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예쁜 브라만 나경원의 요설, 바이샤 수드라 언터처블의 소리도 귀담아 들어

담마다사 이병욱 2009. 6. 19. 09:07

 

예쁜 브라만 나경원의 요설, 바이샤 수드라 언터처블의 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행간을 읽는 다는 말이 있었다. 인터넷이 나오기 전 권위주의 정부시절에 언론자유가 위축 되어 있던 시절 이야기 이다. 독자들은 기사의 전체내용과 더불어 단어 하나가 주는 의미를 파악 함으로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 가고 있는지를 알려고 했던 것이다.

 

인터넷시대의 행간을 보며

 

인터넷시대를 맞이 하여 이제 행간을 파악할 필요는 없다. 뉴스의 기사 말미에 독자들의 댓글이 있기 때문이다. 댓글을 보면 대충 파악 할 수 있다. 그리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댓글중에 최근 뉴스에 자주 나오고 있는 예맨에서 납치 피살 사건이 있다. 그 뉴스를 보면 의료봉사 하러 갔다가 무장테러세력에게 희생 당하였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선교하러 갔다가 희생당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막연히 그럴 것이라고 추정 하지만 공식적인 뉴스나 기사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럴 때 댓글을 보면 선교하러 갔다가 피살 되었을 것으로 추정 하는 글이 대세를 이룬다. 이들 댓글의 대부분은 비판적이다. 조롱하고 비아냥하고 심지어는 욕설까지 나온다.

 

그러나 일부의 글은 매우 정확한 정보도 제공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국제NGO 단체의 대부분이 목사와 장로로 이루어진 기독단체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해외선교를 나가지만 사회에서는 순수민간봉사단체라고 딱 잡아 뗀다는 식이다. 그리고 더욱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이들 단체에 지급 되는 활동비, 월급등이 국민들이 내는 세금과 성금이라는 것이다. 해외선교에 목을 매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다고 꼬집는 댓글이다.

 

나경원의 요설을 보면

 

인터넷시대를 맞이 하여 종이신문보다 인터넷뉴스를 많이 보게 된다. 인터넷뉴스를 보는 재미중의 하나느 댓글을 열어 보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린 기사를 집중적으로 보게 된다. 대게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성의 기사가 대부분이다. 그런 기사중에 나경원 의원에 관한 기사가 있다. “국민이 세세히 모르는 미디어법, 여론조사 안돼라는 기사이다.

 

이 기사의 핵심내용은 국민들이 이해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여론 조사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국민들 수준이 낮기 때문에 여론조사를 하면 정확한 여론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이 충분히 검토한 사항이니 믿고 맡겨 달라는 이야기와 같다. 그러면서 미디어법은 일종의 산업에 관한 법이고 국민의 입장에서는 좀 더 다양한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고 또 이를 통해서 여러 가지 연관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요설을 늘어 놓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은 매우 뜨겁다. 거의 인터넷 민란수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댓글이 많이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댓글 중에서도 추천글을 보면 상위의 글이 나온다. 거의가 비아냥, 조소, 때로는 욕설도 보인다. 그만치 미움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 이다. 그렇다면 그녀에 대한 기사만 나오면 이렇게 조소하고 비아냥 거리는 댓글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까. 그 것은 그녀가 스스로 지은 자업자득이라 볼 수 있다.

 

 

 

 

 

 

 

 

현대판 브라만의 지금 이대로 영원히

 

나경원과 같은 부류의 계층을 귀족이라 부른다. 사회의 최상층부에 위치 하면서 그들의 부위 사회적 지위가 지금 이대로 영원히지속 되기를 바라는 가 하면 이에 대하여 비판 하고 반대 하는 세력에게 재갈을 물리려 하는 계층을 말한다. 요즘은 이런 계층을 고대 인도의 계급사회를 빗대어 브라만이라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현대판 브라만은 어떤 사람들일까.

 

과거 인도의 신분제도 이었던 카스트처럼 한국에서도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 사회적 자본이 대물림 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돈과 교육과 인맥으로 대표 되는 가치관에 의하여 새로운 계층이 출현하였다는 것이다. 이들 계층은 정계, 재계, 언론계에 넓게 포진 하고 있으며 조금 더 깊게 들어 가 보면 서로 정략적인 혼인 관계에 의하여 사돈으로 연결 되어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정치인이 법을 만들면 신문이 방송에 진출 하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고 재벌은 언론이 유지 될 수 있도록 밀어 주는 현상 또한 복잡 하게 얽혀 있는 사돈 관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 브라만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자신들을 비방 하는 것이다. 계급으로 따진다면 한 참 아래 것 들로 여겨지는 바이샤수드라와 같은 존재들이다. 이들이 비난하고 조소하고 비아냥 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어일까 미디어법에 사이버모욕죄법도 끼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참에 네티즌과 국민들의 입까지 틀어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엿 보인다.

 

나경원은 예쁘다, 그러나 우아하지 않다

 

브라만 나경원은 예쁘다. 같은 당의 다른 여성의원들 보다 미모가 월등히 뛰어나다. 그러나 그다지 아름답거나 우아해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녀의 요설에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요설은 그녀가 대변인을 거쳤기 때문일 것이다.

 

대변인이라는 직책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당의 이해관계를 대변 해야 한다. 따라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말할 때도 있고, 반대로 사실인 것을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 할 때도 있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거나 얼굴이 두껍지 않으면 대변인이라는 직책을 수행 하기 힘들것이다.

 

비단 대변인만 그럴까 정치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와 같은 범주에서 벗어 나는 사람들이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표를 의식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의 아니게 요설을 말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요설이 자신이 속한 계층 1%의 이익만을 대변 하는 요설이라면 비난 받아 마땅 할 것이다.

 

여자는 예쁘다라는 말을 들으면 좋아 한다. 특히 어렸을 때나 젋었을 때가 더욱 더 그렇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중년이상으로 갈 수록 예쁘다라는 말보다 아름답다거나 우아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나이가 들었는데 예쁘기만 하고 우아해 보이지 않으면 미숙한 것이다. 예쁜 브라만 나경원바이샤수드라’ 또언터쳐블(Untouchable, 불가촉천민)’로 불리우는 국민들의 소리도 귀담아 듣는 다면 그런 요설은 하지 못할 것이다. 예쁜 나경원이 우아한 나경원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200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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