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길래, 목갈라나 존자의 최후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0. 23. 12:21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길래, 목갈라나 존자의 최후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의 10대 제자가 있었다. 10대 제자 중에 상수제자는 사리뿟따(Sariputta)와 목갈라나(Moggalana)이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 이었고 또한 출가도 함께 하였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이 계시는 상가에 들어와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된 것이다. 이 중 목갈라나 존자는 신통제일로 알려 졌다. 그런데 신통제일의 목갈라나 존자의 최후는 비참하게 끝났다. 도적에게 맞아 죽은 것이다. 물론 아라한이었기 때문에 열반에 들어 다시 태어날 일은 없었지만 신통제일이라는 목갈라나 존자는 신통을 쓰지 않고 도적에게 왜 맞아 죽어야만 했을까. 그 의문에 대한 이야기를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samuppada, 12연기)의 역주를 통하여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두명의 상수제자

 

목갈라나(Moggalāna) 존자는 마하 목갈라나(Mahā-Moggalāna)라고도 하는데 라자가하(Rājagaha)의 꼴리따 마을(Kolitagāma)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나 마을 이름을 따라 꼴리따(Kolita)라 불리었다. 또 어머니의 이름이 목갈리(Moggalī) 또는 목갈리니(Moggalinī)였기 때문에 목갈라나(Moggalāna)로도 불리게 되었다. 목갈라나가 태어난 날에 사리뿟따도 우빠띳사(Upatisa)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사리뿟따와 절친한 사이였는데 하루는 자신들을 따르는 바라문 젊은이들과 함께 라자가하의 산마루 축제[山頂祭]를 보러갔다가 갑자기 삶의 덧없음을 느끼고는 함께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리뿟따와 함께 불가지론(不可知論)을 펴는 산자야(Sañjaya)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던중 사리뿟따로부터 앗사지(Assaji) 존자의 연기법의 게송을 전해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 그리고는 사리뿟따와 함께 승가에 들어와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목갈라나 존자를 비구들이 본받아야 하는 이상적인 제자라고 선언하셨다.(S.ii.235; A.i.88). 부처님은 「제분별경(諸分別經 Saccavibhanga Sutta)(M.iii.248)에서 두 상수제자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설명하셨다.“사리뿟따는 아이를 낳는 어머니와 같고 목갈라나는 갓난아이를 돌보는 유모와 같다. 사리뿟따는 제자들을 가르쳐 예류과에 들게 하고 목갈라나는 더 높은 단계로 이끌어 올려준다.”목갈라나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와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이자 도반으로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그 친분은 부처님의 말년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세존께서는 두 상수제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로 하여금 승가의 일을 분담하여 보살피도록 하시고, 여래가 안계실 때에는 그들이 승가의 일을 책임지도록 하셨다. 또한 부처님은 긴요한 상황이 생기면 특별한 임무를 두 상수제자에게 부여하시는 일이 자주 있었다. 예컨대 저 사악한 데와닷따(Devadatta)가 웨살리(Vesāli)출신의 갓 출가한 비구들을 꼬드겨서 상두산(象頭山)으로 데리고 가자, 부처님께서는 두 상수제자를 보내어 데와닷따가 잠시 잠들어 있는 틈을 타 500명의 비구들을 설득하여 모두 되돌아오게 하셨다. (Vin.2:199-200).

 

목갈라나 존자의 신통을 보면

 

목갈라나 존자는 신통력에서 누구보다도 으뜸이었다.(A.i.23). 존자는 살아 있는 형상을 무한대로 만들 수 있었고, 원하는 어떠한 형태로도 변신 할수 있었다. 또한 수미산(須彌山)을 강낭콩처럼 으깨 버릴수 있었으며(DhA.iii.212), 지구를 손가락으로 돗자리처럼 둘둘 감을 수도 있었고, 지구를 옹기장이의 물레바퀴처럼 돌릴 수도 있었으며, 지구를 펼쳐진 우산처럼 수미산 위에 올려 놓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때 부처님이 위층에 계시는 대도 불구하고 아래층에서 잡담을 하면서 노닥거리는 비구들을 따끔히 혼내주라는 세존의 명을 받아서 하늘 높이 치솟아 올라서는 엄지 발가락끝으로 강당을 흔들어 그들을 혼비백산하게 하기도 하였다.(S.v.269ff; SNA.i.336f)

 

한때 목갈라나 존자는 제석천이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많은 이익을 얻고 있는지를 확인하러 삼십삼천으로 갔다. 하지만 제석천은 자신의 영화에만 도취되어 너무 자만하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무상함을 일깨워 주고자 신통력으로 제석천의 웨자얀따(Vejayanta) 궁전를 크게 흔들었다.(M.i.251ff).

 

목갈라나 존자는 또한 부처님이 바까(Baka) 범천의 오만함을 꺽는데 도움이 되어드리고자 직접 바까 범천의 처소로 가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석서들(ThagA.ii.188ff)에 따르면 목갈라나의 신통력의 극치는 독룡(毒龍) 난도빠난다(Nandopananda)를 조복시킨 일이었다. 목갈라나 존자는 별도의 선정에 들지 않고서도 아귀나 다른 중생계의 존재들을 육안(肉眼)으로 볼수 있었다고 한다.(DhA.ii.64; iii.60, 410f., 479; S.ii.254ff).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길래

 

「사라방가 본생경(Sarabhaga Jātaka)(J.522)에 따르면 존자는 신통력으로 종종 웃사다(Ussada)지옥과 천상계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면서 외도의 신자들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고 부처님의 신자들은 천상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알려주었는데 이렇게 되자 세상사람들이 점점 외도를 멀리하고 부처님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러자 이에 앙심을 품은 나형외도(裸形外道)들은 사마나굿따까(Samanaguttaka)라는 도적두목에게 천금을 주고 목갈라나 존자를 죽이라고 사주했다.

 

도적들은 존자를 죽이려고 깔라실라(kālasilā)로 갔지만 멀리서 그들을 본 존자는 하늘을 날아 화를 면하였다. 둘째날도, 셋째날도 존자는 신통력으로 자리를 피해 살수 있었지만 7일째가 되자 전생에 지은 순후업(順後業)이 그 과보를 얻을 기회가 무르익었기 때문에 더 이상 예전처럼 신통력을 쓸수 없게 되었다.

 

존자가 지었던 순후업은 주석서들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른데, 먼저「본생경」주석서(J.522)에 따르면 존자는 과거전생의 어느때 아내의 말을 쫒아 눈먼 부모를 죽이려고 수레에 태워 숲속으로 데리고 가서 도적이 나온 것처럼 꾸며 부모를 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모는 시력이 없었기 때문에 자식이 때리는 줄은 모르고 진짜 도적이라 생각하고는 아들 보고 빨리 피하라고 소리쳤다. 이러한 말에 감동한 아들은 원래 생각을 접고 부모를 도로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법구경」주석서(DhA.iii.65ff)에 따르면 존자는 실제로 숲속에서 부모를 때려죽였고 이 악업으로 무수한 세월동안 무간지옥에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업은 오랫동안 그 과보를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재 속의 불씨처럼 묻혀 있다가 이렇게 존자의 최후 몸을 붙잡았다.

 

목갈라나 존자의 입적

 

도적들은 존자를 때려 뼈를 부수어 잘게 썬 볏짚처럼 만들어 놓고는 이제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떠났다. 잠시 후 의식을 회복한 존자는 죽기전에 부처님을 뵈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부서진 몸을 신통력으로 한데 묶고 하늘로 솟아올라 공중으로 부처님께 가서 인사를 드리고 이제 자신이 반열반에 들때가 왔음을 알렸다. 그러자 부처님은 마지막 설법을 할것을 요청하셨고 이에 존자는 여러 기적들을 나투고는 법문을 하였다. 그리고는 깔라실라로 가서 반열반에 들었다. 이때 여섯 욕계천상에서는 대소동이 일어났고 천신들은 하늘의 꽃, 향료와 백단향가루와 갖가지 섶나무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다비장 주변 1유순 이내에 꽃비가 내렸다.

 

존자의 다비식은 천신과 인간들의 성대한 공경과 예배속에서 7일동안 아주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그리고 다비식이 모두 끝나고 나자 부처님은 존자의 사리를 잘 수습하여 죽림정사(Veluvana)에 탑을 세우게 하셨다.

 

사리뿟따 존자는 양력 10월과 11월에 걸쳐있는 깟띠까(Kattika)달 보름날에 입적하였고 보름 후 초승달이 떠오르는 날에 목갈라나도 입적하였다.(SA.iii.181) 그로부터 반년 후에 부처님께서도 무여의열반에 드셨다고 전해진다.

 

「불종성경」(B.i.58)에 따르면 목갈라나 존자의 몸은 푸른 연꽃이나 비구름의 색깔을 띠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스리랑카에는 이는 존자가 최근의 과거에 지옥에서 고통받은 것으로 인한 것이라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주석서에 따르면 목갈라나 존자가 마지막 생에 고따마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된것은 1아승지 10만겁 전 아노마닷시(Anomadassī) 부처님 제세시 시리왓다나(Sirivaḍḍhana)라는 바라문으로 있을때 사리뿟따 존자의 전신인 사라다(Sarada)와 함께 미래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되고자 원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19세기 중엽에 발견된 사리함

 

19세기 중엽 영국의 커닝햄(Cunningham)에 의해 인도의 산치(Sanchi) 대탑에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사리가 들어있는 두 개의 석재 사리함이 발굴되었고 두 존자의 사리중 중의 일부가 1950년 10월 20 미얀마에 전해져 제6차 결집의 사적지에 세워진 양곤의 까바예(Kaba aye) 파고다에 안치되었다.

 

 

 

 

산치(sanchi) 대탑

 

 

인도 중부 마드야 프라데쉬주의 수도 보팔 근처 북부 46km 지점에 위치 산치대탑. 

아쇼카 왕(기원전 286-232재위)이 기원전 3세기에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출처 http://hgc9395.egloos.com/7632593

 

 

 

 

목갈라나존자의 사리

 

 

출처 http://www.pbase.com/dhammakami/image/43229704

 

 

 

 

 

까바 아예(kaba aye) 파고다

 

 

 

까바 아예는 미얀마말로 세계평화라는 뜻으로1952년에 세워졌다.

높이가 34미터인 이 파고다는 양곤시내에서 11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 한다.

출처 http://www.pbase.com/seowkiang/image/22597580

 

 

 

 

 

2009-10-2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