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의심의 끝은 어디, 불법승 삼보와 연기법을 부정하는 회의론자에게 치료책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1. 4. 19:46

 

의심의 끝은 어디일까, 불법승 삼보와 연기법을 부정하는 회의론자에게 치료방법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몇 일 전 그런 꼴을 당했다. 컴퓨터의 속도를 좀 더 빨리 하고 싶어서 환경설정을 조작 하다 컴퓨터가 고장 난 것이다. 결국 기사를 불러와야 만 했다. 윈도우를 다시 까는 것 만으로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아 망가진 하드디스크를 교체 하여만 하였다. 그리고 포맷하고 모든 프로그램을 새로 깔아야 했다. 그렇게 된 동기는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 되었다.

 

컴퓨터 사망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인터넷에서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설치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프로그램이 깔려 있음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불청객과 같은 프로그램이 깔려 있으면 기분이 매우 찜찜 하다. 그런 프로그램 중에 하나가 PC속도를 개선시켜 준다는 프로가 있었다. 본인도 모르게 깔린 그 프로그램은 시도 때 도 없이 출현하여 속도를 개선 시켜 줄 테니 점검 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 왔다. 물론 가입을 하고 돈을 내야 하는 유료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얼마 전 뉴스에 발표 된 신종 컴퓨터 사기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바이러스나 스파이웨어 같은 악성코드를 치료 한다는 명목으로 배포된 프로그램에 관한 기사이다. 그런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병주고 약주고하는 식의 사기라는 것이다. PC속도를 개선 시켜 준다는 그 프로도 역시 병주고 약주고 식의 프로그램이라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제거 하였는데 꽤 애를 먹었다. 잘 제거 되지 않게 교묘 하게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이었다.

 

프로그램은 제거 되었지만 그 프로그램이 몰래 심어 놓은 악성코드가 남아 있을 것 같은 의심이 든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PC속도를 개선 할 수 있는 환경설정에 대하여 조사 하여 보았다. 어느 블로그에 그림과 함께 자세히 소개하였다. 그 내용만 믿고 그대로 따라 하였는데 시스템까지 건드리게 되었다. 그 결과 컴퓨터의 부팅이 안되고 고장나게 된 것이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지시 방법 대로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리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은 인터넷을 너무 믿은 것이 잘 못 이었다.

 

모든 것은 의심에서

 

결국 쓸데 없는 의심에서 시작하여 인터넷을 지나치게 믿은 결과는 컴퓨터 사망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그에 대한 대가는 무척 컷다. 우선 하드디스크를 포함한 재설치 비용이 지출 되었고 시간 또한 많이 허비 되어서 그날 새벽까지 못 다한 일을 하여야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손실은 그 동안 만들어 두었던 주소록, 이메일 송수신 기록, 작업 데이터베이스가 일부 손실 된 것이다.

 

모든 것은 의심에서 비롯 되었다. 그리고 너무 인터넷을 믿은 것이 화근이다.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을 의심하고, 믿지 말아도 될 것을 철썩같이 믿은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과 완전히 거꾸로 간 결과 그 대가는 회복할 수 없는 커다란 손실로 나타났다. 비단 이런 실수가 컴퓨터에서만 있는 것일까.

 

살다 보면 의심에서 시작 하여 패가 망신 하는 경우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뉴스에서 발표 되는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 같은 경우도 단순한 의심에서 시작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부부간에 의처증이나 의부증 같은 것이 대표적일 것이다.

 

의심을 해부해 보면

 

의심은 해로운 심리현상임에 틀림 없다. 아비담마에서는 이 의심을 해로운 심리현상 14가지 중에 하나로 보고 있다.

 

의심은 빠알리어로 위찌낏차(vicikiccha)라 한다. 어원을 보면 vi(분리하여) cinteti(to think)의 합성어인 vicikicchati의 명사형이라고 아비담마 길라잡이에 나와 있다. 이 말뜻은 이리 저리 생각하고, 마음을 굴린다라는 뜻이다. 그럼으로 인하여 마음이 혼란 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는 perplexity라 한다. 또 어원 찌낏차(cikiccha)치료받는 바램을 의미 하지만 접두어 vi(분리하여)가 붙은 결과 치료하는 것을 버리려는 것이 의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수행중에 극복해야 할 가장 강력한 다섯가지 장애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 다섯가지 애란 무엇일까.

 

 

첫째, 감각적 욕망이다.

둘째, 악의이다.

셋째, 해태와 혼침이다.

넷째, 들뜸과 후회이다.

다섯째, 회의적 의심이다.

 

 

다섯가지 장애 중에 의심은 회의적 의심으로 표현 되고 있다. 무엇을 회의적 의심이라 할까.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 빠띳짜사뭅빠다(paticca-samuppada, 12연기)에 회의적 의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8가지로 정리 하였다.

 

무엇을 의심 하는가

 

첫째, 부처님에 대한 의심이다.

 

이 것은 “부처님은 실제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분이었을까? 아니면 제자들에게 맹목적으로 믿도록 한 보통사람이 아니었을까?”와 같은 의심이다.

 

둘째, 가르침에 대한 의심이다.

 

“도와 열반은 진정으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소멸을 보장 하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다.

 

셋째, 승가에 대한 의심이다.

 

“진정으로 번뇌에서 벗어난 성자(아리야, Ariya)는 있기나 한 것일까? 전도된 인식과 의심을 극복한 예류자는 절대로 악처에 태어 나지 않는 다고 하는 데 과연 그럴까? 감각적 욕망과 성냄이 희미해진 일래자가 있는 것일까? 감각적 욕망과 성냄에서 완전히 벗어난 불환자가 있는 것일까?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아라한이 진짜 있는 것일까?”와 같은 의심이다.

 

넷째, 수행에 대한 의심이다.

 

“계를 지키고 관찰 하는 수행은 더 높은 영적인 진보에 유익하고 도움이 된다는 데 과연 그럴까?”하고 의심 하는 것이다.

 

다섯째, 과거에 대한 의심이다.

 

“나는 과거에 존재 하였을까? 나는 과거에 왜 어떻게 존재했을끼? 나는 전생에 어떠한 사람이었을까? 나는 덩어리에서 생겨 났을까? 아니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 났을까? 와 같은 의심이다.

 

여섯째, 미래에 대한 의심이다.

 

“나는 죽고 나서 존재 할 것인가? 내생에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가?”와 같은 의심이다.

 

일곱째, 과거와 미래 모두에 대한 의심이다.

 

“이 현생에서 자아에 대한 의심이 생긴다.” “나는 진정 나 자신인가? 자아는 존재 하는가? 존재 하지 않는가? 만약 존재 한다면 그것은 어떤 종류의 자아인가? 그 것은 큰가? 작은가? , 어떻게 자아가 존재 하는가? 그 것은 창조 되었는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는가? 자아는 어디서 왔으며 마지막에 몸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여덟째, 연기법에 대한 의심이다.

 

.“상카라()는 정말 참된 법에 대한 무명에서 비롯 된 것일까? 재생은 정말 업을 조건으로 해서 일어 나는 것일까? 정말 내생의 악업은 해롭고, 선업은 유익할 것인가? 모든 현상에 정말 원인이 있는 것일까?

 

여덟가지 의심의 골자는 불법승 삼보연기법에 대한 의심으로 귀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교인으로서 불법승 3보에 대하여 의심 하고, 불교의 기본 교리인 연기법 마저 회의 한다면 진정한 불자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성자가 되려면 이러한 회의적 의심을 극복 하여야 된다고 하였다.

 

회의적 의심은 왜 일어 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아가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아나 나가 있다는 전도된 인식에서 벗어 날 때 모든 회의적 의심은 극복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심이 남아 있는 한 결코

 

나가 있다는 생각이 유신견(有身見)이다. 유신견이 있는 한 감각적 욕망을 극복 할 수 없고 결코 성자의 반열에 들어 갈 수 없다고 초기경에서는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성자의 반열에 들어 가려면 다음과 같이 세가지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유신견(有身見)이다. 빠알리어로 삭까야디티(sakkaya-ditthi)라 한다.

개아가 있다는 믿음이다.

 

둘째, 회의적 의심이다. 빠알리어로 위찌낏차(vicikiccha)라 한다.

불법승 삼보와 연기법에 대한 회의론적 의심을 말한다.

 

셋째, 계금취(戒禁取)이다.빠알리어로 실랍바따 빠라마사(silabbata-paramasa)라 한다.

형식적 계율과 의식을 지킴으로써 청정해질 수 있다는 견해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위와 같은 세가지 족쇄를 푼 수행자를 성자의 흐름에 든자라 하여 예류자라 한다.

 

세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유신견이다. 성자와 범부를 가르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회의적 의심, 계금취가 극복 되어야만 깨달은 사람으로서 복전이 될 수 있고 일곱생 이내에 열반에 들어 다시 태어 나지 않는 다고 한다.

 

성자가 되는 단계를 보면

 

열가지 족쇄중에 나머지 일곱가지 족쇄는 무엇일까. 그리고 일래자, 불환자, 아라한은 어떤 족쇄가 풀린 단계를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표를 만들어 보았다.

 

 

10가지 족쇄(삼요자나, samyojana)

단계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 아라한  구 분
      소따빤나
(sotapanna)
사까다가미
(sakadagami)
아나가미
(anagami)
(arahan)  
1 유신견 삭까야딧티
(sakkaya-ditthi)
        거친족쇄
2 회의적 의심 위찌낏차
(vicikiccha)
모두 풀림 모두 풀림     (오하분결)
3 계금취 실랍바따 빠라마사
(silabbata-paramasa)
    모두 풀림    
4 감각적 욕망 까마라가
(kama-raga)
엷어진 상태      
5 적의 빠띠가
(patigha)
    모두 풀림  
6 색계에대한 집착 루빠라가
(rupa-raga)
  미세한족쇄
7 무색계에대한 집착 아루빠라가
(arupa-raga)
  (오상분결)
8 자만 마나
(mana)
   
9 들뜸 웃닷짜
(uddhacca)
   
10 무명 아윗자
(avijja)
         

 

 

 

표와 같이 성자를 구분 하는 단계는 10가지 내용이 있다.  이 중 첫번째인 유신견에서 다섯번째인 적의까지 5가지 단계를 거친족쇄라 하고 이를 오하분결이라 한다. 또 여섯번째의 색계에 대한 집착에서부터 열번째인 무명까지 5가지 단계를 미세한 족쇄라 하고 이를 오상분결이라 한다.

 

예류자는 1~3번이 모두 풀린 상태를 말하고, 일래자는 1~3번이 모두 풀리고 4~5번이 엷어진 상태라 한다. 불환자의 경우는 1~5까지 모두 풀린 상태를 말하고, 아라한의 경우는 10가지 족쇄가 모두 풀린 경우라 한다.

 

누가 회의론자가 되는가

 

의심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매우 해로운 마음부수이자 오염원이다. 특히 의심은 어리석은 마음의 뿌리에 해당 된다. 89가지 마음 도표를 보면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 두가지 중의 하나인 평온이 함께 하고 의심과 결합된 마음(마음도표 12)’이 바로 그것이다.

 

어리석음에 마음에 뿌리 박은 의심이 일어 나면 마땅한 치료책이 없다. 의심이 일어 나면 혼란스럽고 속이 상할 뿐만 아니라 지혜가 가지고 있는 치료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현상을 인터넷 토론 사이트에서 종종 본다.

 

소위 불교에 대하여 좀 안다는 일부 네티즌들이 벌이고 있는 운동이다. ‘부처님법 바로알기라는 이름 하에 벌어지고 있는 제반 토론 주제는 불법승 삼보와 연기에 대한 의심이다. 이들은 부처님과 부처님 법을 왜곡 할 뿐만 아니라 청정하고 거룩한 승가를 능멸하기 일쑤이다.

 

오로지 필명으로 만 통용되고 글로써만 살아 움직이는 인터넷 공간에서 얼굴을 감추고 벌어지고 있는 부처님법 비틀기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까. 그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회의론자들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한 경전도 믿을 수 없고 내생은 물론 윤회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눈에 보이는 객관적으로 증명 될 수 있는 현상만 믿겠다는  것이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의 세계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의 세계만 보인다고 하였다. 돼지가 인식 하는 세계와 부처가 인식하는 세계는 분명 다를 것이다. 돼지가 인식 하는 세계는 오로지 먹고 싸고 교미 하는 것 뿐이다.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과 개가 생각 하는 것이 서로 다르듯이 인식 하는 세계는 또한 같지 않다. 한 공간에서 같이 살지만 전혀 다른 정신세계에 사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다. 소위 부처님법 바로 알기 라는 주제로 열려 있는 일부 토론 사이트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특징은 철저하게 보이는 것만 믿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인식 할 수 있는 사항만 인정 한다. 그러다 보니 경전상에 나와 있는 부처님 말씀도 부정 하기 일쑤이다. 경전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업과 내생은 물론 윤회도 부정한다. 업과 내생과 윤회를 부정 하고 오로지 바로 지금 현재를 관하는 것이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주장 하고 자신들만이 진정한 부처님의 법을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돼지의 눈에는 돼지의 세계만 보인다는 논리를 그대로 적용 할 수 있다.

 

회의론자들에게 적당한 치료방법은

 

돼지의 세계에서는 돼지 이상의 인식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부처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가 인식 하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처의 눈으로 본 세계를 설하여 놓은 것이 경전이고 부처님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에 근거 하여 자신의 깨달은 내용을 설명하여 놓은 것이 아비담마와 같은 논서이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은 범부 보다 훨씬 더 높은 안목을 가졌음에 틀림 없다. 범부들이 인식 하지 못한 경계에 다다를 수 있고 그런 경험이 고스란히 논장에 기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깨닫지 못한 범부들이 부처님과 부처님법과 부처님의 제자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인식수준을 넘어버리는 부처님과 부처님법과 부처님법을 따르는 제자들을  쉽게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불법승 3보와 연기법을 의심 하게 되고 회의론자들이 되는 것이다.

 

불법승 3보와 연기법에 대하여 의심 하는 회의론자들에게 적당한 치료방법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혜가 없이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 할지 모른다. 마치 쓸데 없는 의심으로 시작하여 결국 컴퓨터의 사망에 이르게 한 것처럼.

 

 

 

2009-11-0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