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범부에서 성자가 되려면, 고뜨라부와 도과 증득의 속행과정 그리고 깨달음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0. 20. 17:32

 

범부에서 성자가 되려면, 고뜨라부와 도과 증득의 속행과정 그리고 깨달음

 

 

 

 

 

 

 

 

I am great!

I am a great!

I am the greatest!

 

스스로 위대하다고 말한 이 영어 문구는 누가 말하였을까. 영어회화 테이프 교재에 나오는 이 말은 무하마드 알리가 한 말이다. 도전자 알리가 챔피언을 때려 눕히고  떠벌린 말이다.

 

득도 했다는데

 

스스로 위대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진짜 위대한 사람일까. 내가 가장 잘 낫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 말은 흔히 주변에서도 많이 들을 수 있다. 아마 득도(得道)’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일 것이다. 주로 책에 쓰여 있는 저자 소개란에 버젓이 득도 하였다고 쓰여진 것을 보면 스스로 자신이 가장 위대하다고 떠벌린 알리와 다를 바 없다. 이런 득도에 관한 이야기는 인터넷사트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멸진정이니 상수멸정이니 하는 말을 들먹이면서 신비한 체험을 하는 이야기이다. 또 치료능력이 있다든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다든가 하여 자신을 신비화 시키는 종교인 또한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득도했다거나 신비한 능력이 있다든가 하는 말은 말하는 순간에 효력을 상실한다고 볼 수 있다. 득도한 사람은 있지만 득도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고, 신비한 체험을 한 사람은 있지만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득도 하였거나 신비한 체험을 한 사람이라면 결코 자신이 했다고 밝히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 이미 그런 경지에 이른 존재라면 자아(自我)가 있다는 생각을 버린 사람들일 것이라는 것이다.

 

자아가 있고 없고가 불교에서 대단히 중요한 키워드이다. 무아로 설명되는 자아없음은 불교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있다고 여기는 상태에서 득도를 하였다거나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는 것은 불교적인 방법이라 볼 수 없고, 이는 전형적인 외도의 발상이라 밖에 볼 수 있다. 불교에서 왜 무아가 중요할까. 바로 그것은 무아이지 않으면 불교의 최종목적이라 볼 수 있는 열반과 해탈을 결코 실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왜 실재 하지 않을까

 

불교에서 말하는 자아는 개념이다. 개념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실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관념으로만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런 개념을 빠알리어로 빤냣띠(pannatti)’라 한다. 빤냣티는 알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명칭, 개념, 서술, 술어, 용어 등을 뜻한다.

 

자아가 실재 하지 않은 개념이라면 실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불교에서 실재하는 것을 법()이라 부른다. 법은 빠알리어로 담마(dhamma)라 하는데 d를 소문자로 표시한다. 대문자 D를 써서 Dhamma(담마)라 하면 부처님의 84천법문의 가르침을 말한다. 궁극적 실재로서의 모든 법은 소문자를 써서 dhamma라 한다.

 

자아가 실재가 아니라면 실재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분해하고 해체해서 볼 수 밖에 없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오온(五蘊)’이라는 말이 자아를 해체하여 본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분해 하면 다섯가지 무더기 즉,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다섯무더기로 해체 하여 보면 나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오로지 궁극적으로 실재 하는 것만 남게 된다. 바로 이것이 법이고 이런 법을 궁극적실재라고 말한다. 이 궁극적실재를 다른 말로 구경법(究境法)’이라고 말하고 빠알리어로는 빠라맛따담마(paramatta-dhamma)’라 한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분해 하여 설명하였지 자아와 같은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실제로 초기경에 오온이나 색수상행식이란 키워드는 수천회 나온다고 한다. 그만치 오온이 중요하다는 뜻이고 부처님이 특히 강조한 사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오온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 될 수 있다. , 색온과 행온과 식온이다.

 

마음은 정말 알 수 없고 알기 어려운 것일까

 

우리의 몸과 마음은 물질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은 오온에서 말하는 색온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은 무엇일까. 정신이나 마음이나 동의어라고 보면 우리의 마음은 크게 알음알이와 심리현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알음알이를 식온이라 하고, 심리현상을 수온’ ‘상온’ ‘행온이라 한다. 그런데 심리현상은 행온이 대표 한다. 52가지 심리현상을 행온이라 하는데 이 52가지 심리현상 중에는 수온과 상온도 포함 되어 있다. 즉 느낌()과 인식()을 하나의 심리 현상으로 간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느낌()과 인식()이 매우 중요한 정신작용이기 때문에 오온의 무더기에 포함 시켜 놓은 것이다.

 

마음이란 무엇일까. 불교를 마음공부 한다고들 하는데 마음이란 무엇일까 하고 묻는다면 대부분이 선문답 하자고 묻는 줄 안다. 그리고 마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음은 정말 알 수 없고 알기 어려운 것일까. 그러나 초기불교에서 마음을 명확히 정의 하여 놓았다. 그것도 마음의 도표까지 만들어 놓고 설명하고 있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에는 조건이 있다.

 

 

첫째, 마음은 대상이 있어야 일어나는 것이다.

둘째, 마음은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셋째, 마음은 한 순간에 오로지 하나의 일만 한다.

 

 

이와 같이 세가지 전제하에 마음을 공부 하는 것이다. 마음이 왜 대상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을까.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여 보면 알 수 있다. 우리의 몸으로 느끼는 감각기관이 있다. ‘안이비설신이다. 그리고 마음으로 느끼는 감각의 문이 있다. 그것을 의문(意門) 이라 한다. 이와 같이 여섯감각기관 즉 안이비설신의가 감각대상 즉 색성향미촉법을 만났을 때 마음은 일어 나는 것이다. 그래서 18개의 알음알이의 요소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일어난 마음은 영원히 지속 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남기고 곧바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또 마음은 한순간에 오로지 하나의 일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두가지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보면서 동시에 들을 수 있을까.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한다고 하는데 마음의 법칙으로 따진 다면 그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궁극적실재는 무엇인가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만나서 만들어내는 마음은 총89가지로 분류 된다. 그 마음 중에는 해로운 마음도 있고 아름다운 마음도 있고, 무기(無記)의 마음도 있다. 존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종류는 다 들어 가 있다고 보면 된다.

 

89가지 마음은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만났을 때 일어나지만 이때 도움을 받는 심리현상이 있다. 이런 심리현상을 마음부수라 한다. 마음이 가는 곳에 항상 따라 다니는 마음이라는 뜻에서 마음부수라 한다. 왕이 행차하면 신하들이 따라 다니듯이 마음은 반드시 마음부수의 도움을 받아 마음이 일어난다. 그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인지 해로운 마음인지는 마음부수 즉 52개의 심리현상의 영향을 받는다. 52가지 심리현상 중에는 해로운심리현상도 있고 아름다운심리현상도 있다. 또 이들 해로운심리현상 또는 아름다운심리현상과 같아지려는 심리현상도 있다.

 

이들 52가지 심리현상 중에 하나인 느낌(웨다나, vedana)이 오온에서 수온을 말하고, 인식(산냐, sanna)이 상온을 말한다. 이들 느낌과 인식을 모두 포함한 52가지 심리현상을 통틀어서 행온(산냐깐다, sanna-kkhanda)이라 말한다. 따라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물질'과 '마음부수'와 '마음' 이렇게 세가지로 정리 될 수 있다. 여기에 무위법인 열반을 추가 하면 궁극적실재는 4가지이다. 4가지 궁극적 실재 즉, 4구경법을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4구경법들과 5 12 18

궁극적 실재 오온
(panca-kkhandha
빤짜칸다)
12처
(ayatana,아야따나)
18계
(dhatu, 다뚜)
물질 (28) 1. 색온(色蘊) 1. 안처 거친 1. 안계 거친
2. 이처 물질 2. 이계 물질
3. 비처 -12 3. 비계 -12
4. 설처   4. 설계  
5. 신처   5. 신계  
6. 색처   6. 색계  
7. 성처   7. 성계  
8. 향처   8. 향계  
9. 미처   9. 미계  
10. 촉처 (지, 화, 풍의 3물질)   10. 촉계 (지, 화, 풍의 3물질)  
11. 마노의 대상 (法處) 미세한 11. 마노의 대상 (法界) 미세한
마음부수 (52) 2. 수온(受蘊) 물질 (16) 물질 (16)
3. 상온(想蘊) 마음부수 마음부수
4. 행온(行蘊) -52 -52
열반 없음 열반 열반
마음 (89) 5. 식온(識蘊) 12. 마노의 감각장소 12. 안식계
(意處) 13. 이식계
  14. 비식계
  15. 설식계
  16. 신식계
  17. 의계
  18. 의식계

 

 

 

네가지 구경법중에 물질이 28가지, 마음부수가 52가지, 열반과 마음을 합하면 82개의 법이 되는데 이를 82법이라 한다. 여기서 마음 89가지는 한순간에 오로지 하나의 일밖에 하지 못하므로 한가지로 간주 하였다.

 

개념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는

 

이렇게 구경법은 4가지 궁극적 실재와 82개의 구경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구경법의 특징은 무위법인 열반을 제외하고 유위법으로서 모두 찰라생 찰라멸하는 고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점이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 하는 명칭’ ‘이름’ ‘개념’ ‘용어’인 빤냣띠와 다른 것이다.

 

불교에서는 개념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해체하고 분해하여 봄으로서 찰라생 찰라멸하는 구경법을 통하여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언가 있다거나 존재한다거나 하는 대상을 설정한다면 그것은 이미 불교라고 볼 수 없다. 그런 것은 모두 실재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개념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에서는 영생을 이야기 한다. 또 영원불멸하는 영혼과 같은 자아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아(眞我)나 참나, 힌두교의 아뜨만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오로지 개념으로만 존재 하는 야훼, 알라, 아미타바등은 시간을 초월한다. 찰라생 찰라멸하는 궁극적 실재가 아니라 오로지 개념으만 존재 하기 때문에 시간 개념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개념을 대상으로 믿는 종교는 무상 고 무아를 통찰 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열반과 해탈에 이를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범부에서 성자가 되려면

 

고귀해지려면 참선을 해라

 

이말은 순례법회 중에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사찰에서 주지스님이 한 말이다. 참선이야말로 자기자신을 가장 고귀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절수행도 아니고 다라니 수행도 아니고 왜 참선수행을 하면 고귀해진다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자기자신을 해체하여 보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자신을 해체 하여 보면 모든 것이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 보이지만 절이나 다라니와 같은 기도는 어떤 대상과 일치 하려 하기 때문에 유신견이 강화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대상과 일치되느냐 대상을 분리 하여 보느냐가 키 포인트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절이나 다라니등 기도만 열심히 해서는 결코 열반과 해탈에 이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성자들은 유신견을 극복한 존재들이다. 내가 있다는 견해인 유신견을 가지고 있는한 결코 성자의 반열에 들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열반과 해탈로 가는 가장 첫번째 방법은 유신견의 극복이다. 만일 겨자씨만한 유신견이 있어도 결코 성자의 반열인 수다원 즉 예류자에 들어 갈 수 없는 것이다.

 

수다원에 들어 가려면 다음의 세가지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첫째, 유신견

둘째, 법에 대한 의심

셋째, 계율과 의식에대한 집착

 

 

이와 같은 세가지 조건을 만족 하였을 때 성자가 되고 일곱생 이내에 열반하여 해탈하게 될 것이라 한다.

 

범부에서 성자가 되면 어떤변화가 일어 나게 될까. 아비담마길라잡이에서는 혈통이 바뀌게 된다고 표현한다. 즉 범부의 혈통이나 가문에서 성자의 혈통이나 가문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범부에서 성자로 바뀌는 것을 종성(種姓)’이라 한다. 그리고 그런 지혜의 단계를 를 종성의 지혜라 한다. 상좌불교 아비담마에서 지혜를 11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일곱가지 청정

  일곱 가지 청정    
청 정   수 행
I 계(sīla)   네 가지 청정한 계 
II 마음(citta)   근접삼매와 본 삼매
III 견(diṭṭhi)   특징 등으로써 정신과 물질을 파악함
IV 의심을 극복함(度疑)   정신과 물질들의 조건을 파악하는 것
V 도와 도아님에 대한 지와 견 1 명상의 지혜
2 생멸의 지혜(약한 단계) 
위빠싸나의 오염원을 장애라고 파악함으로써 도와 도아님의 특징을 정의 하는 것
VI 도 닦음에 대한 지와 견 2 생멸의 지혜(성숙된 단계)
3 무너짐의 지혜
4 공포의 지혜
5 위험의 지혜
6 역겨움의 지혜
7 해탈하기를 원하는 지혜
8 깊이 숙고하는 지혜
9 행에 대한 평온의 지혜
10 수순하는 지혜
VI 과 VII 사이에 11 종성의 지혜
VII 지와 견 네 가지 도에 대한 지혜

 

 

 

종성을 빠알리어로 고뜨라부(gotrabhu)라 한다. 고뜨라부라는 뜻은 종족의 성을 뜻하는 고뜨라(gotra)‘~이 되다(to become)’라는 뜻의 bhu가 합쳐져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문자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종성은 새로운 성()을 가지게 되는 경지로서 근접삼매에서 본삼매로, 즉 욕계에서 색계로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의 심찰나를 나타내는 술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선의 증득에 있어서 욕계의 범부 혈통에 속하는 마음들을 드디어 극복 하고 고귀한 마음의 혈통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종성이라고 부른다. 왜 참선을 하면 고귀하게 되는가를 설명해 주는 대목이라 볼 수 있다.

 

득도하는 순간을 보면

 

성을 바꾼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범부에서 성자의 성으로 바뀌는 것은 옛날로 말하면 상놈에서 양반으로 바뀌는 것 만큼이나 엄청난 사건이다. 그런 종성의 과정을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의문에서의 본 삼매의 인식과정 (본 삼매의 속행과정)

  인식과정
K : Parikamma (준비), Uc : upacāra (근접), An : Anuloma (수순), G : Gotrabhu (종성)
Jh : Jhāna (본 삼매), Mg : magga (도), Ph : Phala (과)
  1 2 3 4 5 6 7 8 9 10  
본 삼매 속행과정 보통 B < C  U M K Uc An G Jh > B B B
예리함 B < C U M Uc An G Jh > B B B B
도와 과의 증득의  보통 B < C U M K Uc An G Mg Ph Ph > B
속행과정 예리함 B < C U M Uc An G Mg Ph Ph Ph > B

 

 

 

만일 수행자가 출세간의 도와 과의 증득을 목표로 한다면 위빠사나를 닦아서 그런 경지에 도달 하도록 한다. 표를 보면 도와 과를 증득하기 전에 준비과정(K)과 수순과정(An)과 종성(G)의 단계를 거치는 것을 알 수 있다. , 도를 닦을 때 위빠사나가 무르익어 본삼매가 일어날 그 순간에 잠재의식을 뚫고 의문(意門)전향이 일어난다. 그 다음에 둘 혹은 세개의 위빳사나의 마음이 무상등의 특상중 어떤 하나를 대상으로 하여 일어난다. 여기까지가 준비(K), 근접(UC), 수순(An)과정이라 한다. 그 다음에 열반을 대상으로 하는 종성의 마음이 일어난다. 바로 이 단계가 범부에서 성자로 됨으로써 고귀한 존재가 탄생 되는 것이다.

 

이쪽세상에서 저쪽세상으로 건너가게 된 성자는 무엇을 깨닫는 것일까. 바로 그 깨달음의 내용이 도(막가, Magga)라고 볼 수 있다. 그 도의 내용은 다름 아닌 사성제이다. 따라서 도(Mg)의 마음은 사성제의 각각에 대해서 동시에 4가지 기능을 수행한다고 한다. , 괴로움을 철저히 아는 것(빠린냐, parinna, 통찰지), 그 것의 원인인 갈애를 제거 하는 것(빠하나, pahana), 그것의 소멸인 열반을 실현하는 것(삿찌끼리야,sacchi-kiriya), 성스런 팔정도 수행을 하는 것(바와나,bhavana)이라 한다.

 

선사들의 오도송을 보면

 

책이나 소설 또는 메스콤에서 하는 이야기 중에 득도 했다거나 크게 깨달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깨달은 그 순간을 매우 극적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내용도 있고 오도송을 소개 하기도 한다. 오도송은 고승들이 부처의 도를 깨닫고 지은 시가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고승들의 오도송은 어떤 것일까.

 

 

선사들의 오도송

원효대사 오도송 효봉스님 오도송 나옹선사 오도송
마음이 생하는 까닭에 여러가지 법이 생기고 바다 밑 제비둥지엔 사슴이 알을 품고  선불장 가운데 앉아서
마음이 멸하면 감과 분이 다르지 않네 불 속 거미집엔 물고기가 차를 달이네  성성히 눈여겨 잘보니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능히 알랴만 보고 듣는 것 다른 것이 아니라
모든현상이 또한 인식에  기초한다 백운은 서쪽으로 다만 본래의 옛 주인일세 
마음밖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따로 구하랴.... 달은 동쪽으로 달리는 것을  혜능선사 오도송
한용운스님 오도송 성철스님 오도송  보리는 나무가 아니며
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황하수 서쪽으로 거슬러 흘러  명경 역시 누대가 아니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그네의 수심에 잠겼던가. 곤륜산 정상에 치솟아 올랐으니  본래 아무 것도 없거늘
한마디 소리쳐 우주를 설파하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져내리도다  어디에 먼지가 묻으랴.
눈 속의 복숭아꽃 붉게 붉게 나부낀다.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서산대사 오도송
경허선사 오도송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있네.  머리는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조주선사 오도송 옛사람 일찍이 말했던가.
문득 삼천 세계가 나의 집임을 깨달았네 
봄에는 아름다운 백화가 만발하고
이제 닭 우는 소리 듣고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  가을에는 밝은 달이 온천지 비추도다. 장부의 큰 일 능히 마쳤네.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 불어오고 홀연히 내 집 어딘지 깨달고보니
  겨울에는 아름다운 흰눈이 날리도다. 모든 것이 다만 이렇고 이렇도다.
  쓸대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으면 천만금 보물인 대장경도 
  이것이 바로 좋은 시절이라네. 원래 아무것도 써있지 않은 
    종이 한장이로다

 

 

 

역대 고승들의 오도송을 보면 상좌불교에서 말하는 도의 증득과정에 있어서내용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좌불교에서의 깨달음은 철저하게 무상 고 무아를 철견하여 사성제를 아는 것으로 나와 있으나 선사들의 오도송을 보면 무상 고 무아에 대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고 자연과 인생과 우주가 일체 되는 모습을 주로 그리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와 같은 차이는 대상을 분리하여 보는 것과 대상과 일치 하여 보는 차이라 볼 수 있다. 즉 상좌불교에서는 대상을 분리 하여 보기 때문에 법을 볼 수 있고, 또한 법의 특성인 찰라생 찰라멸하는 무상함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성제를 철견하는 것이 도를 얻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면에 선불교에서는대상과 일체가 되는 선정 수행 위주이기 때문에 사성제와 같은 오도송이 나오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오도송은 무슨 내용일까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이다. 부처님이 이미 개척해 놓은 길로 가기만 하면된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깨달은 내용은 무엇일까. 흔히 부처님의 오도송이라 불리우는 게송이 있다.

 

 

이 집(육체) 지은 이 찾아

많은 생을 헤매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찾을 수 없었나니

그저 고통스러운 탄생과 죽음만이

여기 끝없이 끝 없이 되풀이되었을 뿐.(법구경 153)

 

그러나 이제

이 집 지은 이를 나는 찾았다.

다시는 이 집을 짓지 말라.

이 집의 서까래는 무너졌고

대들보는 갈라졌다.

내 마음은 지금

이 모든 환각에서 깨어나

니르바나, 저 새벽을 향하고 있다.(법구경 154)

 

 

법구경의 부처님의 오도송을 보면 사성제에 대한 내용이다. 이 게송에서 서까래는 모든 번뇌와 오염원을 말하고, 대들보는 무명을 의미한다. 마치 대들보가 모든 서까래를 받치고 있듯이 무명이 모든 번뇌를 지탱해 주고 있는 오염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혜에 의하여 갈애라는 집짓는 이를 발견하고 서까래라는 모든 오염원을 부수었을 뿐만 아니라 무명이라는 대들보도 제거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형성작용이 멈추어서 닙바나를 성취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윤회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왜냐 하면 더 이상 집이라는 몸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처님이 깨달은 오도송이다. 이 오도송은 철저하게 사성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2009-10-2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