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사자좌에 오르사 사자후를 합소서~, 청법가의 53선지식과 넷상의 스승들

담마다사 이병욱 2009. 6. 18. 10:51

 

사자좌에 오르사 사자후를 합소서~, 청법가의 53선지식과 넷상의 스승들

 

 

 

 

     

 

 

성공의 징표는 무엇일까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사회에서는 모든 가치를 돈으로 따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만장자가 되었다면 이를 두고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학문적으로 일가견을 이루어 존경 받는 학자가 된 사람 역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부자가 되었거나 뚜렷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성공 했다고 볼 수 있으나 모두다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명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마도 객관적으로 증명 되는 성공의 기준으로서 주례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위치에 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남들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을 흔히 선생이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도 있지만 사회에서 선생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믈다. 그만치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만 선생으로서 대우를 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주례석에 섰다는 그 자체는 성공한 사회인으로서의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례만 전문으로 하는 직업인도 있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예외로 친다. 따라서 누구나 주례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주례선생과 더불어 성공의 또 다른 징표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법상에 서는 사람들이다.

 

모든 종교가 마찬가지이겠지만 단상에는 아무나 설 수 없다. 교회라면 목사, 천주교라면 신부, 불교라면 스님이 단상에 설 수 있다. 단상에서 교회 같으면 설교를 할 수 있고, 불교의 경우는 법을 설할 수 있다. 단상에 서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중을 휘어 잡는 변재술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히 전달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교역자내지 성직자가 아니라고라고 해서 법상에 서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일반인들도 법상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법상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성공한 사람들을 선지식이라 하여 강연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선지식은 아무나 될 수 있나

 

단상에 교역자 내지 성직자외에 일반인이 설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불교에서는 53선지식강연이라고 해서 일반인들도 법상에 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도 화엄경에 나오는 53선지식의 영향이 컷을 것이다. 화엄경에 나오는 53선지식의 직업은 매우 다양하다. 53명 중에는 불교의 수행자도 있지만 외도를 믿는 사람도 있고, 장사꾼, 뱃사공, 여자, 심지어 창녀에 이르기 까지 매우 다양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보살5, 비구5, 비구니1, 우바이4, 장자9, 거사2, 천신1, 여신10, 천녀1, 바라문2, 선인1, 2, 선생1, 동자3, 동녀2, 선사1, 외도1, 유녀1, 싯닫타 태자비1, 싯닫타 태자모1 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여성 선지지식이 대단히 많다는 것이다. 21명이 여성으로서 41%에 달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구도에 있어서 누구나 배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장사꾼 한테도 한 수 배울 수 있고, 심지어 창녀로 부터도 무언가 배울 수 있어서라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이 차별 없이 배울 수 있는 수 많은 선지식중에 관세음보살도 나온다. 그런데 기대 만큼 그다지 감명을 주지 못한다. 세간에 알려져 있는 관세음보살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입법계품의 반이상을 차지 하는 내용이어야 하나 너무 짤막하다. 수 많이 나오는 주야신 보다 더 짤막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수월관음도에 나오는 관세음보살과 조그맣게 그려져 있는 선재동자의 모티브가 바로 입법계품에 나오는 남인도 바닷가에 주석 하는 관세음보살이라고 해서 읽어 보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지 않아 허전한 느낌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어도 될 만한 자리인지

 

도는 세상속에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일까 경전속에 나와 있는 선지식과 유사한 부류의 선지식을 세상속에서 찾아 나서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불교tv‘53선지식 초청대법회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천안 보명사에서 주최 하는 이 대회는 불교tv에서 방영(http://www.btn.co.kr/program/Program_datail.asp?ls_StSbCode=CATPR_01&PID=P501)하고 있는데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올라온 선지식은 47명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53명을 다 채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는 한달에 한번 방영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초에 법상에 선 사람의 날짜가 2007년 4월 26 되어 있어서 만2년전의 일이다. 무려 3년간에 걸친 대장정인 것이다.

 

입법계품에 나와 있는 다양한 출신들과 맞추기 위함인가 출연진도 무척 다양하다.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입재를 시작으로 하여 소설가, 증권맨, 탤런트, 시인, 코메디언, 의사, 스포츠인, 기업가, 정치인, 음악가등 무척 다양하다. 입법계품에 외도도 선지식에 들어가 있었듯이 천주교나 기독교신자도 선지식으로 법상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선지식들이 나오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있다. “과연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어도 될 만한 자리인지 의문스럽다라는 내용이다. 매우 겸손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법상에 앉았다는 사실 자체는 사회적으로 성공 했다는 말과 동일 하다. 아무나 그 자리에 앉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무나 그 자리에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잘못 전달된 청법가의 가사

 

법상을 사자좌라 말하고, 법을 설하는 것을 사자후를 토한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게 되면 청법가라고 해서 법을 청하는 노래가 나온다. 법을 청하면 그에 응해서 사자후로 설하는 것이다. 법을 청하는 청법가는 아래와 같다.

 

 

덕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
사자후를 합소서 감로법을 주소서
옛인연을 이어서 새인연을 맺도록
대자비를 베푸사 법을 설하옵소서.

 

 

그런데 세번째 줄 옛인연을 이어서 새인연을 맺도록하는 부분의 이어서부분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제까지 의례히 이어서인줄 알고 노래를 불러 왔으나 틀렸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불광법회에서 마성스님이 제기한 내용이라고 한다. 마성스님의 옛 인연을 잊도록이라는 글을 보면 내용을 자세히 설명 하고 있다. 

 

 

 

옛 인연을 잊도록

마성 지음

 

 

불교에서 설법을 듣고자 하면, 먼저 스승께 예배한 후 간절한 마음으로 '법을 설해 주십시오'라고 세 번 청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스승은 제자 혹은 대중의 청법(請法)을 받고서야 비로소 법을 설한다. 이러한 청법의식(請法儀式)은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불교만의 고유한 전통이다.

 

이러한 전통은 부처님이 처음 깨달음을 이룬 직후,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할 것인가를 망설이고 있을 때, 범천이 부처님께 법을 설해 주시기를 간청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법을 설하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범천권청(梵天勸請)의 설화이다. 불교의 청법의식은 이 범천권청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청법의 전통은 한국불교에서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현재 일반법회에서 실시되고 있는 청법의식은 두 가지가 병행되고 있다. 하나는 한문 게송으로 된 청법게(請法偈)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음악으로 작곡된 청법가(請法歌)이다. 요즘은 후자의 청법가를 주로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청법게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차경심심의(此經甚深意) 이 경의 깊고 깊은 뜻을
대중심갈앙(大衆心渴仰) 대중들은 목마르게 갈구합니다.
유원대법사(唯願大法師) 오직 원컨대 대법사님께서는
광위중생설(廣爲衆生說)." 중생들을 위해 널리 법을 설해주소서."

 

다음은 청법가의 가사 1절을 여기에 옮겨 본다.

 

덕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
사자후를 합소서 감로법을 주소서
옛인연을 잊도록 새인연을 맺도록
대자비를 베푸사 법을 설하옵소서.

 

이 청법가는 춘원 광수가 짓고, 이찬우씨가 곡을 붙인 것이다. 춘원은 원래 기독교 신자였는데, 뒤에 불교로 개종하였다. 그래서 그의 초기 작품에는 기독교 사상이 많이 들어 있고, 후기 작품에는 불교사상이 저변에 깔려 있다. 특히 {원효대사}와 같은 소설은 그가 불교로 개종한 이후 터득한 불교의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청법가는 춘원이 효봉 스님으로부터 불교를 배울 때, 재래 불가의 청법게를 본받아 지은 것이다. 필자는 청법가의 가사가 재래의 청법게보다 더 잘 다듬어진 훌륭한 글이라 믿고 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청법가는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훌륭한 청법가의 가사 일부를 최근 바꿈으로써 본래의 뜻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원래의 가사는 "옛인연을 잊도록 새인연을 맺도록"인데, "옛인연을 이어서 새인연을 맺도록"으로 누군가가 고쳤다. 아마 표현을 부드럽게 한다고 '잊도록' '이어서'로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은 큰 과오를 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옛인연과 새인연이 상징하는 의미를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청법가에서 말하는 옛인연은 춘원이 과거에 믿었던 기독교를, 새인연은 새로 귀의한 불교를 상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옛인연을 이어서'라는 것은 절대로 성립될 수 없다.

 

사실 청법가의 핵심 구절인 "옛인연을 잊도록 새인연을 맺도록"은 불교의 근본 사상을 현대어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불교의 정의(定義)로 알려져 있는 칠불통계게(七佛通誡偈)의 내용을 살펴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제악막작(諸惡莫作) 모든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으며,
중선봉행(衆善奉行)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실천하고,
자정기의(自淨其意)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
시제불교(是諸佛敎)"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 게송의 앞부분 제1구 제악막작(諸惡莫作)은 옛인연을, 2구 중선봉행(衆善奉行)은 새인연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옛인연은 잊어야 하는 것이고, 새인연은 맺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소심경(小心經)에 나오는 삼시게(三匙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원단일체악(願斷一切惡) 일체의 악은 모두 끊기 원이며,
원수일체선(願修一切善) 일체의 선은 모두 닦기 원합니다.
원공제중생(願共諸衆生) 원컨대 모든 중생이 다함께
동성무상도(同成無上道)" 위없는 도를 함께 이루어지이다.

 

이 게송의 제1 '원단일체악(願斷一切惡)' '일체의 악을 끊는다'는 것은 곧 옛인연을 끊는다는 것이고, 2 '원수일체선(願修一切善)' '일체의 선을 닦는다'는 것은 새인연을 맺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옛인연을 잊도록 새인연을 맺도록"사정근(四正勤)의 가르침을 간단 명료하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정근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을 생하게 하고, 이미 일어난 선은 늘게 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을 생하지 않게 하고, 이미 일어난 악은 멸하게 한다"는 것이다.

 

의상(義相)스님이 지은 ‘화엄일승발원문’에 나오는 “제악일단일체단(諸惡一斷一切斷) 제선일성일체성(諸善一成一切成)”도 옛인연과 새인연으로 비유될 수 있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옛인연이라고 하면, 과거의 나쁜 습관악우(惡友)악업(惡業)번뇌 등을 상징하고, 새인연이라고 하면, 현재와 미래의 좋은 습관선우(善友)선업(善業)열반 등을 상징한다. 따라서 옛인연은 마땅히 끊어야 하고, 새인연은 마땅히 새로 지어야만 하는 것이다. 경전에서 나쁜 벗을 멀리 여의고, 어질고 착한 벗을 가까이 하라는 가르침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바꾼 가사 내용에 의하면, 옛인연을 이어가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옛인연을 이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좋은 인연[善緣]을 이어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능한 빨리 잊어버리고, 아직 이르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도 원하지 말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중아함경(中阿含經) 43, <온천림천경(溫泉林天經)>에 의하면,

 

신막념과거(愼莫念過去)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역물원미래(亦勿願未來)   또한 미래를 원하지 말라.

과거사이멸(過去事已滅)   과거의 일은 이미 멸했고,

미래복미지(未來復未至)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인연을 이어서 새인연을 맺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옛인연과의 단절을 통해 새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옛인연을 이어서’와 ‘옛인연을 잊도록’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그 의미가 다르다

 

 

 

마성스님은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불교적인 상식이 없는 사람이 자의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에 대하여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법회가 열리면 예외 없이 우리말 청법가가 나오고 가사 역시 항상 옛인연을 이어서~’ 식으로 여전히 부르고 있다. 그러나 원래의 뜻을 바로 알았다면 옛인연을 잊도록~’하고  개선해서 다음과 같이 고쳐 불러야 할 것이다.

 

 

덕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
사자후를 합소서 감로법을 주소서
옛인연을 잊도록 새인연을 맺도록
대자비를 베푸사 법을 설하옵소서.

 

 

법상을 사자좌라 하고, 법을 설하는 것을 사자후를 토한다고 한다. 이런 사자좌와 사자후는 원래 부처님을 상징적으로 표현 하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남방불교경전에 있는 게송에서 볼 수 있다.

 

 

사자좌와 사자후

 

인간사자의 노래또는 사자게(子偈)’라고 부르는 게송이 대표적이다. 빨리어로 나라시하가따(Narasiha-gatha)라고 한다. 부처님의 신체적인 특징을 백수의 왕인 사자와 비교 하여 표현한 것이다. 이 노래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 처음으로 카필라성을 방문하기로 하였을 때 야소다라 왕비가 아들 라훌라에게 들려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태어나자 마자 출가하여 아버지에 대하여 알리가 없는 라훌라가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하고 물으면 야소다라 왕비가 부처님의 신체적인 특징과 고결한 덕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 준다.

 

 

 

인간사자의 노래 (나라시하가따, Narasiha-gatha)

 

 

 

우아하고 고귀한 석가족의 왕자님,

몸은 성스러운 징표로 가득 차시고,

세상의 이익을 위하는 사람 가운데 영웅이시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얼굴 빛은 보름달처럼 빛나고 하늘사람과 인간에게 사랑받으며,

우아한 걸음걸이는 코끼리의 제왕과 같으시니 인간 가운데 코끼리,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왕족으로 태어난 귀족으로서 하늘사람과 인간의 존귀함을 받는 님,

마음은 계율과 삼매로 잘 이루어진 님,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잘 생긴 목은 둥글고 부드러우며, 턱은 사자와 같고,

몸은 짐승의 왕과 같고, 훌륭한 피부는 승묘한 황금색이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훌륭한 목소리는 부드럽고 깊고,

혀는 주홍처럼 선홍색이고,

치아는 스무개씩 가지런히 하야시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칠흙같은 심청색이고,

이마는 황금색 평판처럼 청정하고 육계는 새벽의 효성처럼 밝게 빛나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많은 별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달이 창공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수행자들의 제왕은 성스러운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이분이 참으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시옵니다.

 

 

 

법상에는 누구나 앉을 수 없다. 법상에 앉는 다는 것은 사자좌에 앉는 다는 말과 같고 법을 사자후로 설한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법가 없이도 법을 설하는 선지식들이 있다. 그런 선지식을 넷상에서 볼 수 있다. 

 

네트워크에서 만나는 선지식들

 

선지식을 반드시 법회나 방송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만 연결 되어 있다면 선지식을 인터넷에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록 청법가를 듣고 법을 설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설하는 자리는 사자좌라 볼 수 있고, 법을 설하는 목소리 또한 사자후라 볼 수 있다. 그런 선지식 중에는 스님들이 있는가 하면 재가불자도 있고, 여성강사도 있다. 넷상에 올라와 있는 대표적인 선지식을 소개 하면 다음과 같다.

 

 

 

 

각묵스님의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

http://www.btn.co.kr/program/Program_datail.asp?ls_StSbCode=CATPR_05&PID=P562

 

불교의 교학에 대한 체계를 잡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준다.

 

 

 

 

 

 

 

 

 

 

묘원원장의 12연기 법문듣기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불교의 핵심인 12연기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도움을 준다.

 

 

 

 

 

 

 

 

 

 

 

 

황세란강사의 PPT를 이용한 근본불교강의

http://www.mgoon.com/mystation/main.htm?id=10504708

 

알아차림에 대한 내용위주로서 초심자나 여성불자에게 도움이 된다.

 

 

 

 

 

 

 

 

 

 

2009-06-1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