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천이 왜 가장 수승한 천상일까, 불모를 위한 Imee Ooi의 대준제다라니
한국불자들의 생활경전은 천수경이다. 천수경에 다음과 같은 진언이있다.
“나무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南無 七俱祗 佛母 大准提 菩薩)”
참회진언에 나오는 이 구절에서 ‘불모대준제보살(佛母大准提菩薩)’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모(佛母)란 부처님을 낳아 준 어머니를 말한다. 그런데 ‘준제보살(准提菩薩)’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인터넷을 찾아 보았다.
준제보살(准提菩薩)이란 누구일까
준제보살 :
밀교에서 분류하는 칠관음 중 한 관음이시다.
칠관음은 성관음(聖觀音), 천수관음, 마두관음, 십일면관음, 여의륜관음, 준제관음, 불공견색관음이시다. 준제관음보살의 형상은 세 개의 눈에 열 여덟 개의 팔을 가진 것이 정형이며, 이 때 세 개의 눈은 중생의 세 가지 장애인 미혹(迷惑)과 죄업(罪業)과 괴로움[고(苦)]을 바르게 보고 열 여덟 개의 팔로 남김없이 제거하여 청정한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이 관음은 중생의 재앙을 없애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주며, 수명을 연장시켜 주며, 지식을 구하는 이의 원을 성취시켜 주고 깨달음을 이루게 하는 권능이 월등하다고 하여, 일부 승려들은 이 관음보살을 신봉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준제관음보살을 불모(佛母)라고 한 것일까? 이에 대하여 천수경을 강의한 현성스님 (http://cafe.daum.net/indelamang/K0p9/56069?docid=LEvm|K0p9|56069|20090831094744&q=%C4%A5%B1%B8%C1%F6%20%BA%D2%B8%F0%20%B4%EB%C1%D8%C1%A6%BA%B8%BB%EC&srchid=CCBLEvm|K0p9|56069|20090831094744)은 준제보살이 우리의 청정한 근본 마음자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모(佛母)는 부처를 낳고 양육하는 부처의 어머니로서, 불교에서는 이를 다양하게 표현한다. 반야경(般若經)에서는 반야지(般若智)가 불모(佛母)요, 열반경에서는 불성(佛性)을, 선(禪)에서는 무심(無心)을 불모로 보고 있으며, 준제경에서는 청정을 불모로 삼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청정한 마음자리가 부처를 만들고 기르는 불모이므로, 청정한 마음을 뜻하는 준제관음보살을 '불모'라고 한 것이다.
준제보살이 우리의 청정한 마음자리가 부처를 만들어 기르므로 불모라고 하였다. 또 칠구지에 대하여 무량한 수와 같은 7억이라고 해석 하였다. 따라서 ‘나무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은 '나도 부처가 되겠다.'는 원을 가득 담아 7억의 부처님의 어머니이신 대준제보살님께 귀의하므로서 그를 닮아 가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처가 될 사람의 어머니는
초기불교에서 불모는 싯다르타를 낳은 마야(Maya) 부인을 말한다. 마야부인은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다가 45세에 싯다르타를 잉태하여 당시당시 인도의 습관에 따라 친정에 가서 해산하기 위하여 구리성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의 숲속에서 싯다르타를 낳았다고 한다. 그러나 싯다르타의 출산 후 7일 만에 죽었다. 그런데 부처가 될 사람의 어머니는 아기를 낳자 마자 죽는다고 한다. 그런 현상은 과거불에서도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천수경에서 칠구지불모에 대하여 7억명이나 되는 부처님의 어머니로 표현 하고 있다. 업겁이래 무량한 부처님이 출현 하였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런 부처님들이 모두 과거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경전에 나와 있는 가장 가까운 시기에 출현한 부처님들이 있다. 고따마 붓다를 포함한 과거7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은 겁단위이다. 한 부처님 출현하고 난 다음에 기나긴 공백을 거쳐 또 한분의 부처님이 출현 하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공백기간에 부처님 출현 하였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것이다. 또 부처님이 깨달은 법이 머무는 기간은 매우 짧아 무량한 세월에 비교한다면 거의 찰나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 부처님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위빠시 붓다 (Vipassi Buddha)-91겁전에 출현
두번째, 시키 붓다 (Sikhi Buddha)-31겁전에 출현
세번째, 웻사부 붓다 (Vessabhu Buddha)- 시키붓다와 같은 겁에 출현
네번째, 까꾸산다 붓다 (Kakusandha Buddha)-현겁에 출현
다섯번째, 코나가마나 붓다 (Konagamana Buddha)- 현겁에 출현
여섯번째, 까사빠 붓다 (Kassapa Buddha)- 현겁에 출현
일곱째, 고따마 붓다 (Gotama Buddha)- 현겁에 출현
과거불을 보면 현재의 겁에 무려 4분의 부처님이 출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미래불인 메떼야 붓다(미륵불) 까지 오게 되면 현겁에 다섯분이 출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겁을 ‘행운의 겁’이라고 한다.
과거불의 공통적인 특징은
이들 부처님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깨달은 내용이 모두 같다고 한다. 또 태어나서 열반에 들 때 까지 행적이 거의 같다는 것이다. 즉 과거칠불을 포함한 역대의 부처님들은 과거 무량한 전생에 최고의 바라밀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반드시 왕족과 같은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이 될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곧 바로 죽게 된다. 태어나자 마자 어머니를 잃은 그 아이는 자라면서 사색적으로 되고 어린 나이에 벌써 무상함을 느낀 다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이 될 사람은 반드시 결혼해서 아이를 하나 두게 되는데 그 아이는 반드시 아들이다. 이런 처자를 두고 출가하는 것 역시 동일하다.
출가 하여 여러 스승으로부터 최고의 경지를 배우게 되지만 어렸을 때부터 품었던 의문을 해결 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고행도 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자신만의 독특한 수행법을 발견 하게 된다. 그 수행법이 위빠사나이고 이 위빠사나 수행법과 과거 스승으로부터 배운 선정 수행을 바탕으로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여 깨닫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 깨달은 내용을 전파하기 시작 한다. 또 자신을 따르는 제자 중에 가장 뛰어난 두명의 상수제자를 두게 된다. 그리고 열반에 듦으로서 일생을 마치게 된다. 이런 과정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의 동일한 행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은 내용도 당연히 동일한 것이다.
마야부인이 죽어서 태어난 곳은
붓다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죽어서 어디에 태어났을까. 초기경에 따르면 마야부인은 도솔천에 나셨다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환자(Anagami, 아나가미, 아나함)의 도와 과를 얻어 색계 정거천에 태어 났다고 한다. 색계정거천은 어떤 곳일까.
색계천상중에 가장 높은 곳이 4선의 ‘정거천’이다. 정거천은 빠알리어로 숫다와사(suddhavasa)라하고 suddha(청정함)과 vasa(거주)의 합성어이다. 한자어로는 淨居(정거)이다. 정거천은 불환과를 얻은 자만이 태어 나는 곳이다. 따라서 정거천은 범부들이 결코 태어 나지 못하고 예류자와 일래자도 태어 나지 못한다고 한다. 즉 정거천은 가장 깨끗한 곳이고 또한 가장 큰 과보를 가진자가 태어나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정거천이 있는 색계세상은 어떤 곳일까. 흔히 선정수행을 하면 색계세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색계를 향한 4개의 선중에 하나를 많이 닦아서 그 선정의 힘으로 그 선의 경지와 같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욕계천상이 바라문교의 영향을 받은 전통적인 인도인의 세계관이라면, 색계와 무색계는 불교의 천상세계관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색계 천상이 불교의 천상개념을 잘 표현 하고 있다.
색계는 어떤세상일까
색계는 초선 2선 3선 4선의 네가지 세상이 있다. 각각의 세상의 특징은 삼매의 경지에 따라 분류 된다. 즉 심사희락정(尋伺喜樂定)으로 대표 되는 경지이다.
심사희락정이란 무엇일까. 심(尋)은 빠알리어로 ‘위딱까(vitaka)’라 하고 ‘일으킨 생각’을 말한다. 사(伺)는 빠알리어로 ‘위짜라(vicara)’라 하고 ‘지속적인 고찰’을 말한다. 희(喜)는 빠알리어로 ‘삐띠(piti)’라 말하고 ‘거친행복’을 말한다. 락(樂)은 빠알리어로 ‘수카(sukha)’라 하는데 ‘잔잔한 행복’을 말한다. 정(定)은 빠알리어로 ‘우뻬카(upekkha)’라 말하고 ‘지극히 평온한 상태로서 심리상태가 매우 깊어지는 단계’라 볼 수 있다.
삼매의 경지에 따라 색계세상을 분류 한다면 초선은 심사희락정(尋伺喜樂定) 모두 있고, 2선은 심사가 탈락 되고 희락정(喜樂定)만 있다. 또 3선은 희가 탈락 되고, 락정(樂定)만 있는 상태를 말하고, 마지막으로 4선은 락이 탈락돠고, 정(定)만 남아 있는 경우이다. 따라서 4선의 상태는 지극히 마음이 평온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을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색계세상
구분
색계 세상
수명
삼매의 경지
핵심용어(키워드)
4선
정거천
색구경천
16000 대겁
선견천
8000 대겁
선현천
4000 대겁
무열천
2000 대겁
정(定)
큰과보
무번천
1000 대겁
(웨흐빠라, vehpphala)
무상유정천
500 대겁
광과천
500 대겁
3선
변정천
64 대겁
깨끗함
무량정천
32 대겁
락정(樂定)
(수바, subha)
소정천
16 대겁
2선
광음천
8 대겁
광명
무량광천
4 대겁
희락정(喜樂定)
(아바, abha)
소광천
2 대겁
초선
대범천
1 무량겁
범천
범보천
1/2 무량겁
심사희락정
(브라흐마, brahma)
범중천
1/3 무량겁
(尋伺喜樂定)
출처; 아비담마길라잡이/ http://cafe.daum.net/jetavana, 진흙속의연꽃 편집
색계 4가지 세상의 키워드는
이런 네가지 세상의 특징은 무엇일까. 네가지 세상의 특징은 키워드로 표현 할 수있다.
초선천의 키워드는 ‘범천(브라흐마, brahma)’이라 한다. 부처님 당시에 인도에서 가장 유력하였던 바라문의 신인 ‘브라흐마(범천)’를 초선의 경지에 배대 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2선천의 키워드는 ‘광명(아바, abha)’이라 한다. 2선이 희열(喜, 삐띠, piti)과 행복(樂)이듯이 여기서 광명은 희열이 극대화함을 표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3선천의 키워드는 ‘깨끗함(수바, subha)’이다. 3선천이 락(수카, sukha, 행복)과 정(우뻬카, upekkha, 평온)이듯이 희열이 빠진 상태에서 순정하고 평온한 상태인 순정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4선천의 키워드는 ‘커다란 과보(웨흐빠라, vehpphala)’이다. 심사희락이 모두 탈락되고 정(우뻬카, upekkha, 평온)만 남은 세상이다. 그 4선천 중에서도 정거천은 아무나 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불환과를 얻은 성자들만 가는 세상이다. 그 곳에서 오랫동안 살다 죽으면 다시는 세상에 태어 나지 않을 과보를 받은 성자들이다. 따라서 4선천의 정거천의 키워드는 ‘커다란 과보’의 세상이다.
불환과는 어떤 단계를 말할까
경전에 고따마 붓다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아이를 낳고 7일만에 죽어서 정거천에 태어 났다고 한다. 그런 정거천은 불환과를 얻은 성자들만 가는 세상이라고 한다. 불환과는 어떤 단계를 말하는 것일까. 초기경에 다음과 같은 10가지 족쇄(삼요자나, samyojana)를 말하고 있다.
① 자아가 있다는 견해(有身見)
②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
③ 의심
④ 감각적 욕망
⑤ 악의
⑥ 색계에 대한 집착
⑦ 무색계에 대한 집착
⑧ 자만
⑨ 들뜸
⑩ 무명
불환자는 열가지 족쇄중에 1번부터 5번까지 족쇄가 모두 풀린 성자를 말한다. 빠알리어로 불환자는 아나가미(Anagami)라 하는데 다시는 이세상에 돌아 오지 않을 존재를 말한다.
4선에 들게 되면 다섯가지 신통을 얻게 된다는데
불환자가 머무는 세상인 4선천은 또 신통의 세계이기도 하다. 4선에 들게 되면 다섯가지 신통을 얻게 된다고 한다. 그 5신통의 내용을 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 참고해 보았다.
첫째, 신족통(잇디 위다, iddhi-vidha)이다. 하나가 여럿이 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벽이나 담을 아무 장애 없이 통과 하기도 한다. 물위에 빠지지 않고, 가부좌한 채 하늘을 날기도 한다. 태양과 달을 쓰다 듬기도 하고 육신을 지닌채 타 세상인 브라흐마 세상까지 출현하게 된다.
둘째, 천이통(디바 소따, dibha-sota)이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 귀(天耳)로서 천상이나 인간의 소리를 멀든 가깝든 간에 다 들을 수 있다.
셋째, 타심통(빠라찌따 위자나나, paracitta-vijanana)이다. 마음으로 다른 사람이나 살아 있는 중생의 마음에 통함으로써 그 마음을 파악한다.
넷째, 숙명통(뿝베니와사 아누사띠, pubbenivasa-anussati)이다. 한량 없는 전생의 삶을 기억 할 수 있다. 한생전, 두 생전,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우주 수축의 여러 겁, 우주 팽창의 여러 겁, 우주수축과 팽창의 여러 겁 전 까지를 기억 할 수 있다. 용모는 어떠 했으며, 어떤 음식을 먹었고, 내가 겪은 즐거움과 괴로움은 어떤 것이었고, 수명의 종말은 어떠했고, 거기서 죽어서는 어디에서 태어 났으며, 거기서는 이름이 무엇이었고,… 거기서 죽어서는 여기에 다시 태어난 것까지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기억해 낼 수 있다.
다섯째, 천안통(딥바짝쿠, dibbacakkhu)이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 눈(天眼)으로 모든 중생들이 천박하거나 고상하게, 아름답거나 추하게, 선처에 나거나 악처에 가면서 죽고 나고 하는 것을 본다. 이와 같이 중생들이 어떻게 지은 바, 업에 따라 가는지를 안다.
이렇게 4선을 닦으면 얻을 수 있는 신통은 5가지이다. 그러나 이런 신통은 모두 세속적인 것이라 한다. 지혜 없이 단지 선정의 힘으로 닦은 선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혜를 가지고 지혜의 힘으로 얻어진 신통은 무엇일까. 바로 그 것은 누진통이다. 이 누진통을 초기경에서는 여섯번째 신통으로 언급하고 있다.
여섯번째 신통인 누진통은 어떻게 얻게 되나
누진통(아사왁카야 냐나, asvakkhaya-nana, 번뇌를 부슨 지혜)는 사마타 즉, 선정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위빠사나를 통한 통찰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을 말한다. 참고로 초기경에 나타나는 누진통의
마음의 해탈(심해탈)과 지혜의 해탈(혜해탈)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초범지에 의해
증명하며 구족하여 머문다.
(D2; M6; M73등)
그는 ‘이것은 괴로움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들은 번뇌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들은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들은 번뇌의 소멸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들은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M4; M27등)
천상은 실재할까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은 욕계천상, 색계천상, 무색계천상 이렇게 3가지를 말한다. 그런 천상이 실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의 인식을 벗어난 세계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비담마에 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인식을 벗어난 외부의 세계는 우리 내부의 마음에 있는 여러 현상이 밖으로 반영 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외부세계라는 것은 다름이 아닌 우리 마음에 있는 미세한 여러 계층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이나 비실재로 외부세계를 이해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외부세계는 엄연히 실재 하며 객관적인 사실로 존재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외부세계는 항상 마음으로 이해 되는 세계이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유형의 마음들이 외부로 부터 자신에게 나타나는 대상의 성질을 결정 한다고 한다. 따라서 마음이 없으면 외부세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어떤 중생은 천상에 태어나고, 또 어떤 중생은 천상과 같이 특정한 세계에 태어 나는 것일까. 이 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전생에 그가 그 세계에 태어나기에 적합한 업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세계와 마음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인 관점에서 본 다면 중생들이 사는 모든 세상은 중생들의 정신적인 행위가 만들어내고 지탱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와 동시에 이들 세계는 마음으로 하여금 새로운 환경 하에서 새로운 인격을 형성 하도록 향상을 계속 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천상중에 갈만한 천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은 깨달음을 추구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세상은 아니다. 선정수행을 하여 아무리 높은 천상에 태어 났다 할지라도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여 깨닫지 못하였다면 여전히 중생일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예류자’이상의 성자를 제외한 모든 존재, 즉 지옥 중생에서부터 천상의 천신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존재는 모두 '범부중생(뿌투자나, puthujjana)'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나 색계, 무색계 천상중에 갈만한 천상이 있다. 바로 그 천상은 색계 4선천에 있는 '정거천'이다. 정거천이야말로 천상에 태어나기를 목표로 하는 존재들이라면 응당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거천에 사는 존재는 다시는 이세상에 태어 나지 않을 불환자만이 갈 수 있는 세상이다. 불환자는 정거천에 태어나 열반에 들기 때문에 아래 새상으로 내려올 일이 없다. 즉 윤회의 업보를 벗어나 있는 불교의 유일한 천상이 정거천인 것이다.
불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과 정거천에서만 윤회를 종식시킬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천상은 너무 행복해서 수행을 할 마음이 아예 일어 나지 않고, 지옥과 같은 사악도의 경우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수행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이 적절히 교치 하는 인간세상만이 수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있을 때 수행하여 그 과보로 정거천에 태어 났다면 커다란 축복이라고 본다. 우선 그 곳은 불환과를 얻은 성자들만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지극히 평온하고 안정되고 깨끗한 세상일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무려 1000대겁 이상 오래 살다가 아래 세상으로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열반에 든다면 인간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세상은 아마 정거천이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은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천국보다 더 수승한 세상일 것임에 틀림 없다. 그 이유는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정거천이 기독교 천국보다 수승한 이유는
먼저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천국개념은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천상'개념일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이상적인 세상이 욕계천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고정 불변의 영원한 나가 있다는 생각인 '유신견(有身見)'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유신견을 가지고 있는 한 이기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 유신견은 범부중생들에게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거천의 불환자들은 10가지 족쇄 중에 첫번째 족쇄인 유신견을 푼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기적일 수가 없다. 나가 없다고 생각 하기에 이타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기독교의 천상은 ‘닫힌 지옥’개념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그 행복이 행복인지 아닌지 모르고 영원히 산다는 것은 차라리 형벌에 가깝다.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라서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한다면 그 곳은 다름아닌 지옥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거천에 사는 성자들은 지극히 안정되고 평온한 세상에서 오랫동안 산다. 그러나 살만치 살다가 다시는 태어 나지 않는 열반에 들게 된다. 이런 세상이야말로 인간이라면 추구 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상이 아닐까.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를 위한 노래, 대준제다라니
1)准提咒(大准提陀罗尼 黄慧音 27分钟, 27분판)
2)准提咒(大准提陀罗尼 黄慧音 2分钟, 2분판)
黄慧音(Imee Ooi)
3)大准提陀罗尼(无尘5专辑, 여성맑은창송. 6분)
1) 제목
마하춘디다라니(MAHĀCUNDI DHĀRAṆĪ, The Dharani to Cundi-Durgha, 準提神咒)
2) 산스크리트어 가사
Namaḥ saptānām samyak-saṃbuddha koṭinām. Tadyathā: Oṃ cale cule Cunde svāhā.
3) 영어 해설
Adoration to 'seven billions perfect status, perfect enlightened beings', like this: om cha'le chu'le Chundi (the Extreme purity), All hail!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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