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오계를 현실에 맞게, 생활속의 맞춤식 오계 다섯가지

담마다사 이병욱 2010. 1. 16. 12:06

 

오계를 현실에 맞게, 생활속의 맞춤식 오계 다섯가지

 

  

 

 

 

 

 

차카게 살자”.  발음 나는 대로 쓴 글씨이다. 한글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가 썻거나 무식한 조폭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종이에 글을 쓴 글씨로 잘 알려져 있다.

 

분별을 하지 말자는데

 

착하게 살자는 것은 악하게 살지 말자는 말과도 같다. 선과 악,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선가에서는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자고 말한다. 육조 혜능선서의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을 말한다.

 

이 말 뜻은 분별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본마음은 하나인데 선과 악을 대립적으로 파악하여 너와 남을 구분하고 그 대상에 집착하여 분별하고 집착 하는 것을 경계 하는 말이다.

 

그래서 분별을 쉬는 쪽으로 공부 하다 보면 그대와 내가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고,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 본래면목 즉, 본마음, 참나,주인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분별을 쉬는 공부를 하기란 쉽지 않다. 6근과 6경이 부딪치는 곳에서 마음이 일어 나기 마련인데,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 하지 말고 더구나 분별을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마음공부라는 것이다.

 

깊은 산속이나 또는 하루 종일 삼매에 들어가 있다면 모를까 세간에서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범부들에게 있어서 불이(不二)법문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일까 범부중생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하는 말이 착하게 살라라는 말일 것이다.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 신도오계이고 여기에 더 추가 한다면 십선행일 것이다.

 

왜 비구를 존중해야 하는가

 

불자들은 수계식을 할 때 연비 하면서 법명과 함께 신도오계를 받는다. 신도오계는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를 말한다.

 

이들 계는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로 본다. 그런데 이런 법일수록 더 지키지 어렵다는 것이다. 또 너무 광의적으로 해석 하면 막연해 진다. 그래서 수계는 받았지만 제대로 지키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다.

 

계를 범할 때 마다 마음이 찔리는 데, 그렇다고 해서 계를 받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한다. 그럴 때는 일단 계를 받고, 계를 어겼을 때 참회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중요한 것은 계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그것은 출가한 스님들도 마찬 가지 일 것이다. 불자들이 비구를 존중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비구계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출가자에게 실망스런 모습을 보았다고 할지라도 비구계를 받았다는 그 사실 자체는 전생에 쌓은 선근공덕이 지대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나 비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출가 수행자가 일부 계행에 어긋난 행위를 하여 물의를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비구계를 받은 그 자체만은 존중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자식이 부모의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부모임을 부정 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예의 없는 불자들은

 

그런 비구계의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비구계가 250계이고, 비구니계가 348계인데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몸과 마음을 단속 하는 계목인 것 만은 분명하다.

 

그에 비하여 신도오계는 불과 다섯가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켜야 될 내용은 무척 지키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 신도오계를 받은 사람도 있고 받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자신이 불자라고 한다면 당연히 신도오계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정서적인 불자들도 무척 많다는 사실이다. 흔히 불자수를 2,000만명이라 하는 데, 반은 정서적인 불자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반인 1,000만명은 신도오계를 받은 불자로 볼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중에 계를 받은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불자들이 출가수행자를 존중해 주는 이유중의 하나는 비구계를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말 하였다. 마찬가지로 불자라고 해도 같은 불자는 아닐 것이다. 신도오계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의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자가 신도오계를 받았다는 그 사실 자체는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다. 설령 그가 오계를 범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곧바로 참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계를 받지 않은 자칭 무늬만 불자들은 계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계를 어겨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런 예의 없는 불자들을 인터넷 상에서도 볼 수 있다. 말만 앞서고 실천은 없는 사람들이다. 또 부처니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정법을 훼손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윤회없음을 주장하는 단멸론자들일 것이다.

 

맞춤식 오계를 보면

 

신도오계를 받은 재가 불자들이 생활 속에서 오계를 실천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 하여 보았다. 마치 하루 하루가 전쟁과도 같은 상황에서 신도오계를 현실에 맞게 해석하여 보았다. 일종의 맞춤식 오계라 볼 수 있다.

 

 

맞춤식 오계

 

오계

   

  천 사 항

1

불상생(不殺生)

살생하지 말라

고기를 먹지 않는다

2

불투도(不偸盜)

도둑질하지 말라

불로소득을 바라지 않는다.

3

불사음(不邪淫)

사음하지 말라

유흥업소에 가지 않는다

4

불망어(不妄語)

거짓말하지 말라

결재날자를 어기지 않는다

5

불음주(不飮酒)

술 마시지 말라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다

 

 

실수할까봐

 

첫째, 불상생에 대한 실천사항으로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

 

낚시와 같은 취미생활 이외에 불자들이 직접적으로 살생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고기를 먹게 되면 간접적으로 살생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또 고기를 먹으면 느끼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되고, 술을 마심으로서 실수를 하게 된다. 만일 채식을 한다면 술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고 그에 따라 실수 할 일도 없을 것이다.

 

과도한 이익을 본다면

 

둘째, 불투도에 대한 실천사항으로 불로소득을 바라지 않는다.

 

남의 물건을 훔쳐야만 도둑질일까. 불교적 윤리관으로 본다면 과도한 이익을 남기는 것, 그리고 힘 들이지 않고 돈을 버는 것도 일종의 도둑질로 본다.

 

따라서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부동산거래나 주식을 사고 팔아서 불로소득을 챙겼다면 도둑질과 같다는 것이다.

 

밤의 문화를 즐기는

 

셋째, 불사음에 대한 실천사항으로 유흥업소에 가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곳 치고 유흥업소가 없지 않은 곳이 단 한군데도 없을 정도로 이미 일반화 되어 있다. 도시와 농촌을 막론 하고 전국적으로 룸싸롱, 술 파는 노래방, 안마시술소, 모텔등 밤마다 네온싸인을 환하게 밝히면서 유혹한다.

 

그런 업소가 존재 하는 이유는 밤의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방송이나 인터넷등에서 보는 각종 선정적이고 감각적 욕망을 자극 하는 콘텐츠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사기치는

 

넷째, 불망어에 대한 실천사항으로 결재날자를 어기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면 신용을 잃게 된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에서 약속은 생명과 같다. 따라서 모든 비즈니스의 출발점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 된다.

 

그러나 가장 큰 약속은 결재일 것이다. 거래가 이루어 지고 난 후에 곧바로 결재가 이루어 지면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의 상거래는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고 난 후에 결재가 이루어 진다. 보통 익월 결재 즉, 다음달 결재가 일반화 되어 있다.

 

그런데 제 때에 결재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자꾸 미루어 지다 보면 의심하게 된다. 대게 돈이 없어서 결재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사기친 것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제 때에 결재가 이루어지 지지 않으면 사기와 같고, 결국 거짓말을 하는 것과 똑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제 때에 결재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드 결재도 마찬가지이고, 각종 공과금, 세금등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해로운 줄 알면서도

 

다섯째, 불음주에 대한 실천사항으로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는 행위는 좋아서도 마시지만 슬퍼서도 마신다. 또 여러 이유로 술을 마시다 보면 과음을 하게 되고 그 다음날이 무척 힘들다.

 

술을 마실 때는 좋았으나 술을 깨고 나면 몸과 마음의 상태는 엉망이다. 또 다음날의 생산성은 뚝 떨어진다. 차라리 마시지 않은 것이 나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알면서도 마신다. 바로 그것이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학대 하는 수단이 술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담배도 있다. 담배 역시 자신을 태워 가면서 순간을 모면 하려 한다. 술과 담배가 해로운 줄 알면서도 못 끊는 것은 습관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중독이라 볼 수 있다.

 

중독이 술과 담배만 있을까. 온라인 게임에 너무 열중 하는 것도 중독이고 자신을 학대 하는 행위이다. 그렇게 본다면 무엇이든지 과도하게 집착하는 행위는 자신을 학대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201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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