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부부인연, 전생에 원수 아니면 은인의 관계이었다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09. 5. 21. 10:31

 

부부인연, 전생에 원수 아니면 은인의 관계이었다는데

 

 

 

 

 

 

부부의 날 이라고 한다. 5 21일을 말한다. 5 5일 어린이날, 5 15일 스승의 날에 이어서 매주 거르지 않고 이번에는 부부의 날이다. 결혼해서 같이 산다면 일년 365일이 부부의 날일 텐데 하필이면 특정한 날을 지정하여 부부의 날이라고 선포 하였을까.

 

일년 365일이 부부의 날일 텐데

 

순례법회를 다니다 보면 항상 같이 참석하는 부부들이 있다. 보통 한 차에 40명 정도 간다고 쳤을 때 3~4쌍은 부부동반으로 참석 하는 것이다. 부부동반으로 항상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보기에도 좋고 모두 다 원만해 보인다. 그런데 모든 부부들이 이와 같이 원만하고 사이 좋고 행복한 관계라고 볼 수 있을까.

 

80 20의 법칙이 있다. 상위 20%의 계층이 부의 80%를 차지 하고, 하위 80%는 부의 20% 밖에 차지 하지 못한다는 법칙이다. 이런 법칙은 범죄율에도 그대로 적용 되어 20%의 전과자가 전체범죄의 80%를 저지르는 이치와 같다. 이런 법칙을 기업에 적용 한다면 20%의 인력이 나머지 80%를 먹여 살리고, 20%에 해당 하는 모델이 매출의 80%를 차지 한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이런 80 20의 법칙은 부부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 될 수 있다고 본다. 부부관계를 유지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하는 계층은 불과 20%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80%는 무덤덤한 관계이거나, 행복하지 않다든가, 심지어 어쩔 수 없이 사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대다수는 그다지 행복 하지 않다고 답한 것일까. 그런 대표적인 예가 있다.

 

 

남편도 내 뜻대로 돼야 하고, 자식도 내 뜻대로 돼야 하고, 돈도 내 뜻대로 잘 벌려야 하고, 어느 모임에서건 내 주장이 관철돼야 하고, 심지어 대통령도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어느 인터넷신문에 난 기사 내용의 일부이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관한 내용으로서 부부간의 갈등의 단초를 제공 하는 것이 바로 내 뜻대로이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에서 문제는 발생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대통령도 내 말을 잘 들어야 될 정도로 자신위주의 마음이라면 부부싸움은 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갈등과 긴장의 관계가 지속 된다면 부부관계는 파탄 날 것이고, 집안에 우환이 들게 되며 또한 잘 될 일이 없을 것이다. 싸우는 모습을 보고 복이 왔다가도 되돌아 갈 것이기 때문이다.

 

부부인연, 전생에 원수 아니면 은인의 관계

 

한 때 TV에서 전생신드롬이 있었다. 인기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불러 놓고 최면을 거는 것이다. 최면 상태에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스코틀랜드에서는 공주 이었고, 아프리카에서는 마사이족 전사 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볼 수 있다. 지역과 시공을 뛰어 넘는 황당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또 영혼불멸의 자아가 있어서 몸만 바꾸어 태어 났다는 식의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불교의 윤회론적인 관점에 따르면 이 모두가 이치에 맞지 않는 다는 것이다.

 

우선 국가와 국가를 뛰어 넘어 태어 나는 것은 인연법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 받는 대상과 다음 생에 만날 확률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생의 나는 지금의 나와 똑 같은 나가 아니라 과보가 전달 된 나이기 때문에 지금의 나와 똑같은 나일 수가 없다. 따라서 현생에서 좋은 인연이든 악연이든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 받은 관계가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기 쉽다는 것이다. 만일 서로 매우 미워 하는 사이 이었다면 그 미워 하는 과보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시 만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부부의 인연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흔히 부부인연에 대하여 전생에 원수 아니면 은인의 관계 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좋은 인연이었든 나쁜 인연이었든 간에 자신과 상대방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다시 만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전생에 원수의 관계 이었다면 현생에서 원수를 갚기 위하여 만나게 되었을 것이고, 반대로 은인의 관계 이었다면 은혜를 갚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부부가 은혜를 갑기 위하여 만난 것이라기 보다는 빚을 갑기 위하여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사건건 부딪치고 충돌 하는 이유가 전생에 너무나도 미워하고 증오 하였던 관계 이었음에 틀림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내 뜻대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은 물론 신문, 방송에서도 크게 보도 되고 있고 그 즉설 또한 합리적이어서 사회적인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 하다.

 

즉문즉설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의 갈등이 대부분이다. 부부문제, 자식문제, 고부갈등, 직장상사와의 갈등등 주로 인간적인 부딪침에 대한 내용이다. 이런 갈등 중에 가장 많이 차지 하는 것이 단연 부부간의 갈등이다. 저 인간하고 살아야 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선 갈등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부간의 문제가 내 뜻대로하려는 데서 문제는 발생 한다. , 내 뜻대로 모든 것이 되어야 하고 내 뜻대로 세상이 돌아 가야 하는 것이다. 내 뜻대로를 버리지 않는 한 긴장과 갈등은 영원히 계속 될 것이고, 그 미워 하는 감정이 원인이 되어 내생에서 또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 뜻대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위의(威儀)에 압도 되어

 

부처님의 초전법륜에 관한 내용 중에 다섯비구와 만남의 장면이 있다. 예전에 부처님과 함께 고행 하였던 다섯명의 수행자들은 부처님이 고행을 포기한 것을 보고 타락 하였다고 생각 하였다. 그런데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시고 최초로 법을 펴기 위하여 다섯 수행자에게 다가 갔다. 이 때 다섯수행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말하였다.

 

 

 벗들이여, 수행자 고따마가 오고 있다. 그는 타락한 자로서 고행을 싫어하여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갔다. 우리는 그에게 인사를 해서도 안 되고, 일어서서 영접해서도 안 되고, 발우와 옷을 받아서도 안 된다. 단지 그가 앉을 자리만은 비워 두어 앉고자 하면 앉을 수 있게 하자.”

 

 

이렇게 말하고 다짐했음에도 불구 하고 다섯수행자들은 부처님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자 그 위의(威儀)’에 압도 되어 자신들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일어나서 부처님을 영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엇이 이토록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을까. 부처님이 내 뜻대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부처님 자신이 변했을 뿐이다. 부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한 사람은 발우와 옷을 받아 들었고, 또 한 사람은 자리를 준비 하였고, 또 한 사람은 발 씻을 물과 발판과 수건을 가져 왔던 것이다.

 

나 자신 부터 바꾸는 것이

 

부부간의 갈등 뿐만 아니라 자식간의 갈등, 부모와의 갈등, 상사와의 갈등 모두가 알고 보면 내 뜻대로안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하여 보고 있고,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돌아 가야 된다고 생각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잘 모르면서 남이 바뀌기를 기대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이미 축적된 성향은 나 자신도 바꾸기 힘들다. 하물며 남이 내 뜻대로바뀌기를 바란 다는 것은 지나친 이기심의 발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남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나 자신 부터 바꾸는 것이 더 현명할 지 모른다. 마치 부처님이 깨달아서 바뀌었듯이. 그렇게 바뀌게 되면 혹시 모르지 않는가 상대방이 내 발까지 씻겨 줄지.

 

 

 

200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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