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같은 남편을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 '그 인간'
사람은 겉만 보고 알 수 없다. 상대를 해 보아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대화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이야기는 서로 공감대를 형성 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상대방의 내공이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없다.
명상원에 가면 자주 보는 분이 있다.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곱게 늙은 젊은 할머니 같은 분이다. 그 분은 명상원의 행정 일을 맡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하루는 원장님이 법문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갑자기 특별한 일이 발생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대타로 그 분이 법상에 올라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평범한 할머니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강의를 진행 하는 스타일이 보통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시간 보내기식 강의인줄 알았으나 강의가 진행되면 될 수록 알찬 이야기로 가득하였다. 또한 강의를 대단히 진지하고 재미나게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분은 거물이었다. 인터넷으로 알아 본 그 분의 이력은 법철학자로서 독일유학파이고 대학강단에도 선 분이었다. 2000년 부터 위빠사나를 시작 하였고 자신이 지은 수행관련 책(아는마음, 모르는 마음)도 있었다.
그 분의 강의 중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었다. 주기적으로 강연을 나가고 있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모자보호센터'같은 곳으로 남편의 폭력에 못이겨 집을 뛰쳐 나온 사람들이 임시로 모여 있는 곳이라 한다. 그 곳에서 그들을 위하여 위빠사나 지도를 하고 있는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한결 같이 남편을 증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을 부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인간'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한자용어를 쓰면 좀 더 고상해 보인다. 그래서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한자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또 외국물을 좀 먹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영어식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마도 잘 알아듣지도 이해 하지도 못하는 외국어를 사용하면 좀 더 권위가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해서 일 것이다. 한문투의 용어는 불교경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법화경, 화엄경과 같이 한문투의 내용을 보면 가슴이 턱 막힌다. 그러나 최근에 번역된 각묵스님의 니까야나 아비담마를 보면 한글식 번역이다. 대표적인 예로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보면 마음부수를 표현 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들' '때때로들'같은 용어를 쓴다. 그런 한글식 용어를 쓴다고 해서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알아듣고 이해하기 쉬우면 최고로 좋은 번역이다. 따라서 초기경전도 딱딱한 한문투의 아함경 보다 한글투의 '니까야'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마찬가지로 남편을 지칭하는 용어인 '그 인간'에서 '인간' 은 한문투의 용어이다. '그 사람'으로 하지 않고 '그 인간' 같은 한문투의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분명히 고상한 표현임에 틀림 없지만 알고 보면 정반대이다. 일종의 경멸에 가까운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과 같은 말을 종종 들어 본 것 같다. 여성이 원수같은 남편을 비하 할 때 쓰는 표현으로서이다. 반대로 남성이 원수 같은 아내를 '그 인간'라고 말하는 것은 별로 들어 보지 못하였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슬며시 '그 인간' 이 원수같은 남편을 지칭 하는 경멸적인 용어로 쓰여진다는 것을 알았다.
2009-09-0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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