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네 방의 화살을 맞고, 느낌(受)의 단계와 불멸의 진리

담마다사 이병욱 2010. 6. 25. 15:59

 

네 방의 화살을 맞고, 느낌()의 단계와 불멸의 진리

 

 

 

 

 

 

 

월드컵시즌이다. 4년마다 한번 열리는 월드컵기간 중에 볼 수 있는 광경이 대규모 길거리 응원이다. 우리팀의 경기가 있는 날에 수백만이 모여 응원 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이들은 한국민족의 힘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를 두고 신바람 문화라 말하며 긍정적으로 평가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지나치게 감정에 휩쓸리는 현상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 하기도 한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중요한 것은 느낌이다. 느낌이 증폭되어 갈애와 집착으로 발전 되었을 때, 슬픔이 비탄으로 바뀌고, 즐거움이 쾌락으로 발전한다. 이 때 사람들은 끝장을 보려 한다. 그리고 한 번 형성 된 습관은 여간해서 고쳐지지 않는다. 흡연, 알코올중독, 욕설, 폭력, 파괴, 도박, 도둑질, 자해, 자살등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무엇이든지 처음에는 평범하게 시작 된다. 느낌도 마찬이다. 느낌이 슬픔으로 변하고, 더 발전 되어 탄식과 비탄으로 바뀌었을 때 사람들은 목 놓아 울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 될 때 마다 항상 가슴은 답답하다. 그래서 남는 것은 숯덩어리와 같은 가슴과 그에 따른 검은찌꺼기의 고뇌만 쌓이게 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여기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없을까.

 

고통에서 해방 되는 길을 제시 하는 것이 불교이고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고통에서 해방 되려면 우선 느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느낌에서 출발 하기 때문이다.

 

세가지 느낌이 있는데

 

느낌을 한자어로 감성이라 하고, 영어로는 필링(feeling)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주위에 온갖 느낌을 자극 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TV의 광고, 인터넷의 플레시등을 보면, 눈과 귀를 자극 하여 호기심을 유발하여 필(feel)이 꼽히게 만든다. 또 길거리를 걷다 보면 감성을 자극 하는 장면도 많이 보게 된다. 이렇게 삶의 현장은 느낌에서 시작하여 느낌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느낌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초기불교에서는 느낌을 크게 세가지로 나눈다.

 

 

첫째, 즐거운 느낌이다.

둘째, 괴로운 느낌이다.

셋째,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덤덤한 느낌이다.

 

 

어느 느낌 이든지 이 세가지 범주를 벗어 나지 않는다.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사는 것이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인식 한다는 것을 말하는 데 반드시 느낌에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만일 느낄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의 인식을 벗어 난 것이다. 예를 들어 창조주나 신과 같은 것이다. 이들은 우리의 인식의 범주를 벗어 난 것이고 개념이기 때문에 있느니 없느니하고 말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오로지 육근이 육경과 부딪쳤을 때 뿐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라는 여섯 가지 경계에 부딪쳤을 때,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라는 육식(六識)이 일어난다. 이를 18()라 한다.

 

18계가 우리의 인식의 범주 안에 있는 세계이고, 현상세계이고, 일체인것이다. 이런 세계는 실재 하고 있고, 경험 할 수 있고, 또한 고유한 특성이 있다.

 

느낌() 역시 실재 하고, 경험 할 수 있고,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 느낌은 구경법이기 때문에 일어났다가 금방 사라지는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느낌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생멸 함에도 불구 하고, 좋은 느낌은 계속 유지 되기를 바라고, 괴로운 느낌은 빨리 사라지기를 바란다. 느낌 자체는 단지 일어 나고 사라질 뿐인데, 사람들은 그 느낌으로 인하여 어떤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느낌을 갈구 하거나 집착하게 된다.

 

아이고 아파!”아파 죽겠네!”

 

좋은 느낌이든 괴로운 느낌이든 집착하게 되면 괴로움이 생긴다. 느낌에서 갈애와 집착으로 발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단지 느낌의 단계에서 알아차려야 하는데, 이를 화살의 비유로 설명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화살의 비유는 두 가지 이다. 육체적 화살과 정신적 화살이다. 병이 나서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다면, 1의 화살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그 육체적 고통으로 인하여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면 제2의 화살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제2화살은 사람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흔히 아이고 아파!”와 아이고 아파 죽겠네!”로 비유한다.

 

여기서 아이고 아파!”는 육체적 화살을 맞아서 고통스러운 것 이고, 아이고 아파 죽겠네!”는 정신적 화살을 맞아 고통스러운 것이다.

 

체적 고통은 부처님이나 아라한이라도 피해 갈 수 없다. 그러나 정신적고통은 알아차림만 있다면 누구든지 피해 갈 수 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다음과 같은 말이다.

 

 

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2의 화살은 맞지 않는다

 

 

네 방의 화살

 

그런데 묘원법사의 BBS불교방송 불교강좌(2010년 6월22자)를 들으면 화살이 두 개 더 있다. 느낌이 갈애로 발전 되었을 때 일반적으로 화살을 두방 맞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 4방의 화살을 맞는 다는 것이다.

 

4방의 화살은 어떤 것일까 표로 만들어 보았다.

 

 

 

느낌의 단계와 화살

단계

종류

구분

내용

화살

1단계

맨느낌

육식(六識)

감각기관을 통해서 의식되는 것이 모두 느낌을 통해서 마음이 알게 됨

화살을 맞지 않은 상태

2단계

육체적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덤덤한 느낌,

-맨 느낌에 감정이 개입되어서 스스로가 일으킨 것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느끼면 화살을 한 번 맞는 것

-선업과 불선업으로 반응한 것

-/불호가 있어 갈애가 일어남

1의 화살

(육체적 화살, 아이고 아파!)

3단계

정신적 느낌

정신적 즐거움, 정신적 괴로움

-느낌은 그냥 있지 않고 항상 끊임없이 변함

-좋고 싫고의 격렬한 행위로 변화

-비탄에 빠져 슬피 울거나 자살을 하거나 또는 환희에 겨운 몸짓

- 극단으로 치닫게 되어 제어가 안됨

 

2의 화살

(정신적 화살, 아파 죽겠네!)

4단계

욕망의 느낌

고통이 멈추기를 바라는 느낌

-갈애가 집착으로 발전한 상태

-상처가 깊어지고 고통도 깊어지고 그만큼 과보도 커짐

3의 화살

(욕망의 화살)

 

5단계

무지

알아차림이 없음

-무지하기 때문에 화살을 피하는 방법을 모름

-화살을 맞는 것이 일상의 삶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

4의 화살

(무지의 화살)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부딪쳤을 때, 이를 맨느낌이라 하는데, 이 때는 화살을 맞지 않는 것으로 본다. 감각접촉은 누구나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맨느낌이 괴롭다거나 즐겁다거나 덤덤하다고 느낄 때, 육체적 느낌으로 발전 된다. 이 때 처음으로 화살을 한방 맞게 되는데, 부처님도 피해 갈 수 없다. 몸이 아프면 누구나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느낌은 계속 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특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느낌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면, 그는 이미 정신적 느낌의 단계로 발전 한 것이다. 아파도 아파 죽겠다!”라고 말하고, 좋아도 좋아 죽겠네!”라고 말한다.

 

슬피 운다거나, 환호 하는 것도 느낌에서 갈애가 강화 된 것이다. 이 때 알아차림이 없으면 그는 두번째 화살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아라한이나 부처님은 육체적 느낌으로 그치기 때문에, 정신적 느낌으로 발전 하지 않아 재생의 원인이 되는 ()’을 짖지 않게 된다.

 

무수한 화살을 맞고

 

갈애가 강화 되면 집착으로 발전 된다. 그래서 이 고통이 빨리 사라졌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모든 법이 일어 나고 사라짐인데, 그 본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로지 이 고통이 사라질 수 있도록 기도를 한다거나 초월적 존재를 찾는다. 이 때 화살을 한 방 더 맞게 되는데, 이것이 욕망의 화살이다.

 

세번째 화살을 맞은 사람은 욕망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에 화살을 피 할 줄 모른다. 그래서 매번 화살을 맞게 되는데, 맞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래서 계속해서 화살을 맞는다. 이렇게 무수하게 화살을 맞다 보니 고통에서 헤어 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음주, 흡연, 폭력, 자학, 자살을 하는 이유가 몰라서 무수하게 화살을 맞은 결과일 것이다.

 

화살을 맞지 않으려면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까. 수행처에서는 항상 알아차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느 때 알아 차려야 할까. 물론 맨느낌에서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좋다. 그 것도 안되면, 육체적 느낌에서, 거기에서 놓치면 정신적인 느낌에서 알아 차리는 것이다. 그러나 알아차림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다.

 

묘원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느 때고 알아차리면 된다

 

알아차림에는 늦고 빠르고가 없다. 단지 알아차렸느냐 못 알아차렸느냐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느낌에서 갈애로 발전 하였을 때, 즉 육체적 느낌에서 정신적 느낌으로 발전 하였을 때는 이미 늦다는 것이다.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 가는 순간, 바로 그 곳이 불멸의 문으로 가는 길목이다. 부처님이 발견한 ‘불사(不死)의 진리가 바로 느낌에서 갈애로넘어가는 순간에 있다는 것이다.

 

 

 

 

2010-06-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