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아이티 지진과 쓰나미 자연재해, 악마의 저주인가 자연현상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0. 1. 19. 10:16

 

아이티 지진과 쓰나미 자연재해, 악마의 저주인가 자연현상인가

 

 

 

 

 

 

아이티 지진 참사와 관련하여 뉴스에 따르면 20만명이 희생 되었을 것으로 예측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연 재해와 관련 하여 세계적으로 종교와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여 지원이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우리나라도 아이티 지진 피해 돕기가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월드비젼은

 

아침 KBS라디오방송에서 국제 NGO기구 중의 하나인 월드비전이 소개 되었다. 월드비전의 실무자가 나와서 발언한 내용을 보니 월드비전은 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직접적인 구호 활동 보다 국민들의 모금을 통하여 피해 지역을 돕겠다는 것이다. 그런 월드비전의 실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방송에서는 월드비젼이 세계적인 NGO로만 소개 되어 있지만 사실상 기독교선교단체라는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데 있어서 종교를 구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에서는 선교단체라는 것을 밝히고 방송해야 하지 않았을까.

 

만일 선교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모금을 유도 하였다면 불교의 지구촌공생회와 같은 NGO에게도 똑 같은 기회를 주었어야 되는 것은 아닐까.

 

악마의 저주를 받아서

 

한 번씩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 될 때 마다 종교인들은 한 마디씩 한다. 특히 지진과 같이 수만에서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가는, 피 할 수 없는 재앙이 닥쳤을 때 한 마디씩 하는 종교인들을 볼 수 있는데 이번 아이티 참사에서도 예외가 아닌 듯 싶다.

 

최근 진보적 기독교 인터넷신문(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440)을 보면 미국의 개신교 목사가 화재가 되고 있다.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팻 로버트슨이라는 목사가 자신이 운영하는 Christian Broadcasting Network(CBN) 13일 출연해, 아이티가 지진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악마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믿고, 그래서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진노케 한 것은 다름 아닌 부두교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두교는 마치 우리나라의 무속신앙과 같이 아이티 사람들의 밑바탕에 뿌리 박혀 있는 아프리카 기원의 토속신앙을 말한다.

 

비록 아이티 국민들의 80%가 가톨릭이고, 16%가 개신교라고 해도 그 밑바탕에는 부두교가 뿌리 내려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종교들이 샤머니즘을 토대로 하여 기독교, 불교등이 성립된 것과 마찬가지로 보면 된다.

 

샤론 스톤이 한말

 

이 번 아이티 지진 이전에 2006년 인도네시아, 태국, 스리랑카등 서남시아에서 쓰나미가 발생하여 수만명이 사망하였을 때 우리나라 개신교의 한 목사가 말하기를 쓰나미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해서 빈축을 산바 있다.

 

중국쓰촨성에서 지진이 났었을 때는 또 어땟을까. 마성스님의 불광법회 법문(업과 윤회, http://www.bulkwangsa.org/movie/?sdir=recom_movie&tfile=view&SID=20)을 들어 보면, 그 때 당시 미국의 여배우인 샤론 스톤이 한말을 소개 하고 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 했다고 한다.

 

 

쓰촨 대지진 참사는 중국인들이 티벳과 티벳불교를 탄압한 인과응보이다.”

 

 

샤론 스톤은 리차드 기어와 함께 티벳불교 신봉자이다. 그런 그녀가 쓰촨 대지진의 원인을 중국의 업보때문에 일어 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때 당시 이 발언으로 인하여 전 중국인들이 들고 일어나 샤론 스톤이 광고로 나온 화장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비난이 거세지자 샤론 스톤은 자신의 발언이 잘 못 되었음을 사과 했다고 하고 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불만이 잠잠 해지자 자신은 사과한 일이 없다고 번복했다고 전한다.

 

동타지옥에 빠진

 

샤론 스톤과 같이 인과응보로 보는 시각은 우리나라의 고승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마성스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국불교의 최고의 고승이고, 한국을 대표 하는 선사에게 교계신문의 기자가 이번 쓰촨성 지진을 어떻게 생각 합니까라고 물어 보자 다음과 같이 대답 하였다고 한다.

 

 

인과응보이다. 모두다 동타지옥에 빠진 것이다” 

 

 

동타지옥은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인터넷에서 검색 하여 보니 죄가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어 놓으면 같이 지옥에 떨어진다라는 말이다. 문제는 한국의 최고선승 조차도 불교의 업설을 잘 못 이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샤론 스톤이야 선한 영화배우로서 불교를 체계적으로 공부 하지 않아 티벳불교를 포교 하는 측면에서 망발을 하였지만, 한국불교를 대표 하는 최고선승의 입에서 자연재해와 관련하여 인과응보를 주장 한다는 것은 불교교리에 대한 배신이고, 한국불교가 처한 암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현실에 대하여 마성스님은 불교 교리에 대하여 공부도 안하고, 참선한다고 폼만 잡고 앉아서 큰스님이라고 말하고 있다라고 노골적으로 비판 하고 있다.

 

자연재해를 인과응보로 본다면 불교가 그 정도 수준 밖에 안 되는 종교로 간주 될 것이다. 또한 그런 발언은 불교발전을 저해 하는 매우 심각한 요인이 될 것이다.

 

담미까 스님은

 

그렇다면 지진과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마성스님은 법문에서 호주의 담미까 스님이 쓴 글을 예로 들고 있다. 지난 2008년 7월 1 부디스트채널 (http://www.buddhistchannel.tv/index.php?id=8,6572,0,0,1,0)에 발표된 글이다. 이 글은 교계신문에 업과 자연재해/담미카, 향산역이라는 제목으로 교계신문(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52355) 에 실렸다.

 

마성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담미까스님은 1956년생으로서 호주출신이고 스리랑카에서 출가 하였다고 한다. 마성스님과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는 담미까 스님은 마성스님이 다녔던 대학과 대학원을 나오고 지금은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는데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담미까스님이 기고한 글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다.

 

두가지 반응을 보면

 

아시아에서 쓰나미가 일어 났을 때 세계가 보인 반응은 두 가지 이었다고 한다.

 

첫째, 쓰나미와 같은 재앙을 당했을 때 종교가 어떻게 대응했을까이다.

 

결과는 모두 나서서 도와 주었다는 것이다. 내종교 네종교를 가리지 않고 이해 관계를 떠나 도움을 준 것이다. 불교도는 무슬림을 도왔고, 무슬림은 기독교인들을, 기독교인들은 힌두교인들을 도왔다는 것이다. 요즘의 아이티지진 참사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보면 같은 맥락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각종교가 쓰나미를 어떻게 설명하는 가 하는 점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우리나라 개신교 목사가 쓰나미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한 바 있기도 하다. 반면에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자연재해를 놓고 각 종교가 하는 말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그들의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왜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선을 위해서 악을 허용 했다고?

 

이에 대하여 에드먼드 츄라는 사람이 영자지인 싱가포르 타임즈 기고한 글을 보면 하나님이 악을 허용 하는 이유는 선을 위해서라는 말하고 다음과 같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글을 인용 했다는 것이다.

 

 

만약 악()이 하나도 없다면, 하느님[]도 없다. 왜냐하면 선()[美德]의 질서가 사라진다면 악도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만약 하느님[]이 세상에 악()을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하셨다면, 수많은 선한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공기가 더럽혀지지 않았다면 불이 나지 않을 것이고, 당나귀가 죽임을 당하지 않는 한 사자의 생명을 보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악을 방조 한 것은 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이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불교도로서는 도저히 받아 들이기 어려운 말이다. 물론 죽음이나 고통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고 타인을 배려 하는 관용의 마음이 생기는데 도움을 줄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이 착한 일을 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또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냐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다음과 같은 논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의사에게 치료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암()이 있어도 좋다.

-준법 시민이 되기 위해서 죄를 저지르는 범법자들도 있어야 한다.

-평화와 휴전협상을 펼칠 수 있도록 때때로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

 

 

이를 두고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병주고 약주고가 될 것이다. 단지 선행을 하기 위하여 때로 악도 필요 하다는 논리라면 불교인이라면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논리 인 것이다.

 

마음이 만들어 낸

 

더구나 쓰나미나 지진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로 인하여 수십만이 사망 하였음에도 불구 하고 이를 하나님의 악에 대한 응징으로 표현 한다면,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XX’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설령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면 전지전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무능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따라서 불교인이 생각 하는 하나님은 마음이 만들어 낸 개념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선을 위해서 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끔 악이 나를 자극해서 선을 행하게 하기도 하지만 나로 하여금 더 큰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은 선함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기쁨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은 내가 선하게 되는 것이 히틀러나 폴포트와 같은 악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처님이나 간디와 같은 성자들이 있어서 더욱 더 선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해지기 위해서 악이 필요 하다는 기독교적인 사고 방식은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하고

 

쓰나미와 지진과 같은 인간으로서 어찌 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대하여 불교에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샤론 스톤이나 한국의 큰스님이 말한 바와 같이 인과응보로 보는 것일까. 만일 그렇게 본다면 기독교의 병주고 약주고의 못지 않은 수준이하의 사고 방식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자연재해는 누구의 의지에 의하여 일어 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과응보의 결과도 아니다. 물론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기후 변화가 발생 한 것에 대하여 인과응보로 볼 수 있으나, 쓰나미나 지진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앙은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것을 불교식으로 표현 하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우리가 사는 현상계는 모두 제행무상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 우주가 만들어 졌고 언제 사라질지 또 누가 만들었는지 만들지 않았는지 알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의문은 우리의 존재를 설명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형성된 현상계(유위법)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어느 것 하나도 고정불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천지불인(天地不仁)

 

그와 같은 논리라면 지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지구도 끊임 없이 변하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지각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지각판이 이동 함에 따라 서로 충돌을 일으켜 지진이 발생하고 쓰나미 일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 주기를 바란다. 비도 적당히 오기를 바라고 바람도 적당히 불기를 바란다. 마치 부처님이나 신 앞에 축원을 올리고 기도 하듯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런 사정을 들어 주지 않는다. 때로는 강풍이 불어 모든 것을 날려 버리고, 때로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다. 서울에 내린 눈도 적당히 내려서 겨울의 정서를 맛 보게 하면 좋으련만 수십센티가 내려 교통을 마비 시켜 큰 불편을 주기도 한다. 전세계적으로 지진이나 해일로 수십만명이 죽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자연은 인정사정을 봐 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의 도덕경에도 자연은 인자 하지 않다고 하여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을 사용 하였다. 한 마디로 자연은 인자 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자연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연의 이법이다.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

 

아이티 지진참사로 20만명이 죽었다고 하고, 그 이전에 쓰나미나 쓰촨성지신 역시 수십만명이 죽어 나갔다. 이런 현상이 결코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발생된 현상도 아니고, 또 선을 증명하기 위하여 악을 보여 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업보도 아니고 인과응보도 아니다.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이다.

 

존재 하는 모든 것은 변할 수 밖에 없고 그 중에 지구도 들어가 있어서 지각판의 변동으로 발생된 사건일 뿐이다. 어느 것 하나 제행무상의 법칙에 어긋 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지각판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어 주어서 지진이 일어 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들의 바램이다. 그러나 그런 바램은 고정되고 불변을 바라는 것이다. 그런 인간의 바램을 자연은 결코 들어 주지 않는다. 지각판이 움직이는 것은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이고, 바로 그것이 자연의 이법이다. 그런 자연현상에 분노 하면 나만 손해이다.

 

그래서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감수 해 가면서 거기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 고를 낙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수행 일 것이다. 바로 그것이 불교적 가르침이 아닐까.

 

 

 

201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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