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보시의 진수 제따와나, 제2의 아나타삔디까는 어디에

담마다사 이병욱 2009. 5. 23. 10:31

 

보시의 진수 제따와나, 제2의 아나타삔디까는 어디에

 

 

어느 가난한 여인의 등불

 

어느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어느 날 부처님이 마을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여인은 간신히 마련한 돈으로 초라한 등을 사서 부처님이 지나가는 길목에 등을 걸어 놓았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 하였다. 이런 기도의 덕분이었을까 다른 사람의 등불은 새벽이 되자 모두 꺼졌는데 여인의 등불은 새벽이 되어도 꺼지지 않고 활활 타 올랐다. 이런 소식을 듣고 부처님은 그 등불은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여인의 간절한 소원이 담겨 있는 꺼지지 않은 불이다. 다음 생에서는 반드시 성불 할 것이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경에 나오는 보시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 이다.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대단한 행운으로 볼 수 있다. 정법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정법이 살아 있는 시대에 태어 나기도 어렵다고 한다. 하물며 부처님이 나신 시대에 부처님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과거 전생에 수 많은 바라밀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 했을 것이다.

 

현우경에 나오는 가난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도 부처님 시대에 태어 났기 때문에 가능 했을 것이다.

 

부처님의 출현은 기적과 같은 일

 

고따마 부처님이 출현 하기 전에도  수 많은 부처님이 출현 하였다고 한다. 경전상으로는 스물다섯분이 출현 하였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까마득한 오래 전의 일이라는 것이다. 우주가 수도 없이 성주괴공 하는데 있어서 잠깐 나신 것이다.

 

가장 최근에 나신 부처님들을 과거칠불이라 한다. 고따마 부처님을 포함한 일곱부처님을 말한다. 같은 겁이내에 고따마 부처님을 포함하여 모두 4분의 부처님이 오셨는데 그 간극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다. 같은 겁 이내에 출현 하였더라도 수억년의 간극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이 출현하였다는 사실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정법 또한 오래 지속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질 되고 잊혀 지게 마련이어서 정법 역시 머무는 시간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고 부처님법 접하기 어려운 것은 맹구우목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 보시 해야 하는가

 

재가자들이 가장 쉽게 실천 할 수 있는 것이 보시바라밀이다. 보시도 대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 한테나 보시 하는 것 보다 수행자에게 보시 하는 것이 가장 공덕을 많이 짖는 것이라고 하였다. 수행자에게 하는 보시야말로 가장 값진 것이다라고 하는 말이 초기경에 나온다.

 

 

저 브라만 신을 향하여

한 달에 천번씩 백 년 동안을

내내 공양물을 올리는 그것과

자기 자신을 정복한 사람에게

단 한 번의 존경을 표하는 그것과

어느 것이 더 값어치가 있겠는가

저 백 년 동안의 번제공양보다도

이 단한번의 존경이

훨씬 값 있는 것이니(법구경 106)

 

 

수행자 중에서도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 만한 사람이 있을까. 사람으로 태어 나기도 어렵고, 태어 났다고 하더라도 수행자로 살아 가는 것은 매우 희유한 일인데 하물며 부처님이 출현 하였다는 것은 커다란 사건일 것이다.

 

부처님이 나셨다는 소문을 듣고 불교역사상 가장 큰 보시를 한 사람이 있다. 흔히 급고독장자로 불리우는 아나타삔디까(Anathapindika)이다. 요새로 말하면 세계 몇위를 다투는 재벌의 총수와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아나타삔디까 이야기가 있다.

 

보시의 표본 아나타삔디까 이야기

 

아나타삔디까는 사왓티(savatti)의 장자로 부처님의 대표적인 남자신도이었다. 원래 이름은 수닷따(Sudatta)인데 의지 할 곳 없는 고독한 이들(anatha)에게 먹을 것을 제공 하였으므로 아나타삔디까라 불렸고, 급고독(給孤獨)장자로 알려져 있다.

 

하루는 사업차 라자가하(Rajagaha)를 방문 하였을 때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셨다는 말을 듣고는 감격하여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부처님을 찾아 뵈오려 길을 나섰다. 하지만 길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잠시 두려운 마음이 생겼지만 시와까(Sivaka)라는 야차가 용기를 북돋아 주어 계속 길을 가게 된다.

한림(寒林, sitavana)에서 경행을 하고 계신 부처님을 뵙고 설법을 듣고 즉시 예류과를 얻었다. 라자가하에서 돌아온 그는 제따왕자의 소유인 사왓띠의 제따숲(Jetavana)을 바닥에 황금을 깔아서 사들이고 그 곳에 기원정사(祇園精舍)라 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따와나(Jetavana)를 지어 승가에 헌납 하였다. 그리고 아나타삔디까의 신심에 감복한 제따왕자는 그 돈으로 대문을 만들었다.

 

 

 

 

 

사진 ; http://friend2003.sulekha.com/mstore/friend2003/albums/default/Jetavana-shravasti_small.jpg

 

 

 

장자는 매일 자신의 집에서 백여명의 비구들을 초청하여 식사공양을 올렸으며, 언제 누가 오더라도 바로 접대할수 있도록 오백명분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AA.i.208-9) 부처님께 귀의한 뒤로 그는 자신의 사업을 돌보지 않고 보시에만 마음을 쓰느라 그 많던 재산이 점차 줄어 나중에는 가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좁쌀이나 신죽이라도 있는 대로 승가에 보시했다. 그때 집의 문에 깃들어 살던 여신이 이를 보고 아나따삔디까에게 이제 그만 보시하고 사업에 힘을 쓰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아나따삔디까는 이러한 충고를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신에게 자신의 집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예류과를 얻은 성인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장자의 집을 나와 정처 없이 떠돌게 된 여신은 제석(Sakka)에게 그에게 용서를 빌 방법을 물었고, 제석의 말에 따라 다시 그의 재산을 이전과 같이 불려주었다.(DhA.iii.10ff; J.i.227 ff)

 

아나따삔디까는 임종이 가까워지자 사리뿟따 존자를 집으로 청하였고, 존자는 아난다(Ānanda)와 함께 그를 찾아가서 여섯 감각장소[六處]로부터 시작하여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마음속에 집착을 품지 말라고 충고한다.(M.iii.258) 아나타삔디까는 그 설법을 듣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아나타삔디까는 곧 숨을 거두고 도솔천의 천신으로 태어났다.(마하시 사야도의 12연기 교재의 주석서 p251)

 

정법시대란

 

지금은 부처님이 나신후 2500년이란 시간이 흐른 시대이다. 억겁의 시간에 비한다면 찰라와 같은 짧은 시간이지만 부처님의 원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마도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한 글로벌 시대의 영향이 가장 컷을 것이다.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아직 정법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한 초기경전이 빨리어로 고스란히 남아 있고, 또한 부처님의 수행방법 역시 고스란히 보전 되어 와서 오늘날에 다시 꽃 피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인 사성제와 팔정도, 연기법이 설해지고 있고 위빠사나 수행이 있으면 정법시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 한다면 깨달음을 성취한 성자인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 아라한이 있으면 또한 정법시대라 볼 수 있다.

 

2의 아나타삔디까를 꿈꾸며

 

가난한 여인의 등불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이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제2의 아나타삔디까가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 옛날 부처님 당시에 황금을 깔아 승원을 만들 정도의 신심 있는 재가자의 출현을 말한다. 그러나 제2의 아나타삔디까는 반드시 정법을 추구 하는 사람이나 단체에 보시해야 할 것이다.

 

비록 부처님은 2500년에 왔다가 가셨지만 그 가르침만은 남아서 전해져 내려 오고 있다. 그런 가르침을 펴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고귀한 스승들이다. 다구나 성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하면 복전(福田)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부처님을 만나 볼 수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 덕높고 성스런 스승들에게 공양하고 보시 하는 것은 커다란 공덕을 쌓는 일이다. 이런 공덕을  쌓는 행위야 말로 재가자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바라밀행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은자를 위하여 재를 올리고 백번 천번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정복한 사람에게 보시 하고 공양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정성을 다하여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해도

그만은 못하리

그 영혼이 잠깨어 홀로 가는

저 수행자에게 드리는 그 존경의마음,

그만은 못하리, 그만은 못하리.(법구경 108)

 

 

 

 

2009-05-2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