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경(Mangala sutta, 망갈라숫따,길상경)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0. 7. 7. 17:33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경(Mangala sutta, 망갈라숫따, 길상경)에서 

 

 

 

각묵스님의 불교TV강의나 인터넷강의를 들어 보면, 염오 이욕 해탈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넌더리친다는 말도 종종 한다. 이 모두가 고통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렇다면 넌더리 친다거나 염오 한다는 말은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강사가 만들어 낸 말일까.

 

법문을 듣다 보면

 

각묵스님의 강의 스타일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야기 보다 경전에 근거한 이야기를 한다고 누차 강의에서 말한 바 있다. 그렇게 경전에 근거하여 이야기 하는 법문은 초기불교를 전법 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그렇게 해야 부처님이 전달 하고자 하는 법이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경전의 근거한 이야기 보다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만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법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없고 법문 하는 사람의 견해만 있게 된다. 이렇다 보니 말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불교가 생겨 나게 된다. 바로 이런 점이 한국불교의 가장 큰 병폐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의 제자라면 반드시 경전에 근거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 옳다. 넌더리나 염오, 이욕, 해탈이라는 말도 검색을 해 보니 경전에 나와 있는 이야기이다. 초기경전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넌더리 치고[염오]

느낌에 넌더리치고

인식에 넌더리치고

상카라들에 넌더리치고

알음알이에 넌더리친다.”

<뱀의 비유경(Alagadduupama Sutta, M22>

 

 

맛지마니까야에 나오는 뱀의 비유경에 있는 말이다. 오온에 넌더리를 쳤을 때, 즉 염오하였을 때 욕망이 사라져서 결국 해탈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부처님은 선언한 것이다.

 

 

넌더리치면서 욕망을 빛바래게 한다[이욕].

욕망을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에서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꿰뚫어 안다.”

<뱀의 비유경(Alagadduupama Sutta, M22>

 

 

이것이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이다. 오온으로 구성된 우리의 몸과 마음에 대하여 넌더리를 치면, 결국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되돌아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통찰 하여 알게 된다는 것이다.

 

괴로움에 사무치는 방법이나 비결이 있나요 ?

 

넌더리를 친다는 것은 고통에 대한 자각을 말한다. 지금 현재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의 원인을 찾게 되고, 고통을 소멸 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고통을 소멸시키기 위한 도를 닦아야 만 되는 자연스런 과정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고통에 대하여 넌더리를 친다는 것은 또한 고통에 대하여 사무친다라는 말과도 같다.

 

삶의 과정에 있어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하여 사무치지 않으면 결코 이욕할수 없을 없을 뿐만 아니라, 결코 해탈 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하는데, 문제는 그 사무치는 방법이다.

 

어떤 네티즌이 초기불교연구원 사이트에 고통에 사무치는 방법에 대하여 써놓은 글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괴로움에 사무치는 방법이나 비결이 있나요 ?

전 거의 모든게 행복해보여서요.

 

 

지금 상태가 행복해서 괴로움에 사무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괴로움에 사무쳐야 하는지 알기 어렵고, 괴로움에 사무치려면 어떤 노하우(Know-how)가 있는지 알려 달라고 말한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를 필자가 올린 글에 대한 댓글에서 본 적이 있다. 어느 천주교인이 작성한 글인데, 자신은 지금 무척 행복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돈도 많고 모든 것이 풍족해서 걱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종교를 믿고 있어서 정신적으로 안정 되어 있어서 무척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써 놓았다.

 

이세상을 부정 하고, 저 세상을 동경하는 것

 

지금 이 상태가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만 있다면 고통에 대하여 넌더리친다거나 사무칠 이유가 없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고통에 대하여 알 수 있단 말인가.

 

고통, 괴로움, 불만족등을 느껴야만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행복만 있고 고통이 없다면 그 행복이 진짜 행복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세상사람들은 고통은 없고 행복만 있는 세상에 살기 원한다. 그런 세상이 모든 종교가 꿈꾸는 천국일 것이다.

 

고통 스러운 이세상을 하루 빨리 벗어나 저 쪽 세상에서 행복 하게, 그것도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종교의 공통적 목표이다.

 

기독교의 천국, 불교의 극락세계가 바로 그와 같은 이상적인 세계를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추구 하는 것 자체가 허무주의 라는 것이다.

 

허무주의를 영어로 니힐리즘(Nihilism)이라 한다. 니힐(nihil)은 라틴어로서 ()를 뜻한다. 허무하다는 것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을 말한다.

 

기독교의 경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보고, 천국과 같은 영원의 세계를 동경한다. 이처럼 이세상을 부정 하고, 저 세상을 동경하는 것이 니힐리즘의 전형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니힐리즘에서 벗어 날 수 없다. 다만 이세상을 인정하고 직시 하는 종교는 예외이다.그런 종교가 불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초기불교이다.

 

부처님은 이세상을 부정한다거나 저 세상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내 몸과 마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살펴서 고통을 소멸로 이끄는 방법을 제시 하였기 때문에 불교는 결코 허무주의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고 없이 얻는 다는 것

 

천국, 천상, 극락과 같은 세계의 특징은 모든 것을 수고 없이, 노고 없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불로소득의 세상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공짜는 없다. 무엇이든지 자신의 노고에 의하여 얻어진다. 그런 노고를 바탕으로 재산을 많이 축적 하였다면 천국의 삶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생활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그 재산이 언제 없어 질지 모른다. 사회적 지위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지위와 재산을 유지 하기 위하여 기득권자들은 법과 제도를 이용하여 늙어 죽을 때 까지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는다. 공무원연금과 같은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은퇴하여서도 늙어 죽을 때 까지 노고 없이 생활이 보장 되는 시스템은 천국과 거의 가까운 것이다. 일종의 지상천국이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존재 하고, 여기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떠 받들며, 이들이 뿌린 돈으로 살아 가는 것이 현실이다.

 

지상에서 천국과 같은 삶을 누리는 사람들이나 지금 이 상태가 행복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 행복이 영원히 지속 될 수 없다. 언젠가는 다 내려 놓아야 된다. 천국흉내를 내며 영원을 추구 하지만 항상(恒常)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어느 네티즌이나 천주교인이 말한 행복이란 이처럼 일시적 행복이다. 아니 행복이라기 보다 일시적으로 느끼는 행복감일 뿐이다. 행복과 행복감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느낌이 왜 중요한가

 

불교는 진정한 행복을 추구 하는 종교이다. 일시적 행복감에 충만하여 현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부처님이 출현 하신 것이다.

 

그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의 첫 단계는 고통을 아는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 하셨다. 부처님이 최초로 설한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 The Dhammacakkappavattana Sutta)’에 고통 그 자체를 알고, 고통의 원인을 알아서 그 고통의 소멸에 이르고, 그 소멸에 이르기 위한 도닦음에 대하여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행복하다고 해서 행복 한 것이 아니라, 그 행복 자체도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 느낌이다.

 

누구나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 (), (), (), (), ()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다 불교에서는 생각()도 감각기관으로 본다. 이렇게 여섯개의 감각기관이 색성향미촉법이라는 감각 대상에 부딪쳤을 때 아는 거친 마음()’이 일어 나는 데, 이 때 필연적으로 세가지 느낌이 함께 따라 온다.

 

그 세가지 느낌이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덤덤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느낌을 느낄수록 갈애가 일어난 다는 것이다. 갈애가 일어 나면 집착으로 발전 된다. 모두가 바래서 그렇게 된 것이다.

 

지금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바래서 그렇게 많이 모았고, 지금의 사회적 지위도 바램의 결과이다. 그 모든 바램의 출발은 느낌에서부터 시작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느낌은 모두 불만족이고, 괴로움이고, 고통이라는 것이다. 왜 느낌이 괴로움일까.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즐거운 느낌이 들 때는 더 즐거운 느낌을 원하는 갈애가 생긴다.

둘째, 괴로운 느낌이 들 때는 다른 느낌으로 대체하려는 갈애가 일어난다.

셋째, 덤덤한 느낌은 무지의 느낌으로서 갈애의 대상이 된다.

 

 

모든 느낌이 왜 괴로운 것일까

 

점심을 부페에서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는 그 순간은 행복하다. 그러나 불과 4~5시간만 지나면 배에서 쪼르륵~” 하고 소리가 난다. 그 상태에서 몇 시간 더 지나면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된다. 즐거웠던 점심부페가 오래 가지 않아 괴로운 느낌으로 바뀐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이성과 부드러운 사랑이든 거친 사랑이든 사랑을 나눈 순간은 즐거우나 그 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갈증을 느껴 더욱 더 원하게 된다. 이렇게 원하는 갈애가 일어나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고 고통이라는 것이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재산, 지위, 권력등 세속적인 행복도 오래 지속 되었으면 좋으련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그런 행복이 오랫동안 지속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불만족 스럽고, 괴롭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몸이 아파 고통스러울 때 그 고통자체도 괴롭지만, 그 고통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갈애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아파서 죽겠다고 말한다. 정신적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미워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존심이 상하는 말을 들었을 때 미워 죽겠다든가 미워서 미칠지경이다라는 말을 한다. 괴로움과 고통이 그만 멈추기를 바라는 갈애로 발전 된 것이다.

 

덤덤한 느낌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중간적인 느낌이라고 한다. 이런 느낌을 빠알리어로 우뻬까웨다나(upekkha-vedana)’라 한다. 우리말로 표현 하면 평등한 느낌또는 평온한 느낌’, ‘평정한 느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고상한 뜻과 걸맞지 않게 이런 덤덤한 느낌은 알아차림이 없을 때 세속적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지한느낌 또는 지둔한느낌이라고 한다. 멍한 느낌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무덤덤한 중간적인 느낌은 조건이 바뀌면 금방 괴롭거나 즐거운 느낌으로 바뀐다. 그래서 갈애를 추구 한다면 무덤덤한 느낌도 결국 괴로운 것으로 보는 것이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인데

 

느낌에서 갈애로 바뀌어 집착으로 발전 되면 그 때부터 모든 괴로움과 고통은 시작 된다. 모두 다 바래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 바라는 대상은 무엇일까.

 

보통사람들이 바라는 대상은 식욕, 성욕, 안락욕, 재욕, 명예욕의 범주에서 벗어 나지 않는다. 이런 5가지 욕구가 만족 되면 사람들은 행복 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까.

 

바래서 얻어지는 대상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는 그 순간만 행복할 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 진다. 이성과의 거친사랑도, 달콤한 잠자리도, 지금 가지고 있는 돈도, 명예와 권력도 그 때 뿐이다. 이렇게 모든 법은 일어났다가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 일어나고 사라지는 예를 두개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월드컵의 축구 경기가 시작 되기 전에 관중이 하나 둘 씩 자리에 앉는 것을 볼 수 있다. 경기가 시작 되면 비었던 자리는 거의 차게 되고, 경기가 과열 되면 관중의 함성도 함께 커진다. 경기가 끝나면 하나 둘 관중이 썰물 처럼 빠져 나간다. 밀물처럼 들어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간 관중석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경기장은 고요하다.

 

영화서편제를 보면 가족끼리 춤추고 노래 부르고 고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그 장면을 보면 아버지는 춤을 추고, 딸은 창을 하고, 아들은 북으로 장단을 맞추며 한 바탕 신나게 노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지나자 거리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텅빈채 그대로 있다. 단지 한 바탕 흥겹게 놀고 간 행위만 있었을 뿐이다.

 

일시적 행복감 때문에

 

모든 법은 일어 났다가 사라진다. 모든 현상이 다 그렇다. 따라서 행위도 일어나고 사라질 뿐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 이 행복이 영원히 오랫동안 지속 되기를 바란다. 그런 집착은 죽어서도 마찬 가지이다. 죽어서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영원에 대한 집착은 불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여래장 계열의 불교는 왕생극락을 이야기 한다. 그런 극락은 초기불교에서 이야기 하는 열반이나 해탈과 다르다.

 

여래장 계열에서 말하는 극락은 항상하고, 즐거운 곳이고, 진짜 나(진아, 참나)가 머무는 곳이고, 깨끗한 곳이라는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생각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견(常見)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역행이다.

 

부처님은 모든 법이 일어 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 하고 무상함을 이야기 하였는데, 거꾸로 변치 않는 영원을 추구 하거나 영원에 대한 집착을 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배신이다.

 

영원에 대한 집착은 모두 바래서 그렇게 된 것이다. 바라는 대표적인 행위가 기도이다.

 

기도는 신의 은총이나 불보살의 가피를 바래서 하는 것이다. 절대자나 초월적 존재에게 의존 하고 비는 행위는 원인과 결과에 따르는 연기법을 부정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보통사람들이 추구 하는 행복은 무언가 바라는 것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 일시적 행복이라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일시적인 행복감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시적 행복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건다. 일시적 행복감을 맛보기 위하여 순간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문제 되고 있는 아동 성추행 사건이라든가 폭력, 살인등이 일시적인 자기 만족을 채우기 위한 범주에 들어 갈 것이다.

 

사람들은 일시적인 행복감을 행복이라고 착각 하면서 살아 간다. 앞서의 네티즌이나 천주교인이 행복하다고 했을 때 엄밀히 말한다면 진정한 행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행복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진정한 행복이란

 

초기불교에서는 행복에 대하여 두가지로 나누고 있다. 세간적 행복과 출세간적 행복이다. 행복감이 아니라 행복인 것이다. 세간적인 행복과 출세간적인 행복에 대하여 가장 잘 표현 하고 있는 경이 행복경(망갈라숫따, Mangala-sutta, 길상경)이다.

 

부처님이 설한 경전 중에 가장 오래 되었고, 부처님의 원음에 가깝다는 숫따니빠따에 들어 있는 행복경 (Sutta Nipāta , Sn 2.4)의 내용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추구 하는 식욕, 성욕, 안락욕, 재욕, 명예욕과 같은 오욕락과 거리가 멀다. 어리석은 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다든가, 분수에 맞는 생활, 효도, 존경과 감사의 마음등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이야기들이다.

 

이처럼 세간적인 소박한 행복이 있는 가 하면, 행복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사항은 출세간적 행복이다. 사성제를 관조 하는 것, 닙바나(열반)을 성취하는 것, 그래서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것을 지고(至高)의 행복으로 보는 것이다.

 

 

 

 

사진 http://www.pbase.com/kaso/lanka

 

 

 

그 행복경이란 어떤 내용일까. 다음과 같이 빠알리어와 그에 대한 음역, 그리고 영역, 한글번역을 실었다.

 

 

Maha-Mangala Sutta

(망갈라 숫따, 행복경, 길상경)

 

 

1.

Êvam mê suttam êkam samayam bhagavâ Sâvatthiyam viharati Jêtavanê Anâthapindikassa ârâmê,

 

에밤 메에 숫땀 에깜 사마얌 바가와아 사아왓티얌 위하라띠 제에따와네에 아나아타삔디깟사 아아라아메에,

 

Thus have I heard: on one occasion the Exalted one was dwelling at the monastery of Anathapindika, in Jeta's Grove, near Savatthi.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사왓티 시의 자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atha kho aññatarâ dêvatâ abhikkantaya rattiyâ abhikanta vannâ kêvalakappam Jêtavanam bhâsetvâ, yêna bhagavâ tênupasamkami. Upasam kamitvâ bhagavantam abhivâdetvâ êkamantam atthâsi. Êkamantam thitâ kho sâ dêvatâ bhagavantam gâthâya ajjhabhâsi.

 

아타 코 아냐따라아 데에와따아 아빅깐따야 랏띠야아 아비깐따 완나아 께에와라깝빰 제에따와남 바세뜨와아, 예에나 바가와아 떼에누빠삼까미. 우빠삼 까미뜨와아 바가완땀 아비와아데뜨와아 에에까만땀 앗타아시. 에에까만땀 티따아 코 사아 데에와따아 바가완땀 가아타아야 앗자바아시.

 

Now when the night was far spent, a certain deity, whose surpassing splendour illuminated the entire Jeta Grove, came to the presence of the Exalted one, and, drawing near, respectfully saluted Him and stood at one side. Standing thus, he addressed the Exalted one in verse:


그 때 마침 어떤 하늘나라 사람이 한 밤중을 지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따바나를 두루 비추며 세상에 존경받는 님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다가와서 그 하늘사람은 세존께 시로써 이와 같이 말했다.

 

 

3.
Bahû dêvâ manussâ ca mangalâni acintayum
Âkankhamânâ sotthânam brûhi mangala muttamam.

 

바후우 데에와아 마눗사아 짜 망갈라아니 아찐따윰

아아깐타마아사아 솟타아남 부루우히 망갈라 뭇따맘.

 

Many deities and men, yearning after good, have pondered on Blessings. Pray, tell me the Highest Blessing!

 

[하늘사람] “많은 하늘나라 사람과 사람들, 최상의 축복을 소망하면서 행복에관해 생각하오니, 최상의 축복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소서.

 

 

4.

Asêvanâ ca bâlânam panditânam ca sêvanâ
Pûjâ ca pûjaniyânam êtam mangala muttamam

 

아세에와나아 짜 바아라아남 빤디따아남 짜 세에와나아

뿌우자아 짜 뿌우자니야아남 에에땀 망갈라 뭇따맘

 

Not to associate with fools, to associate with the wise, and to honour those who are worthy of honour - this is the Highest Blessing.

 

[세존] “어리석은 사람을 사귀지 않으며,

슬기로운 사람에 가까이 지내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5.

Patirûpa dêsa vâso ca pubbê ca kata puññatâ
Atta sammâ panidhi ca êtam mangala muttamam

 

빠띠루우빠 데에사 와아소 짜 뿝베에 까따 뿐냐따아

앗따 삼마아 빠니디 짜 에에땀 망갈라 뭇따맘

 

To reside in a suitable locality, to have done meritorious actions in the past, and to set oneself in the right course - this is the Highest Blessing.

 

분수에 맞는 곳에서 살고,

일찍이 공덕을 쌓아서,

스스로 바른 서원을 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6.

Bâhu saccam ca sippan ca vinayo ca susikkhito
Subhasitâ ca yâ vâcâ êtam mangala muttamam

 

바아후 삿짬 짜 십빤 짜 위나요 짜 수식키또

수바시따아 짜 야아 와아짜아 에에땀 망갈라 뭇따맘

 

Vast-learning, perfect handicraft, a highly trained discipline, and pleasant speech
- this is the Highest Blessing.

 

많이 배우고 익히며 절제하고

훈련하며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7.

Mâtâ pitu upâtthanam puttadârassa sangaho
Anâkulâ ca kammantâ êtam mangala muttamam

 

마아따아 삐뚜 우빠앗타남 뿟따다아랏사 상가호

아나아꾸라아 짜 깜만따아 에에땀 망갈라 뭇따맘

 

The support of father and mother, the cherishing of wife and children, and peaceful occupations - this is the Highest Blessing.

 

아버지와 어머니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돌보고, 일을 함에 혼란스럽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8.

Dânam ca dhamma cariyâ ca ñâtakanam ca sangaho
Anavajjâni kammâni êtam mangala muttamam

 

다아남 짜 담마 짜리야아 짜 냐아따까남 짜 상가호

아나왓자아니 깜마아니 에에땀 망갈라 뭇따맘

 

Liberality, righteous conduct, the helping of relatives, and blameless actions
- this is the Highest Blessing.

 

나누어 주고 정의롭게 살고,

친지를 보호하며, 비난 받지 않는 행동을 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9.

Ârati virati pâpâ majjapânâ ca saññamo
Appamâdo ca dhammêsu êtam mangala muttamam

 

아아라띠 위라띠 빠아빠아 맛자빠아나아 짜 산냐모

압빠마아도 짜 담메에수 에에땀 망갈라 뭇따맘

 

To cease and abstain from evil, forbearance with respect to intoxicants, and steadfastness in virtue - this is the Highest Blessing.

 

악함을 싫어하여 멀리하고,

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10.

Gâravo ca nivâto ca santutthi ca kataññutâ
Kâlêna dhamma savanam êtam mangala muttamam

 

가아라워 짜 니와아또 짜 산뚯티 짜 까딴뉴따아

까아레에나 담마 사와남 에에땀 망갈라 뭇따맘

 

Reverence, humility, contentment, gratitude and the opportune hearing of the Dhamma
- this is the Highest Blessing.

 

존경하는 것과 겸손한 것,

만족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때에 맞추어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11.

Khanti ca sôvacassatâ samanânam ca dassanam
Kâlêna dhamma sâkacchâ êtam mangala muttamam

 

칸띠 짜 소오와짯사따아 사마나아남 짜 닷사남

까아레에나 담마 사아깟짜아 에땀 망갈라 뭇따맘

 

Patience, obedience, sight of the Samanas (Sanctified ones), and religious discussions at due seasons - this is the Highest Blessing.

 

인내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서로 논의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12.

Tapô ca brahman cariyam ca ariya saccâ na dassanam
Nibbâna sacchi kiriyâ ca êtam mangala muttamam

 

따뽀오 짜 브라흐만 짜리얌 짜 아리야 삿짜아 나 닷사남

닙바아나 삿찌 끼리야야 짜 에에땀 망갈라 뭇따맘

 

Self Control, Holy Life, perception of the Noble Truths, and the realisation of Nibbana
- this is the Highest Blessing.

 

감관을 수호하여 청정하게 살며

거룩한 진리를 관조하여, 열반을 이루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13.

Phutthassa lôka dhammêhi cittam yassa na kampati
Asokam virajam khêmam êtam mangala muttamam

 

풋탓사 로오까 담메에히 찟땀 얏사 나 깜빠띠

아소깜 위라잠 케에맘 에에땀 망갈라 뭇따맘

 

He whose mind does not flutter by contact with worldly contingencies, Sorrowless, Stainless, and Secure - this is the Highest Blessing.

 

세상살이 많은 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슬픔 없이 티끌 없이 안온한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14.

êtâdisâni katvâna sabbattha maparâjitâ
Sabbhattha sotthim gacchanti tam têsam mangala muttamanti.

 

에에따아디사아니 까뜨와아나 삽밧타 마빠라아지따아

삽밧타 솟팀 갓찬띠 땀 떼에삼 망갈라 뭇따만띠.

 

To them, fulfilling matters such as these, every-where invincible, in every way moving happily - these are the Highest Blessings.

 

이러한 방법으로 그 길을 따르면,

어디서든 실패하지 아니하고

모든 곳에서 번영하리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출처 ;

1)빠알리어원문 및 영문 ; 붓다네트(http://www.buddhanet.net/pali_chant.htm)

2)우리말해석; 전재성님의 숫따니빠따에서

3)빠알리 음역; 진흙속의연꽃

 

 

 

 

망갈라 숫따 챈팅(스리랑카)

 

 

 

망갈라숫따 챈팅 음성파일

17-chant-17.mp3

 

 

 

테라와다 불교의 예불문으로도 사용 되는 행복경은 어떻게 살아 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추구 하는 길인지 부처님의 음성을 통하여 생생하게 알려 주고 있다.

 

행복경을 분석하면

 

이 행복경에 대하여 좀 더 세밀히 분석 하기 위하여 영문판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Mangala_Sutta)를 참고 하였다.

 

 

행복경의 분석

Gp.1

Not associating with fools

어리석은 사람을 사귀지 않는

Associating with the wise

슬기로운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Expressing respect to those worthy of respect

존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 하는

 

 

Gp.2

Living in an amenable location

분수에 맞는 곳에서 사는

Having meritorious deeds in one's past

일찍이 공덕을 쌓는

Setting oneself up properly in life

스스로 바른 서원을 하는

 

 

Gp.3

Learnedness

많이 배우는

Artfulness

기술을 익히는

Self-discipline

스스로 수행하는

Artful speech

의미 있는 대화를 하는

 

Gp.4

Filial piety

부모를 섬기는

Cherishing one's children

자식을 돌보는

Cherishing one's spouse

배우자를 돌보는

Not leaving work undone

일을 함에 혼란스럽지 않는

 

Gp.5

Generosity

관용을 배푸는

Dhamma practice

법대로 사는

Caring for extended family

친지를 보호 하는

Blameless work

비난 받지 않는 행동을 하는

 

Gp.6

Avoiding unwholesomeness

악함을 싫어하여 멀리하는

Not drinking intoxicants

마시는 것을 절제 하는

Non-recklessness in the Dhamma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는

 

 

Gp.7

Respect

존경하는

Humility

겸손한

Contentment

만족할 아는

Gratitude

감사할 아는

Listening regularly to Dhamma teachings

때에 맞추어 가르침을 듣는

Gp.8

Patience

인내하는

Openness to Criticism

온화한 마음을 갖는

Sight of a True Monk

수행자를 만나는

Regular discussion of the Dhamma

가르을  서로 논의하는

 

Gp.9

Practising Austerities

감각기관을 단속 하는

Practising the Brahma-faring

청정하게 사는

Seeing the Four Noble Truths

사성제를 관조 하는

Attainment of Nirvana

열반을 성취하는

 

Gp.10

Mind free of Worldly Vicissitudes

세상살이의 많은 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는

Sorrowlessness

슬픔이 없이 안온한

Free of Subtle Defilements

티끌 없이 안온한

Blissful Mind

나위없는  기쁜 마음을 갖는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Mangala_Sutta

 

 

 

Maha-Mangala Sutta.doc

 

 

 

 

 

2010-07-07

진흙속의연꽃

 

Maha-Mangala Sutta.doc
0.08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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