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의 1029일 천도재, 천보다도 백보다도
해인사에서 1029일동안 천도재를 해 드립니다.
BBS 불교방송 광고에서 나온 말이다. 이어서 나오는 말은 주관하는 스님들이 축원까지 해 준다는 내용이다.
믿기지 않는 내용이라서 홈페이지를 들어 가서 찾아 보니 서브창으로 안내 하는 화면이 나온다. 업장소멸! 극락왕생! 이라는 문구와 함께 상세한 내용이 나오고, 동참금액까지 종류별로 안내 되어 있다.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하는 천도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 모양이다. 이번이 제4차 인것으로 보아 전에 부터 계속 해오던 관행처럼 여겨진다.
천도재가 뭐길래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 하는 조계종의 조계사에서 천도재를 하는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죽은자의 영혼을 이용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 한다고도 말 하였다. 그런데 이런 천도재가 유행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불과 20년전 까지만 해도 천도재라는 것이 거의 없었고 대신에 49재나 전통적인 행사인 백중날의 우란분재가 다 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천도재가 대유행하여 왠만한 사찰 치고 천도재를 치루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천도재에 대하여 사전을 찾아 보았다.
천도재(遷度齋)
불교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의식.
짤막하게 설명하면 죽은자의 영혼이 극락에 왕생 하기를 비는 의식이라고 나와 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영혼’이다. 영혼이라는 말은 죽은 다음에도 살아 있는 비물질적인 자아를 말한다. 따라서 옷을 바꾸어 입듯이 자아는 그대로 유지한 채 육체만 바꾸는 환생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환생은 전형적인 힌두교적인 윤회 방식이라는 것이다.
환생이 아닌 재생(再生)인 이유는
초기불교에서는 죽은 다음에 다시 태어 나는 것을 ‘재생(再生)’이라고 말한다. 환생이라고 말하지 않고 재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아를 인정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아가 있다면 환생이 되지만 자아가 없기 때문에 재생이라고 말한다. 즉 과보에 의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생의 나와 다음생의 내가 동일한 자아가 아니고 단지 과보만 물려 받은 결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마음을 ‘찰라생 찰라멸 상속’ 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생의 윤회’가 있고, 또하나는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찰라 윤회’가 있다. 마음은 매순간 생멸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과보가 다음 마음으로 전달 된다. 따라서 전의 마음과 다음의 마음은 다르기 때문에 무아이다. 이런 흐름은 일생의 윤회에서도 똑 같이 적용된다. 죽는 순간의 죽음의 마음이 그 다음 생을 결정 하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의 마음이 중요한 이유
죽는 순간에 나타나는 마음에는 ‘업(깜마, kamma)’과 ‘업의 표상(깜마 니밋따, kamma-nimitta)’과 ‘태어날 곳의 표상(가띠 니밋따, gati-nimitta)’이 뜬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표상은 자기 의지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생활한 습관대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이런 표상대로 다음생이 결정 되는데 그 순간은 전광석화 보다 더 빠르다는 것이다. 즉 한 마음에서 다른 마음으로 바꾸는 것과 똑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이 들면 내일이 올지 내생이 시작 될지 알 수 없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티벳 불교에서 말하는 사자의 서에 나오는 ‘중음신’이 있을 수 없고, 우리나라에서 행하는 ‘49재’ 또한 설립 근거를 잃게 된다. 즉 다음 생에 환생을 하는 것이 아니고 과보에 의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나라고 하는 자아가 없는 것이다.
죽을 때의 마지막 마음이 개를 생각 한다면 재생연결식에 그 과보가 전해 져서 개를 좋아 하는 마음이 일어 나고 개의 몸과 마음을 받는 과정으로 연기가 진행 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을 때의 마지막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일생의 윤회가 마음이 바뀌듯이 찰라적으로 바뀌고, 더구나 전생의 나와 관계 없이 단지 과보만 물려 받은 재생의 개념이라면 ‘천도재’ 또한 의미 없는 일이 된다. 죽는 순간에 전광석화와 같이 이미 새로운 몸을 받기 위하여 입태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모두 빨리어 니까야 주석서인 ‘아비담마’에 근거한 내용이다.
천보다도 백보다도
죽은 다음에 제사를 지내고 재를 올리고 하는 행위는 초기불교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된다. 단지 살아 있을 때 선업을 쌓는 것이 중요 하다는 것이다. 선업을 많이 쌓으면 마지막 죽는 순간에 떠오르는 표상대로 내생이 결정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내생에 태어 나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업을 짖지 않으면 된다. 업을 짖지 않으려면 12연기 단계에서 갈애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모든 윤회의 원인은 갈애 에서 부터 시작 되기 때문이다.
죽은자를 위하여 천도 하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초기경에 나와 있는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면 ‘백년 동안 다달이 제사를 지내기 보다는 한 순간 바른 법을 생각해 갖는 그 복이 더 뛰어 나다’고 가르치고 있다.
106)
백 년 동안 다달이 천 번씩
제사를 지내기 보다는
단 한순간이라도 진정한 수행자를
돕는것이 뛰어난 일이다
107)
숲 속에서 백 년 동안
불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보다는
단 한순간 이라도 진정한 수행자를
돕는 것이 뛰어난 일이다
108)
이 세상에서 복을 받기 위해
일년 내내 희생을 바쳐 제사 지내도
그 공덕은 진정한 수행자를 돕는
4분의1도 미치지 못한다.(법구경)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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