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명상음악

삼귀의로 본 승과 승가의 의미는, 빠알리어 띠사라나

담마다사 이병욱 2009. 9. 28. 12:32

 

삼귀의로 본 승과 승가의 의미는, 빠알리어 띠사라나

 

 

 

 

 

 

 

 

지난 여름에 신뢰하는 직업에 대한 통계자료를 보았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지난 21일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한국인이 가장 신뢰하는 직업'에 대해 조사한 결과, 종교인 중에는 천주교 신부(74.6%, 11)가 가장 신뢰도가 높고 승려(64%, 18), 목사(53.7%, 25)가 뒤를 이었다는 보도이다. 그러나 그러나 가장 신뢰하는 직업은 소방관(92.9%)으로 나타났고 간호사(89.9%)와 환경미화원(89.2), 직업 운동선수(82.1%)와 의사(80.9%)가 그 뒤를 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종교인의 신뢰가 일반인들이 보기에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예를 또 하나 보게 되었다.

 

낯뜨거운 소식을 하나 접하고

 

출근길에 가장 많이 듣는 라디오 프로가 있다. 가장 인기 있다는 시사토크프로그램이다. 7 되기 전에 방송하는 프로 중에 뉴스브리핑 시간이 있다. 전날 발생 하였던 사건 사고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낯뜨거운 소식을 하나 듣게 되었다.

 

지리산에 있는 큰 사찰의 전 주지가 이미 끝난 공사를 새로 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국고 보조금 24억을 타내어서 횡령 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 마다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불교에 대한 악의적인 폄하의 의도가 있지 않은가에 대하여 생각 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객관적인 증거가 들어나 구속 수감 되었다 하니 틀림 없는 사실인 것 같다.

 

무소유를 지향하고 계를 지키며 신도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승가 사회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에 대하여 대다수 불자들은 의아하게 생각 한다. 그러나 그 사회의 이면을 알고 나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 나가지 못한 이야기를 보면

 

최근에 인터넷에서 나미 기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종교단체 취재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인데 세상에 나가지 못한 이야기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놓은 것을 보았다. 그 블로그의 내용(http://blog.naver.com/kimnami57/120042304055)을 보면 승가사회나 세속의 사회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식으로 글을 올려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종교계도 사람 사는 곳이라 한가지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들어온 사람과 뭣 모르고 들어온 사람과의 차이 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잘 알기에 세상을 완전히 등진 타입이 있는 반면, 어린 나이에 성직이란 직업을 택한 사람은 유난히 세상 것들에 호기심과 애착이 많아 보였습니다.

 

 

두 부류의 출가수행자 중에 어린 나이에 세상물정 모르고 들어온 출가자의 문제점에 대하여 지적 한 것이다. 이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스님이 된 것 자체가 마치 누굴 위한 것처럼 승복 입은 자체를 대단한 일처럼 여깁니다. “난 스님이요하는 스님들을 자주 보았습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스님상이란 것이 하나 더 추가 되지요. 삭발하고 잿빛 옷을 입은 외양만 갖추고 부처님 얼굴에 먹칠하는 스님들을 너무 자주 보았습니다. 이 점은 목사에게도 해당 됩니다.

 

 

금강경에서 보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하나 더 보태어서 스님상이 있다는 지적을 한 내용이다. 이어서 계속 지적한다.

 

 

그런데 과연 스님들 가운데 누가 중생제도를 하는지요. 허울만 좋은 상구보리 하화중생, 이젠 이런 말은 단어로도 그만 들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허울좋게 단어만 있고 아무도 실천하는 스님들이 없으니까요. 누가 부처님의 제자인지 스님들 가운데 한 분이라도 만나 보고 싶어요. 사는 게 쉽지 않듯이 중노릇 하기 쉽지 않다고 하는데 너무 쉽게 살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근본이념이 보살사상이고 실천방법이 상구보리 하화중생인데 말만 있을 뿐이지 실천 하는 스님들이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린다.

 

 

내가 들여다 본 성스러운 세계, 승과 속, 성과 속은 종이 한장도 차이가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성과 속, 승과 속은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출가자 사회라고 해서 성스러운 것도 아니고 세속이나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교회나 천주교 역시 똑 같은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출가 했을 때의 초발심으로 돌아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점검해 보고 낮은 자리에서 머슴처럼 섬기는 진정한 성직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이야기 한다.

 

비틀거리는 어느 스님을 목격하고

 

김나미기자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도시에서 종종 출가자의 본분을 망각한 장면을 보기도 한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 오는 길이었다. 어느 아파트 앞을 지나는데 어떤 사람이 몹시 취한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머리는 삭발하였고 승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 승복은 풀어 헤쳐져 있었고 일부 찟겨져 있었다. 모습으로 보아서는 스님임이 분명한데 하는 행동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스님이라고 보아 줄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술취한 듯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비틀거리는 행동을 보면 어떤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이런 기이한 행동을 일반사람들이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대한민국의 모든 스님들이 저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음에 틀림 없다.

 

 

 

 

 

 

 

 

스님은 항상 관용과 자애가 넘치는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 만도 않은 것을 메스콤을 통해서 종종 느끼고 있다. 불교방송에서 일요일 아침에 방송하는 나의 행자시절이라는 프로가 있다. 스님들이 행자시절 격었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시봉을 받는 노스님이 화를 벌컥 벌컥 잘 내어서 무척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와 같이 스님들이 화를 잘 낸다는 이야기는 교계신문이나 방송에서 종종 들어 왔다.

 

승가의 구성을 보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불교에서 가장 멀리해야 할 해로운 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국고를 횡령한다든가, 화를 벌컥 벌컥 잘 낸다든가, 술에 취해서 비틀 거리는 모습을 보면 세속인 보다 더 못한 행동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오히려 세속인이 출가자를 더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탐진치의 소멸은 불자라면 누구나 목표로 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출가 수행자라면 가장 먼저 실천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탐진치가 옅어졌거나 소멸된 사람들을 성자들이라고 한다. 그런 성자들은 복전이고 귀의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승가의 개념은 변질 되어 있다. 불법승 삼보라고 말할 때 스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글로 풀어 놓은 삼귀의와 노래가사 삼귀의를 보면 승가를 스님으로 대체 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탐진치에 찌들은 스님도 귀의처가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불자들이 생각하는 삼보로서의 승의 개념과 초기불교의 승의 개념은 다르다. 먼저 승가의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다음과 같다.

 

 

승가 (불교 교단)  [僧伽, samgha, 상가, ]

 

줄여서 승()이라고도 한다. 부처와 불법(佛法)과 함께 3(三寶)를 이룬다. 승가는 본래 '화합·공동체·조합' 등을 뜻하는 말인 산스크리트 상가(sagha)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며, ()·화()·화합중(和合衆)·화합승(和合僧) 등으로 의역(意譯)되었다. 또 산스크리트와 한문을 함께 써서 승려(僧侶)·승단(僧團)이라고도 한다. 승가는 출가 수행자인 비구(比丘 bhiku)·비구니(比丘尼 bhikun)와 남녀재가신도인 우바새(優婆塞 upāsaka)·우바이(優婆夷 upāsikā) 등의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성되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20세 미만의 출가수행자인 사미(沙彌 śrāmaera), 사미니(沙彌尼 śrāmaer), 사미니에서 비구니가 되기 전 단계인 식차마나(式叉摩那 śikamāā) 등의 칠중(七衆)을 포함하는 불교교단 전체를 가리킨다.

 

상가는 불교교단을 뜻하고 그 구성원도 비구’ ‘비구니뿐만 아니라 남녀재가신도인 우바새’ ‘우바이도 포함 되는 사부대중으로 구성 된 것이 승가라고 나와 있다. 우리나라 삼귀의에서 말하는 승이 스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승가의 의미는 무엇일까

 

설령 스님을 삼귀의의 귀의처로 본다고 할지라도 누구나 귀의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성자의 흐름에 들어간 예류자(수다원, 소따빤나, Sotapanna)이상을  귀의처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자의 흐름에 들어간 성자라면 탐진치 3독에서 어느 정도 벗어 났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아라한의 경지에 다다르면 탐진치는 완전히 소멸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성자들이 귀의처이고 피난처이다. 상좌불교의 생활경전인 라따나숫따(Ratana Sutta,보석경)에 보면 불법승 3보에 대하여 명확히 규정 하고 있다.

 

6.

여래께서 찬양하신 여덟 단계 성인은

네 쌍의 도와 과 얻으신 분들

공양 받을 자격 있는 여래의 제자들

풍부한 공양 공덕 지으신 성인들

상가는 이 세상 으뜸가는 보배

이러한 진리로 그대들 행복하길!

 

 

보석경에서 말하는 상가는 도(, 막가, Magga)와 과(, 팔라, Phala)를 얻은 성자들을 말한다. 도와 과를 얻지 못했다면 3계와 6도를 끊임없이 방황하는 윤회를 할 것이기 때문에 천신과 인간, 재가자, 출가자를 막론하고 윤회계를 벗어 나지 못하는 개개의 인간들이란 뜻의 범부중생(뿌투자나, puthujjana)’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삭발하고 승복만 입었다고 해서 반드시 귀의처나 피난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윤회의 고리를 벗어난 성자만이 진정한 귀의처이자 피난처가 될 수 있고 복전 (福田, 뿐야켓따, punna-khetta)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나마 이런 분들이 있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찌들여 세속인 보다 더 못한 도덕적인 수준을 가지고 있는 출가자가 있는 반면에 훌륭한 스님도 많이 있다. 그런 스님 중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몸소 무소유의 삶을 실천 하여 모범을 보여 주는 스님을 보면 바로 그런 스님이 귀의처이자 피난처이고 복전이라고 볼 수 있다.

 

주로 인터넷을 통하여 알게 된 스승들이다. 강의 중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자신들의 삶의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접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월급에 대한 이야기 있었다. 그 스님의 월급은 20만원이라고 한다. 물론 차도 없다. 그 돈을 받아 고속버스를 타고 강연을 다닌 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식사도 해결하고 용돈으로 쓴다는 것이다. 

 

이런 스님들은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 일인자이다. 사회로 말하면 프로중의 프로이다. 잘 나가는 프로는 억대 이상의 연봉을 받지만 그 스님은 출가수행자로서 중생제도의 원을 세웠기 때문에 소유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분들이 진정한 수행자이고 부처님의 제자라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이런 분들이 있어서 그나마 한국불교의 희망이 보이는 지도 모른다.

 

빠알리어 삼귀의 띠사라나(Ti-sarana)를 보면

 

삼귀의에서 승을 우리나라에서는 스님으로 부르고 있지만 상좌불교에서는 명백히 상가로 부르고 있다. 그 빠알리어 삼귀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띠사라나(ti-sarana)

 

나모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쌈 붓다싸 (3)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asambuddhassa)
모든 번뇌를 떠나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신 거룩한 부처님께
예경 올립니다.

 

붓당 사라낭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담망 사라낭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낭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상가에 귀의합니다.  

 

두띠얌삐 붓당 사라낭 가차미 (Dutiyampi buddham saranam gacchami)
두 번째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두띠얌삐 담망 사라낭 가차미 (Dutiyampi dhammam saranam gacchami)
두 번째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두띠얌삐 상강 사라낭 가차미 (Dutiyampi sangham saranam gacchami)
두 번째로 상가에 귀의합니다

  

따띠얌삐 붓당 사라낭 가차미 (Tatiyampi buddham saranam gacchami)
세 번째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따띠얌삐 담망 사라낭 가차미 (Tatiyampi dhammam saranam gacchami)
세 번째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따띠얌삐 상강 사라낭 가차미 (Tatiyampi sangham saranam gacchami)
세 번째로 상가에 귀의합니다.

 

 

상좌불교에서 삼귀의를 빠알리어로 띠사라나(Ti-sarana)라고 한다. 이런 삼귀의 의식은 상좌불교권 국가에서 모두 동일 하다고 한다. 이 상좌불교 삼귀의의 특징은 세번 반복 한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분명히 승이 상가(sangha)’라고 명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빠알리어 삼귀의를 현대음악으로

 

아런 빠알리어 삼귀의를 현대음악으로 들을 수 있다. 이 음악은 원래 황혜음(Imee Ooi)이 불렀으나 의의(依靠, 의지하고 의지함)’라는 제목으로 중국에서 다시 나왔다. 부른 가수이름은 알 수 없고 무진(, 티끌없음)4라는 전집 (http://www.wmp.cn/showp.asp?id=348&acloud=56#)에 실려 있다.

 

이 음악을 들으면 마음을 새로운 경계(聆听心新境界, 영청심령신경계)로 이끌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고 곡도 우아하여 완성도  높은 수준 높은 불교음악(纯净的人声与高雅佛曲的完美, 순정적인성여고아불곡적완결미)이라고 소개 되고 있다.

 

비록 황혜음(Imee Ooi)음악의 아류로 여겨지기도 하나 어느 면으로 보면 오리지날을 능가 하는 정감 있는 음악으로 여겨진다.

 

 

 

빠알리어 삼귀의 의의(依靠)

 

음성

(依靠 无4专辑 广州妙音文化播 新世心音 纯静声与高雅佛的完美)

 

 

 

 

2009-09-2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