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왜 성스러운 진리일까, Imee Ooi(黃慧音)의 참회문(懺悔文)
불교에서는 고통을 진리라고 표현한다. 그 것도 성스러운 진리라고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4가지가 있다.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뼈저린 고통이란
고통을 표현 하는 단어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괴로움, 불만족, 불쾌감등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빠알리어로 ‘둑카(dukkha)’라 한다.
둑카에 대하여 어떤 이는 ‘괴로움’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고통’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면 고통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뼈저리게 느끼는 고통은 어떤 기분일까. 실제로 골절을 당하면 뼈저린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짧은 주기로 찾아 오는 뼈저린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은 육체적 고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 고통 또한 육체적 고통 못지 않게 심하다. 오죽 했으면 정신적 고통을 뼈저린 고통에 비유 하였을까.
육체적 고통이야 시간이 되면 사라질지 모르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 온다. 과거의 아팠던 기억이 떠 오르면 몹시 괴로워 한다. 한 때 자신의 잘 못으로 인하여 주변에 피해를 끼쳤다면 그 죄책감으로 또한 무척 괴로워 한다.
그러나 가장 큰 고통은 어리석은 이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Bālasaṇgatacārīhi 발라상가따짜리히
dīghamaddhāna socati 디가맛다나 소짜띠
dukkho bālehi saṃvāso 둑코 벨레히 상와소
amitteneva sabbadā 아밋떼네와 삽바나
dhīro ca sukhasaṃvāso 디로 짜 수카상와소
ñātīnaṃva samāgamo. 냐띠낭와 사마가모.
어리석은 자와 함께 길을 가기란
오랜 날을 두고 슬프고 괴로운 일.
어리석은 자와 사귀는 것은 둑카,
그것은 마치 원수과 살아가는 것과 같으며
지혜로운 사람과 사귀는 것은 즐거움,
친척들과 함께 살아감과 갔다.
(법구경 207게송)
불교가 고등종교인 이유
마노의 문(意門)을 통해서 들어 오는 정신적인 고통은 너무 심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과보로 인하여 다음 생에서 더욱 더 큰 고통이 시작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 하는 한 고통으로부터 피해 갈 수 없다. 그러나 존재 하지 않는 다면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만일 부처님이 고통의 진리인 ‘고성제’와 고통의 일어남의 진리인‘집성제’, 이렇게 ‘2성제’만 설하였다면 불교는 ‘염세주의’종교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삶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허무주의로 인한 자살자에게 정당성을 부여 했을 지 모른다.
죽는 다고 모든 것이 해결 된다면 당장 모두 죽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업을 짖고 죽으면 그 업의 과보로 인한 ‘마음의 과보(과보심)’가 남아 있기 때문에 천상이든, 지옥이든, 인간이든 어느 세계에 다시 존재 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어떠한 마음의 과보도 없다면 더 이상 마음을 일으키는 대상이 일어 나지 않으므로 그 어떤 세계에서도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태어 나지 않고 죽지도 않는 ‘불생불사’의 진리를 부처님이 또 설하신 것이 ‘멸성제’와 ‘
천수경의 클라이막스는
고통이 닥치면 그 고통이 일어난 원인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 해 보게 된다. 그 원인을 추적해 들어 가다 보면 결국 신구의(身口意) 3업에서 비롯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미워 하는 마음이 생겨서, 거친 말로서 상대방의 가슴을 흔들어 놓고, 거기에다 폭력까지 행사 하였다면 신구의 3업을 다 지은 것이다. 이런 3업은 죄업을 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경계 하는 게송이 있었다. 그것이 천수경에 나오는 참회게(懺悔偈)가 바로 그것이다.
천수경의 참회게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치고 고치는 게송이다. 천수경의 하이라이트가 ‘신묘장구대다라니’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은 참회게라 볼 수 있다. 참회게중에 다음의 게송이야말로 가장 클라이막스라 볼 수 있다.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 아득한 과거로부터 지어왔던 모든 악업은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크고 작은 모든 것이 탐진치로 생기었고 ,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 몸과 말과 뜻으로 지었사오니,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 모든 것을 제가 이제 참회합니다
(천수경 참회게)
참회(懺悔)는 산스크리트어의 ‘크샤마(Ksama)’를 음역한 ‘참(懺)’과 의역한 ‘회(悔)’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로부터 지어 온 잘못은 물론 현재 생활하고 있는 가운데 지은 모든 잘못과 허물을 뉘우치고 또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부처님 앞에 맹세하는 것을 참회라고 한다.
반면에 기독교의 회개는 마음의 변화나 후회,가책을 뜻하는 말로 ‘죄로 부터 벗어나 신에게 되돌아 감’을 의미한다.
다음 생을 결정할 정도로 무거운 죄는
불교의 참회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참회 해야 할까.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악업은 다음과 같이 정리 될 수 있다.
행위로 나타났을 때
의 도 |
행 위 |
참 회 |
비 고 |
살인 하려는 |
살생 |
살생중죄금일참회 |
신업(身業) 다음 생을 결정할 정도로 무거운 죄임 |
훔치려는 |
투도 |
투도중죄금일참회 | |
삿된음행을 하려는 |
사음 |
사음중죄금일참회 | |
거짓말 하려는 |
망어 |
망어중죄금일참회 |
구업(口業) 필업도 구업으로 봄 |
중상모략하려는 |
양설 |
양설중죄금일참회 | |
욕설하려는 |
악구 |
악구중죄금일참회 | |
잡담하려는 |
기어 |
기어중죄금일참회 |
마음의 문을 통하여 나타났을 때
해로운 마음 |
확정된 업 |
참 회 |
비 고 |
간탐 |
탐욕 |
탐애중죄금일참회 |
의업(意業) 오직 마음에서만 발생 |
악의 |
성냄 |
진애중죄금일참회 | |
사견(邪見) |
도덕적 허무주의(어리석음) |
치암중죄금일참회 |
살인(살생)이나 도둑질(투도), 삿된 음행(사음)과 같은 행위는 몸으로 짖는다. 그래서 신업이라고 한다. 즉, 하고자 하는 의도가 몸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행위로써 표출 된 것이다. 이 신업은 매우 그 죄업이 매우 커서 다음 생에 어떤 존재로 태어 날 것인가에 대하여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말의 문을 통하여 의도 하는 바를 ‘말로써 나타내는’ 것을 구업이라 한다. 거짓말(망어), 중상모략(양설), 욕설(악구), 잡담(기어)등을 말한다.
신업과 구업이 몸과 말의 문을 이용하여 의도를 몸과 말의 매개체로 표현 하는 것과 달리 의업은 오직 ‘마음에서만’ 발생한다. 비록 마음(마노)에서만 일어 난다고 하더라도 ‘업’은 발생한다고 본다.
마음의 문을 통하여 발생 되는 해로운 마음은 대표적으로 ‘간탐’과 ‘악의’와 ‘사견’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확정된 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해로운 마음에서 ‘욕구가 일어 나야’ 확정된 업으로 되기 때문이다.
Imee Ooi(황혜음)의 참회문(懺悔文)
참회 할 때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와 같은 진언을 외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진언은 앞서 언급한 “아석소조제악업~ 일체아금개참회”보다 더 좋은 내용은 없을 것이다.
2009년 발표된 Imee Ooi(황혜음)의 노래 중에 참회문이 있다. 그 내용은 화엄경 보현행원품에서 가져 왔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제4대참회업장(四大懺悔業障)의 참회문이라는 가사이다. 그 게송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懺悔文>
往昔所造諸惡業,
皆由無始貪瞋癡,
從身語意之所生,
一切我今皆懺悔
(화엄경 보현행원품 제4대참회업장)
천수경의 참회게와 비교 해 보았을 때 앞절의 我(아)가 왕(往)으로만 바뀌었고, 세번째 절에서 구(口)가 어(語)로 바뀌었을 뿐 내용이 똑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참회문을 Imee Ooi의 2009년 판 음악으로 들어 본다.
음성
2)http://buddha.goodweb.cn/...忏悔文_黄慧音.wma
비롯함이 없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은 모든 악업은
모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부터 시작 되었고,
그로 인하여 몸과 말과 마음으로 죄업을 짖게 되어서
저는 이제 이렇게 부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참회 합니다.
Picture :http://www.youtube.com/watch?v=pEmoUJJLnzk&feature=related
이런 신구의 삼업에 대한 경계의 게송은 초기경전에서도 발견된다. 숫따니빠따의 라따나숫따(Ratana sutta, 보석경, Sn1.8)가 바로 그것이다. 라따나숫따의 11번째의 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kiñcāpi so kammam karoti pāpakam, 낀짜삐 소 깜망 까로띠 빠빠깡
kāyena vācā uda cetasā vā 까예나 와짜 우다 쩨따사 와
abhabba so tassa paticchadāya, 아밥바 소 땃사 빠띳차다야
abhabbatā ditthapadassa vuttā 아밥바따 딧타빠닷사 웃따
Idampi Buddhe ratanam panītam, 이담삐 상게 라따낭 빠니땅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도의 진리 얻어서 깨달으신 분들은
몸과 입 그리고 마음으로 범하는
그 어떤 악행도 감추지 못한다.
상가는 이 세상 으뜸가는 보배
이러한 진리로 그대들 행복하길!
<숫따니빠따(Sn 1.8)의 라따나숫따 11번 게송>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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