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 가혹한 형벌 같은 삶

담마다사 이병욱 2009. 5. 20. 10:14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 가혹한 형벌 같은 삶

 

 

 

 

 

 

 

()에 대하여 아십니까? 길거리를 걸어 가다 보면 흔히 듣는 말이다. 주로 민족종교 계열에서 건네는 말인데 종국적으로는 조상천도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각종교 마다 도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그리고 추구 해야 할 도가 있다. 유교에는 유교의 도가 있고, 기독교에서도 목표로 하는 길이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도가 없지 않을 수 없다.

 

도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면 대부분의 불자들은 답변을 못한다고 한다. 선문답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레 겁 부터 먹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불교에서는 도에 대하여 명백히 규정 하고 있다. 팔정도(八正道)를 닦는 것이 도라고.

 

도인은 누구일까

 

그렇다면 도인은 누구일까. 한국사람들이 생각 하는 도인은 허연 수염을 기르고 주장자를 든 노인을 떠 올릴지 모르지만 초기불교에서는 명맥히 이 또한 규정 하고 있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도인은 성자(聖者)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성자임을 무엇으로 증명 할 수 있을까. 초기불교에서는 또한 성자의 특징에 대하여도 언급 하고 있다.

 

성자의 흐름에 든 사람을 예류자라 한다. 빨리어로는 소따빤나(sotapanna)’라 하고 역어는 수다원이라 한다. 그렇다면 수다원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보통 아래와 같은 징표가 있으면 수다원 도과를 성취 하였다고 본다.

 

 

첫째, 유신견(有身見)을 극복한 경지이다.

둘째.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을 극복한 경지이다.

셋째, 법에 대한 회의심을 극복한 경지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번째 유신견을 극복한 경지이다. 겨자씨만한 유신견, 즉 아()가 있다는 생각이 있어도 성자의 대열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류자가 되면 사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일곱생 이내에 모든 번뇌의 불이 꺼져서 윤회가 끝난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는 태어 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세상속에 도가 있다

 

도는 산속에서 닦아야만 하는 것일까. 도 닦았다고 해서 모두 다 도인이 되는 것일까. 어쩌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도 닦는 일이 될지 모른다. 또 살아 가면서 깨우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인지 모른다. 그 것도 처절하게 생활에 부딪치며 뼈저리게 경험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태어 나지 않은 길로 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도 닦음이 아닐까.

 

 

이 세상 속에 도가 있느니라

 

 

어느 영화에서 본 내용이다. 도를 알려면 세상 속으로 들어 가라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산 좋고 물좋고 공기 맑은 곳에서 말간 얼굴을 하고 도를 닦아도 세상 속에서 느끼는 고통과 괴로움을 맛 보지는 못 할 것이다.

 

고통과 괴로움, 불쾌한 느낌, 불만족은 도를 이루기 위한 자양분이고 반찬이고 손님과도 같다. 하루 하루를 살아 가는 생존해 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도인이고 도를 닦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도인들을 주변에서 마주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치 살아 가는 것 자체가 형벌처럼 느껴 지는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축적된 재산도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 치는 이웃들이다.

 

그 달 벌어 그 달 먹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우선 계획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대열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계획적인 생활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투자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삶의 질 또한 형편 없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

 

치킨장수의 자리는 항상 다리 중간에 있다. 차에서 파는 장작구이 통닭이다. 주로 초저녁에 나와서 밤늦게 까지 앉아 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추우나 더우나 항상 그 자리이다. 생태하천변의 다리인지라 지나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그 다지 잘 팔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앉아 있는 그 아저씨의 모습이 마치 도를 닦는 모습처럼 느껴 질 때가 있다. 무료함인지 라디오에서는 끊임 없이 소리가 흘러 나온다. 이렇게 도 아닌 도를 닦고 난 후에 거의 자정 무렵이 되어야 장사를 접는다. 아마도 내일 도 나올 것이고 내년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수년간 그렇게 해 왔듯이.

 

 

 

 

 

 

 

 

등산로 입구에 오뎅장사 아주머니가 있다. 소형 트럭에 오뎅과 우동, 계란등을 파는 장사이다. 오직 그 자리에서만 1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어서 산에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평일에는 없지만 주말만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추우나 더우나 항상 그 자리에서 있다. 그리고 손님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데 있어서 도가 튼 듯하다. 호객행위도 일체 없다. 손님이 오면 장사를 하고 손님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그대로 앉아 있다.

 

 

 

 

 

 

 

 

동네입구에 찬거리를 파는 할머니가 있다. 주변에 재래시장도 있고 마트도 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한다. 콩나물 양파 마늘 배추 무우 나물과 같은 간단한 찬거리이다. 벌써 수년째 그 자리를 고수 하다 보니 단골 고객도 꽤 생긴 모양이다. 주로 찾는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 역시 추우나 더우나 거의 매일 나온다. 요즘과 같이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날씨는 할머니에게 있어서는 축복 받은 날씨이다. 주로 노천에서 장사 하다 보니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그대로 공치는 날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으니 이런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가혹한 형벌 같은 삶

 

그 날 벌어 그 날 먹고 사는 사람들은 날씨에 크게 좌우 된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고 날씨가 너무 춥거나 더워도 장사가 되지 않는다. 이런 날 저런 날 빼고 나면 장사 할 수 있는 날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장사를 한다고 해서 때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입에 풀칠 할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특별한 전문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나마 해먹고 살 수 있는 것은 노천에서 장사 하는 것 밖에 없다. 요즘 같이 날씨 좋은 날은 이들에게 있어서 살맛 나는 세상이다.

 

이 들에게 있어서 삶이란 너무나 길고 지겨운 것일 지 모른다. 그리고 삶이라는 것이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들에게서 보는 달관의 경지는 어쩌면 도에 가까울 수 있다고 여겨진다.

 

사는 것 자체가 수행이고 도는 세상 속에 있다면 이들 역시 삶의 수행자라 볼 수 있다. 비록 이생에서 혹독하게 고통을 겪고 있지만 보다 나은 다음 생을 준비 하는 단계라고도 볼 수 있다.

 

노력은 해야 한다. 그러나 노력해도 안된다면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인연이 없는 것으로 간주 하고 포기 하면 된다. 오늘도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며 마치 도 닦 듯이 앉아 있는 그들을 보면 성자가 따로 없는 듯 하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겐 기나긴 밤이여

지친 나그네에겐 머나먼 이 길이여

불멸의 길을 찾지 못한

저 어리석은 이에겐

너무나 길고 지겨운 이 삶이여(법구경 60)

 

 

 

 

2009-05-2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