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스님은 대통령으로부터 사과를, 94년과 98년 조계종 사태의 교훈을 보면
한국불교가 처한 현주소
이상한 일이다. 불교가 정권에 휘둘리어 불교의 자주성이 크게 훼손 되었음에도 불구 하고 한국불교를 대표 하는 장자종단인 조계종 총무원에서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정부 성명서 하나 나오지 않고 있다.
한편에서는 외압이 있었다고 발표 하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외압이 없었다고 한다. 국기를 흔드는 명백한 종교탄압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못하는 조계종의 총무원이 오늘날 한국불교가 처한 현주소를 말해 주는 듯 하다.
문제는 불교의 자주화이다. 종단이 정치권력에 예속화 되어 이익단체로 전락 하였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 되었는가는 지난 94년에 일어 났었던 불교개혁운동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그 때 당시 어떤 일이 났었을까.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사부대중과 국민적인 지지의 94년 종단개혁
조계종 종단개혁운동이 일어 난 때가 1994년이다. 지금으로부터 16년전이다. 그 때 당시 전 사회적으로 민주화 열풍이 일어 최초로 민주정권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함께 한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민주화가 진척 되었지만 유독 불교만큼은 정치권력에 예속되어 종단이 이익단체로 전락 되어 있었다. 정치권력과 유착되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한 종단에 대하여 불자들은 불교의 자주성이 크게 훼손 되어 있음을 느꼈고, 결정적으로 돌아 서게 된 요인이 그 때 당시
94년 불교개혁운동은 3월 29일 법난에서 4월 10일 승려대회까지가 하이라이트이다. 이 과정에서 있어서 주요한 사건을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94년 조계종 종단 개혁
시 기 |
사 건 |
비 고 |
1990년 |
선우도량 |
‘승풍진작’과 ‘수행 풍토 수립’을 목표로하는 온건개혁파 |
1992년 |
실천승가회 출범 |
80년대 불교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그대로 이어받은 조직으로서 종단개혁을 직접적으로 거론 |
1994 1월 4일 |
한국불교의 미래를 밝히기 위한 승가 제단체 신년 인사회 |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이하 범종추)의 모태가 됨 |
1월 27일 |
상무대비리사건 발생 |
상무대 이전 사업 223억원 유용의혹과 동화사 80억 시주금의 문제 |
2월 5일 |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이하 범종추)설립 |
종단개혁과 |
3월 17일 |
3선 조기강행 추진 |
대중들의 공분을 유발 |
3월 26일 |
범종추를 출범 |
중앙승가대 대강당에 500여 명의 청년승가가 모여결성. 청화, 시현, 도법스님 등 각 단체 대표자들이 서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단식투쟁에 돌입 |
3월 28일 |
단식투쟁 확산과 총무원 청사 농성 |
남지심씨 등 재가불자들도 단식투쟁 대열에 합류 |
3월 29일 |
‘3·29 법난’ 발생 |
서원장측에서 동원한 조직폭력배들이 총무원 청사에 난입하여 농성을 하고 있던 대중들을 무차별 습격 |
3월 30일 |
서원장 3선 강행 |
대중들을 모두 연행하고 조계사를 원천봉쇄. 서원장은 재적의원 73명 중 57명의 참석과 56명의 찬성(1명 기권)으로 총무원장에 당선 |
3월 31일 |
반 서원장 대열에 언론의 가세 |
일반언론들이 반 서원장 대열에 대거 가세 |
4월 2일 ∼ 6일 |
정권의 태도변화, |
월하, 관응, 혜암, 화산 스님 등은 ‘원장 3선 거부’와 ‘범종추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 서옹 스님은 “서원장을 즉각 퇴진시키고 승려대회를 개최하라”는 말씀을 내림 |
4월 10일 |
승려대회 성공 |
수천 명의 납자들이 조계사에 모여 전국승려대회를 개최 |
4월 13일 |
개혁회의가 총무원 청사를 접수 |
원로회의는 승려대회 결의사항을 추인 |
4월 15일 |
종단개혁의 성공 |
중앙종회가 임시회의를 개최 모든 권한을 개혁회의에 이양 |
불교가 정치에 예속되어 불교의 자주성이 크게 훼손 된 상태에서
개혁운동의 결과
94년의 개혁운동이 결과적으로 구체제를 붕괴 시키고 개혁종단을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 하였으나 불교의 자주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 되었고, 인적청산 또한 구시대의 인물을 등용함으로써 제도개혁과 불교의 자주화에 걸림돌이 되었다. 이 때 만들어진 주요 제도개혁의 요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종도들의 참종권을 확대
중앙종회의를 독립적인 의결기관으로
교육원과 포교원을 신설
직영사찰과 특별분담금 사찰을 지정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직영사찰제도가 94년 종단개혁운동의 산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94년 조계종의 종단개혁운동은 사부대중은 물론 전국민적인 지지와 성원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94년의 종단개혁운동은 ‘젊은 승가에 의한 내부 질서의 개혁’이라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재가불자들의 역할이 결코 작은 것은 아니었으나 새로운 종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 되었다는 사실이다. 승단은 개혁회의 구성 과정에서 재가불자의 참여는 허용치 않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종단개혁이 성공하긴 하였으나 구시대인물들의 등장에 따라 불교의 자주화는 퇴색되고 종헌종법제정 과정에 있어서 이들이 기득권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여 승단 내부의 질서변화를 끌어 내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더구나 4부대중의 하나인 재가는 배제되어 단순한 조력자 또는 연대조직 정도의 의미 밖에 가질 수 없었다.
98년의 참담하고 참혹한 종단사태
이런 상황에서 종단의 개혁세력이었던 젊은 승가는 제도권에 편입되었으나 98년의 참혹한 종단사태를 막을 수 없었다. 98년도 종단분규사태는 어떤 것이었을까. 자료를 찾아 보았다.
1998년도 12월달의 월간 해인에 나온 기록을 보면 사태의 원인을 알 수 있다.
98년 사태의 원인을 94년 개혁을 이끌었던 개혁세력의 분열과 일부의 과도한 ‘종권욕’ 때문이라고 규정 짖고 있다. 94년 종단개혁후에 4년이 지난 후 그 때 당시 총무원장인 월주스님의 3선 출마가 시발점이 된 사건 이다.
기존 보수진영과 개혁의 소외 그룹이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유리한 입지를 확보 하기 위하여 생겨난 것이 ‘3선 반대연석회의’라는 것이다. 3선반대라는 구호가 처음에는 먹혀 들어 갔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자, 아예 판을 깨버리고 종권을 장악하자고 주장하는 월탄스님측과 그래도 선거일정은 준수하자는 지선스님측으로 양분된다.
월탄스님측은 전 정종이었던 월하스님을 개입시켜 250명이 참가한 초소형 승려대회를 열고 11월 11일 청사를 폭력점거하여 그들만의 종단을 만들었다. 반면 지선스님측은 월탄스님측과 결별하고 총무원, 중앙종회와 함께 11월 30일 전국승려대회에 참가 함으로서 월탄스님측을 단죄 하는 대열에 합류 하였다.
이 과정을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98년 조계종 종단 분규
|
사 건 |
비 고 |
2008년 10월 24일 |
|
이들의 행위가 당신의 뜻임을 확인하는 ‘확인증’ 을 써줌 |
11월11일 |
월탄스님측이 총무원 청사 강제점거 |
월하스님이 승려대회를 직접 지시. 종정 대 총무원장의 대결 양상을 연출. ‘정화개혁회의’ 라는 과도체제를 선포 |
11월12일 |
월하 |
자신들의 점거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 |
11월14일 |
양재동 구룡사(주지 정우)에서 원로모임 |
자신들의 행위를 사후 추인받은 억지 모양새를 갖춤 |
11월16일 |
정화개혁회의 개원 |
의원 몇 명과 신원확인도 안된 채 신분이 불확실한 승려 백여 명을 모아 놓고 회의 |
11월19일 |
월주스님이 총무원장 출마 사퇴선언 |
|
11월20일 |
총무원장 권한대행 체제 |
차기 총무부장으로 임명된 실상사 주지 도법스님 |
11월26일 |
‘정화개혁회의’ 의 개원 |
행정, 사법, 입법을 통합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기구를 출범. |
11월29일 |
전국승려대회를 앞두고 중앙 |
각 진영이 |
11월30일 |
11․30 전국승려대회 |
1500여 스님과 1000여 재가불자가 참여. 종정불신임. 월탄, 성문, 정우, 현호, 현근, 원학, 법일 등에 대한 중징계를 결의. 평화적인 청사 반환 요구. 70여 명의 스님과 폭력배가 화염병, 돌, 음료수병, 쇠파이프 등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청사 진입을 강력 저지. 이 과정에서 약 35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는 불상사가 발생 |
12월2일 |
범불교재가연대 기자회견 |
한국 교사 불자회등 15개 재가단체 참여. 정화개혁회의에 대하여 종권찬탈에 눈이 먼 소수 폭력집단으로 규정 |
12월6일 |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범불교도대회 개최 |
|
12월11일 |
법원이 정화개혁회의측 승려들의 퇴거 결정 |
정화개혁회의 강력반발 |
12월23일 |
43일째 점거 하고 있던 청사에 대규모 경찰병력 투입하여 진압 |
경찰의 물대포, 최루탄, 불도저, 고가사다리에 맞서 정화개혁측은 사생결단으로 막았으나 자진투항 |
청사만 점거 하면 된다?
94년의 종단 분규가 4부대중과 전국민의 성원 속에 이루어진 성공적인 개혁이었으나, 98년 분규는 94년 개혁 전후 종단으로부터 치탈도첩된
98년 사태는 전과정이 TV와 신문등 매스컴에서 낱낱이 중계되고 보도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위성 중계 까지 되어서 한국불교를 여지 없이 추락 시킨 다시는 기억 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사건으로 남아 있다.
청사만 점거 하면 쿠데타는 성공한다는 구태의연한 점거세력은 43일동안 실제로 청사를 점거 하고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종무원들이 폭력점거에 협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재가불자들이 연대하여 기자회견을 열고, 사부대중의 규탄대회에 참가 하여 쿠데타 세력을 응징 하였던 것이다.
쿠데타세력은 오로지 청사만 점거 하였을 뿐 원로회의, 중앙종회, 본말사에 대한 장악력을 전혀 갖지 못한 것이다. 이런 점거 과정에 있어서 정부의 늑장대응도 문제 되었다. 마치 사태를 즐기면서 지켜보는 듯한 태도를 말한다.
분규사태 날 때 마다 공통적인 현상은
조계종 분규를 보면 사찰운영과 관련된 세속적인 잿밥싸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98년 사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번 봉은사 사태는 총무원의 안정적 재원 확보의 일환으로서 추진 되었으나 정권의 외압에 휘둘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조계종의 분규사태가 일어 날 때 마다 공통적인 현상은 아이러니 하게도 기독교 신자의 대통령이 재임 할 때 일어 났다는 것이다.
다음 표를 보면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대통령 |
종단 분규 | ||
이름 |
종 교 |
재임기간 | |
|
개신교 |
1993~1997 |
94년 조계종단 분규 발생 |
|
천주교 |
1998_2002 |
98년 조계종단 분규 발생 |
|
(친불교적) |
2003~2007 |
- |
이명박 |
개신교 |
2008~현재 |
? |
그러나 친불교적인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권이 개입하여 불교를 장악 하려는 것이다. 자승 총무원장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초 헌법적인 국기를 문란 하는 명백한 종교탑압성 발언이 나오는가 하면 또한 그대로 실천 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양측이 지난 98년 사태와 같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그들로서는 최상의 그림이 될 것이다.
대통령으로부터 사과를 받아 내야
좌파주지 척결과 같은 정도의 발언이 나온다면 총무원장이 앞장서서 규탄대회라도 주도해야 하나 말이 없다. 단지 외압이 없었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 놓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 말 못할 사연이 있음에 틀림 없다.
지난 2008년 범불교도가 열렸을 때 그 어떠한 종교차별이나 종교장악 행위도 용납 하지 않을 것을 수십만의 불교도들이 결의 하였다. 그 것은 정권에 예속되고 휘둘리지 않겠다는 불교의 자주화 선언이나 마찬가지 이었다.
2008년 8.27 범불교도대회 당시 절하고 있는 노보살
2008년 8.27 범불교도대회 당시 시청 앞에 모인 불자들
그러나 현 지도부는 마치 지난 94년
지금이라도 총무원장스님은 그 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소상 하게 알리고, 동시에 집권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대통령으로부터 사과를 받아 내야 한다. 그리고 정권규탄 불교도대회를 열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단지 외압은 없었다고 백번 말해 본들 불자들의 자존심만 상하게 하고 분통만 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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