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명령을 내린 지휘관을 신업(身業)으로 보는 이유, ‘불갑산은 인간사냥터’를 보고
인공시대에
어려서부터 어른 들로부터 듣던 이야기가 있다. ‘인공’이라는 말이다. 주로 6.25사변 당시 혼란스러웠던 사회 상황에 대한 이야기 이다. 한번은 대한민국이 통치 하고 또 한번은 공산당이 통치 하는 과정에 있어서 겼었던 민중들의 경험담이라 볼 수 있다. 특히 경찰과 빨치산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중간지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한결 같이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공”이었다라는 말이 따랐다. 그런 인공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공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조선인민공화국’이고 또 하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전자를 보통 ‘인공’이라 한다. 남한에서 특히 인공이 통치 하던 시절을 ‘인공시대’라 한다. 그런데 그 인공시대는 무척 짧았다는 것이다. 백과사전을 찾아 보니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는다. 즉, 1945년부터 1946년까지가 인공시대인 것이다.
인공은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여운형등이 주도한 ‘건국동맹’에서 시작 된다. 보통 ‘건준’이라고 불리우는데 그 때 전국에 걸쳐서 ‘인민위원회’가 조직 되고, 인민대표자대회를 열어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인공이다. 그런데 인공은 미국이 진주하면서 인정 받지 못하고 해체 하게 된다.
‘포탄’도 쏟아 부어
한 인터넷신문에서 금년 들어 ‘유해발굴 보고서로 본 민간인 집단희생 진실 규명작업’이라는 시리즈를 내 보내고 있다. 두번째로 내 보낸 이야기는 ‘15세 미만 희생자 21명… 불갑산은 인간사냥터(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95766)
’ 라는 내용이다. 6.25당시 전남 함평의 불갑산에서 있었던 민간인 집단 학살에 대한 기사이다.
불갑산 호랑이
그 기사에서 아무 이유 없이 희생당한 사람들은 그 지역에 사는 민간인들이었다고 한다. 무려 524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모두 군인과 경찰, 우익청년단에 의해서 학살 당했다는 것이다. 그 것도 총격 뿐만 아니라 ‘기관총’과 ‘포탄’도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문도 모르채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집단 학살에 참여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그 학살을 지시한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지시한 사람은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은 말이 없다. 그 사건 이후로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수십년이 흐른 지금 인터넷에서 진상이 공개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지금도 남아 있는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이 되어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빨치산’ 하는 식으로 이야기 된 것이다. 이미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 행위는 남아서 세상에 알려 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건에 참여 하였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단지 지시 받아 행동 하였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커다란 죄업을 지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 죽음에 임박 한 그들의 뇌리에는 그 때 당시의 아비규환이 떠 오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마다 그들은 괴로움과 고통을 느낄 것임에 틀림 없다. 따라서 그들은 ‘신업(身業)’이라는 죄업을 크게 지은 것임에 틀림 없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 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받을 수 밖에 없는 과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시한 사람은 무사 할까. 자신은 지시만 하고 직접 학살에 참여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은 죄가 없다고 당당히 말 할 수 있을 까. 그러나 불교적 업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 또한 똑 같은‘신업’을 지었다고 보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아비담마적 입장에서 풀이 하여 보았다.
의도가 개입되면
아비담마에서는 과보를 생산할 장소에 따라 네가지 업으로 구분 한다.
첫째, 해로운(아꾸살라, akusala) 업이다.
둘째, 욕계유익한(꾸살라, kusala) 업이다.
셋째, 색계유익한 업이다.
넷째, 무색계 유익한 업이다.
이 중 첫번째의 해로운 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서 앞의 이야기를 설명 할 수 있다.
해로운 업은 보통 몸(身)과 말(口)과 마음(意)으로 짖는 업을 말한다. 이렇게 신구의 3업으로 짖는 업은 보통 10가지로 분류 하는데 그 것을 십악(十惡)이라고 한다. 천수경에서 10악 참회 하는 내용이 나오는 데 그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신업과 구업은 의업과 달리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그 의도 자체가 그 행위를 성취하였든 성취하지 않았든 간에 해로운 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도는 아직 ‘확정 되지 않은 업의 길’이다. 아직 실제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도가 행위를 성취 하였다면 ‘확정된 업의 길’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을 죽였다든가, 재물을 훔친 경우라 볼 수 있다. 이를 표로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
표 현 |
의 도 |
행 위 |
신업 |
몸의 의도가 표현 된 것 |
확정 되지 않은 업의 길 |
확정된 업의 길 (살인, 도둑질) |
구업 |
말의 의도가 표현 된 것 | ||
의업 |
오직 마음에서만 발생 |
이렇게 확정된 업의 길은 ‘재생연결’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다음 생에 어떻게 태어 날 것인가를 결정 하는 매우 중대한 업이라는 것이다.
명령을 내린 사람은
앞서 글에서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은 몸으로 지은 업으로 인하여 확정된 업의 길을 가기 때문에 ‘살인’이라는 ‘매우 중대한’ 업을 지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살을 하도록 명령을 내린 지휘관은 무사 할까.
그 지휘관도 결코 무사하지 못하다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학살하는 사람에게 ‘그 마음이 일어 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일어 나게 만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살생과 도둑질이 ‘남에게 시키는 말로써도 일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행위는 ‘구업’이라기 보다 ‘신업’으로 보는 것이다.
명령을 내려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죽일 마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신업(身業)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학살명령을 내린 지휘관도 똑같이 학살을 자행 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적용 한다면 용산참사도 명령을 내린 지휘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또 법과 원칙을 강조한 사람들 역시 마찬 가지일 것이다. 그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희박 할 지 몰라도, 도덕적으로 이미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행위로 나타났을 때
살인(살생)이나 도둑질(투도), 삿된 음행(사음)과 같은 행위는 몸으로 짖는다. 그래서 신업이라고 한다. 즉, 하고자 하는 의도가 몸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행위로써 표출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신업은 매우 커서 다음 생에 어떤 존재로 태어 날 것인가에 대하여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신업 (身業) |
의도 |
행위 |
살인 하려는 |
살생 | |
훔치려는 |
투도 | |
삿된음행을 하려는 |
사음 |
그런 신업 못지 않게 무거운 업이 또한 구업이다.
구업은 보통 말의 문을 통하여 의도 하는 바를 ‘말로써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말의 문을 통하여 나타는 대표적인 구업은 거짓말(망어), 중상모략(양설), 욕설(악구), 잡담(기어)이다. 그런데 글로써 짖는 업은 어디에 속할까.
보통 필업이라고 말하는 글쓰기는 손이라는 몸을 매개로 하여 행해지지기 때문에 신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비담마에서는 입이 짖는 주매개체로 보기 때문에 구업으로 간주 한다.
그런 비슷한 사례는 ‘몸짓’과 같은 경우도 해당 될 것이다.
구업 (口業) |
의도 |
행위 |
거짓말 하려는 |
망어 | |
중상모략하려는 |
양설 | |
욕설하려는 |
악구 | |
잡담하려는 |
기어 |
마음(마노)의 문을 통해서
신업과 구업이 몸과 말의 문을 이용하여 의도를 몸과 말의 매개체로 표현 하는 것과 달리 의업은 오직 마음에서만 발생한다. 비록 마음(마노)에서만 일어 난다고 하더라도 업은 발생한다고 본다. 즉, 마음의 문을 통하여 발생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의 문이란 의도적인 행위에 개입된 ‘매순간 일어나는 알음알이’를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는 집합적인 명칭을 말한다.
마음의 문을 통하여 발생 되는 해로운 마음은 대표적으로 간탐과 악의와 사견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확정된 업은 아니다.
이들 마음이 욕구가 일어 나야 확정된 업으로 되기 때문이다. 이들 마음이 욕가 생겨 확정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표로 나타 낼 수 있을 것이다.
의업 (意業) |
해로운 마음 |
확정된 업 |
간탐 |
탐욕 | |
악의 |
성냄 | |
사견 |
도덕적 허무주의(어리석음) |
사견이라는 불리우는 도덕적 허무주의는 무엇을 말할까. 다음과 같이 정리 할 수 있다.
도덕적 허무주의
|
삿된견해(사견) |
내 용 |
1 |
허무주의의 견해 (natthika-ditthi) |
죽고 나면 아무 것도 없다 (도덕적 중요성을 부정) |
2 |
업의 과보를 부정하는 견해 (akiriya-ditthi) |
행위는 아무런 결과를 낳지 않는다 (선업의 특질을 인정 하지 않음) |
3 |
원인을 부정 하는 견해 (ahetuka-ditthi) |
우연이나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 (운명론) |
‘인식과정’ 자체가
삶의 과정에 있어서 사람들은 수 많은 업을 짖고 산다. 사실 육근과 육경이 마주 칠 때 마다 업을 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대상에 대하여 보고, 받아들이고, 조사하고, 결정하여 ‘자와나(속행)’가 일어 날 때 업을 짖는다고 아비담마에서는 말한다.
자와나가 일어 난다는 사실은 ‘인식과정’ 자체가 업을 짖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업은 ‘선업’일 수 도 있고,‘불선업’일 수도 있다. 또 단순히 작용만 하여 업을 짖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을 다른 말로 부처님이나 아라한의 마음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업들은 삶의 과정에 있어서 과보로 나타 나게 된다. 그러나 그 업이 매우 무거우면 다음 생을 결정 하는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업이 10악으로 표현 되는 신업과 구업과 의업이라는 것이다. 그 중 가장 무거운 악업은 살생일 것이다.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으므로
만일 사람을 살해 하였을 경우 그 과보는 매우 무거울 것이다. 비록 누구의 지시를 받아 살해 하였더라도 그 과보는 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살생을 하려 의도 하였고, 그 결과로 살인 하는 행위를 하였다면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더라도 살생 하였다는 과보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살인을 하도록 지시 하였다면 그가 살인 하지 않았다고 볼 수있을까. 또 그는 자신의 손으로 살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로써 짖는 구업만 지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살인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으므로 구업 보다는 신업을 지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말은 곧 그가 직접 살인에 참여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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