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탐심이 일어나는 요인은, 과거의 업과 과보의 마음(위빠까 찌따)

담마다사 이병욱 2009. 9. 18. 11:56

 

탐심이 일어나는 요인은, 과거의 업과 과보의 마음(위빠까 찌따, vipaka-citta)

 

 

 

 

 

 

 

 

도시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중의 하나는 미니스커트이다. 허벅지를 거의 드러내다시피 매우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들을 보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탐심을 일으킨다. 그래서 못 보는 척 하면서 쳐다 보기도 하고 아예 노골적으로 쳐다 보는 사람도 있다. 남성으로 하여금 탐심을 유발시키는 여성의 짧은 미니스커트는 여성들이 보기에도 민망한 모양이다. 그런 이야기에 대한 글을 어느 블로그에서 보았다.

 

72만명이 조회한 글을 보면

 

평소에 자주 들르는 블로그에 어느 날 미니스커트에 관한 글(http://blog.daum.net/hskim4127/13744382)이 실렸다.

 

블로그 주인장은 여성이다. 여성인 자신이 보기에도 짧아도 너무 짧다는 내용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목은 더 짧게~ 아찔해진 초미니 열풍이다. 이 글은 나오자 마자 추천이 쏟아졌고 금새 메인화면의 대문으로 올라 갔다. 그리고 제목이 여자인 내가 보아도 아찔한 미니스커트 열풍’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문에 뜨는 기사는 이렇게 자극적으로 바뀌어 올려진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 글이 대문에 올라가서 일까 그 날 하루 조회수만 72만명에 달했다. 글을 올려서 수십회 조회 하기도 힘든데 무려 70만명이 넘는 네티즌이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도 미니스커트라는 용어가 주는 탐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탐심이 일어나는 요인은

 

미니스커트를 보면 탐심이 일어나는 요인은 무엇일까. 탐심이 우연히 일어 났다고 볼 수 있을 까. 만일 미니스커트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이 미니 스커트를 보았을 때도 똑같이 탐심이 일어나는 것일까. 아비담마에서는 그런 탐심이 일어 나는 요인에 대하여 명확히 이야기 한다. 즉 특정순간에 일어나는 마음은 제멋대로 일어 나는 것이 아니라 엄격히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 일어 난다는 것이다.

 

마음은 대상이 있어야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마음은 한순간에 한가지 일 밖에 못한다고 하였다. 마음이 일어 날때는 52가지 마음의 작용의 도움을 받고 마음의 종류는 총 89가지 또는 121가지나 된다고 하였다. 인류가 상상 할 수 있는 마음의 종류는 총 망라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마음의 감각대상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원하지 않는 감각의 대상(아닛타, anittha)이다.

둘째, 적당히 원하는 감각의 대상(잇타, ittha)이다.

셋째, 열렬히 원하는 감각의 대상(아띠 잇타, ati-ittha)이다.

 

 

어떤 특정한 경우에 있어서 어느 사람이 원하지 않는 감각의 대상을 경험하는가, 적당히 원하는 감각의 대상을 경험하는가, 열렬히 원하는 감각의 대상을 경험 하는가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과거의 업()에 지배 받는 다고 한다. 따라서 경험된 대상은 업이 과보의 마음(위빠까 찌따, vipaka-citta)으로 익어서 업에게 기회를 부여 한다는 것이다.

 

원하지 않는 감각의 대상의 경우

 

원하지 않는 감각의 대상을 경험하는 예로서 미니스커트를 들 수 있다. 미니스커트를 보고 탐심을 일으키는 자체도 과거의 경험에서 기인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과보의 마음들은 아무런 고의성이 없이 대상의 성질과 자연히 일치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아비담마 길라잡이 에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실제 얼굴의 특징과 일치 하는 것과 같다.

 

 

해로운 업(불선업)의 힘으로 우리는 원하지 않은 대상과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인식과정에 있어서 대상을 인식하는 과보의 마음들은 그 해로운 업이 익어서 나타난 것이다. 이런 경우에 눈, , , , 몸의 다섯가지 알음알이(오식), 받아 들이는 마음, 조사하는 마음, 등록하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해로운 과보의 마음들이다. 그리고 이에 동반 되는 느낌은 고통을 수반하는 몸의 알음알이(신식)를 제외 하고 모두 평온한 느낌이다.

 

해로운 업(불선업)이 익은 결과(과보)는 필연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하였다. 불선업을 조장 하는 해로운 마음은 무엇일까. 아비담마에서는 두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반드시 나타나는 해로운 마음부수(마음의 작용) 이다.

 

 

해로운 반드시들 4
(14) 어리석음 (15) 양심 없음 (16) 수치심 없음 (17) 들뜸
(痴, 모하, moha) (無慙, 아히리까, ahirika) (無愧, 아놋땁빠, anottappa) (掉擧, 웃닷짜, uddhacca)

출처; 아비담마 길라잡이. 진흙속의연꽃 편집

 

 

 

해로운 마음이 일어 날 때 반드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은  어리석음, 양심 없음, 수치심 없음, 들뜸 이렇게 4가지이다.

 

 

둘째, 때때로 나타나는 마음부수(마음의 작용)이다.

 

 

해로운 때때로들 10
*탐욕에 관계된 3 *성냄에 관계된 4 *해태에 관계된 2 *의심 1
(18) 탐욕 (21) 성냄 (25) 해태 (27) 의심
(貪, 로바, lobha) (嗔, 도사, dosa) (懈怠, 티나, thina) (疑, 위찌낏차, vicikaccha)
(19) 사견 (22) 질투 (26) 혼침
(邪見, 딧티, ditthi) (嫉, 잇사, issa) (昏沈, 밋다, middha) 
(20) 자만 (23) 인색
(慢, 마나, mana) (慳(吝), 맛차리야, macchariya)

 출처; 아비담마 길라잡이. 진흙속의연꽃 편집

 

 

표와 같이 해로운 마음이 일어 날 때 탐욕, 성냄등과 같은 해로운 마음의 작용은 때때로 일어난다.

 

미니스커트를 보고 탐심을 일으켰다면 반드시일어나는 해로운 마음의 작용이라기 보다 때때로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인 탐욕(로바, lobha)’일 것이다. 또 미니스커트를 입음으로 인하여 남성들로 하여금 탐심을 일으키게 하였다면 반드시 해로운 마음인 수치심 없음 (無愧, 아놋땁빠, anottappa)’이 이에 해당 될 것이다.

 

만일 미니스커트를 보지 않았다면 탐심 자체가 일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니스커트를 봄으로서 탐심이 일어 났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전의 경험에 기인 한다. 전에 유사한 경험을 하여 탐심을 일으켰는데 다시 봄으로서 그 업이 익은 결과라 볼 수 있다.

 

적당히 원하는 대상이나 열렬히 원하는 대상은

 

반대로 적당히 원하는 대상이나 열렬히 원하는 대상은 유익한 업(선업)을 통해서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인식과정에 있어서 대상을 인식하는 과보의 마음들은 그 선업이 익어서 나타난 것(선과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눈, , , , 몸의 다섯가지 알음알이(전오식), 받아 들이는 마음, 조사하는 마음, 등록 하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유익한 과보의 마음들(선과보심)이라는 것이다. 이에 동반 하는 줄거운 느낌은 몸의 알음알이(신식)를 제외 하고 평온한 느낌이다. 즐거운 느낌은 신식으로 느낄 뿐 안식, 이식, 비식, 설식은 무덤덤하다는 것이다.

 

또한 열렬히 원하는 대상을 경험할 때는 조사하는 마음과 등록 하는 마음은 기쁨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적당히 원하는 대상이나 열렬히 원하는 대상을 보았을 때 유익한 업(선업)을 짓게 만드는 마음의 작용은 무엇일까. 그런 선한 마음의 작용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는데 종류는 19가지이다.  

 

 

반드시 일어나는 아름다운마음들

(28) 믿음 (34) 중립 (40) 마음의 부드러움
(信, 삿다, saddha) (따뜨라 맛짯따따, tatramajjhattata) (찟따 무둣따, cittamuduta)
(29) 마음챙김 (35) 몸의 경안 (41) 몸의 적합함
(念, 사띠, sati) (輕安, 까야 빳삿디, kayapassaddhi) (適業性, 까야 깜만냐따, kaayakammanannata)
(30) 양심 (36) 마음의 경안 (42) 마음의 적합함
(懺, 히리, hiri) (찟따 빳삿디, cittapassaddhi) (찟따 깜만냐따, cittakammanannata)
(31) 수치심 (37) 몸의 가벼움 (43) 몸의 능숙함
(愧, 옷땁빠, ottappa) (까야 라후따, kayalahuta) (練達性, 까야 빠군냐따, kayapaagunannata)
(32) 탐욕없음 (38) 마음의 가벼움 (44) 마음의 능숙함
(不貪, 알로바, alobha) (찟따 라후따, cittalahuta) (찟따 빠군냐따, cittapaagunannata)
(33) 성냄없음 (39) 몸의 부드러움 (45) 몸의 올곧음
(不嗔, 아도사, adosa) (까야 무둣따, kayamuduta) (正直性, 까야 우주가따, kayaujukata)
(46) 마음의 올곧음
출처; 아비담마 길라잡이. 진흙속의연꽃 편집 (찟따 우주가따, cittaujukata)

 

 

아름다운 마음부수를 보면 해로운 마음부수와 반대인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해로운 마음부수중에 탐욕(로바, lobha)이 있다면 아름다운 마음부수는 탐욕없음(알로바, alobha)과 같은 것이 그 예일 것이다.

 

기질이나 성향에 따라

 

여기에서 주목해야 될 사항이 있다. 과보의 마음(과보심)들은 대상의 성질에 따라 지배 되지만 자와나(속행)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경험자의 기질이나 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상이 열렬하게 원하는 것일지라도 자와나들은 평온과 함께 하는 유익한 마음이나 해로운 마음들로서 무관심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회의론자들은 부처님을 만나 뵙고도 의심(위찌낏차, vicikaccha)과 함께 하는 해로운 마음이 나타 날 수 있다.

 

부처님이라는 열렬히 원하는 대상을 만났다면 당연히 아름다운 마음부수인 믿음(삿다, saddha), 탐욕없음(알로바, alobha), 성냄없음(아도사, adosa)과 같은 마음이 일어 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은 저 사람이 진짜 부처일까 진짜 깨달은 사람일까 하는 의심부터 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축적된 성향에 기인 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도 수행하는 스님들에게는 지혜나 평온이 함께 하는 유익한 마음이 일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이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인은 원하지 않는 감각대상이다. 따라서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으로 인하여 쉽게 탐욕과 같은 불선심을 일으키게 된다. 이것이 불선과보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원하지 않은 대상을 만났을 지라도 탐욕없이 평온과 함께 하는 마음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개인의 축적된 성향과 기질에 따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대상

 

대상을 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대상에 대하여 받아 들이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받아 들인다는 것은 자와나를 말한다.

 

자와나는 힘과 속도로서 업을 짓는 행위를 말한다. 7번 자와나가 일어났다는 것은 강한 대상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원하지 않는 감각대상일 수 있고, 적당히 원하거나 열렬히 원하는 감각대상일 수 있다. 따라서 자와나가 일어 났다는 사실은 설령 그것이 선한 것이든 불선한 것이든 업을 짓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미니스커트와 같이 원하지 않은 대상에 마주 쳤을 때 탐심과 같은 해로운 마음이 일어 날지, 아니면 탐욕없음과 같은 평온이 함께 하는 유익한 마음이 일어 날지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기질이나 성향에 달려 있다. 또 과거에 그와 유사한 경험에 기인 하는 영향도 클 것이다.

 

대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떤 대상에 부딪치면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떤 식으로든지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런 대상은 원하지 않는 대상일 수 있고, 적당히 원하는 대상일 수 있고, 또는 열렬히 원하는 대상일 수 있다. 어느 경우이든지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선업이든 불선업이든 업을 짓게 되어 있다. 어떻게 해야 업을 짓지 않을까.

 

대상을 바라 보았을 때 느낌이 온다. 그 느낌은 크게 3가지이다. 즐겁거나 괴롭거나 무덤덤한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갈애로 발전 되면 업을 짓게 된다. 자와나가 일어 나는 것이다. 자와나가 일어 나게 되면 마음속에 등록 하게 되고 자주 꺼내 보게 된다. 그리고 갈애로 발전 하게 된다. 갈애의 단계로 접어 들면 이미 늦었다. 갈애에서 더 발전 된 단계가 집착이다.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손에 넣게 되고 그 결과로서 과보가 생겨 나게 된다. 그 과보의 결과는 항상 근심à탄식à비탄이다.  

 

그렇다면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그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일 것이다. 대상을 보아도 단지 느낌으로 만 볼 뿐 갈애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 하는 말은 그렇네” “그렇구나” “그러려니일 것이다.

 

 

 

2009-09-1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