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마음이 평생을 좌우한다, 아비담마 마음도표로 본 선처에 태어나기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 한다.”
한 때 유행하였던 가전회사의 유명한 광고 문구이다. 이런 광고 문구가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광고 문구에 철학적 의미가
소비자가 매장에서 TV를 사려 할 때 가격이나 품질, AS등 이것 저것 따지게 된다.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자신이 겪은 경험, 가전사의 이미지등을 파악하여 결심 하게 된다. 이렇게 한번 결심 하게 되면 해당 가전 제품을 구입 하게 되고, 그 가전제품이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사용하게 된다.
보통 가전제품의 주기가 10년임을 감안 하면 한 번 마음먹음에 따라 10년간은 사용 해야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결심을 하기 까지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일까. 아마도 최종 결심을 하기 전까지 여러 마음 중에 마지막 마음을 먹기 까지 자신도 모르게 결심을 하였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결심하게 된 것은 자신이 살아온 의식이 알게 모르게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선택의 논리로 따진 다면 왜 지금의 나일 수 밖에 없는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애완견은 왜 개로 태어 났는지, 한번 개구리이면 죽을 때 까지 개구리로 살아야 하는 지 의문을 가져 보지 않을 수 없다.
한 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 정신만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이지 그 소속 부대를 떠나면 더 이상 현역해병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번 개구리로 태어 났으면 죽을 때 까지 개구리이지만 영원한 개구리가 될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현재 이 몸과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늙어 죽을 때 까지 그 얼굴과 그 성향을 유지 할 뿐이지 죽고 난 다음에 내생에 그대로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다음 생에 어떤 몸과 어떤 성향을 받을지는 알 수 없고 단지 지나온 과거 행적을 보면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몸과 성향은 어떻게 받게 되고 어떻게 결정 되는 것일까.
저자 직강을 들으며
상좌불교 아비담마에서는 몸과 마음이 결정 되는 현상에 대하여 명쾌 하게 설명 하고 있다. 마음도표를 통해서이다. 그런 강의를 듣고 있다. 인터넷으로 듣는 아비담마 길라잡이 강의이다. 2006년도 봉녕사에서 각묵스님이 특강한 음성파일이다.
아비담마는 혼자 공부 하고 있다. 시간 나는 대로 책을 보고 음성강의를 듣는다. 음성강의가 좋은 점은 우선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라는 점이다.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이어서일까 매우 진지하다. 또 한가지 좋으 점은 잘 모르는 부분은 ‘다시 듣기’ 기능을 이용하여 몇 번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들으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들을 수 있다. 또한 노트를 해 놓으면 오래 기억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확실하게 아는 방법은 공부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다. 글로 정리 하다 보면 책을 한페이지라도 더 떠들어 보게 되고 인터넷 검색기능을 이용하여 자료를 더 찾게 된다.
음성강의를 들으면서 가장 큰 장점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저자 직강’이라는 것이다. 책의 저자가 직접 강의 하는 것 만큼 확실히 의미 전달 하는 것이 있을까. 강의를 듣다 보면 몰랐던 사실을 아는 것 만치 즐거은 일은 없을 것이다.
강의를 하는 스님은 불교, 특히 아비담마에 대하여 통달 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 강의 중에 아비담마의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인식과정에 대하여 다시 정리 하여 보았다.
업력(業力)과 깜마자와나(kamma-javana)
흔히 업을 짓는다고 말한다. 그런 업은 대체 어디서 짓는 것일까. 아비담마에서는 인식과정 중 ‘자와나(속행)’가 업을 짓는다고 말한다. 자와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업력(業力)이라는 말이 있다. 업의 힘이라는 뜻이다. 업력은 빠알리어로 무어라 부를까. 업이 깜마(kamma)이니까 거기에다 ‘힘(力)’이라는 빠알리어를 붙이면 업력이 될 것이다.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 업력은 빠알리어로 ‘깜마자와나(kamma-javana)’이다.
깜마와 자와나의 합성어가 업력인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식과정에 있어서 자와나, 즉 속행과정이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다. 인식과정 17단계를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인식과정 17단계 | ||||||||||||||||||
(안문인식과정 매우 큰 대상) | 2009-08-21 진흙속의연꽃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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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왕가 흐름 |
지나간 바왕가 |
바왕가 동요 |
바왕가 끊어짐 |
오문 전향 |
안식 | 받아 들임 |
조사 | 결정 | <--자와나--> | 등록 | 등록 | 바왕가 흐름 | ||||||
출처 ;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357쪽 |
자와나는 인식과정 17단계에 있어서 9~15단계 까지 7단계를 차지 하고 있는 핵심과정이다. 그런 자와나가 7번 모두 다 일어 난다는 것은 인식 대상이 무척 강렬한 것이다.
그러나 인식 대상이 강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약한 대상은 자와나가 일어 나지 않기 때문에 업을 짓지 않는다. 따라서 자와나는 업을 짓는 마음이며, 빠른 속도로 속행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강물이 흘러 가듯이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대상이 있어야만 마음이 일어난다’라는 말과 같다. 대상은 육문(六門)을 통해서 들어 온다. 흔히 말하는 ‘안이비설신의’라는 감각기관이 ‘색성향미촉법’이라는 감각대상을 만났을 때 이다. 이 때의 인식과정을 바왕가찌따(bhavanga-citta)라 하고 17단계로 구분한다.
바왕가를 다른 말로 ‘잠재의식’이라고 한다. 잠자고 있을 때와 같은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잠을 깨야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은 늙어 죽을 때까지 끊임 없이 계속 된다. 마치 강물이 흘러 가듯이 바왕가는 일어나고 사라짐을 일생 동안 지속 한다. 그러면서 끊임 없이 업을 짓고 과보를 남기게 된다.
그런 바왕가도 죽음에 이르면 한 존재의 마지막 마음이 일어난다. 이런 죽음의 의식 다음에 이어지는 새로운 마음은 다른 존재의 마음으로 시작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제까지 개구리로 일생을 살아 왔지만 마지막 죽음의식 다음에 이어지는 재생연결식에서는 전혀 다른 존재로 태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죽음의식이나 재생연결식은 일생일대에 오로지 단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 마음이다. 이들 두개의 마음은 일생에 단 한번 밖에 일어 나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죽음의식’과 ‘재생연결식’이라 부른다.
금생과 내생을 연결 시켜 주는 링크는
재생연결식은 일종의 ‘링크’라 볼 수 있다. 금생과 내생을 연결 시켜 주는 ‘연결고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내생에서는 어떤 몸과 마음을 받을 지 무척 궁금 하다. 이런 의문에 대하여 아비담마는 마지막 죽음의식의 순간에 다음과 같은 세가지 중의 하나가 일어 난다고 보고 있다.
첫째, 살면서 지었던 행위의 회상인 업(kamma)이 나타난다.
둘째, 업과 관련된 주변 조건인 업의 표상(kamma-nimitta)이 나타난다.
셋째, 태어날 곳의 표상(gati-nimitta)이 나타난다.
첫째로, 금생에 지었던 여러 업중에 가장 생생하게 나타난 업이 다음생의 재생연결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생생하게 나타난 업이 내생에 있어서 어느 존재의 몸과 성향을 결정 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업의 표상이 나타난 경우는 평소의 직업이나 생활태도와 관계가 깊다는 것이다. 칼을 많이 쓰는 칼이 보일 것이고, 낚시를 많이 한 사람은 낚시 바늘이 강렬하게 표상으로 떠 오를 것이다. 그런 표상이 다음생에 최초로 시작 되는 재생연결식에서 마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과보로서 그런 표상에 맞는 몸과 마음을 받게 될 것이다.
셋째의 태어날 곳의 표상도 마찬가지이다. 태어날 곳의 이미지가 보이고 그 이미지가 있는 곳에 태어 나게 될 것이다.
죽는 순간에 보는 표상
재생연결식은 새롭게 태어 나는 존재에 있어서 일생에 단 한번 일어나는 최초의 마음이자 바왕가의 시작이다. 즉 첫번째 바왕가가 재생연결식이고 이렇게 바왕가가 시작 되면 마지막 바왕가인 오로지 일생에 한번 밖에 없는 죽음의식이 일어날 때 까지 줄기차게 계속 된다.
예를 들어 ‘한번 개구리이면 죽을 때까지 개구리’인채로 살아 가게 되는 것이다. 도중에 개구리에서 다른 개체로 절대로 바뀌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단 죽게 되면 더 이상 개구리가 아닐 수 있다. 개구리가 아닌 다른 존재로 태어 나려면 마지막 죽음의식에 서 업이나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이 결정 하게 될 것이다.
죽음의식에서 태어 날 곳의 표상이 보였다면 의문인식 과정에 해당되고 다섯번의 자와나가 일어 난다고 한다. 이 자와나의 표상이 재생연결식의 대상이 된다. 즉, 재생연결의 대상은 자와나의 대상이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 대상의 대상은 죽는 순간에 나타나는 업과 업의 표상과 태어날 곳의 표상 세개중의 하나이다. 그 표상이 내생의 한 존재의 몸과 성향을 결정 하는 것이다. 그 몸과 성향을 가지고 죽을 때 까지 살아 가는 것이다. 그런데 죽는 순간에 보게 되는 표상은 보고 싶다고 보여 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보여 지는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지은 업이 업력(kamma-javana,깜마 자와나)이 작용해서 보여 지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의 생활태도가 내생을 결정 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무간(無間)과 중유
죽음의식과 재생연결식은 마음의 간격이 없는 것이다. 즉 마음과 마음의 간격이 없는 무간(無間)이라 볼 수 있다. 이 점이 북방대승불교의 구사론과 남방 상좌불교의 아비담마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구사론에서는 중유를 인정 하고 있다. 그러나 남방 상좌불교에서는 중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북방 구사론과 남방 아비담마의 마음을 비교 하면 다음과 같다.
구 분 |
최초의 마음 |
일생의 마음 |
마지막 마음 |
중음 |
상좌불교 아비담바 |
재생연결식 |
바왕가 |
죽음의식 |
(무간) |
대승불교 구사론 |
생유 |
원유 |
사유 |
중유 |
중유를 인정하지 않으면 설명 되지 않는 현상이 있을 수 있다. 그런 현상에 대하여 구사론의 중유는 이를 명쾌 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즉, 중유는 중유를 필요로 하는 지역에서 생겨난 하나의 불교문화현상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49재, 우란분재, 천도재등 영가천도가 이에 해당 될 것이다.
반면에 상좌불교 아비담마에서는 금생과 내생을 연결하는 마음을 재생연결식이라 하고, 이 재생연결은 입태 할 때 일어난 것으로 간주 한다. 즉 중음을 인정 하지 않는 것이다. 아비담마의 관점에서 본다면 중음이란 것도 다음생의 몸을 받는 것으로 간주 하기 때문이다.
죽음과 재생에 관한 도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죽음과 재생
B : Bhavaṅga (바왕가), A : Atīta-bhavaṅga (지나간 바왕가), C : bhavaṅga-calana (바왕가의 동요)
U : bhavaṅga-uccheda (바왕가의 끊어짐), P : Pañcadvārāvajjana (오문 전향), E :
Sp : Sampaṭicchana (받아들임), St : Santīraṇa (조사), V : Votthapana (결정), M : Manodvārāvajjana (의문전향)
J : Javana (속행), T : Tadārammaṇa (등록), K : 업 (kamma), KN : 업의 표상 (kamma-nimitta)
GN : 태어날 곳의 표상 (gati-nimitta), Pt : 재생연결식 (paṭisandhi), Cc : 죽음의 마음 (cuti-citta)
전생 | 현생 | |||||||||||||||||||||
대상 | 죽음 직전의 마음 (**K/ KN/ GN 중에 하나가 대상이 됨) | |||||||||||||||||||||
마음 | Pt | ··· | ··· | Cc | Pt | ··· | ··· | B | A | C | U | P | E | Sp | St | V | J | J | J | J | J | Cc |
내생 | 3생 | 4생 | |||||||||||||||||||||||
(**)가 대상이 된다 | 내생의 대상 | ||||||||||||||||||||||||
Pt | B1 | B2 | B3 | ··· | B16 | M | J | J | J | J | J | J | J | B | ··· | ··· | Cc | Pt | ··· | ··· | Cc | Pt | ··· | ··· | Cc |
재생연결의 대상과 시간
세계 | 대상 | 형태 | 시간 | 문 | |
욕계 | 業 | 그 생에 지은 선업, 불선업 | 과거 | 意門 | |
業相 | 업의 표상 | 과거, 현재 | 前五門, 意門 | ||
趣相 | 태어날 곳의 표상 | ||||
위바위니 띠까 등 | 색의 형상 | 현재 | 意門 | ||
청정도론 디빠니 등 | 색, 성, 향, 미, 촉, 법의 형상 | 과거, 현재 | 前五門, 意門 | ||
색계 | 業相 | 개념 (nimitta) | 시간을 초월 | 意門 | |
무색계 | 業相 | 1선, 3선 | 개념 | 시간을 초월 | 意門 |
2선, 4선 | 1선의 마음, 3선의 마음 | 과거 | 意門 | ||
자료출처 제따와나선원(http://cafe.daum.net/jetavana)
아비담마 마음의 도표를 보면
어느 존재가 생명을 다하고 다음 생에 어디에 태어 날 것인가는 큰 관심사항이다. 이왕이면 선처에 태어 나고 싶지 악도에 태어 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령 다시 인간으로 태어 난다고 해도 몸과 마음이 온전한 모습으로 태어 나기 바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원하는 세상에 태어 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내세를 결정 하는 존재가 염라대왕이나 창조신 또는 불보살이라 볼 수 있을까.
상좌불교 아비담마에서는 업과 업의 표상과 태어날곳의 표상이 내세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 말은 철저하게 원인과 결과에 따른 인과응보의 작용이라 볼 수 있다. 뿌리면 뿌린 대로 거두어 들인다라는 말이다.
이렇게 한번 생이 결정 되고 나면 그 몸과 그 성향대로 죽을 때 까지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을 결정 하는 마음이 있다. 과보로 나타난 마음(과보심)이라 불리우는 19개의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아래 도표의 면칠한 부분과 재생연결 칸에서 동그라미 처진 부분이다.
마음 89가지
2009-08-20 진흙속의연꽃 편집
해로운마음 12
(불선심)유익한마음 21
(선심)무기마음 56
과보로나타난마음36
(과보심) 작용만하는마음 20
(작용심)
세
욕
원인
재생
등록
간
계
연결
(11)
의
54
(19)
마
탐욕뿌리 (8)
해로운과보 (7)
음
(1)기쁜,사견○,자극×
(13) 평온, 안식
(2)기쁜,사견○,자극○
(14) 평온, 이식
(3)기쁜,사견×,자극×
(15) 평온, 비식
(4)기쁜,사견×,자극○
(16) 평온, 설식
(5)평온,사견○,자극×
(17) 괴로운, 신식
(6)평온,사견○,자극○
(18) 평온, 받아들이는
(7)평온,사견×,자극×
(19) 평온, 조사하는
○
○
(8)평온,사견×,자극○
유익한과보 (8)
(20) 평온, 안식
원인없는마음 (3)
성냄뿌리 (2)
(21) 평온, 이식
(28) 평온, 오문전향
(9)싫은,성냄,자극×
(22) 평온, 비식
(29) 평온, 의문전향
(10)싫은,성냄,자극○
(23) 평온, 설식
(30) 기쁜, 미소짓는
(24) 즐거운, 신식
어리석음뿌리 (2)
(25) 평온, 받아들이는
(11) 평온, 의심
(26) 기쁜, 조사하는
○
(12) 평온, 들뜸
(27) 평온, 조사하는
○
○
욕계큰유익한마음 (8)
욕계큰(유익한)과보(8)
욕계큰작용만하는 (8)
(31)기쁜,지혜○,자극×
(39)기쁜,지혜○,자극×
3
○
○
(47)기쁜,지혜○,자극×
(32)기쁜,지혜○,자극○
(40)기쁜,지혜○,자극○
3
○
○
(48)기쁜,지혜○,자극○
(33)기쁜,지혜×,자극×
(41)기쁜,지혜×,자극×
2
○
○
(49)기쁜,지혜×,자극×
(34)기쁜,지혜×,자극○
(42)기쁜,지혜×,자극○
2
○
○
(50)기쁜,지혜×,자극○
(35)평온,지혜○,자극×
(43)평온,지혜○,자극×
3
○
○
(51)평온,지혜○,자극×
(36)평온,지혜○,자극○
(44)평온,지혜○,자극○
3
○
○
(52)평온,지혜○,자극○
(37)평온,지혜×,자극×
(45)평온,지혜×,자극×
2
○
○
(53)평온,지혜×,자극×
(38)평온,지혜×,자극○
(46)평온,지혜×,자극○
2
○
○
(54)평온,지혜×,자극○
(55) 초선정
(60) 초선정
3
○
(65) 초선정
색
(56) 제2선정
(61) 제2선정
3
○
(66) 제2선정
계
(57) 제3선정
(62) 제3선정
3
○
(67) 제3선정
15
(58) 제4선정
(63) 제4선정
3
○
(68) 제4선정
(59) 제5선정
(64) 제5선정
3
○
(69) 제5선정
무
색
계
12
(70) 공무변처정
(74) 공무변처정
3
○
(78) 공무변처정
(71) 식무변처정
(75) 식무변처정
3
○
(79) 식무변처정
(72) 무소유처정
(76) 무소유처정
3
○
(80) 무소유처정
(73) 비상비비상처정
(77) 비상비비상처정
3
○
(81) 비상비비상처정
출세간 마음
출
(82) 수다원도
(86) 수다원과
3
출세간
(83) 사다함도
(87) 사다함과
3
간
(84) 아나함도
(88) 아나함과
3
8
(85) 아라한도
(89) 아라한과
3
출처 http://cafe.daum.net/chobul, 89가지 마음의 도표(일묵/일운/일창 스님 제공)
도표를 보면 출세간을 제외하고 32개의 과보로나타난 마음(과보심)이 있다. 이중 재생연결과 관련있는 마음은 총 19개이다.
19개의 마음의 특징은 세가지 즉, 재생연결과 바왕가와 죽음의 역할을 같이 수행한다는 것이다. 입태가 되는 순간에 이 마음은 이전의 삶으로 부터 새로운 존재를 연결지어 일어 난다. 바로 그 마음이 바왕가로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일어나 삶의 전과정에 있어서 존재의 흐름(상속)을 유지 시킨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그 마음은 다시 일어나서 한 삶을 종결 짓는다. 그런 세가지 역할 즉, 재생연결과 바왕가와 죽음의 역할을 하는 마음이 19개 라는 것이다. 19개의 마음중의 하나가 다음생을 결정 하는 것이다.
이중 어느 마음이 악도에 태어 나게 하는 마음이고, 어느 마음이 선처에 태어 나게 하는 마음일까.
첫째, 악도에 태어 나게 하는 마음은
삶의 과정에 있어서 안이비설신의라는 감각기관이 색성향미촉법이라는 감각대상에 부딧쳤을 때 일어나는 불선한 과보의 마음이 있다. 즉,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들이다. 이들 마음중에 재생연결과 관련된 과보의 마음은 (19)번 ‘원인없는 해로운 과보인 평온과 함께 조사 하는 마음’이다.
(13)번 안식부터 (17)번까지 신식은 오문전향한 식이고, (18)번 받아들이는 마음은 ‘안이비설신의’ 할 때의 의(意)이다. 이들 오문전향식과 의문전향식은 재생연결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조사 하는 마음은 의식이다. 즉, 한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안이비설신의와 의식의 7가지 마음이 모두 포함 되는 마음이 (19)번 ‘원인없는 해로운 과보인 평온과 함께 조사 하는 마음’인 것이다.
이 마음은 업을 지을 수 있다. 따라서 재생연결이 될 수 있는 마음이다. 이 마음에서 자와나가 일어나면 업을 짓게 되는데 재생연결식에서 이 자와나를 대상으로 하여 마음이 일어난다. 그 마음은 내생에서 한 존재의 최초의 마음이고 몸과 정신이 시작 되는 마음이다. 이 경우 해로운 과보의 마음 이므로 태어 나는 곳은 4악도이다. 즉,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중 한 곳에서 태어 나게 된다.
둘째, 불구로 태어나게 하는 마음은
태어 나면서 부터 눈멀고 귀먹고 말 못하는 사람이 있다. 또 저급한 신이나 정령으로 태어 나는 존재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어떤 과보을 받았기에 그렇게 태어 나는 것일까. 이런 과보를 받는 존재들은 (27)번 평온과 함께 하는 조사하는 마음의 과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유익한 과보인 ‘안이비설신의’ 와 ‘의식’이 모두 7가지 마음이 포함된 ‘(27)번의 평온과 함께 하는 조사하는 마음’에서 재생과 연결 된다. 그런데 해로운 과보의 마음과 달리 ‘(26)번 기쁨과 함께 하는 조사하는 마음’이 더 있다. 좋은 업의 과보와 함께 하기 때문에 추가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27)번 마음이 유익한 마음의 과보임에도 불구 하고 왜 인간으로 태어나면 불구가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구가 되는 것은 해로운 업 때문이지만 인간으로 태어 나는 것은 그 정도가 약하기는 하지만 유익한 업의 결과이다.”
불구로 태어 난 것은 해로운 업(불선업)의 과보이지만 그나마 인간으로 태어 난 것은 유익한 업(선업)의 과보가 미약하나마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셋째, 인간과 욕계천상에 태어 나게 하는 마음은
온전한 몸과 정신을 가진 인간과 욕계6욕천에 태어 나려면 다음과 같은 유익한 과보의 마음 8가지를 가져야 한다.
(39)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40)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은 마음
(41)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42)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은 마음
(43)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44)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은 마음
(45)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46)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은 마음
이들 8가지 마음을 ‘큰 과보의 마음’이라 한다. 즉, 두가지나 세가지 원인을 가진 아름다운 욕계 과보의 마음들은 천신들이나 불구가 아닌 인간이나 색계 또는 무색계의 존재로 태어 나게 하는 과보의 마음이다.
만일 인간으로 태어 나면 복받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고귀한 존재로 태어 나기 때문이다. 전생에 큰 선심을 낸 과보의 마음의 결과라 볼 수 있다.
이들 마음에 대한 설명으로서 ‘보시’의 예로 든다면 다음과 같다.
보시를 하면 공덕을 쌓는 다는 정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보시할 대상을 만났을 때 조금도 망설임 없이 타인에게 자극을 받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보시를 한다면 (39)번항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이다.
보시를 하면 공덕을 쌓는 다는 정견을 가진 사람이 관대함이 결여 되어 망설일 수 있다. 그럴경우 옆에서 다른 사람의 보시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받아 보시를 한다면 (40)항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은 마음’이다.
친척이 보시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가 스님을 보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즉시 보시 하거나 합장 할 수 있다. 이 경우가 (41)번항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이다.
친척이 보시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에게 “보시를 올려라” “인사를 하여야”라고 시킨 다면 (42)번항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은 마음’이다.
나머지 평온이 함께 하는 마음4가지는 보시할 기회를 만나지 못하였거나 기쁨거리를 만나지 못한 경우이다.
넷째, 색계에 태어 나게 하는 마음은
다음과 같은 색계의 과보의 마음 5가지가 대상이다.
(60)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과 희열과 행복과 집중을 가진 초선의 과보의 마음이다.
(61) 지속적인 고찰과 희열과 행복과 집중을 가진 제2선의 과보의 마음이다.
(62) 희열과 행복과 집중을 가진 제3선의 과보의 마음이다.
(63) 행복과 집중을 가진 제4선의 과보의 마음이다.
(64) 평온과 집중을 가진 제5선의 과보의 마음이다.
다섯째, 무색계에 태어나게 하는 마음은
다음과 같은 무색계의 과보의 마음 4가지가 대상이다.
(74) 공무변처에 속하는 마음
(75) 식무변처에 속하는 마음
(76) 무소유처에 속하는 마음
(77) 비상비비상처에 속하는 마음
기쁨과 함께 지혜가 있는 자극 받지 않은 자발적인 보시를 해야
순례법회를 다니다 보면 열심히 보시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은 법당을 찾아 다니며 보시를 하지만 일부 신심있는 불자는 일년짜리 연등을 다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분을 보면 어느 특정한 한군데만 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곳 마다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발원문 내용은 자신과 가족에 관한 사항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보시를 함으로써 공덕도 쌓고 또한 사찰경제도 풍요로워지는 이중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대한민국의 전통사찰은 전국구라 볼 수 있다.
보시를 하면 공덕을 쌓는다라는 정견을 가진 불자가 금액이 큰 일년짜리 연등을 기쁜 마음으로 달았을때 옆에서 지켜 보던 또 다른 불자가 이에 자극 받아 자신도 연등을 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경우 전자는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지 않음 마음의 소유자라 볼 수 있고, 후자는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긴 있되 자극 받아서 일어난 마음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논리를 경우에 따라 적용 해 놓은 것이 욕계의 큰 유익한 과보 네가지(39~42)이다.
순례법회를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불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보시를 하면 공덕을 쌓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불자와 같은 경우 보시할 기회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보시함으로 얻게 되는 기쁨도 없다. 이런 불자의 경우가 평온과 함께 하고 지혜가 있고 자극이 있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네가지(43~46)의 마음이 욕계의 큰 유익한 과보로 분류 된다.
‘시계생천(施戒生天)’이라는 말이 있다. 보시하고 지계 하면 천상에 태어 난다는 말이다. 이 말은 특히 재가불자들에게 많이 하는 말이다. 시계생천을 현대식으로 풀이 한다며 ‘봉사하는 삶’과 ‘도덕적인 삶’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봉사하고 베푸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많이 한다. 가장 이상적인 삶은 아무 생각 없이 베푸는 것이다. 이 것을 금강경에서는 ‘무주상보시’라 한다. 그리고 그 공덕은 한량 없이 크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죽어서 천상에 태어 나기 바란다. 설령 천상에 못 태어 난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나면 고귀한 인간으로 나기 바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덕을 쌓아야 할 것이다. 그 것도 기쁨과 함께 하는 지혜가 있는 자극 받지 않은 자발적인 보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도 스님이 지나가면 합장한다거나 시주를 하는 경우,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 주는 경우,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는 사람을 보고 함께 날라 주는 경우등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이런 마음 가짐을 가질 것을 아비담마에서는 도표로 이야기 하고 있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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