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죽음직전에 보는 표상, 법구경 16 우빠사까 담미까 이야기

담마다사 이병욱 2010. 7. 24. 15:44

 

죽음직전에 보는 표상, 법구경 16 우빠사까 담미까 이야기

 

 

사람들은 한 순간에 하나의 일 밖에 못한다.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주의집중을 하고 있으면 전혀 들리지 않는 이치와 같다. 즐거웠다가도 금방 슬픔 마음이 드는 것 또한 한 순간에 하나의 일 밖에 못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될 것이다.

 

동아시아 불교에서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많이 한다. 불교는 마음이라 하고, 불교공부하는 것을 마음공부한다고도 말한다. 모든 팔만사천법문을 한 글자로 요약하면 마음이라 하여,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하고 무엇이든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하는 마음만능주의가 유행한다. 과연 마음이란 무엇일까.

 

비디오카메라로 찍듯이

 

마음에 관하여 동아시아 전통의 불교와 초기불교는 다르다. 동아시아의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마음을 하나로 간주 한다. 변치 않는 본마음 참나가 있는데 단지 번뇌와 망념으로 인하여 하얀 도화지에 하나의 점이 찍힌 것 같은, 흰 무명 광목에 하나의 잉크방울이 떨어진 것 같은 오염된 마음이 있는 것으로 본다. 그 오염된 마음은 번뇌와 망념으로 인하여 점점 더 더러워 지는데, 거울의 때를 닦듯이, 바다의 파도를 잠잠하게 하듯이 오염된 마음을 닦아야 성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염된 마음을 보통 제8식 아뢰야식이라 하는데 모든 일거수 일투족과 생각하는 모든 것을 모두 이 제8식 아뢰야식에 낱낱이 기록 된다고 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누군가 자신의 행위를 지켜 보듯이  비디오카메라로 찍어서 모두 보관 하고 있는 곳이다라고 설명한다.

 

이 아뢰야식을 깨끗이 비워 내지 않으면 윤회 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몸을 갈아 입는 옷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몸을 갈아 입기 전에 49일간 중유로 머물게 되는데, 이 때 비디오에 낱낱이 기록된 영상과 음성을 보면서 어느세계로 갈 것인지 결정된다고 한다. 반면에 초기불교에서 보는 마음은 다르다.

 

바왕가(bhavaga)의 마음

 

초기불교에서는 마음을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현상으로 본다. 순간 순간 생멸하는 마음이 조건에 따라 상속 되어 가는 하나의 연기적 흐름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개의 선으로 연결 되는 하나의 마음으로 보지 않는다.

 

영원불변하는 영혼과 같은 개념을 인정 하지 않고 순간의 마음만 있어서 하나의 점들의 연속으로 보는데, 그 점이 끊어 진다면 마음의 대상이 없어서 마음이 일어 나지 않기 때문에 오온 12 18계의 세상도 없을 것이다. 이를 초기불교에서 열반과 해탈로 설명한다.

 

초기불교에서는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아뢰야식과 같은 저장창고와 같은 마음은 존재 하지 않고 오로지 이 순간의 마음만 있을 뿐이다. 그런 마음은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일어나고, 오로지 한 순간에 한가지 일 밖에 못하고, 일어난 마음은 반드시 과보를 남기고 즉시 사라진다는 대명제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현상은 눈깜짝 할 사이에도 무수히 일어 나는데, 이를 아비담마에서 이를 바왕가(bhavaga)이론으로 설명한다.

 

어떻게 죽어서 어떻게 태어 나는가

 

바왕가의 마음(bhavaga citta)을 우리말로 잠재의식이라고 한다. 이런 바왕가는 크게 세가지 마음이다. , 재생연결식, 바왕가의 마음, 죽음의 의식이다. 이 바왕가는 일생동안 지속되는데 육근이 육경에 부딫칠 때 마다 마음이 일어나 과보를 남기고 다음의 마음으로 상속하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것이 순간 순간 일어나고 사라짐으로 보고, 그 과보가 다음마음으로 상속되어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처럼 보았을 때, 이런 현상도 하나의 윤회로 본다. 이렇게 마음을 생멸로 본다는 것은 윤회도 순간윤회일생윤회두가지가 있는 것으로 본다. 이를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다.

 

 

 

죽음과 재생

 

전생

현생

대상

 

 

죽음 직전의 마음 (**K/ KN/ GN 중에 하나가 대상이 됨)

 

마음

Pt

···

···

Cc

Pt

···

···

B

A

C

U

P

E

Sp

St

V

J

J

J

J

J

Cc

 

 

 

 

 

 

 

 

 

 

 

 

 

 

 

 

 

 

 

 

 

 

 

 

내생

3

4

(**)가 대상이 된다

내생의 대상

 

 

 

Pt

B1

B2

B3

···

B16

M

J

J

J

J

J

J

J

B

···

···

Cc

Pt

···

···

Cc

Pt

···

···

Cc

 

 

 

 

 

 

 

 

 

 

 

 

 

 

 

 

 

 

 

 

 

 

 

 

 

 

 

B : Bhavaga (바왕가), A : Atīta-bhavaga (지나간 바왕가), C : bhavaga-calana (바왕가의 동요)

U : bhavaga-uccheda (바왕가의 끊어짐), P : Pañcadvārāvajjana (오문 전향), E : 오식 중 하나

Sp : Sampaicchana (받아들임), St : Santīraa (조사), V : Votthapana (결정), M : Manodvārāvajjana (의문전향)

J : Javana (속행), T : Tadārammaa (등록), K : (kamma), KN : 업의 표상 (kamma-nimitta)

GN : 태어날 곳의 표상 (gati-nimitta), Pt : 재생연결식 (paisandhi), Cc : 죽음의 마음 (cuti-citta)

출처; 아비담마 길라잡이

 

 

표를 보면 바왕가는 B(주황면칠)로 표시 되었고, 재생연결식은 Pt(연한파랑색), 죽음의 마음은 Cc(노랑색)로 표시 되었다. 한 생 동안 바왕가는 무수히 많이 있지만, 재생연결식과 죽음의 마음은 오직 한 번 밖에 일어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모두 마음이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짐의 연속이라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49일 동안 머물렀던 심판 받는 다는 중유의 개념없이 죽자 마자 즉시 다른 존재로 태어 나는 것이다. 마치 한순간에 마음이 바뀌듯이 죽음과 탄생도 동일 하다는 것이다.

 

죽는 순간의 마음에 따라

 

그렇다면 죽는 순간의 마지막 마음이 대단히 중요 하다는 것이다. 죽는 순간에 어떤 마음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내생이 결정 되기 때문이다.

 

순간 순간 마음의 생멸로 인하여 순간윤회가 한 존재에서 멈추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마지막 마음을 죽음의 마음또는 죽음의식또는 사몰심(死沒心)’이라 한다.

 

사몰심이 일어나면 한 존재를 구성 하고 있는 몸과 마음의 성향 즉, 기질이 바뀌게 된다. 이제까지 나()라는 존재를 구성 하고 있었던 얼굴과 같은 신체적인 형상이나 성향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 나게 하는 요인이 되는 사몰심도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현생의 바왕가에 있어서 최후의 마음이다. 그 마지막 죽음의 마음에서 보는 대상이 다음생을 결정하는 것으로 초기불교에서 설명한다.

 

다음생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는 대상은 어떤 것일까 초기불교에서 다음과 같은 세가지 중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첫째, 살면서 지었던 행위의 회상인 업(kamma)이 나타난다(K).

둘째, 업과 관련된 주변 조건인 업의 표상(kamma-nimitta)이 나타난다(KN).

셋째, 태어날 곳의 표상(gati-nimitta)이 나타난다(GN).

 

 

삶의 과정에서 가장 강렬한 사건이나 그 업과 관련된 표상이 떠 오르는데 그 표상을 대상으로 다음생을 결정하는 재생연결식이 일어 난다는 것이다.

 

재생연결식은 12연기에서 말하는 식(, 알름알이)인데 이 식으로 인하여 물질과 정신이 만들어져 재생하게 된다.

 

그런데 마지막에 일어나는 표상을 자신이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제까지 살아온 과정은 불선업의 연속이었는데 죽는 순간에서 천상의 표상이 일어나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가능할까.

 

사람이 죽어 갈 때 해야 할일

 

재생되면 이전 생의 나의 몸과 마음이 아니다. 전혀 다른 몸이 될 수 있어서 반드시 인간의 몸이 아닐 수 있다. 이 경우 자신의 지은 업에 적합한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전 생의 바왕가와 다음생의 바왕가는 서로 다르다. 삶의 과정에서 수 많은 바왕가의 마음은 일어 나지만 재생연결식과 죽음의 의식은 일생에 걸쳐 오로지 한번 밖에 일어 나지 않는다. 따라서 마지막 죽음의 의식에서 태어 날 곳의 표상을 보고, 그 표상을 보고 재생연결식이 일어나면 새로운 몸과 기질이 형성 되는 것이다.

 

현재의 몸과 기질은 죽음의 의식이 일어 날 때까지 지속된다. 그래서 한번 사람으로 태어 나면 늙어 죽을 때까지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한번 개로 태어 나면 죽을 때까지 개라는 몸과 개라는 기질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렇게 마지막 죽는 순간의 표상에 따라 다음생의 몸과 마음이 결정 되는 것이 초기불교의 아비담마이론이다. 하나의 실례로 초기경전에 언급된 만뚜까(Manduka, 개구리)이야기 있다.

 

개구리가 살았는데 그 때 당시 부처님설법중이었다. 그 설법의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도 듣기 좋아서 기쁨으로 충만하였는데 마침 지나가는 목동이 창으로 찔러 죽였다. 그러나 기쁨으로 충만한 마음으로 마지막 죽음의 마음이 일어 났으므로 그 개구리는 천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이처럼 마지막 죽는 순간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일화이다.

 

이처럼 개구리에서 천인으로 극적인 변화가 가능한 것은 죽는 순간의 마지막 의식에 달려 있다. 그래서 남방불자들은 사람이 죽어 갈 때 좋은 세계에 태어 날 수 있도록 가급적 좋았던 기억을 떠 올리게 한다고 한다.

 

불사를 많이 하여 공덕을 많이 쌓았던 일, 법회에 참여 하여 기쁨에 충만하였던 마음등을 떠 올리게 하면 그 충만한 마음이 다음생을 결정하는 위의 세가지, 업과 업의 표상과 내생의 표상 중의 하나가 떠 올라서 그 세계에 재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악업을 지은 사람은 죽어 가면서 과거에 저지른 악업을 되새길 것이기 때문에 떠 오르는 표상 역시 끔찍 한 것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어이 똥통간을 향하여

 

순간 순간 마음이 일어나 순간윤회를 하여 일생을 살다가 마지막 죽음의 의식이 일어나 일생윤회를 마치고 재생하게 될 세상은 몇 개나 될까.

 

어느 존재이든지 부처님법에 따른 출세간의 수행을 하여 탐진치가 소멸되어아라한이 되지 않았다면 다시 태어 날 수 밖에 없다. 다시 태어 나는 세계는 총 31개라고 초기불교에서 말한다. 31개의 세계를 크게 나누어 욕계, 색계, 무색계라 하여 삼계라 한다. , 자신이 지은 업에 적합한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다.

 

어느 수행자가 세상의 성욕, 식욕, 안락욕, 재물욕, 명예욕과 같은 세속의 욕망을 염오 하여 산좋고 물맑고 공기좋은 곳에서 세상의 오염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선정수행을 닦았다면, 그 수행자는 그 공덕으로 마지막 죽음의 마음이 일어날 때 색계에 태어 날 것이다. 그 곳은 남녀의 구분이 없는 중성세계로서 항상 기쁨과 행복과 평온이 넘치는 세계이다. 선정수행을 하면서 맛 본 경험을 죽어서 저 세계에서도 맛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욕계에서 오염원에 찌들대로 찌든 존재가 색계세계에 태어 났다면 얼마나 견딜까. 아마도 심심해서 견디지 못하고 늘 하던 버릇대로 오욕락을 그리워 할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구더기에게 비단이불을 덮여 주었더니, 기어이 똥통간을 향하여 가려는 것과 같다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삶과 죽음을 거꾸로 사는 존재들

 

선정을 닦는 수행자가 세간의 오욕락을 염오할 뿐만 아니라, 번뇌와 망념도 염오하여 아무 마음도 일어 나지 않는 무심(無心)의 수행을 닦았다면 그는 어느 세계에 태어나게 될까.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일까 색계세계에 그런 세상이 있다. 색계 4선천의 무상유정천(無想有精天)이 바로 그 곳이다.

 

무상유정천은 빠알리어로 ‘아산냐 삿따(asañña-satta)’라고 한다. 이 말 뜻은 ‘인식이 없는 중생’이라는 의미이다. 즉 마음이 아예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인식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무상유정천에 태어나는 존재들은 마음과 인식이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라 여기고 인식에 대한 탐욕을 제거 하여 제4선을 닦아서 얻은 결과이다. 그들은 단지 그 곳에서 생명이 있는 육체만을 가지고 태어나서 머물다가 그 수명이 다 하면 다시 다른 곳에서 재생 하게 된다.

 

무상유정천에 사는 존재는 마치 아무 생각 없이 잠들어 있는 것과 같다. 아예 마음이 일어 나지 않기 때문에 몸은 살아 있으나 마음은 죽어 있는 것과 같아서 마치 길거리의 동상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런 무상유정천 중생들도 의식이 깨어 날 때가 있을 것이다. 수명이 다 되어 죽을 때 비로서 인식작용이 일어 나는 것이다. 무상유정천에 사는 존재들은 삶과 죽음을 거꾸로 사는 것이다.

 

재가불자들이 갈 수 있는 곳

 

이 세상을 살아 가는 사람중에는 오욕락도 염오하고 인식하는 것 자체도 염오 하는 존재도 있지만, 온갖 오염원에 노출되는 몸 자체를 염오하는 중생도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그는 물질적 존재나 처소가 없고 오로지 마음만 있는  무색계의 세계에 태어 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존재는 그 복을 누릴수 있는 선정 수행을 매순간 닦아서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그가 바라는 세계에 태어 나는 것이다. 그러나 색계나 무색계가 재미 없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세간에서 5욕락을 추구 하며, 온갖 오염원들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색계나 무색계의 선정수행을 닦지 않는 한 그런 곳에 태어 날 수 없다. 5욕락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세계는 욕계천상일 것이다. 그런데 욕계천상과 같이 수고 없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상에 나려면 그에 합당한 공덕을 쌓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재가불자들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세계가 욕계천상이라 한다.오욕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죽어서 욕계천상에 태어나려면 어떤 공덕을 쌓아야 할까.

 

욕계천상을 보면

 

재가자들이 오계를 지키며 보시를 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 가면 천상에 태어 난다고 한다. 선정수행을 닦지 않았다면 태어 나는 곳은 욕계천상이다. 그런 욕계천상은 어떤 곳일까, 이들 세계에 대하여 표로 요약하였다.

 

 

 

욕계의 천상

 

욕계천상

인간년

  

1

타화자재천

(빠라님미따와사왓띠, Para-nimmita-vasavatti)

92억년

-남에 의해서 창조된 것을 지배할 수 있는 천신

-자기 스스로 욕망의 대상을 창조 하지 못하지만 시종들이 창조해 주는 것을 지배 하고 제어 할 수 있음

2

화락천

(님마나라띠, Nimmanarati)

23억년

 

정신적인 힘으로 그들이 원하는 감각적욕망의 대상을 창조할 능력을 갖추고 있음

3

도솔천

(뚜시따, Tusita)

57천년

-주석서에는 희열을 뜻하는 삐띠(piti) 로 설명

-미륵(메떼야, Metteyya)보살이 머물고 있는 곳

4

야마천

(야마, Yama)

14천년

-죽음을 관장 하는 막강한 신

-주석서에서는 신성한 행복을 얻어서 두루 갖추고 있는 존재로 정의

5

삼십삼천

(따와띰사, Tavatimsa)

36백만년

- 33에 속하는 천신이라는 의미

-우두머리는 인드라(Indra)

-인드라는 삭까(Sakka)라고도 하며  ‘제석’ 또는 ‘제석천왕’이라 함.

-삼십삼천을 ‘제석천’이라고도 부름

6

사대왕천

(짜뚜 마하라지까, Catu-maharajika)

9백만년

-인간보다 더 풍부한 감각적 쾌락이 있음

- 동천왕 다따랏타(Datarattha);음악가인 간답바를 통치

-남천왕 위룰하까(Virulhaka); 보물을 관리는 하는 꿈반다를 통치

-서천왕 위루빡카(Virupakkha); 용들을 통치

-북천왕 웻사와나(Vessavana); 약카들을 통치

참고 ; 아비담마 길라잡이, 진흙속의연꽃 편집(2010-07-24)

 

 

 

전쟁의 신, 비사문천(毘沙門天)

 

표에서 인간의 바로 위에 있는 천상이 사대왕천이다. 사천왕은 사찰에 가면 볼 수 있다. 동쪽의 천왕은 지국천(持國天, Dhataraṭṭha)인데 천상의 음악가인 간답바(Gandabba)들을 통치하고, 남쪽의 천왕은 증장천(增長天, Virūhaka)인데 숲이나 산이나 숨겨진 보물을 관리하는 꿈반다(Kumbhaṇḍa)들을 통치하고 서쪽의 천왕인 광목천(廣目天, Virūpakkha)은 용들을 통치하며, 북쪽의 천왕인 비사문천(毘沙門天, Vessavaa)은 야차(Yakkha)들을 통치한다고 한다.

 

이들은 위로는 제석(Sakka)을 섬기고 아래로는 팔부중(八部衆)을 지배하여 불법에 귀의한 중생을 보호한다고 한다.

 

이들 천왕중에 가장 무섭고 험상굳게 생긴 천왕이 아마도 북쪽을 지키는 웻사와나 일 것이다. 웻사와나는 가장 무서울 것 같은 야차를 통치하는 신인데 한자어로 비사문천(毘沙門天)이라 하고 전쟁의 신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역사 드라마를 보면 전국시대에 무장들이 비사문천을 경배 하는가 하면 비()자를 군기로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비사문천(毘沙門天)

사대왕천에서 북쪽을 지키는 신으로서 야차를 통치한다.

전쟁의 신으로 알려져 있고, 무장들이 경배하는 신이다.

 

 

 

가장 수승한 욕계천상은

 

이들 욕계천상중에 어느 천상이 가장 수승한 천상일까. 법구경의 16번 게송인 담미까의 이야기를 보면 천상에서 온 여섯수레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부처님 당시 재가수행자인 담미까는 평소 보시하고 지계하는 삶을 살았는데 죽음이 임박해서 천상에서 온 여섯수레를 보았다는 것이다. 화려하게 장식된 여섯수레는 욕계천상의 여섯개의 세계를 상징한다.

 

평소 선행공덕을 쌓은 과보로 여섯개의 천상중 하나를 고르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담미까는 뚜시따(도솔천)에서 온 수레를 선택하였다.

 

뚜시따는 구체적으로 어떤 천상일까. 주석서에는 희열을 뜻하는 삐띠(piti)로 설명하고 있다. 삐띠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기쁨이라는 뜻이다. 또 행복이라는 뜻도 되는데, 이 경우 색계천상에서 수카(sukha)  잔잔한 행복인 것에 비하여 , 삐띠는 거친행복으로 표현 하기도 한다.

 

항상 즐거움과 기쁨만 있는 도솔천은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인간세계에 내려 오기 전에 이곳 도솔천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욕계천상 중에서 가장 수승한 천상이 아닐까.

 

 

 

 

도솔천의 수행자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간세계에 내려 오기 전에 도솔천에서 머물렀다.

 

 

 

출세간은 어디에 있을까

 

욕계의 여섯개의 천상은 고대인도의 내세관이 반영 된 것이라 한다. 색계나 무색계가 불교의 세계관이 반영된 전형적인 케이스이지만, 색계초선까지는 고대인도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어떤 자가 범천의 복을 누리리라 생각하고 자애()와 연민()과 더불어기뻐함()과 평온()과 같은 거룩한 마음을 닦는 다면 그는 범천의 세계인 색계초선에 태어 난다고 하기 때문이다.

 

욕계나 색계나 무색계의 삼계를 세간이라 한다. 그렇다면 출세간이란 따로 있는 세계일까. 현실세계라는 오염원을 떠나 산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수행한다고 해서 그 곳이 출세간일까.

 

초기불교에서 31개의 세계를 떠나 출세간이 달리 있는 세계가 아니라고 말한다. 출세간은 일종의 성자의 마음의 흐름으로 본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성스런 도와 과를 얻으신 분들 즉,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과 같은 성자의 마음을 말한다. 따라서 어느 세계에서나 출세간의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욕계에서 온갖 오염원에 노출 되어 있을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출세간을 지향하는 수행을 한다면 출세간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그라나 아무리 물맑고, 산좋고, 공기좋은 곳에서 선정수행을 하여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 난다고 하여도 그 곳 역시 세간일 뿐이다. 부천님의 법에 따라 수다원의 도와 과를 성취하지 못한 모든 존재들, 설령 그 존재가 비구이든 천신이든 간에 삼사라(samsara)를 윤회할 수 밖에 없는 모두 다 같은 범부중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출세간의 마음을 내기에 적합한 곳이 희로애락이 있는 인간세계라고 한다. 천상의 경우 너무 행복해서 수행할 마음이 나지 않고, 4악처의 경우 너무 고통스러워 수행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즐거움과 고통, 행복과 불행이 적절히 교차 하는 인간이야말로 최적의 수행조건을 갖추었다고 한다.

 

행복한 죽음과 비참한 죽음

 

법구경 16번 게송 담미까 이야기는 행복한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죽음에 임박 하여 천상에 태어날 표상을 보고 곧바로 뚜시따(도솔천)에서 재생 하게 되는데,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재가자의 가장 이상적인 임종의 모습을 보여 준다.

 

평소 도덕적인 삶과 봉사하는 생활을 해온 담미까는 죽음에 임박하여 자신이 행한 선행을 되새기며기쁨과 함께 미소 지으며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가는 곳은 이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고 살았듯이 죽어서도 그 연장선인 저 세상에서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 이세상에서도 즐거워 하고 다음 세상에서도 즐거워 하는 것이다.

 

담미까이야기를 보면, 죽어서 얼마간 어디에서 머물다 자신의 행적에 대한 과거 기록을 누군가 보면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업에 대하여 태어나기 적합한 세상에 재생한다는 것이 남북방 불교의 가장 큰 임종관의 차이일 것이다.

 

매일 매번 화를 내고 사는 사람은 저 세상에 가서도 화를 내고 살 확률이 크다. 매번 탐욕을 부리는 사람역시 탐욕과 관련된 세상에 태어날 확률이 크고, 평소에 인색한 사람 역시 그에 적합한 세계에 태어 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누가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매순간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매순간 윤회를 하여 마지막 죽음의 의식에서 어떤 표상을 보냐에 따라 다음생이 결정 된다면, 평소 악업과 악행을 일삼던 사람은 죽어 가면서 자신이 행한 악행을 되새기며고통과 함께 할 것이므로 그가 태어날 곳의 표상은 고통스럽고, 처참하고, 무시무시한 곳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1. 빠알리어 법구경( Bhikkhu Pesala)

 

 

1-16

Idha modati pecca modati,              이다 모다띠 뺏짜 모다띠

katapuñño ubhayattha modati         까다뿐노 우바얏타 모다띠

So modati so pamodati,                 소 모다띠 소 빠모다띠

disvā kammavisuddhim attano.        디스와 깜마위숫딤 앗따노

 

 

 

2. 우리말 법구경

 

 

1) 거해스님

 

1-16

이 세상에서도 그는 즐거워하고

다음 세상에서도 그는 즐거워한다.

이처럼 착한 행동을 한 사람은

양쪽 세상 모두에서 즐거워한다.

그가 더욱 즐거운 것은

즐거움을 누리며 자기 선행을 되새기는 것이다.

 

 

2) 석지현스님

 

1-16

이 세상에서 행복해 하고

다음 세상에서도  행복해 한다.

저 선()을 행한 사람은

이 양쪽에서 모두 행복해 하고 잇다.

그는 그 자신이 행한 선행을 보며

매우 행복해 하고 있다.

 

 

3. 영어 법구경

 

 

1) Acharya Buddharakkhita

 

 

1-16

The doer of good rejoices here and hereafter;

he rejoices in both the worlds.

He rejoices and exults,

recollecting his own pure deeds.

 

 

2) Thanissaro Bhikkhu

 

 

1-16

Here  he rejoices

              he rejoices     hereafter.

In both worlds

the merit-maker rejoices.

He rejoices, is jubilant,

seeing the purity

           of his deeds.

 

 

 

5. 한문 법구경(法增比丘)

 

 

1-16

今世喜樂受,來世喜樂受,

造作善業者,兩處喜樂受,

彼見己善業,故歡欣喜悅。

 

 

6. 일어 법구경(西津紘一)

 

 

1-16

善いことって何ですか?
  今喜び
  後でも喜べることですよ
  自分のしたことを見て
  何度も喜べることですよ

 

7. 법구경 인연담

 

 

1) 영어 인연담(Daw Mya Tin)

 

 

Verse 16

I (11) The Story of Dhammika Upasaka

 

While residing at the Jetavana monastery in Savatthi, the Buddha uttered Verse (16) of this book, with reference to Dhammika, a lay disciple.

 

Once there lived in Savatthi, a lay disciple by the name of Dhammika, who was virtuous and very fond of giving in charity. He generously offered food and other requisites to the bhikkhus regularly and also on special occasions. He was, in fact, the leader of five hundred virtuous lay disciples of the Buddha who lived in Savatthi. Dhammika had seven sons and seven daughters and all of them, like their father, were virtuous and devoted to charity. When Dhammika was very ill and was on his death-bed he made a request to the Samgha to come to him and recite the sacred texts by his bedside. While the bhikkhus were reciting the Maha satipatthana Sutta, six decorated chariots from six celestial worlds arrived to invite him to their respective worlds. Dhammika told them to wait for a while for fear of interrupting the recitation of the Sutta. The bhikkhus, thinking that they were being asked to stop, stopped and left the place.

 

A little while later, Dhammika told his children about the six decorated chariots waiting for him. Then and there he decided to choose the chariot from the Tusita world and asked one of his children to throw a garland on to it. Then he passed away and was reborn in the Tusita world. Thus, the virtuous man rejoices in this world as well as in the next.

 

Then the Buddha spoke in verse as follows:

 

 

Verse 16:

Here he rejoices,

hereafter he rejoices;

one who performed meritorious deeds rejoices in both existences.

He rejoices and greatly rejoices when he sees the purity of his own deeds.

 

 

 

2)우리말 인연담(진흙속의연꽃)

 

 

우빠사까 담미까 이야기

 

 

부처님이 사왓띠의 제따와나 승원에 머물고 있을 때, 재가 수행자 담미까 (Dhammika)와 관련된 법구경 게송 16번을 읊으시었다.

 

사왓띠에 재가수행자 담미까라는 이름의 재가수행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매우 도덕적인 삶을 살았다. 또한 자선을 배풀기를 좋아 하는 다정다감한 남자이었는데, 주기적으로 또는 특별한 날을 잡아 비구들에게 음식과 필수품을 아낌 없이 공양 하였다. 사실 그는 사왓띠에서 살고 있는 500명의 재가 수행자의 지도자 이었다,

 

담미까는 모두 일곱명의 아들과 일곱명의 딸을 두었다. 그들 역시 아버지를 본받아 매우 도덕적이었고 자선에 헌신적이었다. 그런 담미까가 중병에 걸려서 병석에 드러눕게 되었다. 그는 상가에 부탁하여 성스런 부처님 말씀을 들려 주기를 간청 하였다.

 

비구들이 마하 사띠빳따나숫따(Maha satipatthana Sutta)를 독송하자 그는 화려하게 장식된 여섯개의 2륜수레를 보았다. 그 수레는 하늘에서 온 것으로 그를 하늘로 데려 가기 위한 것이었다. 담미까는 독송에 방해 될까봐 잠시 기다려 달라고 요청 하였다. 그러자 비구들은 독송을 그만 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생각하여 독송을 멈추고 그 곳으로부터 떠 났다,

 

잠시후, 담미까는 그의 자녀들에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여섯개의 하늘 수레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그 때 그는 여섯수레 중 뚜시따에서 온 수레에 타기로 결정 하였다. 그래서 자녀의 중의 한사람에게 화환을 던져서 결정 하도록 요청 하였다.

 

그렇게 하여 그는 수레를 타고 떠났는데, 뚜시따(Tusita, 도솔천)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미덕이 넘치는 사람은 다음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기쁘게 산다.

 

이일과 관련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시었다.

 

 

이 세상에서도 그는 즐거워하고

다음 세상에서도 그는 즐거워한다.

이처럼 착한 행동을 한 사람은

양쪽 세상 모두에서 즐거워한다.

그가 더욱 즐거운 것은

즐거움을 누리며 자기 선행을 보고 되새기는 것이다.

 

 

 

 

 

 

법구경 16 우빠사까 담미까 이야기.doc

 

 

2010-07-24

진흙속의연꽃

법구경 16 우빠사까 담미까 이야기.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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