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유명기도처는 왜 막다른 곳에 있을까, 조계종 직영사찰 관음성지 보문사

담마다사 이병욱 2010. 9. 6. 12:21

 

유명기도처는 왜 막다른 곳에 있을까, 조계종 직영사찰 관음성지 보문사

 

 

 

우리나라는 예전에 불국토 이었다. 그런 영향은 지금까지 성지로 남아서 불자들의 순례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그런 순례지 중에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아마도 적멸보궁일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적멸보궁은 전국적으로 다섯군데가 유명하다. ,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영축산 통도사인데 이를 5대 적멸보궁이라 하며, 불자라면 언젠가 한 번은 순례해야 할 성지코스이다.

 

관음성지를 찾아서

 

적멸보궁과 함께 불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 더 있는데 그 곳은 관음성지이다. 보궁이 깊은 산중의 명당자리에 위치하고 있다면 관음성지는 주로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해안의 낙산사, 서해안의 보문사, 남해안의 보리암과 향일암이 4대관음성지로서 잘 알려져 있다. 이 중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강화의 보문사를 찾았다,

 

보문사에 가려면 배를 타고 가야한다. 보문사가 있는 곳은 강화도 바로 옆의 석모도에 있기 때문이다. 배로 불과 10여분에 불과한 석모도는 꽤 큰 섬이다. 강화도가 다리로 연결 되어 이미 육지나 다름 없지만, 이 곳 석모도는 다리가 놓여 있지 않아 그다지 오염이 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배에 차를 실어 왕래를 할 수 있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이 또한 육지나 다름 없다.

 

 

보문사로 가는 배

차량을 실을수 있는 큰 배로서 수시로 운행되고 막배는 저녁 9시까지 이다.

 

 

 

 

 

 

 

 

유명기도처는 왜 막다른 곳에 있을까

 

우리나라의 유명기도처는 한결같이 막다른 곳에 위치 하고 있다. 가다 가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유명기도처가 있다. 왜 유명 기도처는 한결 같이 절벽이나 섬 또는 동굴처럼 막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을까. 이는 아마도 기도하는 사람의 절박한 심정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기도는 절박해야 한다. 절박하지 않으면 기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기도를 한다는 의미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어서 타력에 의존 하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은 일을 초월적 존재에게 의지하여 난관을 돌파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위기에 처한 사람의 심정은 막다른 길에 내 던져진 것과 다름이 없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가려 해도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유명기도처는 한결 같이 절벽이나 섬, 동굴같이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위치 하고 있다. 막다른 곳에서 막다른 인생이 하는 기도는 간절하고 애절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관음성지가 한결 같이 해안가나 섬, 절벽에 있는 이유가 바로 기도가 잘 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관음기도처가 해안이면서 그 것도 섬에 있고, 더구나 절벽 위에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었다고 본다. 최근에 본 가장 이상적인 기도처는 남해안의 연화사일 것이다.

 

차를 태울 수 없는 배을 타고 한시간 가량 가면 망망 대해에 홀로 떠 있는 자그마한 섬이 연화도인데, 그 곳에 있는 연화사의 암자인 보덕암이 그런 조건을 갖추었다고 본다. , 바다에 면해 있고, 섬에 있고, 그 것도 절벽위에 있어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보덕암의 해수관음상 

경남 통영의 연화도에 위치한 연화사의 말사이다.

 

  

 

 

해수관음상이 없는 보문사

 

보문사 역시 섬과 해안가의 막다른 곳에 있어서 관음성지로서 조건을 갖추었다고 본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음성지에서 볼 수 있는 해수관음상이 없다. 보문사가 4대관음성지라는데 해수관음이 왜 없을까.

 

보문사에는 해수관음상을 볼 수 없다. 다만 보문사 뒷편의 낙가산에 마애불이 있는데 바로 그 마애불이 관세음보살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보문사에서는 별도의 해수관음이 없는 것이 아닐까.

 

보문사 뒤로 무수한 계단을 올라가면 서해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일명 눈썹바위라고 하는데 마치 커다란 처마를 연상하게 한다. 그 곳 벽면의 바위에 관세음보살상이 조각 되어 있는데, 놀라웁게도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애불과 서해안 전경

바로 아래의 보문사와 서해안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표지판을 보면 1928년에 조각 된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유명기도처의 마애불이 수백년 내지 천년 된 것이 대부분인데 이곳 보문사 마애불은 백년도 되지 않은 것이다. 또 수월관음이나 해수관음상에서 보는 것과 같은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지만 보문사가 관음성지가 된 것은 아마도 막다른 곳에 위치하고 수도권과 가까운 요인도 있어서 일 것이다.

 

 

 

 

보문사 매애석불좌상

1928년에 낙가산 중턱에 조각 되었다.

네모진 얼굴에 보관을 쓰고, 손에는 정별을 들고,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아래에 관세음보살이라고 쓰여 있어서 보문사가 관음성지로 중요시 하던 곳이다. 

공사구조물은 마애불의 방수공사를 위하여 설치 한 것이다.

 

 

 

 

마애불에서 바라 본 서해

아래에 보문사가 보이고 더 아래에 사하촌이 보인다. 

 

 

 

 

입장료와 서비스

 

수도권과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보문사는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4대관음성지이자 유명기도처이기도 한 보문사는 불자들만 찾는 것이 아니라 관광하러 온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사하촌이 발달하고 주차장 시설도 넓직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보문사는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입장료 2,000원을 지불 하고 들어 가면 무언가 좀 더 다른 볼거리나 서비스를 기대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이다. 그러나 그런 서비스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일주문 입구에 서 있는 경비원은 입장료없이는 들어 갈 수 없다는듯한 이미지를 풍겼고, 입장한 후에도 사찰의 문화재와 역사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사람 역시 발견 할 수 없었다.

 

 

 

 보문사 일주문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팔고 있다. 어른의 경우 이천원이다.

 

 

 

 

입장료와 관련하여 신심 있는 불자라면 이곳 저곳 다니면서 참배하기 때문에 입장료를 받으나 받지 않으나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처럼 되어 버린 관광지로 인식하기 때문에 입장료를 받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거두어 들인 입장료 수입으로 종단이 운영된다.

 

조계종의 직영사찰과 특별분담금 사찰

 

조계종의 일년 예산은 전국에 걸친 사찰에서 올라오는 분담금으로 운영된다. 그 분담금으로 포교나 교육과 같은 각종 예산을 집행하는데 사용한다. 그런데 그 재원이 불자들의 순수한 시주금액에서 나오는 것보다 사찰이나 문화재의 관람료 수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 관람료 수입이 전체 분담금 중에 60%를 육박한다.

 

이처럼 사찰의 입장료 수입은 무시 못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 하고 있어서 조계종에서는 문화재나 유명기도처가 있는 사찰을 특별관리한다. 그 사찰들은 다음과 같다.

 

 

 

조계종의 직영사찰과 특별분담금사찰

 

 

  

소 속

   

해당사찰

직영사찰

총무원

총무원장이 관할하는 사찰로서, 재정ㆍ포교 등 종단 정책사업을 직접 집행하는 사찰

조계사, 선본사, 보문사 등 3

특별분담금 사찰

교구본사

지역 교구에 속하면서 종단의 재정안정화를 위해 기여하는 사찰

도선사, 봉은사, 연주암, 석굴암, 낙산사, 봉정암, 내장사, 보리암 등 8

 

 

 

표를 보면 크게 직영사찰과 특별분담금사찰로 나눌 수 있다. 직영사찰이란 총무원장이 직접관할 하는 사찰로서 재산관리인 주지를 임명한다. 특별분담금 사찰은 교구본사 소속이지만 입장료 수입이 많기 때문에 특별히 더 분담금을 많이 내야 한다.

 

이처럼 불자들과 관광객들로 부터 거두어 들인 입장료 수입은 분담금 형태로 조계종에서 포교등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재원으로 활용 되는데, 일부 사찰의 경우 막대한 분담을 내지 않고 체납한다고 한다. 교계신문에 발표된 불국사가 대표적 케이스이다.

 

교계신문에 따르면 불국사의 석굴암은 2007년 부터 총무원에 납부하기로 되어 있는 분담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불국사 석굴암, 분담금 상습 체납. http://www.beopbo.com/article/view.php?Hid=67569&Hcate1=1&Hcate2=7&Hcmode=view).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불국사와 석굴암에서 발생한 입장료 수입이 포교와 같은 중요한 일에 쓰여 지지 않고 엉뚱한 일에 쓰여 지고 있다는 제보도 전한다. , 불국사의 포교도량인 분당의 석가사가 전의 주지이름로 등재되어 사설사찰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보문사는 조계종의 직영사찰

 

강화의 보문사는 조계종의 직영사찰임을 알 수 있다. 보문사는 조계사와 선본사와 더불어 총무원장이 직법주지를 맡고, 재산관리인 주지를 파견하여 관리하는 3대 직영 사찰중의 하나인 것이다.

 

 

 

 보문사 극락보전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들어져 있다.

관음성지인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희정대사가 창건 하였다.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 하여 산의 이름이 낙가산이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하다 하여 보문사라 한다.

 

 

 

 

 극락보전을 바라보고 우측의 전각

 

 

 

 

보문사 종무소겸 요사체

 

 

 

 

 

 범종각

 

 

 

 

그런데 새로운 조계종 집행부가 출범하고 나서 선본사를 빼고 강남의 봉은사를 추가하여 불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장로정권의 좌파스님의 척결이라는 이유로 단행된 정치적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보문사가 총무원장이 직접관할 하는 직할사찰이라는 것은 그 만큼 비중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더구나 수도권과 가까운 4대 관음성지중의 하나로서 수도권의 불자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다는 보문사의 입장료 수입은 무시 못할 정도라는 것이 직영사찰로 지정된 가장 큰 이유 일 것이다.

 

 

 

 

 보문사 석실

일명 굴법당이라 한다.

635년(선덕여왕 4년)에 희정대사가 처음으로 건립하였다.

이후 순조12년(1812년)에 다시 고쳐 지었다.

 

 

 

 

 

석실내부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만든 법당으로서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보살과 나한상을 모셨다.

 

 

 

 

 

석실외부에 새겨진 글발

 

 

 

 

 

 

 

 

 

 

 

 

 

 

 

 

 

 

 

 

 

 

 

 

 와불전

 

 

 

 

 

 와불전의 부처님

 

 

 

 

입장료 수입에 의존하여

 

수년 만에 찾아 간 보문사는 옛날과 같지 않다. 주차장은 비어 있고, 절 아래의 먹거리촌은 활기를 잃은 듯하다. 식사하면서 물어 보니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경제가 안 좋은지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문사 입구

 

 

 

그럼에도 불구 하고 불자들의 기도처로서,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자 관광지로서의 보문사는 여전히 인기가 좋다. 다만 입장료만 없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그렇게 될 경우 특별분담금 수입이 사라져 종단의 운영에 커다란 지장이 있을 것이다.

 

 

 

 

감로다원

 

 

 

 

 

 석실입구의 향나무

수령이 600년이 넘는다.

 

 

 

 

 

보문사 맷돌

 

 

 

 

 

 

 

 

 

 

조상이 물려준 문화재와 산과 같은 재산을 이용하여 입장료 수입에 의존하여 종단을 꾸려 가는 한국불교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2010-09-0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