풀을 밴다는 뜻의 꾸살라는 아주 마음을 기울여 조심해서 배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억세고 날카오워서 다치기 쉽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법이 되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주의 기울임'이 필요 하다. 이를 '여리작의(如理作意)'라고 번역하고 빨리어로 '요니소마나시까라(yoniso-manasikara)'라고 말한다. 서양에는 선법을 능숙하다는 의미로 '스킬풀(skillful)' 또는 '호울섬(wholesome)'이라고도 번역한다.

 

아꾸살라(akusala)

 

불선법을 빨리어로 '아꾸살라(akusala)'라고 말한다. 아꾸살라는 모든 악의 뿌리인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몸통으로 하여 이와 결부 되어 생기는 업, 의도, 마음부수를 말한다. 도덕적으로 불선 할 뿐만 아니라 해탈 열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을 말한다. 영어로는 '언스킬풀(unskillfull)' 또는 '언호울섬(unwholesome)' 이라 말한다. 아꾸살라에 대한 구체적인 마음의 작용은 다음과 같다.

 

 

불선한 마음의 작용(Akusala Cetasikas)

 

1. 어리석음 = 모하(Moha)

2. 양심 없음 = 아히리까(Ahirika)

3. 수치심 없음 = 아놋따빠(Anottappa)

4. 들뜸 = 웃닷짜(uddhacca)

5. 탐욕 = 로바(Lobha)

6. 사견(邪見) = 딧티(diṭṭhi)

7. 자만 = 마나(māna)

8. 성냄 = 도사(Dosa)

9. 질투 = 잇사(issā)

10. 인색 = 맛차리야(macchariya)

11. 후회 = 꾹꿋짜(Kukkucca)

12. 게으름 = 티나(Thīna)

13. 혼침 = 밋다(middha)

14. 회의적 의심 = 위찌낏차(vicikichā)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나서

 

불선한 마음의 작용에서 12번째인 게으름(티나)이 있다. 아마도 이번에 제때에 세금을 내지 못하여 그 댓가를 치르게 된 것도 게으른 탓 이었을 것이다. 게으른 것도 구경법중에 불선법에 해당 되고 불선을 행 하였기 때문에 그 댓가를 톡톡히 치럿다고 볼 수 있다. 무슨 일이든지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에 대한 결과의 과보를 받는 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것 같다.

 

 

 

2009-04-2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