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불일불이(不一不二) 사상으로 본 노무현의 생사관

담마다사 이병욱 2009. 5. 25. 09:53

 

불일불이(不一不二) 사상으로 본 노무현의 생사관

 

 

 

 

 

 

인터넷에서 전하는 대한문 분향소에 대한 네티즌의 비난이 봇물을 이룬다. 사람이 지나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막아 놓고 분향도 제대로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정권은 무엇이 두려워 수만명의 경찰병력을 풀어 놓고 마치 감옥처럼 생긴 분향소에 몰아 두는 것일까.

 

촛불이 산불이 될까봐

 

대표적인 보수논객 동길이 있다. 그는 지난 4월에 그의 홈페이지에 노무현은 자살하라고 글을 올려서 비난을 받고 있다. 피도 눈물도 인정도 없는 보수 우익 기독 기득권 세력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그가 올 초에 소망교회에서 발언한 동영상 강의를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득권세력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특별 주문을 하였다.

 

 

촛불을 허용 하면 횃불이 되고 급기야 산불이 될 수 있다.”

 

 

촛불을 허용 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촛불이 산불이 되어 온 산을 다 태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계 하는 말이다. 이런 시각은 보수 우익 논객이나 뉴라이트 계열의 목사들에게 공통적인 시각으로 보여 지고 끊임 없이 엠비에게 주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일까 대한문 앞의 분향소를 감옥으로 만들어 놓고 병력을 배치 하는 이유가 바로 촛불이 산불이 될까 무서워서 일 것이다.

 

삶도 없고 죽음도 없고

 

노무현대통령의 장례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하나의 분위기를 감지 할 수 있었다. 종교별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해인사를 비롯하여 각사찰에 분향소가 마련되고, 특히 서울 도심에 있는 조계사에서는 수만명이 다녀 간 것으로 보도 되고 있다. 일요일을 맞아 명동성당에서 추모 하는 분위기는 있었느나 개신교의 교회에서 분향소가 마련 되었다든가 추모 하는 예배가 열렸다는 말은 아직 들어 보지 못 하였다. 또 하나의 뉴스는 입관식을 불교식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제사를 지냈다고 보도 하고 있다. 아마도 49재의 첫번째 재인 것 같다. 이런 불교적 분위기는 노대통령의 유언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유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이 아니겠는가?

 

 

생과 사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살아 있는 것이나 죽어 있으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이런 말을 한문으로 표현 하면 생사일여(生死一如)가 된다. 생과 사가 모두 하나라는 말이다. 생과 사가 하나 이기 때문에 삶도 없고 죽음도 없는 것이다.

 

이런 사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 하면 불일불이(不一不二())사상이 될 것이다. , ‘동일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도 아니다라는 뜻이다. 볍씨를 예로 들 수 있다.

 

볍씨가 생성 되기 위해서는 물과 바람과 구름이 동원 되고 사람의 노고가 동원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볍씨 하나가 나오기 까지 우주의 모든 요소가 관계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볍씨는 우주가 드러난 또 다른 모양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불일불이라 한다. 이러한 예는 경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법성계에서 법성(法性)과 제법(諸法)과의 관계가 그렇고, 반야심경에서 색()과 공()의 관계가 그렇다. 이렇게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을 서로 같은 개념으로 보았다. 그러나 변하는 과정에서 보았기 때문에 불일불이를 동일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도 아니다라고 표현 한 것이다.

 

노무현은 과연 죽었을까

 

유일신교에서 노무현의 죽음에 대하여 침묵 하는 이유는 자살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자살을 하면 무조건 지옥으로 간다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노무현이 유일신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천국 아니면 지옥식의 이분법 적인 사고 방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압박해서 결국은 노무현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가만 놔 두었으면 천수를 누렸을 텐데 죽음으로 몰고 간 이유는 기득권 세력의 집단 이지메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자신들과 이해가 다르고, 사상이 맞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가해 하고 핍박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욕을 주고 복수 하려는 심보가 숨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구속 하여 그 동안 맺혔던 한을 풀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보수 기득권 세력의 가슴을 후련 하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노무현은 여기에 저항 하였다.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험한 꼴을 당하느니 깨끗이 죽겠다고 각오 한 것이다. 어쩌면 경술국치에 일어 났었던 지사들의 자결이 연상 된다. 역사적으로 지사들의 죽음을 자결이라고 하지 자살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와 같을 것이다.

 

노무현의 말대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이라면 노무현은 죽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이고 둘이 아닌데 삶이 어디 있고 죽음이 어디 있을까. 삶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삶이 있듯이 노무현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함께 호흡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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