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불교 교학의 진수 아비담마와 부처님 법을 체계화한 사리뿟따

담마다사 이병욱 2009. 9. 21. 12:48

 

 

불교 교학의 진수 아비담마와 부처님 법을 체계화한 사리뿟따

 

 

 

 

 

 

 

 

논장인 아비담마 삐따까(Abhidhamma Pitaka)

 

불교는 삼자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가 삼보(三寶)일 것이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깨달은 성자를 불법승 삼보라 한다. 그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이 삼장이다.

 

빠알리어로 띠삐따까(Tipitaka)’라 불리우는 삼장은 경장과 율장과 논장을 말한다. 여기에서 경장(숫따 삐따까, Sutta Pitaka)은 부처님이 설법한 팔만사천법문을 말하고, 율장(위나야 삐따까, Vinaya Pitaka)은 교단이 지켜야 할 계율을 모은 것이고, 논장(아비담마 삐따까, Abhidhamma Pitaka)은 부처님이 설한 법문에 대하여 제자들이 연구한 주석과 논문을 말한다.

 

그 중에 논장이라 불리우는 아비담마는 어떻게 성립 되었을까. 백과사전을 찾아 보면 부파불교시대에 경과 율을 깊이 연구 정리 하여 발전시킨 웅대한 논서가 만들어 지게 되었고 이렇게 성립된 주석서, 즉 논서들은 이미 경전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문학형식이 다른 것으로 되었기 때문에 독립된 문헌으로서 아비담마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불교에서 논서가 활성화 되지 못한 이유는

 

그런데 아비담마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도 없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부파불교시대에 아비담마가 불교의 교리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으나 불교교단이 사회와 유리되고 교단으로부터 멀어진 대중은 미신화 되어 감으로써 불교의 순수성이 상실될 위기를 초래 하였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새로운 불교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 것이 대승(마하야나, Mahayana)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승은 부파불교와 같은 기존의 불교를 낮추어 이들을 소승(히라야나, Hirayana)라 불렀고 대승만의 새로운 삼장들을 성립 시켰다. 그러나  그 것이 체계적으로 집대성되지 못한 채 중국으로 대승불교가 전해 졌다.

 

중국으로 대승경전이 전해지고 난 다음에도 새로운 대승경전이 계속 만들어 졌고 또한 아비달마와 같은 논장도 체계화 되었지만 동시에 전달 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등 동아시아의 불교에서 아비담마와 같은 주석서와 논서가 활성화 되지 못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지 않나 여겨진다.

 

믿음()’을 토대로 한 여래장 경전을 보면

 

중국으로 전해진 불교는 대승경전 위주로 전해졌다. 대표적인 경전이 화엄경’ ‘법화경’ ‘대승열반경과 같은 경전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전은 여래장 계열의 경전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전은 아함경이나 니까야과 같이 법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불교에 속하는 경전이 아니라 일심(一心)을 강조하는 믿음()’을 토대로 하는 경전이라는 것이다.

 

그 믿음의 대상은 무엇일까. 흔히 대승경전에서 언급되는 믿음은 불성이나 여래장과 같은 일심사상이다. 이런 일심사상을 이론적으로 뒷바침 하는 논서가 대승기신론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각묵스님은 최근에 자신의 카페에 올린 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 하였다.

 

 

문제는 여래장 계열의 경론들인데 모든 불교학자들이 설명하듯이 여래장 계열의 경론은 법을 중심으로 한 체계가 아니라 믿음()을 중심으로 삼는 체계이며, 여래장 계열의 대표 논서는 바로 대승기신론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믿음의 문제를 핵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의 대상으로서 불성이나 여래장이나 일심 등을 주장하는데 이것은 자칫 잘 못 받아들이면 외도의 자아이론과 같아지게 되며 그렇게 되면 모든 불교에서 강조하는 무아에 정면으로 위배될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chobul/1AoB/561 )

 

 

믿음의 대상으로서 불성이나 여래장이나 일심등을 주장하는데 이것은 자칫 잘 못 받아들이면 외도의 자아(아뜨만)이론과 같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모든 불교에서 강조하는 무아에 정면으로 위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의 사상적 흐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초기불교 à 아비담마/아비달마 à 반야/중관 à 유식 à 여래장 à 밀교

 

 

이렇게 여섯단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반야/중관,유식, 여래장 이렇게 세단계를 대승불교로 보고 있는데 반야/중관,유식만이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아비달마의 흐름과 같은 법을 중심으로 한 체계이고, 여래장은 믿음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계통이라고 말한다.

 

그런 여래장 사상을 우리가 받아 들인 요인으로서 한국불교가 중국의 아류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중국에서 불교학이 갈수록 화엄을 중심으로 해서 통합 되었는데 그 아류에 속하는 한국불교에서 아무런 비판 없이 화엄을 최고의 교학으로 수용했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법을 가장 잘 이해한 사리뿟따 존자

 

중국불교에서는 소승불교를 삼장교라고 했다고 하고 삼장학자라고 할 때의 삼장은 소승 부파불교의 경과 율과 논을 가리키는 것이 통례라고 한다. 그런 빠알리어 삼장이 다시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에 논장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아비담마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것은 아비담마가 불교사상체계의 기둥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설하신 팔만사천법문이 뿌리라면 그 가르침에 대하여 고도의 이성적인 사유로 연구하고 정리하여 놓은 것이 아비담마로서 사람으로 말한다면 뼈대와 같고, 나무로 말한다면 줄기와 같은 것이다. 이 줄기에서 뻗어 나간 가지가 부파불교이고 그 중에 하나가 마하야나(대승)일 것이다.

 

그런 아비담마는 최초로 어디에서 시작 되었을까.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 빠띠짜 사뭅빠다(paticca-samupppada)의 주석서를 참고 하여 보았다.

 

주석서에 따르면 부처님의 상수제자는 사리뿟따(Sariputta)와 목갈라나(Moggalana)이다. 이들은 부처님의 10대 제자이기도 한데 부처님의 10대 제자는 다음과 같다.

 

 

지혜제일-사리뿟따(舍利弗, Sariputta)

신통제일-목갈라나(目連, Moggallana)

두타제일-마하까샤빠(摩訶迦葉, Mahakassapa)

해공제일-수뿌띠(須菩提, Subhuti)

설법제일-쁘라나(富樓那, Purana)

논의제일-마하까따야나(迦延 , Maha-katyayana)

천안제일-아니룻다(阿那律, Aniruddha)

지계제일-우빠리(優婆提 , Upali)

밀행제일-라후라(羅喉羅 , Rahula)

다문제일-아난다(阿難陀, Ananda)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 이었다고 한다. 출가도 함께 하였는데 처음으로 찾아 간 곳이 불가지론(不可知論) 주장하였던 산자야 벨랏티뿟따(Sanjaya Belatthiputta)이었다.

 

그런데 부처님의 다섯비구중의 하나인 앗사지(Assaji)존자가 읊는 게송의 첫번째 두 구절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게송을 도반인 목갈라나에게 전해주자 목갈라나 또한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이후에 이들은 부처님이 계시는 상가에 들어와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된 것이다. 이중 사리뿟따 존자에 대하여 후대에 지혜제일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그 이유는 부처님의 법을 가장 잘 이해 하였기 때문이다.

 

아비담마의 시작은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은 종종 사리뿟따 존자에게 법의 주제만 제시하고, 그러면 사리뿟따 존자는 그 주제에 대하여 상세하게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였고 나중에 그 법문에 대하여 부처님의 최종적인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를 법의 사령관(法將, 담마세나빠띠, Dhammasenapati)이라 불렀고, 상수제자로서 부처님법을 체계화 하는 일을 맡았다. 이것이 아비담마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설화는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삼십삼천에 임하여 마야부인을 위시한 천신들에게 아비담마를 설하셨다. 그 때 부처님은 제석(Sakka)의 보좌에 여래의 표상으로 만들어 놓고 그로 하여금 계속 법문을 하게 하고 히말라야의 아노아따(Anoatta)호수로 매일 내려오셔서 목욕을 하시고 쉬시곤 했다. 이 때 사리뿟따가 와서 부처님에게 아비담마를 듣고서 다시 이를 오백명의 제자들에게 전수 하였다.

 

 

부처님이 아비담마를 설한 곳은 인간세상이 아니라 삼십삼천이라는 천상이라는 곳이다. 그 곳에서 사리뿟따가 아비담마를 듣고 오백명의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이해 하기 쉽게 설한 것이 아비담마의 시작이라고 한다. 부처님이 아비담마를 설한 삼십삼천은 어떤 곳일까.

 

욕계천상
순위 욕계천상 천상일 천상년 인간년
6 타화자재천
빠라님미따와사왓띠(Para-nimmita-vasavatti)
1,600 인간년 16,000 9,216백만(92억년)
5 화락천
님마나라띠(Nimmanarati)
800 인간년 8,000 2,304백만(23억년)
4 도솔천
뚜시따(Tusita)
400 인간년 4,000 576백만(5억7천년)
3 야마천
야마(Yama)
200 인간년 2,000 144백만(1억4천년)
2 삼십삼천
따와띰사(Tavatimsa)
100 인간년 1,000 36백만(3천6백만년)
1 사대왕천
짜뚜 마하라지까(Catu-maharajika)
50 인간년 500 9백만(9백만년)
 

 

 

표와 같이 욕계의 두번째 천상임을 알 수 있다. 삼십삼천은 빨리어로 따와띰사(Tavatimsa)라 한다. 33에 속하는 천신이라는 의미이다. 즉 신들은 33무리로 되어 있으며 이들의 우두머리가 인드라(Indra)이다. 인드라는 삭까(Sakka)라고도 하며 한자로 ‘제석’ 또는 ‘제석천왕’으로 옮겨 졌다. 그래서 삼십삼천을 ‘제석천’이라고도 부른다.

 

부처님은 왜 인간세상이 아닌 천상에서 아비담마를 설하셨을까. 그 것은 인간들이 알아 듣기 힘든 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전은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때로는 방편을 이용하여 설법하지만 아비담마는 중생의 근기를 고려함 없이 또 방편 없이 있는 그대로 법을 설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아비담마길라잡이를 읽다 보면 그런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법에 대하여 안다고 가정 하고 단도 직입적으로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주석서를 보아야만 정확히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주석서는 빠알리 삼장에 능통하고 수십년간 수행을 한 스님들의 고도의 이성적인 사유의 결과물이 반영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아비담마와 같은 논장은 아쇼카 대왕 재위시절에 결행된 3차 결집에서 지금 현존 하는 형태의 빠알리 삼장이 완성 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불교 교학의 진수, 아비담마

 

불교의 경전은 매우 방대하다. 그러나 불자들은 대승경전의 진수라고 말하는 262자의 반야심경, 조계종의 소의 경전인 5,249자의 금강경, 그리고 불자들의 생활경전이라고 볼 수 있는 1,300여자의 천수경등 일부경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외에도  법화경, 화엄경등과 같은 수 많은 대승경전이 있지만 재가불자들이 쉽게 접근 할 수 없다. 어려운 한문투이고 경전의 사상적 배경을 모르면 이해 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한글로 된 부처님의 원음에 가까운 초기경전이 직접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는 것은 한국불교의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이라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어떤이는 중국불교의 아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주불교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방대한 초기경전을 읽다 보면 용어에 대한 정의등 무언가 체계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게 된다. 바로 그런 불교의 체계를 잡아 주는 논서가 아비담마라고 볼 수 있다. 순 한글로 쉽게 풀이 된 아비담마를 읽다 보면 불교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과거에 대승운동이 일어난 요인중의 하나가 복잡하고 난삽한 아비담마의 교학체계에 대한 반발이 요이었다고 하지만 이제 역으로 아비담마와 같은 교학체계가 오히려 불교의 발전에 기여 하리라고 본다. 따라서 아비담마는 아비담마 길라잡이의 표지에 나와 있는 내용과 같이 불교심리학의 결정판이고, ‘위빠사나의 완벽한 이론서로서 남방상좌불교의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또한 청정도론의 핵심요약서이자 대승불교의 바른 이해를 돕는 토대라는 것이다.

 

 

 

2009-09-2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