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제 속에 욕망의 괴물이…”성폭행 시대에, 불교적 해법과 무인작용심

담마다사 이병욱 2010. 7. 5. 18:24

 

제 속에 욕망의 괴물이…”성폭행 시대에, 불교적 해법과 무인작용심

 

 

 

 

 

 

하루가 멀다 하고

 

성폭행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 되고 있다. 주로 중년층의 남자가 나이 어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거의 매일 보도 내용에 따르면, 범행을 저지르는자의 나이도 이제 다양화 되는 듯 하다. 70대의 노인이나 10대 청소년도 범행에 가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범은 매우 비굴하고 파렴치한들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힘이 부족 해서,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이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대부분 과거에 동일전과가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범행을 저지르고 하는 말 중에 어떤 이는 제 속에는…, 욕망의 괴물이 있어서 그런 생각밖에…라는 이야기를 한다. 또 어떤 이는 또 이번에도 저지르고 만 자신에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한다. 이들의 특징은 과거에 잘 못을 저질러서 죄값을 받고 나왔음에도 불구 하고 동일한 범행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성폭행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범죄가 한 번 이상 범죄를 저지른자에 의하여 또 다시 저질러 진다. 범죄의 80%가 소수의 전과자에 의하여 저질러지고, 20%는 초범자라 한다. 80 20법칙이 범죄에도 그대로 적용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수에 의하여 대부분의 범죄가 저질러 지는 현실에서 화학적 거세나 격리수용 이야기도 나오지만, 단지 물리적 대응방법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요인은 무엇일까. 이를 불교적으로 해석 해 보았다.

 

네 가지 마음이 있는데

 

초기불교에서 마음을 크게 네가지로 본다. 선심(善心), 불선심(不善心), 과보심(果報心), 무인작용심(無因作用心) 이렇게 4가지이다. 이들 마음을 다시 세밀하게 분류 하면 89가지나 된다. 여기에 출세간의 마음을 좀더 세분하여 출세간의 선(5)의 마음을 추가하면 121가지 마음이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마음이라고 말할 때 세간의 마음(욕계, 색계, 무색계)과 출세간의 마음(선의 마음을 제외)을 합한 89가지 마음으로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89가지 마음이 오로지 한 순간에 단 하나의 마음만 나온 다는 것이다. 이 말은 동시에 두 가지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선한 마음인데, 동시에 불선한 마음이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아비담마의 마음도표를 보면 이들 마음의 종류를 알 수 있다. 이를 표로 만들어 보았다.

 

 

89가지 마음 분류표

 

마 음

개수

1

선심(善心, 유익한 마음)

21

2

불선심(不善心. 해로운 마음

12

3

과보심(果報心)

선과보심

29

불선과보심

7

4

무인작용심(無因作用心)

20

89

 

 

 

여기서 선심이란 믿음, 알아차림, 양심, 수치침, 탐욕없음, 성냄없음등과 같이 25가지 아름다운 마음부수의 작용과 함께 일어나는 마음을 말한다. 불선심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을 말한다.

 

과보심이란 무엇일까

 

과보심이란 무엇일까. 과보심은 크게 두가지로 본다. 첫째가 선과보이고, 둘째가 불선과보이다. 이렇게 둘로 나누는 이유는 선과보는 선심과 함께 일어나고, 불선과보는 불선심과 함께 짝을 이루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유상종(類類相從)의 법칙과도 같다.

 

동류끼리는 동류끼리 따르고, 같은 동류가 아니면 배척 하는 원리와 같다. 그래서 선심과 불선과보는 매칭이 안되고, 불선심이 선과보와 함께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과보심은 다른 말로 원인과 결과의 마음이라 한다. 과거에 잘 못한 행위를 했다면, 그 잘 못한 행위는 그 순간 즉시 사라지지만, 과보심은 남아서 조건이 성숙 될 때까지 잠복 해 있다. 그러다가 여섯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만났을 때, 마음부수의 도움을 받아 마음이 일어 나게 되는데, 이 때  탐욕과 같은 불선한 마음이 일어났다면, 과거에 행한 불선과보심과 만나서 불선업을 짖게 된다.

 

초등생을 성폭행한 범인이 초등생 여자 아이를 보자 탐욕이라는 불선심이 일어 났고, 과거 유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불선과보와 결합하여 또다시 불선업을 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제 속에는…, 욕망의 괴물이 있어서 그런 생각밖에…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도 자신을 잘 제어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마음이 자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더욱 더 안좋은 방향으로 상황을 전개 시켜 나가기 때문에 계속 유사한 범행을 저지르게 되고, 비슷한 유형의 범죄의 80%가  전과자들이 차지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범죄의 유혹에 빠져 나쁜 일을 저질러 보려 하는데 잘 안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과거에 만들어 놓은 선과보심의 영향이 크다. 이렇게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전에 저지른 과보에 따라 조건이 상속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과보가 흘러 가게 되는 데 이를 윤회라 한다.

 

순간윤회와 일생윤회

 

마음은 일어 났다 즉시 사라진다. 그리고 조건을 남긴다. 그 조건 지워져서 나타나는 마음이 현재 나의 마음이다. 그래서 무아(無我)라 한다. 따라서 영원불변한 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찰라 찰라 생멸 하는 마음이 조건에 따라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연기적 흐름으로 보는 것이다.

 

무아라 하여 단지 내가 없다!”라고 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이 때의 무아는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와 같지 않고, 또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윤회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순간윤회이고, 또 하나는 일생윤회이다. 어느 경우이든지 과보가 전해 지는 것이다. 따라서 뒤의 마음은 과보의 상속자이다.

 

일생의 윤회의 경우 과보의 상속자는 재생연결식이다. 이 재생연결식이라는 마음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만들어 낸다. 마음에서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업과 자양분과 온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것은 태내에서 조건을 말한다.

 

여기서 마음은 재생연결식으로서, 죽을 때 마지막 마음인 죽음의 의식에서 업 또는 업의 표상 또는 태어날 곳의 표상을 대상으로 일어 나는 마음을 말한다.

 

순간의 윤회는 지금의 몸과 축적된 성향이 그대로 유지 되지만, 일생의 윤회는 새로운 몸과 축적된 성향이 만들어 지고 그 존재가 죽을 때 까지 유지 된다. 그래서 개구리의 몸을 받았다면 한 평생 개구리로 살아야 하고, 사람의 몸과 성향을 받았다면 죽을 때 까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일생윤회를 통하여 비록 사람으로 태어 났다고 할 지라도 과거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 과보는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 묘원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 좋은 머리나 잘 생긴 얼굴은 모두 선한 행위의 결과로 인한 것입니다.

이는 전생의 선과보로 생긴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 과보가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새로운 선업을 다시 쌓지 않으면 다음에 지금 누리든 것이 보장될 수가 없습니다

 

돈이나 명예나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 부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소유할 만한 선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선업을 쌓지 않으면, 그런 것들이 지금 이후에

다시 보장될 수 없는 것입니다.

(2010년 1월 16자 bbs불교방송 불교강좌, 12연기와 위빠사나)

 

 

 

얼굴이 잘 생긴 것도, 돈이나 명예나 지위가 높은 것도 과거의 선과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선과보를 만들어 내지 않고 써 버린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호사가 보장 될 수가 없다고 말한다.

 

현재의 내 모습과 성향은 어디에서

 

과거생에 악업을 많이 쌓았다면 어떤 과보를 받게 될까. 반면에 선업을 쌓았다면 어떤 과보를 받게 될까. 불교강좌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과보를 받게 된다고 한다.

 

 

업에 대한 과보

구분

악 과보

선 과보

수명

살생을 많이 했다면 그 과보로 수명이 짧다

살아 있는 생명에게 자비롭고 동정적이면 그 과보로 장수를 한다

생명을 해치는 습관이 있다면 그 과보로 병을 얻어서 고생을 한다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고 돌보면 그 과보로 건강한 삶을 누린다

용모

성질이 난폭하고 하찮은 말에도 짜증을 내고, 화를 잘 내고, 악의가 있으면  그 과보로 얼굴이 못생기게 태어난다.

성질이 온순하고, 말을 조심하며,

화를 잘 내지 않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면 그 과보로 얼굴이 아름답게 태어난다.

지위

질투심이 많고, 남의 존경을 받는 것과 명예를 시기하면,

그 과보로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가 없다.

질투심이 없고,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기꺼이 환영하고 성원해준다면,

그 과보로 사회적인 지위를 얻는다.

재산

남을 도울 줄 모르고, 인색하고, 자기만 아는 탐욕이 있으면,

그 과보로 가난하게 태어난다.

남을 돕고 인색하기보다 관용을 가지면 그 과보로 부자로 태어난다.

가문

고집이 세고, 거만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하지 않으면, 그 과보로 비천하게 태어난다.

고집이 세지 않고, 거만하지 않으며, 남을 존경하면, 그 과보로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다

학문

학문을 배우지 않고, 닦아야할 것을 탐구하지 않으면, 그 과보로 어리석은 자로 태어난다

학문을 닦고, 덕망이 있는 사람과 교분을 두터이 한다면, 그 과보로 총명한 사람이된다.

음행

음란한 행위를 했을 때는 그 과보로 다음 생에 거세를 당하거나 임신을 할 수가 없다.

 

 

 

 

지금의 현재의 내 모습과 성향이 과거생에 지은 업의 과보임을 알 수 있다. 초등생을 납치하여 성폭행한 범인이라면 장기간 격리 되고, 출소되더라도 전자발찌나 화학적 거세를 당해 사회와 영원히 격리 되는 과보를 받게 되겠지만, 그 것과 별도로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 응보법칙에 따르면 그는 다음 생에 거세를 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내 마음일까

 

사람들은 순간적인 잘 못으로 인하여 평생 씻을 수 없는 과보를 받는다, 살인, 강간, 도둑질, 폭력등 자신도 모르게 저질러 놓고 보면 나중에 후회 하게 되는데 이럴 때 하는 말이 내 안의 누군가가 그랬다거나 내 안의 욕망의 괴물탓을 하게 된다. 조금전의 마음과 지금의 내마음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내마음일까.

 

마음은 야속하게도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으로 거기에 내 마음은 없다. 단지 앞서의 마음이 과보가 전해진 마음이 바로 지금의 내 마음이다. 그렇다고 해서 잘 못을 저지른 것이 용서 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업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그가 업의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여중생을 납치하여 성폭행하고 살해한 조두순은 끝까지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런 경우가 바로 내 안의 누구욕망의 괴물탓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매번 자기자신에게 속고 산다. 속고 나서 잘 못 된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 하였다면, 상대방이 성을 낼 수 있는 말을 하였을 것이고, 또한 과거 상대방과 그런 문제로 다투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불선심과 불선과보심이 만났을 때 불선업을 짖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되다 보면 더 큰 과보를 저지르게 된다. 처음에는 미약하게 시작 되었느나 갈수록 커져 가는 것과 같다. 성냄으로 인하여 단순폭력이 살인으로 발전 하고, 단순탐욕이 성폭력으로 발전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쌓이고 쌓은 불선업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불교와 초기불교

 

이런 불선업과 불선과보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은 이 때 알아차리라고 하였다. 알아차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무인작용심은 동아시아 불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매우 생소한 용어이다. 대신에 전통적으로 마음을 놓아 버려라라거나 마음을 쉬어라등 무심(無心)을 강조해 왔다. 따라서 모든 분별 망상에 대하여 쉬고 또 쉬는 공부를 하여 무심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깨달음이 온다고 생각 하여 모든 오염원 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았다.

 

그 결과 세속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심산유곡에 들어가게 되었고, 토굴에서 나홀로 수행하는 수행자도 많아 졌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 유지 되어 지금도 나홀로 스님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 토굴의 의미도 현대화 되어 단독주택이나 심지어 아파트도 토굴이라 한다.

 

이렇게 세속의 오염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 나홀로 상구보리만 추구 하다 보니 중생제도는 꿈도 꾸지 못한다. 평생상구보리만 하다가 하화중생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는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이라 볼 수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사는 곳에 불교가 없다다. 이런 현상이 도시에 불교가 부재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초기경전에서 보는 상가(sangha)는 마을 근처에 있었다. 청정도론의 두타행에 따르면 돌을 던져서 떨어진 지점이나, 활을 쏘았을 때 화살이 떨어진 곳 정도의 경계에 수행자들이 머물렀다고 표현 한다. 오늘 날 남방불교 국가에서 이런 경향은 크게 벗어 나는 것 같지 않다사람이 사는 곳 가까이에 상가가 있는 현상을 말한다.

 

이렇게 마을 가까이에 있었던 이유는 탁발하기에 좋았고, 그럼에 따라 무소유를 실천하기에 좋았기 때문 일 것이다. 또한 포살과 자자를 통하여 참회와 성찰의 시간을 가져서 서로를 격려를 할 수 있는 공동체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런 모습이 진정한 상가의 모습이 아닐까.

 

아뢰야식은

 

무인작용심은 초기불교에서 볼 수 있는 용어이다. 반면에 쉬고 또 쉬라는 무심은 여래장 사상에서 볼 수 있는 용어이다. 

 

법의 불교와 신앙의 불교의 차이는 매우 크다. 따라서 출발부터 다른 불교라고 볼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법을 바라 보는 눈일 것이다.

 

초기불교가 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현상으로 본 반면, 여래장 사상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여래장 사상에서는 일심사상으로서 진여심과 분별망상으로 인하여 생겨난 생멸심, 이렇게 크게  두가지로 본다. 그래서 그 오염원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마음의 거울에 입혀져 있는 때를 벗기듯이 닦고 또 닦아서 깨끗하게 하여 진여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음의 때가 쌓인 곳을 제8식인 아뢰야식으로 본다. 또 중생들의 삶의 과정이 낱낱이 기록 되어 있는 곳이 또한 아뢰야 식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비디오 카메라 같은 것이 있어서 모든 동작을 찍어 아뢰야 식에 보관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관된 필름은 언제 써 먹을까. 그 것은 그가 죽었을 때 49일 동안 갈곳이 정해지지 않아 중유로서 머물게 되었을 때, 염라대왕이 그 필름을 보고 판단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남방 테라와다의 경우 제8식 아뢰야식은 없다. 그대신에 순간 순간 생멸하는 마음이 조건에 따라 상속 하는 연기적 흐름으로 본다. 그래서 마음의 과보를 쌓아 놓는 곳이 따로 없다. 따라서 죽는 것도 순간의 마음으로 본다. 이렇게 순간윤회와 일생윤회룰 거듭 하다 보니 마음이 49일 동안 머문다는 중유 개념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보는 눈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결과 또한 다를 수 밖에 없다. 초기불교에서는 다시 태어 나지 않는 해탈과 열반을 이야기 하지만, 여래장 에서는 극락왕생을 이야기 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이란

 

어떤사람이나 태어 날 때 네 가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앞서 언급한 선심, 불선심, 과보심, 무인작용심이 초기불교의 가르침이다. 이 중 무인작용심은 단지 원인과 결과를 일으키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

 

이 무인 작용심을 다른 말로 부처님의 마음 또는 아라한의 마음이라 한다. 부처님이나 아라한의 경우 과거 전생에서부터 재생의 원인이 되는 업과 번뇌를 소멸 시켜 왔기 때문에, 대상을 보았을 때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이 무인작용심이야 말로 연기를 탈출 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이다. 사람들이 수행을 한다는 것은 바로 부처의 마음인 무인작용심을 얻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인작용심이란 어떤 마음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을 표로 만들어 보았다.

 

 

무인작용심 20가지

구 분

무인작용심

  

원인없이 작용만 하는 마음(3)

평온이 함께 하는 오문전향의 마음

감각기관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나 갖는 마음

평온이 함께 하는 의문전향의 마음

기쁨이 함께 한 미소 짓는 마음

모든 부처님들과 벽지불들과 아라한들만이 갖는 특유한 마음

욕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8)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욕계의 유익한 마음과 중복 되는 마음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은 마음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은 마음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은 마음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은 마음

색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5)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과 희열과 행복과 집중을 가진 초선의 작용만 하는 마음

색계의 유익한 마음과 중복 되는 마음

지속적인 고찰과 희열과 행복과 집중을 가진 2선의 작용만 하는 마음

희열과 행복과 집중을 가진 3선의 작용만 하는 마음

행복과 집중을 가진 4선의 작용만 하는 마음

평온과 집중을 가진 5선의 작용만 하는 마음

무색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4)

공무변처에 속하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과 중복 되는 마음

식무변처에 속하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무소유처에 속하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비상비비상처에 속하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출처 ; 아비담마길라잡이, 진흙속의연꽃 편집

 

 

 

무인작용심은 표와 같이 총 20가지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작용만 하는 마음중에 원인이 없는 것이 3가지이고, 욕계 8가지, 색계 5가지, 무색계 4가지로 분류 되는데, 여기에서 원인이 없는 3가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 중에 기쁨이 함께 하는 미소 짓는 마음이 있는데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미소 짓는 마음이란

 

먼저 원인이 없이 작용만 하는 마음중에 오문전향과 의문 전향은 인식과정 17단계에 있어서 전향하는 마음이다. , 이 전향하는 마음은 보거나, 듣거나, 냄새맡거나, 맛보거나, 감촉하거나 하는 마음이 아니고 단지 대상으로 향하는 마음이다. 의문 전향 역시 생각 하는 마음이 아니고 단지 대상으로 전향 하는 마음이다. 따라서 오문전향의 경우 오식이 그 바로 그 다음에 일어 나게 해준다. 의문 전향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원인 없이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이라 한다. 이런 마음은 감각기관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나 갖는 마음이다.

 

그런데 세번째의 미소짓는 마음은 다르다. 이마음이 바로 부처님들과 벽지불들과 아라한들만이 갖는 특유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비담마길라잡이에 따르면 이 마음은 아라한들로 하여금 욕계의 현상들에 대하여 미소 짓는 마음이라고 표현 한다. 그렇다면 어떤 현상을 보고 미소 짓는 다는 것일까.

 

욕계의 네가지 아름다운 마음을 보고서 원인 없이 미소 짓는 것이다. 그 네가지 마음은 다음과 같다.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은 마음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은 마음

 

 

이 네가지 마음은 욕계의 작용만 하는 8가지 마음과 중복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평온만 빠지고 기쁨만 들어 가는 4가지 마음들이다. 이 네가지 아름다운 마음들과 기쁨이 함께 한 미소 짓는 마음, 이렇게 5가지 마음으로 인하여 아라한들과 부처님은 미소 짓는 다는 것이다.

 

욕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 8가지는 욕계의 유익한 마음 8가지와 중복 된다. 이들 마음은 범부와 유학들에게 일어 나는 마음이다. 여기서 유학이란 아라한을 제외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을 말한다.

 

범부와 유학들은 이들 유익한 마음을 냄으로써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하여 선업을 쌓는다. 그러나 번뇌가 소멸 되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무학의 아라한이나 부처님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마음들이다. 윤회가 종식 되어 더 이상 재생 되지 않기 때문에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이 일어 나서 그런 마음이 일어 나면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다. 색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 5가지와 무색계의 작용만 하는 마음4가지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잠재적인 범죄자들

 

누구나 조건만 맞으면 폭력을 행사 할 수 있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다. 또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비열하고 비겁한 성폭행범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누구나 잠재적인 범죄자들이다. 그러나 과보심에 따라 다르다.

 

태어날 때 선과보심이 많다면 못 된짓을 하라고 해도 못할 것이다. 반면에 선과보심은 별로 없고 불선과보심이 많다면, 조그마한 불선심이 일어 나도 불선과보와 결합되어 범죄를 저지르고 말 것이다.

 

마찬가지로 삶의 과정에 있어서 불선과보심이 축적 되어 있다면 탐욕, 성냄과 같은 불선심이 일어 났을 때 쉽게 폭력이나 살인, 성폭행을 행사 할 것이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자주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범죄는 순간적으로 일어 난다. 탐욕이나 성냄이 어느 순간 조건이 맞았을 때 일어났다가 사라지듯이, 폭력이나 살인, 성폭행도 조건이 맞았을 때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나중에 남는 것은 행위 밖에 없다. 자신이 왜 그런 짓을 하였는지 모를 정도로 내 안의 어떤 녀석이또는 내 안의 욕망의 괴물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순간적으로 행사는 폭력은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씻을 수 없는 과보를 남김으로서 다음생을 결정할 정도로 매우 강력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선과보를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동적으로 벌인 행위는 선과보심보다 불선과보가 훨씬 크기 때문에 발생 하고, 알면서도 행할 정도로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것을 두고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업대로 산다고 한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모든 것을 이끄는 것은 마음이다. 그 순간적인 마음으로 인하여 행복과 불행이 결정 되는데, 법구경의 1번 게송이 마음에 대하여 잘 이야기 해 주고 있다. 

 

 

마음이 그들에 앞서가고

마음이 그들의 주인이며

마음에 의해서 모든 행위는 지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그에게는 반드시 괴로움이 뒤따른다.

마치 수레가 황소를 뒤따르듯이.

(법구경 1번 게송)

 

 

1번 게송은 원인과 결과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를 좀더 분석 해 보면, 마음이 그들을 앞서 간다고 했을 때 그들은 오온에서 색수상행을 말한다. 그리고 식이라 불리우는 마음이 이끌어 가는 것이다.

 

또 마음이 그들의 주인이라고 한 것은 주인공, 진아, 자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에 있어서 앞선 원인을 주인공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폭력, 살인, 성폭행과 같은 못 된 짓을 하였다면 그 행위에 대한 결과로서 반드시 고통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조건만 맞으면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그 순간을 알아차리는 방법밖에 없다. 알아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방법은 연습 밖에 없다. 알아차리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습관을 들이는 것이 수행이다.

 

 

 

2010-07-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