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빠리얏띠 빠띠빳띠 빠띠웨다, 정법과 정법시대에

담마다사 이병욱 2009. 9. 13. 10:21

 

빠리얏띠 빠띠빳띠 빠띠웨다, 정법과 정법시대에

 

 

 

 

 

 

 

금강경에서 말하는 정법시대

 

정법이란 무엇일까. 정법이라는 용어를 들으면 금강경을 떠 올리게 된다. 금강경에 정법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후오백세라는 용어가 등장 한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 하는 시기를 말한다. 그래서 크게 정법시대, 상법시대, 말법시대 이렇게 3가지로 구분한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정법(正法)시대는 부처님 입멸후 500년간 지속 되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잘 수행하여 쉽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시기를 말하고, 상법(像法)시대는 그 다음 500년간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수행 하지만 깨달음을 얻기 어려운 시기이고, 말법(末法)시대는 그 이후의 500년간의 시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있으나 수행도 없고 깨달음도 없어 불법이 쇠하는 시기를 말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법시대를 후오백세로 한다는 설도 있으나 학계에서는 역사적으로 금강경이 나온 시기를 고려 하였을 때 정법시대가 끝난 뒤의 상법시대가 후오백세에 적합 하다는 설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구에 담겨 있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 후오백세가 어느 특정한 시점을 지칭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여 경전공부도 하지 않고, 수행도 하지 않으며, 나날이 부패하고 분열만이 남아 있어서 정법을 공부 하기 어려운 시대적 상황을 지칭 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정법이란 무엇일까

 

정법을 빠일리어로 삿담마(saddhamma)’라 한다. 여기서 삿(sad 또는 sat)바른, 참다운, 진실한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삿담마는 바른 법, 참다운 법, 진실한법의 의미가 되어 한자어로 정법(正法)이 되는 것이다.

 

삿담마를 산스크리트어식으로 표시하면 삿다르마(saddharma)가 된다. 이런 삿다르마가 들어 가는 경전제목이 있다. 바로 묘법연화경이다. 묘법연화경을 산스크리트어로 말하면 삿다르마 뿐다리까 수뜨라(Saddharma Pundarica Sutra)’이다. 이 삿다르마를 구마라습은 정법이라 번역하지 않고 묘법이라고 번역한것이다. 뿐다리까(Pundarica)라는 말은 연꽃 중에 '백련꽃'을 말하고 수뜨라 (Sutra)는 경전을 뜻한다. 따라서 삿다르마 뿐다리까 수뜨라(Saddharma Pundarica Sutra)’를 직역한다면 정법백연화경이 될 것이다.

 

대승경전제목으로도 쓰일 정도로 인기 있는 키워드, 바르고 참다운 법이라는 뜻의 정법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마하시사야도의 법문집 빠띳짜 사뭇빠다(paticca-samuppada, 12연기)를 참고 해 보았다.

 

빠리얏띠, 빠띠빳띠, 빠띠웨다

 

정법(삿담마, saddhamma)은 크게 세가지로 나눈다.

 

 

첫째, 교학이다. 교학을 빠알리어로 빠리얏띠(pariyatti)라 한다. 여기서 교학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이 기록된 빠알리 삼장(띠삐따까, ti-pitaka)을 말한다.

 

둘째, 수행이다. 수행을 빠알리어로 빠띠빳띠(patipatti)라 한다. 여기서 수행은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닦는 것을 말한다.

 

셋째, 통찰이다. 통찰을 빠알리어로 빠띠웨다(pativedha)라 한다. 통찰이란 출세간의 도를 통찰하고 성스런 도와 과를 증득 하는 것이다.

 

 

경전이 교과서라면 주석서는 참고서

 

흔히들 불교를 믿는다라는 말보다 마음공부한다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마음에 대하여 그 어느 다른 종교 보다 강조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느니 또는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마음에 대하여 자세히 모른 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바로 그 것은 교학이 뒷바침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불교를 공부 하거나 믿는 것은 사상누각이다. 그런 마음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정리 하여 놓은 논서가 아비담마이다.

 

아비담마는 철저하게 부처님이 설하신 초기경전에 쓰여 있는 내용을 근거로 하여 주석을 달아 놓은 주석서라 볼 수 있다. 경전이 교과서라면 주석서는 참고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 주석서를 보면 고도의 이성적 사유의 결과물인 것을 알 수 있다.

 

마음과 같은 경우 초기경에 근거하여 도표화 하여 놓았다. 마음의 작용이 52가지이고 마음의 종류가 89/121가지라는 식의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마음의 종류가 다 들어 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마음 중에 미소짓는 마음이라는 마음이 있다. 부처님이 하찮은 대상에 대하여 미소지은 것이 경전에 나와 있기 때문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아비담마는 철저하게 경전을 근거로 하고 있고, 마치 참고서 처럼 경전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붙여준 논서임을 알 수 있다.  

 

계정혜 삼학이란

 

교학과 수행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교학이 곧 수행이고, 수행이 곧 교학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교학이 뒷 바침 되지 않은 수행 역시 사상누각과 같다. 그런 수행에 대한 이야기는 아미담마 길라잡이의 서문에서 볼 수 있었다. 저자인 각묵스님과 대림스님은 책의 소개에서 아비담마가 곧 위빠사나 이고, 위빠사나가 곧 아비담마라고 말하였다. 이말은  교학이 뒷바침 되지 않은 수행은 테크닉만 개발 될 뿐이라고 말한다.

 

수행을 하는 목적은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열반과 해탈의 길로 가자는 것이다. 그런 길을 제시하는 구체적인 수행의 방법론이 계정혜 삼학이라 볼 수 있다. 계정혜 삼학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다. 계를 빠알리어로 ‘시라(sila)’라고 한다. 그리고 계행을 ‘시라나(silana)’라고 한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계행은 단속을 뜻하는 말인 ‘삼와라(samvara)’와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왜 단속이라고 하였을까.  그 것은 문단속을 의미 하고 문단속을 잘해야 계행을 잘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둘째, ()이다. 정을 빠알리어로 ‘사마디(samadhi)’라 한다. 한자음으로 번역 될 때는 ‘삼매’로 된다. 삼매는 한마디로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된 상태를 말한다.

 

셋째, ()이다. 빠알리어로 빤야(panna)라 하고 통찰지로 번역 된다. 즉 무상 고 무아를 통찰 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한 실천 수행 방법은 위빠사나(vipassana)라 불리운다.

 

 

왜 정진이 중요한가

 

불교의 목표는 열반과 해탈이다. 열반과 해탈을 증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그 것은 바로 현상을 통찰하라는 것이다. 통찰을 빠알리어로 빤야라 하는데 이 통찰은 오로지 위빠사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법의 무상 고 무아를 보아야만 지혜가 얻어 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수행방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수행방법이 상좌불교에서 말하는 37조도품이다.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37가지 수단이 있다는 것이다.

 

37가지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수단 3가지를 들라면 정진(위리야, viriya)과 알아차림(사띠, sati)과 통찰지(빤야, panna)이다. 이 중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단연 정진이 될 것이다. 정진이야말로 불교수행에 있어서 핵심중의 핵심이고 정법의 통찰을 구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진의 정형구는 다음과 같다.

 

 

선법과 불선법을 가려 내어서 선법이면 증장시키고,

불선법이면 없애도록 노력 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시대

 

정법이 있다면 그 반대개념인 사법(邪法)’도 있을 것이다. ‘삿된 견해가 발전된 법이 사법이라 볼 수 있다.

 

사견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부처님의 설하지 않은 내용은 모두 사견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내용은 불교를 떠나 타종교에도 해당 될 것이다. 천지창조론, 우연발생론, 숙명론과 같은 이론이다. 이런 삿된 법이 난무하는 시대가 말법시대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시대가 정법시대인 것이다. 상좌불교에서 말하는 정법시대란 어떤 시대일까. 다음과 같은 시대가 정법시대일 것이다.

 

 

첫째,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경전이 있는 시대이다.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니까야' '아미담마'와 같은 빨리어 경전이 전해지고, 그 경전에 대한 주석서등 '교학'이 있으면 정법시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실천수행을 할 수 있는 '팔정도'가 있으면 정법시대이다. 팔정도는 계정혜 삼학을 말하고, 계정혜 삼학은 '알아차림'을 하는 '사념처 위빠사나' 수행을 말한다. 그러므로 팔정도와 위빠사나 수행이 있으면 정법시대라고 볼 수 있다.

 

셋째, 깨달음을 통하여 열반을 성취한 성자인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있으면 정법시대이다. 열반을 성취한 성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빠알리어경전과 위빠사나 수행이 함께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개념 놀음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한 사람의 성자가 탄생되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 물질만능시대에 온갖 감각적 욕망과 유혹이 넘쳐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보통 오욕락이라 불리우는 식욕, 성욕, 수면욕, 재욕, 명예욕등 감각적 욕망을 위하여 사람들은 돌진 한다. 그러나 그 결말은 항상 고통스러운 것이다. 지금 행복한 것 같이 보여도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즐거운 것도 잠시 뒤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변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하지 않은 영원한 것을 만들어 놓고자 한다. 바로 영원에 대한 갈망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일 것이다. 유일신교에서 이세상을 창조 하였다는 신은 영원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 신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개념일 뿐이다.

 

이 세상의 본질은 무상하고 고통스럽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을 뿐인데 영원히 변치 않는 나가 있다고 주장하고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모두 영원에 대한 애착으로서 마음속에 만들어진 개념으로서 실재로 존재 하지 않고 오로지 개념으로만 존재한다. 따라서 개념은 무상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변하지 않은 표상과 같은 것으로서 언제든지 꺼내어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실재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런 현상은 기복을 갈구 하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불교만은 예외이다.

 

이와 같이 모든 현상을 개념으로 보지 않고 실재를 보자는 것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다. 즉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해체해서 보는 것이다. 그렇게 봄으로서 이세상이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통찰 하자는 것이다. 부처님 법을 제대로 알면 개념 놀음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다.

 

 

 

 

2009-09-1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