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자신의 악행을 되새겨 본다는 것, 법구경15 쭌다수까리까 이야기

담마다사 이병욱 2010. 7. 16. 17:53

 

자신의 악행을 되새겨 본다는 것, 법구경15 쭌다수까리까 이야기

 

 

직업을 바꾼 사람

 

불교공부를 하면서 직업을 바꾼 사람이 있다. 평소 음식점을 열심히 운영하던 분이 어느날 갑자기 식당을 그만 두었다. 불교교양대학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자신이 하는 일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맞지 않아서라는 것이었다.

 

그분은 음식점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고기와 술을 취급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 행위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라 한다. 결정적인 요인으로서 살아 있는 민물고기를 통째로 요리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과감히 정리 하였다는 것이다.

 

음식점을 정리하고 나서 특별히 할 일이 없자 그분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도시의 들개처럼 일을 찾아서 여기 저기 방황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부처님법에 어긋 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직업이 있다. 모두 다 생계유지의 수단이다. 직업중에는 단지 먹고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택하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자기실현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삼는 직업도 있다. 또 직업 중에서는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지탄 받는 직업도 있다.

 

이들 직업의 공통점은 모두 업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것도 매일, 매달, 평생 업을 지으면서 살아 간다.

 

해서 안되는 직업

 

불교에서 업()은 내생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직업에 종사 하느냐에 따라 내생도 각자 다르게 결정 될 것이다. 내생을 결정할 정도로 직업이 중요하다면, 해서 안되는 직업도 있을 것이다. 이를 팔정도에서 정명(正命)이라 하는데 바르게 생명을 유지하기(sammā-ājīva, Right livelihood)로 풀이 된다.

 

팔정도에서 금하는 직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무기와 관련된 직업

둘째, 노예나 매춘에 관련된 직업

셋째, 동물을 도살하는 직업

넷째, 독약이나 술이나 마약을 거래 하는 직업

 

 

주로 살생, 음행, 음주와 관련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 금하는 직업이 팔정도의 정업(正業)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업과 정어는 정명과 어떤 관계일까

 

팔정도의 정업은 바르게 행동하기(sammā-kammanta, Right action)를 말하는데,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살생을 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도적질을 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간음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바르게 행동하기(正業)의 연장선상이 바르게 생계를 유지하기(正命)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르게 행동하기(正業)는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을 말한다. 그렇다면 말로 짓는 구업(口業)도 팔정도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팔정도에서 정어(正語)이다.

 

정어는 바르게 말하기(sammā-vācā, Right speech)이다. 무엇을 바르게 말하는 것일까.

 

 

첫째,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이간질을 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거친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넷째, 경솔한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정어, 정업, 정명이 계()인 이유

 

이렇게 놓고 보니 신구의 삼업중 의업만 빼고 모두 팔정도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신업과 구업은 팔정도에서 정업과 정어와 관련이 있고, 특히 정업과 관련된 생계유지 수단으로서 갖지 말아야 할 직업이 정명임을 알 수 있다.

 

이들 정어, 정업, 정명은 계()에 속한다. 팔정도를 정혜 삼학으로 나누었을 때 계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를 잘 지킨다는 의미는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르게 생명을 유지(正命)하는 것임을 말한다.

 

의도가 업이다

 

자기가 하는 행위를 업이라 한다. 그런데 업의 특성은 지은 자가 지은대로 받는 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행위가 전부 업이 되지 않는다. 반드시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행한 행위가 업인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cetanāha bhikkhave kamma vadāmi.

(쩨따나아함 빅카웨 깜맘 와다아미)

비구들이여, 나는 의도가 업이라고 말한다.”

(A6:63, 앙굿따라니까야)

 

 

지은 업에 따라 다음생이 결정 된다. 그런데 윤회는 순간윤회와 일생윤회로 설명 될 수 있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태어 나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화를 내고 뜨거우면 현재에도 지옥을 사는 것이고, 죽어서도 지옥에 사는 것이다. 아귀처럼 인색하게 살면 죽어서도 아귀로 태어난다.

 

반면에 색계의 마음을 내면 색계에 태어나고, 무색계의 마음을 내면 무색계에 태어난다. 또 출세간의 마음이 일어나면 집착을 하지 않고 갈애가 없는 마음이 일어나서 태어나지 않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마음상태에 따라 다음생이 결정 되는 것이다.

 

자아를 강화하는 삶

 

이렇게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현재의 삶의 질이 결정되고, 또한 다음세계의 태어나는 곳이 결정된다. 그런 배경에는 마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초기불교의 전통을 잘 계승 하고 있는 테라와다 불교에서 마음을 다음과 같이 보기 때문이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기능을 하고,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만 있기 때문에,

한 순간에 하나 밖에 알 수 없으며,

마음은 대상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마음은 일어난 즉시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BBS불교강좌, 묘원법사 2010년 6월 30 강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라 순간 순간 원인과 결과에 따른 조건으로 생멸 되는 하나의 ()의 연속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의도를 가진 업을 짓지 않는다면, 마음의 대상이 없어서 마음이 일어 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세상이 없는 것과 같다. 오온, 12, 18계로 이루어진 이 세상이 없는 것이다. 그 상태를 열반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초기경에서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설명한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태어남이 없고

마음이 현존할 때 살아있는 것

마음이 무너지면 세상은 죽은 것이니

(Nd1.42, 닛데사)

 

그러나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아를 강화하는 삶을 살아 왔기 때문에 자아가 없다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래서 천국이나 극락과 같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은 무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직업중에 어떤 직업이 가장 좋을까. 아마도 업을 짓지 않는 직업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런 직업이라면 상가(Sangha)공동체 밖에 없다. 그러나 생활인들은 어쩔 수 없이 업을 지으면서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이왕 업을 짓고 살아 갈 바에 내생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직업은 피해야 한다. 그런 직업이 살생하는 직업, 술파는 직업, 인신매매 하는 직업이다.

 

이와 같은 직업 중에 가장 피해야 할 직업이 살생과 관련된 직업이다. 살생과 관련된 직업이야기가 법구경 게송 15쭌다수까리까(Cundasukarika)’ 이야기이다.

 

쭌다수까리까는 백정이었다. 매우 잔인한 성격을 가진 그는 긴 세월 동안 돼지를 잡아 생계를 유지 하였는데, 죽을 때 그 과보로 아비지옥(阿鼻地獄, Avici-Niraya)에 태어 나게 되었다.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고통을 겪우면서 자신의 악행을 되새기며 비통해 하는 것이다.

 

 

 

 

 

 

 

 

1. 빠알리어 법구경( Bhikkhu Pesala)

 

1-15

Idha socati pecca socati,               이다 소짜띠 뺏짜 소짜띠

pāpakārī ubhayattha socati             빠아빠까아리 우바얏타 소짜띠

So socati so vihannati,                   소 소짜띠 소 위한나띠

disvā kammakiliṭṭham attano            디스와아 깜마낄릿탐 앗따노

 

 

2. 우리말 법구경

 

 

1) 거해스님

 

1-15

이 세상에서도 그는 비탄에 빠지고

다음 세상에서도 그는 비탄에 빠진다.

이처럼 악한 행동을 한 사람은

양쪽 세상 모두에서 괴로움을 겪는다.

그가 더욱 괴로운 것은

고통을 겪으며 자기 악행을 보고 되새기는 것이다.

 

 

2) 석지현스님

 

1-15

이 세상에 고통받고 다음 세상에서도 고통받는다.

저 악()을 행한 사람은 이 양쪽에서 모두 고통받는다.

그는 그 자신이 행한 악행을 보며 몹시 비탄해 하고 있다.

 

 

3. 영어 법구경

 

 

1) Acharya Buddharakkhita

 

1-15

The evil-doer grieves here and hereafter;

 he grieves in both the worlds.

He laments and is afflicted,

recollecting his own impure deeds.

 

 

2) Thanissaro Bhikkhu

 

1-15

Here    he grieves

              he grieves  hereafter.

In both worlds

the wrong-doer grieves.

He grieves, he's afflicted,

seeing the corruption

           of his deeds.

 

 

5. 한문 법구경(法增比丘)

 

1-15

今世悲苦受,來世悲苦受,

造作惡業者,兩處悲苦受,

彼見己惡業,故悲傷苦惱。

 

 

6. 일어 법구경(西津紘一)

 

1-15

いことって何ですか?
  今苦しみ
  後でも苦しむことですよ
  自分のしたことを見て
  何度も苦しむことですよ   

 

 

7. 법구경 인연담

 

 

1) 영어 인연담(Daw Mya Tin)

 

 

The Story of Cundasukarika

While residing at the Veluvana monastery in Rajagaha, the Buddha uttered Verse (15) of this book, with reference to Cunda, the pork-butcher.

Once, in a village not far away from the Veluvana monastery, there lived a very cruel and hard-hearted pork-butcher, by the name of Cunda. Cunda was a pork-butcher for over fifty-five years; all this time he had not done a single meritorious deed. Before he died, he was in such great pain and agony that he was grunting 꿀꿀and squealing깩깩 and kept on moving about on his hands and knees like a pig for seven whole days. In fact, even before he died, he was suffering as if he were in Niraya.* on the seventh day, the pork-butcher died and was reborn in Avici Niraya. Thus, the evil-doer must always suffer for the evil deeds done by him; he suffers in this world as well as in the next.

In this connection, the Buddha spoke in verse as follows:

 

Verse 15:

Here he grieves, hereafter he grieves;

the evil-doer grieves in both existences.

He grieves and he suffers anguish

when he sees the depravity of his own deeds.

 

 

* Niraya or Naraka: a place of continuous torment sometimes compared with hell; but it is different from hell because suffering in Niraya is not everlasting like suffering in hell. Avici Niraya is the most fearful of all Nirayas.

 

 

2)우리말 인연담(진흙속의연꽃)

 

 

쭌다수까리까 이야기

 

부처님이 라자가하의 벨루와나 승원에 머물고 계실 때, 백정 쭌다와 관련하여 게송 15번을 읊으시었다.

 

벨루와나 승원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잔인하고 거친마음의 소유자인 백정 쭌다가 살았다. 쭌다는 백정으로 55년을 살았는데 일생동안 단 한차례도 선행을 하지 않았다.

 

그는 죽기전에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다. 7일 동안 마치 돼지처럼 두 팔을 오무리고 꿀꿀거리고 꽥꽥 소리를 치기도 하였다. 사실 그는 살아 있을 때 지옥(Niraya)의 고통을 맛 본 것이다. 

 

7일째 되는 날, 그 백정은 죽었고 아비지옥(Avici Niraya, 아위찌 니라야)에 곧바로 태어 났다.

 

악한 행위를 한자는 반드시 그 악행에 대한 과보를 받는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지옥과 같은 고통을 살고 있고 있다면, 죽어서도 지옥에 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리와 관련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시었다.

 

 

 

이 세상에서도 그는 비탄에 빠지고

다음 세상에서도 그는 비탄에 빠진다.

이처럼 악한 행동을 한 사람은

양쪽 세상 모두에서 괴로움을 겪는다.

그가 더욱 괴로운 것은

고통을 겪으며 자기 악행을 보고 되새기는 것이다.

 

 

 

 

 

 

법구경15 쭌다수까리까 이야기.doc

 

 

 

2010-07-1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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