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우라나라 사찰은 전국구, 월악산 덕주사 순례법회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0. 25. 10:54

 

우라나라 사찰은 전국구, 월악산 덕주사 순례법회에서

 

 

오랜만에 순례법회를 다녀 왔다. 지난 5월에 다녀 온 이래 5개월만이다. 가을이 한참 무르익어 가고 있어서일까 심산유곡에는 단풍이 곱게 들었다. 올해 단풍은  비가 적절하게 와서 어느 해 보다 예쁘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지금 월악산에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있는 월악산은 온통 울긋불긋 화다. 마치 불에 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산에 큰산 악()자가 들어 가면 악산이 많다고 한다. 설악산, 관악산등이 악자가 들어가는 대표적인 산이다. 악자가 들어 가면 바위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곳 월악산 또한 바위로 어우러진 절경을 자랑 하고 있다. 그런 월악산에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다.

 

 

 

 

 

 

 

 

 

 

 

월악산을 대표 하는 사찰은

 

덕주사는 충청북도 월악산 국립공원내에 있다. 월악산이 유명한 국립공원임에도 불구 하고 산세에 걸 맞는 사찰이 없다시피 하였으나 최근 덕주사는 대규모의 중창불사를 통하여 월악산을 대표 하는 사찰로 거듭 태어나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일까 절터는 마치 공사장 같이 이 곳 저곳에 불사가 진행 되고 있었다. 또 어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기와 불사 역시 이 곳 저 곳에서 볼 수 있었다.

 

 

 

 

 

덕주사 대웅전.

전면 5칸 측면 3칸의 웅장한 모습이다.

덕주사는  신라진평왕9년(587년)에 건립되었다.

지금 보는 대웅전은 하덕주사라 한다.

 

 

 

 

 

 

 

 하 덕주사는 불사가 계속 진행 되고 있어서 공사장 같은 느낌을 준다.

 

 

 

 

 

 

 

대불정주비문

1988년에 논둑에서 발견한 이 비문은 산스크리트어로 기록 되어 있다 한다.

그러나 글씨는 뚜렷하지 않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산신각.

두개의 커다란 바위 사이에 석굴 형식으로 조성 된 것이 특이하다.

 

 

 

 

 

 

 

약사여래입상.

고려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몸체에 비하여 두상이 큰 것이 특징이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하자 덕주사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새로 조성된 여래입상

 

 

 

 

 

 

 

하 덕주사 전경 

 

 

  

 

 

망국의 한을 달래며

 

덕주사는 전통사찰이이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유명한 산에는 반드시 사찰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 월악산 덕주사 역시 천년고찰이다. 그 역사는 신라 진평왕9(587)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역사로 따진다면 1500년 고찰이다.

 

덕주사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마애불이라 볼 수 있다. 마애불이 있는 상덕주사는 하덕주사에서 가파른 산길을 약30분간 올라가야 나온다. 거대한 암벽에 암각 되어 있는 마애불의 이야기는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덕주공주가 오빠인 마의태자와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덕주사를 지었다고 하니 덕주사는 덕주공주에서 유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상 덕주사 올라가는 길.

가파른 산길을 약 3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순례객과 등산객이 엉켜서 함께 올라간다.

 

 

 

 

 

 

 

상 덕주사 마애 여래 입상.

전설에 따르면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달래며 마애불을 조각 하였다고 한다.

보물406호이다.

 

 

 

 

 

 

 

상덕주사 전경

 

 

 

 

 

마애불 전면 모습

 

 

 

 

 

 

 

기도 하는 순례객들

 

 

 

 

 

 

 

 

 

극락보전에서 바라 본 영봉

 

 

 

 

 

우리나라 사찰은 전국구

 

순례법회를 다닐 때 마다 느끼는 사항이지만 우리나라 사찰은 전국구라는 것이다. 사찰이 산중에 있다 보니 지역민들이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부근의 지역 주민과 유리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이유는 사찰이 주민 밀착형이라기 보다 수행중심의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근의 지역 주민 보다 멀리서 순례 오는 불자들이나 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불사를 의지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에 걸쳐 있는 전통사찰은 전국에서 몰려 오는 불자들에 의하여 유지 되는 전국구 성격이다.

 

 

 

 

 

 

 

 

순례객과 등산객을 상대로 농산물을 판매 하고 있는 인근 주민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요즘은 오지의 사찰에도 차가 들어 갈 수 있다. 신심있는 불자들은 전국에 걸쳐 있는 기도처나 유명한 전통사찰을 순례 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으로 되어 있다. 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나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기도도 하고 산나물이 버무러진 공양을 하고 나면 묵은 때가 벗겨 나가는 세척효과를 맛 보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에서 몰려 든 불자들을 대상으로 공양을 제공한다.

 

 

 

 

 

 

 

 

산나물과 채식으로 이루어진 식단은 대표적인 웰빙음식이다.

 

 

 

 

불자들을 대상으로 어느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은 불사이다. 주로 기와 불사 이다. 한장에 만원 하는 기와 불사는 각종 각종전각이나 종, 탑등을 짓는데 활용된다. 수년에 걸쳐서 오랫동안 불사가 서서히 진행 되다 보면 어느 덧 가람으로서의 면모가 갖추어짐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건축불사가 완료 되었음에도 불구 하고 불사는 끊임 없이 진행 된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불사현장

 

 

 

 

 

 

 

기와에 이름을 적어 놓는 기와불사가 대부분이다.

 

 

 

 

 

 

 

 

불교용품을 팔기도 하고 불사도 접수 받는다.

 

 

 

 

 

 

 

 

이런 불사의 모습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이제는 사람이 사는 곳에 불사가 이루어져야

 

산중에 전통사찰이 복원되고 수행처가 마련되는 현상은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한 현상이다. 또 전국에 걸쳐 신심있는 불자의 헌신적인 동참에 따라 한국불교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산중의 불사보다는 이제는 사람이 사는 곳에 불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전국의 신심있는 불자에 의존 할 것이 아니라 지역민에 의존하고 그들을 위하여 봉사 할 수 있는 지역구가 되어야 한다. 산중의 불사가 어느 정도 완성 되었다면 이제는 전국구에서 지역구가 되어야 하고, 지역으로 내려와서 지역불사를 하여야 한다.

 

 

 

 

 

 

 

 

 

 

 

 

 

 

 

 

 

 

 

2009-10-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