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업과 무간업, 습관적인 업과 십수념(十隨念, 아누삿띠, anussati)
업을 빠알리어로 깜마(kamma)라 한다. 산스끄리뜨어로 까르마(karma)라 하는데 영어의 ‘to do’ 같은 의미로서 광범위한 행위 일반을 말한다고 볼 수 있지만 불교에서 깜마의 의미는 ‘의도적인 행위(쩨따나, cetana)’를 뜻한다.
과보를 생산하는 순서에 따른 업을 보면
살아가면서 단 한 순간도 의도적인 행위 없이 살아 갈 수 없다. 손가락을 한번 퉁기는 사이에 960번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일생 동안 의도적인 행위로 인한 업은 계산기로 계산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좋은 업이든 나쁜업이든 업을 짓고 살 수 밖에 없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이 있을 것이다. 아마 가장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장면이 가장 큰 업에 해당 될 것이다.
살아가면서 일생동안 지은 업에 대하여 ‘과보를 생산하는 순서’에 따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거운 업(가루까 깜마, garuka-kamma)이다.
둘째,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아산냐 깜마, asana-kamma)이다.
셋째, 습관적인 업(바훌라 깜마, bhula-kamma)이다.
넷째, 이미 지은 업(까땃따 깜마, katatta-kamma)이다.
이 네가지 업은 중한 순서에 따라 나열한 것이다. 업의 무게로 말한 다면 첫번째의 ‘무거운 업’이 가장 크고 그 다음에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의 순으로 나간다.
이들 업들은 죽음에 임박하여 내생을 결정 지을 때 결정적으로 작용 한다. 죽음순간에 일어나는 죽음의 마음은 일생 동안 지었던 업과 업의 표상 또는 태어날 곳의 표상을 대상으로 마음이 일어난다. 그 표상이 곧 바로 자신이 태어날 곳이 된다는 것이다.
‘무거운 업’과 ’무간업’에 대하여
죽는 순간에 내생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업은 ‘무거운 업’이다. 왜 무겁다는 것일까. 거기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유익한 측면이 있고, 또하나는 해로운 측면이 있다.
무거운 업에서 유익한 측면이라면 ‘선의 경지를 증득’한 것을 말한다. 이 선정의 경지를 증득한 무거운 업은 해로운 5가지 무거운 업을 짖지 않는 한 어느 업의 방해도 방지 않고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 날 수 있다고 한다. 선정수행의 중요성을 말해 주는 대목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렇다면 5가지의 매우 해로운 업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보통 ‘무간업’이라고 말하는 다음의 5가지의 경우를 말한다.
첫째, 아버지를 살해 하는 것
둘째, 어머니를 살해 하는 것
셋째, 아라한을 살해 하는 것
넷째, 부처님 몸에 피를 내는 것
다섯째, 승가를 분열하게 하는 것
이렇게 5가지를 말한다. 이와 같은 업을 지으면 임종에 다다라 가게 되는 내생은 ‘지옥’이라는 것이다. 그 것도 지옥 중에 가장 아래에 있는 ‘무간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무간지옥이란 어떤 곳일까. 인터넷 백과사전을 찾아 보았다.
무간지옥[無間地獄]
팔열지옥(八熱地獄)의 하나로, 아비지옥(阿鼻地獄) 또는 무구지옥(無救地獄)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이 이 곳에 떨어지면 그 당하는 괴로움이 끊임없기[無間]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여졌다. 무간지옥에 가게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으며 -오역죄(五逆罪)를 범하거나 -사탑(寺塔)을 파괴하거나 -성중(聖衆)을 비방하고 시주한 재물을 함부로 허비하는 경우 무간지옥에서 행해지는 벌로는 -옥졸이 죄인의 가죽을 벗기고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수레에 실어 -훨훨 타는 불 속에 죄인을 집어 넣어 몸을 태우며 -야차들이 큰 쇠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
데와닷따와 아자따삿뚜의 경우
오역죄를 지은 자가 가는 곳이 무간지옥이라고 나와 있다. 이에 대한 두가지 예가 있다.
첫째, 데와닷따의 경우이다. 데와닷따는 먼저 선의 경지를 얻고 나중에 무간업을 지은 경우에 해당 된다. 즉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하고 승가를 분열시켰기 때문에 예외 없이 무간지옥에 떨어 졌다고 한다.
둘째, 아자따삿뚜왕의 경우이다. 아자따삿뚜는 데와닷따와 반대로 먼저 무간업을 지었다. 즉 자신의 부왕을 살해 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 후에 크게 반성하고 부처님께 헌신 하였을 뿐만 아니라 1차결집때 열과 성을 다하여 지원 하였다. 그런 공덕으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죽어서 야차가 되었다고 한다.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과 임종시의 마음가짐은
무거운 업 다음으로 중한 업이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과 ‘습관적인 업’이다. 어느 것이 더 중한지는 논서에 따라 다르다. 아비담에서는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이 더 중하다고 쓰여있고, 청정도론에서는 ‘습관적인 업’이 더 중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아비담마에 따라 ‘무거운 업’ 다음으로 중한 업을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으로 하였다.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이란 임종에 임박해서 지은 업을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금생의 마지막 자와나(속행)의 과정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지은 강한 업을 말한다. 임종 직전에 일어나는 자와나의 과정을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죽음과 재생
B : Bhavaṅga (바왕가), A : Atīta-bhavaṅga (지나간 바왕가), C : bhavaṅga-calana (바왕가의 동요) |
U : bhavaṅga-uccheda (바왕가의 끊어짐), P : Pañcadvārāvajjana (오문 전향), E : 전오식 중 하나 |
Sp : Sampaṭicchana (받아들임), St : Santīraṇa (조사), V : Votthapana (결정), M : Manodvārāvajjana (의문전향) |
J : Javana (속행), T : Tadārammaṇa (등록), K : 업 (kamma), KN : 업의 표상 (kamma-nimitta) |
GN : 태어날 곳의 표상 (gati-nimitta), Pt : 재생연결식 (paṭisandhi), Cc : 죽음의 마음 (cuti-citta)
|
전생 | 현생 | |||||||||||||||||||||
대상 | 죽음 직전의 마음 (**K/ KN/ GN 중에 하나가 대상이 됨) | |||||||||||||||||||||
마음 | Pt | ··· | ··· | Cc | Pt | ··· | ··· | B | A | C | U | P | E | Sp | St | V | J | J | J | J | J | Cc |
내생 | 3생 | 4생 | |||||||||||||||||||||||
(**)가 대상이 된다 | 내생의 대상 | ||||||||||||||||||||||||
Pt | B1 | B2 | B3 | ··· | B16 | M | J | J | J | J | J | J | J | B | ··· | ··· | Cc | Pt | ··· | ··· | Cc | Pt | ··· | ··· | Cc |
출처; 아비담마길라잡이, http://cafe.daum.net/jetavana
표를 보면 현생에서 자와나가 다섯번 일어나는데 그 대상은 죽음직전의 마음인 그가 지은 ‘업’이나 ‘업의 표상’ 또는 ‘태어날 곳의 표상’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임종하고 난후에 새롭게 태어 났을 때의 재생연결식의 대상도 역시 그가 지은 ‘업’이나 ‘업의 표상’ 또는 ‘태어날 곳의 표상’임을 알 수 있다.
재생연결의 대상과 시간
세계 | 대상 | 형태 | 시간 | 문 | |
욕계 | 業 | 그 생에 지은 선업, 불선업 | 과거 | 意門 | |
業相 | 업의 표상 | 과거, 현재 | 前五門, 意門 | ||
趣相 | 태어날 곳의 표상 | ||||
위바위니 띠까 등 | 색의 형상 | 현재 | 意門 | ||
청정도론 디빠니 등 | 색, 성, 향, 미, 촉, 법의 형상 | 과거, 현재 | 前五門, 意門 | ||
색계 | 業相 | 개념 (nimitta) | 시간을 초월 | 意門 | |
무색계 | 業相 | 1선, 3선 | 개념 | 시간을 초월 | 意門 |
2선, 4선 | 1선의 마음, 3선의 마음 | 과거 | 意門 |
출처; 아비담마길라잡이, http://cafe.daum.net/jetavana
표를 보면 욕계의 재생연결의 대상이 되는 업은 시간적으로 보아서 과거이고, 업의 표상은 시간적으로 과거 또는 현재인 것을 알 수 있다. 또 태어날 곳의 표상은 시간적으로 보아서 현재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습관적으로 지은 업보다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을 더 우위에 놓는 이유가 아비담마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임종을 맞이 하게 되었을 때 그가 지은 선업을 기억해 내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생각을 일으키도록 힘을 다해서 도와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습관적인 업과 십수념(十隨念, 아누삿띠, anussati)
습관적인 업은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지어온 ‘선업’이나 ‘악업’을 의미한다. 어쩌면 삶의 과정에 있어서 습관적으로 짓는 업이 가장 중요 할 지 모른다.
좋은 습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재가자는 오계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이를 어기면 참회하고 지키겠다는 다짐을 해야 할 것이다. 날마다 행하는 보시라든가, 부모와 스승에 대한 공경,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 되겠다. 이런 행위는 즉각적인 과보를 가져 오는 ‘습관적인 업’이라 볼 수 있다. 이중에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 하는 것과 같은 ‘수념’은 열가지가 있는데 이를 ‘십수념(十隨念, 아누삿띠, anussati)’이라 한다.
첫째,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함(불수념, 붓다누삿띠, buddhanussati)이다.
둘째, 법을 계속해서 생각함(법수념, 담마누삿띠, dhammaussati)이다.
셋째, 승가를 계속해서 생각함(승수념, 상가누삿띠, sanghanussati)이다.
넷째, 계를 계속해서 생각함(계수념, 실라누삿띠, silanussati)이다.
다섯째,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함(짜가누삿띠, caganussati)이다.
여섯째, 천신을 계속해서 생각함(천수념, 데와누삿띠, devanussati)이다.
일곱째,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함(사수념, 마라나삿띠, maranasati)이다.
여덟째, 몸에 대한 알아차림(신수념, 까야가따사띠, kayagatasati)이다.
아홉째,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출입식념, 아나빠나사띠, anapanasati)이다.
열째, 고요함을 계속해서 생각함(적정념, 우빠사마누삿띠, upasamanussati)이다.
무거운 업이나 임종에 다다라 지은 강한 업이 없으면 이 습관적인 업이 재생연결식을 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미지은 업’도
이미지은 업이란 무엇일까. 위의 세가지 업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업들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업도 충분히 재생연결을 결정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청정도론에서 업의 성숙에 따라 다음과 설명한다.
다른 네가지 업이 있다. 무거운 업, 습관적인 업,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 이미 지은 업이다. 유익한 것이든 해로운 것이든 무겁거나 가벼운 업중에 어머니를 살해한 업이나 고귀한 경지(선의 증득 같은 경우)의 업이 무거운 업이고, 이것이 먼저 과보를 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습관적인 것과 습관적이지 않은 것 중에서 좋은 행위이든 나쁜 행위이든 습관적인 것이 먼저 과보를 준다.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이란 임종시에 기억 나는 업이다. 임종에 가까운 사람이 그 업을 기억 할 수 있다. 그 것에 따라 태어난다. 이 셋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자주 반복하여 지었기 때문에 이미 지은 업이라 한다. 앞의 세가지 업이 없을 때 이것이 재생연결을 일으킨다.(청정도론XIX.15)
이렇게 과보를 생산하는 순서에 따라 네가지의 업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자료는 아비담마길라잡이와 마하시사야도의 법문집(빠띠짜 사뭅빠다, paticca-samuppaga,12연기)을 참고 하였다.
되는 대로 살다 임종을 맞게 된다면
네가지 업중에 가장 중요한 업은 ‘무거운 업’이다. 5가지 무간업은 반드시 짓지 않아야 하고 선의 증득과 같은 무거운 업은 내세에 색계나 무색계 천인으로 태어 나는 것을 보장 할 것이다. 그러나 하루 하루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어야 할 업은 습관적으로 짓는 업이 해당 될 것이다. 가장 좋은 실천 방법이 십수념(十隨念, 아누삿띠, anussati)이라 볼 수 있다.
십수념만 잘 지켜도 좋은 습관이 들어서 천상에 나거나 인간으로 난다고 해도 고귀한 존재로 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짓는 선업 없이 되는 대로 살다 임종을 맞게 된다면 어떤 표상이 일어나서 어디에 태어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인과의 사슬은 12연기라는 사이클로 잘 설명된다.
죽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업과 관련된 표상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임종시에 집착에 조건 지어진 업에서 생긴 물질(깜마 루빠, kamma-rupa)과 재생연결이 뒤따르게 된다. 이렇게 태어난 존재는 감각접촉(觸)으로 느낌(受)이 일어나고 이 느낌(受)은 다시 갈애(愛)를 일으킨다. 갈애가 강화 되면 광적인 갈애인 집착(取)으로 발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것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선행이나 악행을 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갈애를 기반으로 한 업(業有)이 일어 나게 되고 태어 나게 되는 것(生有)이다. 이런 태어남은 자궁에 있을 때부터 괴로움을 겪게 된다. 태어난 다음에는 먹고 살기 위하여 힘들게 일해야 하고 폭력에 시달리기도 한다. 생존경쟁에서 용케 벗어 났다고 하더라도 이제 늙고 병들고 죽어 가는 것을 피 할 수 없게 된다.
태어난 모든 존재는 병들고 죽게 되어 있다. 일단 태어나면 괴로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하늘이건 땅이건 바다 속이건 죽음을 피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법구경 128게송)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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