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가톨릭에 불교의 흔적이, 마리안축제와 필리핀불교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

담마다사 이병욱 2010. 3. 14. 08:35

 

가톨릭에 불교의 흔적이, 마리안축제와 필리핀불교에서 발견한 놀라운 역사적 사실들

 

 

 

아시아 국가에서 기독교가 다수를 점하는 나라가 딱 세 나라가 있다고 한다. ‘한국필리핀동티모르이다.

 

기독교를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나눈다면, 개신교가 다수인 국가는 아시아에서 단 하나의 국가도 없다.

 

반면 천주교가 다수인 국가가 필리핀과 동티모르인데, 동티모르의 경우 땅덩어리도 작고 인구도 104만명 밖에 되지 않아 논외로 친다면, 실질적으로 아시아에 있어서 최대의 기독교국가는 로마 가톨릭이 83%를 차지하는 필리핀이 유일하다.

 

필리핀에서 불교유적이

 

필리핀의 경우 인구가 9천만명으로 로마 가톨릭이 83%, 개신교가 9%를 차지 하는 기독교 국가이다. 그런데 필리핀에도 불교가 있다는 사실이다. 위키피디아의 자료에 따르면 필리핀의 불교도는 227만명이다.

 

필리핀에 있어서 종교구성비율을 표로 만들어 보았다.

 

 

필리핀의 종교구성 비율

인구

가톨릭

개신교

불교

 

9,000

83%

9%

2.5%

불교도 227만명

 

 

필리핀은 1521년 포르투갈의 마젤란이 발견하기 전까지 부족국가들로 나뉘어 있어서 통일국가는 형성되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필리핀에서 불교유적이 발견 되었다고 한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기독교도가 다수를 차지 하는 필리핀에서 과거에 불교는 어떻게 전래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아시아 유일의 기독교국가가 되었을까. 영문판 위키피디아(Buddhism in the Philippines,http://en.wikipedia.org/wiki/Buddhism_in_the_Philippines)를 참고 하였다.

 

7세기에 금강승불교가

 

필리핀의 불교는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마트라 중부에 인도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불교도 국가 스리비자라(Srivijara)왕국의 일어남과 함께 발판이 마련되었는데, 특이하게도 그것은 금강승불교(Vajrayana)불교 이었다.

 

필리핀내에서 발견된 수많은 불교 유물은 이 시대의 것임을 증명하는 금강승불교의 조형물과 일치 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서 붓다의 전생이던 마하자나카 왕자의 삶이 묘사된 파드마파니(Padmapani, 지연화보살)라든가 골든타라(Golden Tara) 1917년 아구산(Agusan)에 있는 에스페란자(Esperanza)에서 발견 되었다고 한다.

 

식민지 이전의 불교는

 

9세기에 지금의 민다나오에 위치 하고 있었던 부탄(Butan)과 중부 필리핀에 위치 하고 있었던 마이(Mai)는 참파(Champa)왕국과 무역을 강화 하였는데, 참파는 지금의 남부월남에 위치 하고 있었던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불교도 국가이었다.

 

중국 송나라의 기록에 따르면, 1001년에 사리 바타 샤자(Sari Bata Shaja)’라는 부탄의 불교도 통치자가 처음으로 중국에 공물을 바쳤다.

 

이어서 중부 필리핀에 있었던 바실란(Basilan)의 통치자가 뒤를 이었고, 2백년 후에는 루존(Luzon) 왕국이, 4백년 후에 남부 필리핀의 민도로, 술루, 판가시난등이 뒤를 이었다.

 

송나라의 역사서에 따르면, 부탄은 1001년부터 정기적으로 공물을 송나라에 보냈는데, 그 의미는 부탄의 통치자가 티벳, 참파(남부 월남), 몽골의 통치자 같이 동등하게 인정이 되어서 마치 벼락출세된 것과 같은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가혹한 종교탄압

 

16세기에 멕시코를 거쳐 스페인의 식민지시대가 도래 하자 필리핀은 폐쇄된 식민지가 되었고, 다른 동남아시아와의 문화적 접촉도 사라졌다.

 

1581년 스페인식 종교재판(Inquisition)’이 교황 식스투스4(Sixtus IV)의 명령으로 시작 되어서, 스페인제국내의 가톨릭을 믿지 않는 비가톨릭교도를 추방하였고 심지어 이전의 신앙을 포기 하도록 쥐어 짜기도 하였다.

 

1571년 마닐라의 건설과 함께 필리핀사람들은 스페인법에 지배를 받아야 했고, 뉴 갈리시아(멕시코)의 대주교가 멕시코와 필리핀에서 신념에 충실한 대 종교재판관이 되었다.

 

1595년 새로 임명된 마닐라의 대주교는 스페인의 동쪽 영토인 필리핀, 구암, 마이크로네시아의 총재판관이 되었고, 1898년까지 스페인의 종교재판은 프로테스탄트, 불교도, 힌도교도 및 무슬림에대해서 매우 적극적으로 탄압하였다.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서 했던 것과 같이 강제개종은 비일비재 하였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도전 하는 그 어떤 시도도 일어 나지 않았다.

 

만일 그런 도전을 한다면 교황과 스페인국왕의 학정에 대한 반발일 수 도 있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동정녀마리아(Virgin Mary)상과 타라보살의 관계는

 

스페인의 가혹한 종교탄압에 불교도들은 수행이나 축제 또는 조형물등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페인의 박해에서 살아 남으려면 가톨릭을 채택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하나의 좋은 예가 불교에 뿌리를 둔 팜판가(Pampanga)지방의 사니쿠라스(saniculas, Saint Nicholas)비스킷이었다.

 

힌두교, 불교, 가톨릭과 토착의 민속종교가 혼합된 혼합주의 종교가 필요 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혼합주의 종교는 후광, 손모양, 무지개빛 아치등을 포함하여 곧바로 동정녀마리아(Virgin Mary)의 조상(彫像)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동정녀마리아상은 특히 비논도와 그 외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데 거의 이상적인 타라(Tara, 네팔·티베트·몽골에서 널리 숭배하는 여성 보살)의 조형물처럼 보여진다는 것이다.

 

 

 

 

 

필리피의 동정녀 마리아 조형상(Virgin Mary)

사진 http://www.articleslash.net/t-virgin-mary-wallpaper.1.html

 

 

 

 

 

 

필리핀의 마리안 페스티벌(Marian-Festivals)

사진 www.etravelpilipinas.com/tourism...vals.jpg

 

 

 

 

 

 

티벳의 타라보살 조형상

사진 www.taramandala.org/Images/IMG_0...all).JPG

 

 

 

 

 

티벳의 그린타라

사진 www.thubtenchodron.org/Retreat/i...Tara.jpg

 

 

 

스페인 통치 400년 동안에 불교는 실질적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미국식민지 시절에

 

1896년 스페인에 반대하는 혁명이 일어 났고, 1898년에 미국식민지가 되면서 종교의 자유는 보장 되었다. 이 때 대승불교와 선불교도들의 사원이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건립되었다.

 

다바오(Davao)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 하였고, 세부(Cebu)에서는 수 많은 중국인 정착민들이 살아서 이들 지역이 필리핀 내에서 가장 불교도가 많은 지역이 되었다.

 

2차대전후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되돌아 갔지만, 중국인과 차이니즈-필리피노들은 그들 민족특유의 불교도 그룹을 만들었다.

 

1960년대에 베트남 난민들이 도착하여 팔라완에 사원을 건립하였다. 동시에 일본의 불교도 사원과 조직이 국제창가학회(Sokka Gakkai International)라는 이름으로 재 통합 되었다.

 

오늘날의 필리핀 불교

 

오늘날 불교도의 수는 필리핀 전체인구의 1~3%를 차지 한다. 현재 오직 대승불교와 일본선불교가 필리핀 불교를 대표한다.

 

 

 

 

2007년 필리핀의 웨삭데이(Vesak Day, 부처님오신날)

 

 

 

상좌불교는 지금 오직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등에 한정 되어 있다.

 

필리핀 말중에 약 25%가 산스크리트어

 

놀라웁게도 필리핀어에는 오리지날 산스크리트로부터 유래한 다음과 같은 불교도와 힌두개념의 언어학적 영향이 전 군도에 걸쳐서 필리핀어에 깊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많은 필리핀 말중에 약 25%가 산스크리트어 용어라는 것이다. 그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타갈로그(Tagalog)어에 영향을 준 산스크리트어

타갈로그어

의미

산스크리트어

영어 의미

한국어 의미

budhi

conscience

의식, 자각

Bodhi(보디)

dukha

one who suffers

고통

dukkha(둑카)

guro

teacher

스승

Guru(그루)

sampalataya

faith

신앙

Sampratyaya(삼파라트야야)

mukha

face

얼굴

Mukha(무카)

laho

eclipse

소멸

Rahu(라후)

maharlika

noble

숭고한

Mahardikka(마하르딕카)

 

 

 

카팜판간(Kapampangan)어에 영향을 준 산스크리트어

카팜판건 어

의미

산스크리트어

영어 의미

한국어 의미

kalma

fate

운명,

Karma(카르마)

damla

divine law

성스런 법

Dharma(다르마)

mantala

magic formulas

진언

Mantra(만트라)

upaya

power

Upaya(우파야)

lupa

face

물질

Rupa(루파)

sabla

every

전체

Sarva(사르바)

lawu

eclipse

소멸

Rahu(라후)

galura

giant eagle(별명)

가루라

Garuda(가루다)

laksina

south(별명)

남쪽

Dakshin(닥신)

laksamana

admiral(별명)

바다의 지배자

Lakshmana(락시마나)

 

 

 

여기서 타갈로그(Tagalog)어는 필리핀에서 2200만명이 사용 하는 오스트로네시안 계통의 언어이다. 이 계통의 언어로서 인도네시아어, 말레이어, 자바니즈 및 파이완(타이완의), (Cham, 베트남 및 캄보디아의) 그리고 테툼(Tetum, 동티모르의)어가 있다.

 

이 타갈로그어는 필리핀 내에서 제1의 언어이고, 필리핀의 국가언어인 필피노(Filpino)’의 공식적인 언어이다.

 

카팜판간(Kapampangan)어는 필리핀의 메이저 언어 중의 하나이다. 이 언어는 타르락(Tarlac)의 남쪽지방인 팜판가(Pampanga)와 바탄(Bataan)의 북부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필리핀 불교에서 발견한 놀라운 역사적인 사실들

 

영문판 위키피디아로 본 자료에 따르면 필리핀에도 불교가 있었다. 그 것도 역사가 매우 오래 된 불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필리핀은 1521년 마젤란이 필리핀을 발견하기 전까지 여러 부족국가로 이루여 져 있어서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미개국가로 인식하고 있었으나, 이미 7세기에 고등종교인 불교를 받아 들였다는 것 것이다. 그런 유적과 유물이 발견 되었는데 놀라웁게도 금강승불교(Vajrayana, 밀교)이었다.

 

불교의 전래와 함께 시작된 식민지 이전의 역사적 사건을 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식민지 이전의 교역관계

 

시기

교역상대   

필리핀 부족국가

1

7세기

스리비자라(Srivijara)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소재, 인도영향의 불교왕국, 금강승불교 전래)

붓다의 전생이던 마하자나카 왕자의 삶이 묘사된 파드마파니(Padmapani, 지연화보살)라든가 골든타라(Golden Tara) 1917년 아구산(Agusan)에 있는 에스페란자(Esperanza)에서 발견

2

9세기

참파(Champa)

(남부월남 소재, 인도불교 영향의 불교왕국)

필리핀의 부탄(Butan, 민다나오)과 마이(Mai, 필리핀 중부)

3

11세기

중국 송나라

(조공무역)

1001년에 사리 바타 샤자(Sari Bata Shaja)’라는 부탄의 불교도 통치자가 처음으로 중국에 공물을 바침. 이어서 바실란(Basilan)도 교역함

4

13세기

중국

(조공무역)

부탄(Butan), 바실란(Basilan), 루존(Luzon)

5

15세기

중국

(조공무역)

부탄(Butan), 바실란(Basilan), 루존(Luzon), 민도로, 술루, 판가시난등 부족국가

 

 

 

표를 보면 필리핀의 유력 부족국가들은 7세기 부터 해외의 문명국가와 교역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교역을 하면서 우수한 문화와 함께 불교문화도 들어 왔던 것이다.

 

불교문화의 흔적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언어라고 한다. 필리핀의 토착언어의 약 25%가 산스크리트어인 것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불자라면 잘 알고 있는 둑카(괴로움), 보디(깨달음). 카르마()와 같은 용어가 그대로 사용 되고 있다니 매우 놀라운 일이다.

 

가톨릭에 불교의 흔적이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것은 필리핀인들이 믿는 가톨릭에 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에서만 볼 수 있는 동정녀마리아(Virgin Mary)상이 바로 그것이다.

 

필리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의 마리아상은 7세기에 전승된 금강승불교의 영향으로 추정된 타라보살과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표현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까지 필피핀에서 가혹한 종교탄압이 있었다. 스페인통치자들이 무력으로 부족국가를 정복함과 동시에 영혼마저 빼앗기 위하여 인퀴지션(Inquisition)’이라는 종교재판을 만들어 개종을 추방하거나 개종을 강요 하였다.

 

그 결과 살아 남기 위하여 불교도들은 어쩔 수 없이 가톨릭을 믿지 않을 수 없었고, 필리핀에서만 볼 수 있는 힌두교, 불교, 가톨릭과 토착의 민속종교가 혼합된 혼합주의 종교를 만들어 냈는데 그것이 사니쿠라스(saniculas, Saint Nicholas)비스킷’이다.

 

사니쿠라스 비스킷’은 불교에 뿌리를 둔 가톨릭으로서 그 대표적인 조형상이 동정녀마리아상인 것이다. 

 

 

 

 

2010년 마닐라의 마리안 축제(MARIAN FESTIVAL)

 

 

 

 

 

필리핀의 마리안 축제(2009년 12월 10)

가톨릭사제들과 시민들이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그런동정녀마리아상이 티벳불교의 타라보살과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티벳에서 타라보살은 고통의 강을 건네 주는 어머니로서의 설명된다. 

 

필리핀은 7세기 부터 동남아 불교국가 및 중국과 교류가 있었고, 더구나 그들의 언어에서 사용 되는 단어의의 25%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인가 하면, 놀라웁게도 불교를 뿌리로 하는 가톨릭이 성립된 것을 보면, 식민지시대 이전의 필리핀은 불교국가이었음에 틀림 없다.

 

 

 

2010-03-1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