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추억 속의 교법사님을 보고, 불설비유경과 열반 11가지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1. 7. 12:25

 

추억 속의 교법사님을 보고, 불설비유경과 열반 11가지

 

 

 

 

 

 

 

낯익은 얼굴이

 

집에 TV를 치워 버렸다. 또 신문도 보지 않는다. 그래서 주로 라디오나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거나 프로를 본다. 인터넷으로 서비스 되는 불교TV를 보는 중에 매우 낯익은 얼굴을 발견 하였다. 근본경전을 강의 하는 어느 교수님의 모습에서 중학교 시절 선생님의 얼굴을 발견 한 것이다. 유심히 살펴 보니 틀림 없는 그 선생님 이었다. 그 때 당시 존경하는 선생님 이었는데 대학교수가 되어 근본불교 경전을 강의 하고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일까 나이가 들은 모습이 역력 하지만 그 때 그 시절의 이미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 때 그 시절의 모습에서 그대로 곱게 나이가 들어간 모습이다. 그 때 당시 선생님은 교법사이었다. 불경시간에 불교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배정 받아 들어간 곳은 불교 종립중학교 이었다. 요즘도 마찬가지이지만 불교계통의 사립학교는 가물에 콩나듯 희귀하고 보기 힘들다. 어떤 인연이었는지 모르지만 배정 받아 가게 된 학교에서 불교를 처음 접했다.

 

중학교 1학년이면 오염 되지 않은 순수함이 남아 있을 때이다. 이런 순수하고 세파에 물들지 않은 마치 하얀 도화지와 같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불교에 대하여 교육을 한 분이 바로 인터넷에서 보고 있는 그 교수님이었던 것이다.

 

부처님 같은 교법사

 

불경시간은 일주일 한번 있었다. 교재가 있어서 교재를 중심으로 가르쳤는데 주로 부처님의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이었다. 부처님의 탄생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 까지 보통 알고 있는 내용이다.

 

교재를 강의 하는 교법사 선생님은 교재에 국한 하지 않고 불교에 관한 재미 있는 이야기도 곁들여 수업을 진행 하였는데 모두 다 열심히 경청 하는 분위기 이었다. 때로 타종교를 믿는 학생이 이의를 제기 하거나 불손하게 굴어도 성내는 일 없이 넘어 가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어느 학생이 말하기를 선생님은 부처님 같아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부처님 같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잘 생긴 얼굴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선생님은 시원한 이마를 가지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너른 이마, 반곱슬의 머리, 통통한 얼굴은 귀티 나는 귀공자 스타일 이었고, 요즈음으로 말하면 꽃미남 이라고 부를 정도로 핸섬한 마스크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눈을 지긋이 아래로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불상의 반개한 부처님의 눈이 연상 되기도 하였다.

 

누가 먼저 깃발을 꼽느냐

 

그 때 당시 선생님의 나이는 아마 20대 후반 또는 서른 안팍 이었던 같다. 나이는 젊었지만 행동거지는 지혜 있는 노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선생님을 학생들의 거의 대부분이 받아 들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이나 행동거지가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완전한 그 자체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처음으로 종교를 접하는 사람들에 있어서 교법사의 이미지는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교법사의 이미지에 따라 향후에 불교를 종교로 갖느냐 아니면 배척하느냐가 어린 학생들에게 결정 되기 때문이다.

 

중학교에서 불교를 처음 접했을 때 자연스럽게 불교를 받아 들였다. 그리고 불교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기독교 학교를 배정 받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기독교를 신앙으로 가졌을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들은 순수 하기 때문에 누가 먼저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으로 본다면 어린이와 청소년 포교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실감나는 대목이다. 전도의 황금시장이라는 군대도 마찬가지 일 것 이다. 어느 종교가 그 사람의 정신영역에 먼저 깃발을 꼽느냐에 따라 일생의 종교가 결정 되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좋은 예가 또 있다.

 

고등학교는 미션스쿨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배정 받아 들어간 고등학교는 소위 미션스쿨이라는 기독교계통의 학교이었다. 불교계통의 학교와 달리 기독교계통의 학교는 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기독교 교육을 해야 기독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까 우리나라 종교학교의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계통의 학교이다.

 

배정 받아 들어간 학교는 미국선교사가 설립한 학교로서 교훈은 기독적 인격 이었다. 일단 들어 오면 기독인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매우 공격적인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불교계통의 학교와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정교 하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주입식 교육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강제성을 띨 수 밖에 없다. 믿으면 모든 것이 편해 지는데 믿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조치들이다. 그런 교육 중에 성경시간이 있었다.

 

미션스쿨에서 가르치는 것은

 

미션스쿨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을 교목이라고 한다. 불교 학교의 교법사와 대비 되는 말이다. 그 교목도 나이가 서른 안팍의 젋은 선생님이었다. 안경을 쓴 매우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매우 달변이었다. 성경시간에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 나지 않지만 불교 학교와 달리 일주일 성경시간이 두번 있었다. 한시간은 성경시간이고 또 한시간은 슬라이드교육시간이다.

 

슬라이드교육시간에 구약을 가르쳤는데 준비된 슬라이드를 보아가며 교육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구약의 창세기와 같은 이야기가 아무리 해도 마음에 다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담과 하와이야기, 원죄론, 대속론 등의 이야기 가 실제로 있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고등학생이라 어느 정도 사리분별 능력이 있고, 더구나 불교 학교에서 불교의 인과법 정도는 배웠기 때문에 창조이야기라든가 선악과, 에덴동산 이야기등이 유치해 보였다는 것이다.

 

기독교를 처음으로 접하는 학생들은 구약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들이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동창회 사이트에 보면 목사가 되었다는 사람도 있고 종종 기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배정 받아 들어온 학생들이 모두 기독인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 머리가 커서 들어온 학생들에게 강제로 하는 것도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을 성경시간에 실제로 목격 하였다.

 

신성한 기도 시간에

 

입학하자 모든 학사일정이 선교 중심으로 돌아 가는 것을 느꼈다. 일주일 두번 있는 방송조회, 한달에 한번 있는 운동장 예배, 1년에 3일간 수업을 전폐 하고 열리는 집중예배, 그리고 일주일 두번 있는 성경시간등 기독교와 관련된 행사 위주로 짜여 있었다. 그 중에 성경시간은 공포의 시간이었다. 믿는 사람들이야 축복의 시간이지만 믿기를 거부 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넘길까 하는 것 만이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 그 것은 다름 아닌 기도 시간 이었다. 각종 예배시간은 그저 눈을 감고 있거나 귀막은 채 앉아 있으면 그만 이었지만 기도시간 만큼은 피해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도는 성경수업을 하기 전에 한 사람씩 교단에 나가서 기도 하는 것이다. 번호 순서 대로 하기 때문에 내 차례가 언제 되리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믿지도 않은 신을 대상으로 신을 부르면서 기도 한다는 것은 돼지가 도살장에 끌려 가는 것 과 같은 기분이었다. 점점 순서는 다가 오고 그에 따라 심리적인 압박감도 더 심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벌어졌다.

 

어떤 학생의 기도 시간이었다. 그 학생은 어떤 연유인지 1년을 꿇었고 행동 또한 터프 하여 완력에 의한 헤게모니를 반에서 쥐고 있는 학생이었다.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 학생도 교단으로 나갔다. 그리고 두손을 모으고 다른 학생들이 서두를 꺼내는 말부터 시작 하였다.

 

 

다 같이 기도 합시다

 

 

여기까지 좋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이었다.

 

 

“…………아멘!”

 

 

하고 내려 온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처럼 하나님 아버지 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였습니다 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 같이 기도 합시다 하고 긴 침묵으로 있다가 아멘 하고 교단을 내려가 버린 것이다.

 

모두다 긴장 하였다. 신성한 성경시간에 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무례해 보이는 그 학생의 행동에 대하여 교목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긴장에 긴장을 더했다. 일촉즉발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런 상태가 수십초 계속 되었다.

 

그런데 교목은 그냥 넘어 갔다. 없던 일로 하기로 한 것 같았다. 그 이후로 한 사람씩 불려 나와 기도 하는 행위는 없어졌다. 그 학생 덕분에 기도 공포에서 해방 된 것이다.

 

믿겨야 믿는 것

 

고교 3년간 미션스쿨에서의 기억은 좀처럼 생각 하고 싶지 않은 불행한 기간이었다. 한 쪽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기독인을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이에 넘어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고 보아야 옳은 표현 일 것이다.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외부초청강사는 예배시간에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을 인정 하지 않고 아직도 하나님을 부정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른 바 표적설교' 이다. 믿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그 심리 상태를 꿰뚫어 보고 공개적으로 비판 한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뜨끔 해진다. 마음을 그 강사한테 들킨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믿겨야 믿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데 믿으라고 해서 믿어질까. 믿기면 믿지 말라고 해도 믿을 텐데 믿음을 강요하고 기도를 강요 하는 행위는 오히려 역효과만 볼 뿐이다.

 

청소년기에 두 종교를 체험하고

 

청소년기에 두 종교를 체험 하였다. 중학교 시절에 불교를, 고교시절에 기독교를 접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중학교 시절은 행복 하였고, 반대로 고교시절은 심리적으로 불행한 시절이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종교사상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어린이나 청소년기에 어느 종교를 먼저 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종교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에 접한 불교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교법사의 영향이 컷다. 인품도 온화 했을 뿐만 아니라 언행도 일치하고 무엇보다도 불교를 재미 있게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 때 당시 기억에 나는 가르침은 흰쥐와 검은쥐에 대한 이야기이었다. 칠판에 그림까지 그려 가면서 설명한 그 이야기는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불설비유경이었다. 불설비유경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불설비유경

 

대왕이여,

나는 지금 대왕을 위하여 한 가지 비유로써

생사의 맛과 그 근심스러움을 말하리니,

잘 듣고 잘 기억하시오.

 

한량없이 먼 겁 전에

어떤 사람이 광야에 놀다가 사나운 코끼리에게 쫓겨

황급히 달아나면서 의지할 데가 없었소.

그러다가 그는 어떤 우물이 있고

그 곁에 나무뿌리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소.

그는 곧 그 나무뿌리를 잡고 내려가

우물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소.

그 때 마침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그 나무뿌리를 번갈아 갉고 있었고,

그 우물 사방에는 네 마리 독사가 그를 물려하였으며,

우물 밑에는 독룡(毒龍)이 있었소.

그는 그 독사가 몹시 두려웠고

나무뿌리가 끊어질까 걱정이었소.

그런데 그 나무에는 벌꿀이 있어서 다섯 방울씩 입에 떨어지고

나무가 흔들리자 벌이 흩어져 내려와 그를 쏘았으며,

또 들에서는 불이 일어나 그 나무를 태우고 있었소.”

 

대왕이여,

그 광야란 끝없는 무명(無明)의 긴 밤에 비유한 것이요,

그 사람은 중생에 비유한 것이며

코끼리는 무상(無常),

우물은 생사에,

그 험한 언덕의 나무뿌리는 목숨에 비유한 것이요,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는 밤과 낮에,

나무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찰나 목숨이 줄어드는 데,

네 마리 독사는 4()에 비유한 것이며,

벌꿀은 5(),

벌은 삿된 소견에,

불은 늙음과 병에,

독룡은 죽음에 비유한 것이오.

그러므로 대왕은 알아야 하오.

생ㆍ노ㆍ병ㆍ사는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니,

언제나 그것을 명심하고

5욕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오.”

 

 

수 많은 불교의 경전 중에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유명한 경전을 학생들에게 들려 준 것이다. 이 비유에서 우리가 추구 하는 삶과 쾌락, 죽음과 괴로움의 본질을 비유로서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때 당시 나이 어린 학생들이 경전의 내용을 다 이해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 나는 것은 밧줄에 의지하여 언제 떨어져 죽을 지도 모르는 사람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꿀맛에 괴로운 현실과 고통을 잊는 다는 대목이 인상 적이었다. 이런 수준 높은 이야기를 듣다가 기독교 학교에 배정 되어 강압적인 상황에 노출 되었으니 적응이 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교법사 선생님을 다시 인터넷에서 보게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예전의 젊은 모습은 아니다. 나이가 지긋한 학자의 모습이다. 그런 교수님의 강의 내용 중에 열반에 관한 사항을 들었다. 열반이란 죽음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가면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스리랑카의 붓다고사 스님이 말한 열반 11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첫번째, 탐욕 내는 것을 벗어나면 열반이다.

두번째, 성질 내는 것을 벗어나면 열반이다.

세번째, 어리석음에서 벗어 나면 열반이다.

 

위와 같이 열반은 죽는 것이 아니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벗어 나는 것이 열반이라는 것이다.

 

네번째, 아프지 않으면 열반이다.

 

즉 건강하면 열반의 경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사 할 때 안녕하십니까? 또는 별고 없습니까? 라고 하는 것 보다 여여하십니까? 라고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다섯번째, 슬퍼 하지 않으면 열반이다.

여섯번째, 비탄에 잠기지 않으면 열반이다.

일곱번째, 고통에 잠기지 않으면 열반이다.

여덟번째, 우울 하지 않으면 열반이다.

아홉번째, 고난이 없으면 열반이다.

열번째, 늙음에 대하여 너무 생각지 않는 것이 열반이다.

열한번째, 죽음에 대하여 너무 연연해 하지 않는 것이 열반이다.

 

 

붓다고사 스님이 말한 열반의 개념은 어쩌면 우리 일상에서 그대로 실천 할 수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탐진치에서 벗어나고 몸과 마음이 평안하고 나고 죽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않으면 바로 그 상태가 열반이라는 것이다. 열반이 저 멀리 있는 것 또는 죽어야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열반을 체험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추억속의 교법사님

 

세월이 흘러서 인터넷으로 옛날의 스승님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러나 추억속의 그 스승님의 얼굴은 아니다. 그러나 그 기백만은 변함 없는 것 같다. 추억속의 스승님과 지금의 교수님은 분명 같은 사람일지라도 똑 같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연기적으로 서로 연결 되어서 지금의 교수님이 과거의 교법사 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중학교 시절의 교법사님의 모습은 여전히 추억속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2009-11-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