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사찰은 문화재 지킴이인가, 매표소가 있는 청평사를 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10. 8. 23. 14:09

 

사찰은 문화재 지킴이인가, 매표소가 있는 청평사를 보며

 

 

 

우리나라 전체국민의 48%가 모여 사는 서울과 인천, 경기도에서 차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주말에 나들이라도 가려고 교외로 빠져 나갔다가 되돌아 올 때, 모두들 를 닦는 심정으로 길바닥에서 인내에 인내를 거듭해야 한다. 그런 인내의 절정이 아마도 서울과 춘천간도로일 것이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최근 서울과 춘천간 민자에 의한 고속도로가 완성 되었다. 기존의 46번 국도가 왕복4차선으로 확대 된지 오래 되었고, 더군다나 고속도로까지 개통 되었으니 사정은 더 나을 듯 싶어 소양댐 너머에 있는 청평사를 찾아 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돌아 올 때 혹시나 하였던 것이 역시나로 결론 났다. 46번국도나 고속도로나 모두 거의 서 있다시피하여 전구간이주차장을 방불케 하였던 것이다. 불과 60여키로미터의 거리를 막히는 곳만 골라 다니다 보니 ‘5시간걸렸다.

 

산넘고 물넘어

 

청평사에 가려면 산넘고 물넘어가야 한다. 물론 육로길도 있지만, 대게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소양호는 하나의 훌륭한 관광명소이다.

 

196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73년에 완공된 소양강댐은 하나의 거대한 인공호수를 만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댐의 높이가 거대한 산처럼 보이는데 높이가 123미터라 한다. 만수시 면적이 70제곱키로 미터라 하니 가로와 세로가 사방 8-9키로미터라 보면 왠만한 도시의 면적 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소양강댐

1967년에 착공하여 1973년에 완공되었다.

 

 

 

 

사력댐 

소양강댐은 흙과 돌로 만들어진 사력댐으로, 길이는 530미터, 높이는 123미터이다.

 

 

 

 

 

 

소양호

면적이 1,608ha이고, 저수량은 27억톤으로 인공호수이다.

 

 

 

 

 

해질녁의 소양호

 

 

 

소양호에 관광오는 사람들

 

소양호에 관광오는 사람들의 모두가 청평사로 가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 일부분이 청평사로 가는 배에 올라타고 대부분은 소양호반에서 먹거리등을 즐기면서 보낸다.

 

 

 

 

 소양댐기념탑

1973년에 소양댐준공과 함께 만들어졌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 음각 되어 있고, 시공자는 현대건설로 되어 있다.

 

 

 

 

 소양호주변의 먹거리촌

관광객과 등산객으로 북적인다.

 

 

 

배를 타고 청평사로

 

청평사로 가기 위해서 1시간에 한번 있는 배를 타야 한다. 유람선을 타는 경우까지 합하면 실제로 30분에 한 번 꼴로 배가 있게 된다. 청평사로 가는 뱃길은 불과 10분에 불과 하지만 주변의 경관은 매우 장쾌하다.

 

 

 

소양호선착장

소양호 전체를 한바퀴 도는 2층 유람선은  40분소요, 가격 1만원(왕복)

소양호에서 청평사 쪽으로 바로가는 유람선은 10분소요, 가격 5천원(왕복)

 

 

 

드 넓은 호수에 높고 푸른 신록의 영향이어서일까 물빛은 초록색이다. 오염되지 않는 물길을 따라 안쪽으로 구비쳐 들어 가면 청평사에 이르는 선착장이 나오는데 한적하기 그지 없다.

 

 

 

 뱃길의 청평사

 

 

 

 

 청평사가는 뱃길

주변의 높은산의 초목으로 인하여 물빛이 초록이다.

 

 

 

 

 

청평사선착장

별다른 건물없이 접안시설만 되어 있다.

 

 

 

 

멀고도 험한 길을 따라

 

선착장에 내려 청평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걸어서 무려 사오십분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절에 다다르기 전까지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음식점 일색이다. 술파는 음식점은 절의 코앞까지 진출해 있을 정도이다.

 

 

 

 

 청평사가는 길

선착장으로 부터 사오십분 걸린다.

 

 

 

 

 

 먹거리 식당

절 입구까지 진출해 있다.

 

 

 

언젠가 왔었는데

 

언젠가 청평사에 왔었다.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래전의 일이라 청평사 경내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단지 청평사에 갔었다는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알고 보았더니 청평사 경내까지 간 것이 아니라 부근에 머물렀던 것이다. 아마도 막배시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청평사는 떠나는 배시간을 맞추어 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볼 시간이 없다. 더구나 배에서 내려 거친 산길을 사오십분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 하면, 놀러온 사람들이 왠만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는한 오르기 힘들 것이다.

 

막배시간을 정해 놓고 청평사로 향하였다. 처음 가보는 청평사는 어떤 절인지 궁금하였다. 춘천의 8(삼악산, 구곡폭포, 소양강댐, 소양2, 공지천, 김유정 문학촌, 청평사, 구봉산 전망대)으로도 소개 된 청평사는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특히 소양호 관광을 온 사람들은 배를 타고 의례히 가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불자들 보다 관광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대부분 젊은 층이다. 연인끼리 또는 친구끼리 온 그들이 청평사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불자들이어서일까, 아니면 단지 다녀가는 코스이어서일까, 아무튼 그들이 사찰을 찾는 것 자체는 불교와 어떤 인연이 있어서 일것이다.

 

전혀 생각지 못한 매표소

 

힘들게 걸어 올라 가는 도중에 하나의 관문을 만났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매표소가 보인 것이다. 여기에 오기까지 산넘고 물넘어 오면서 고속도로 통행료에서 부터 셔틀버스입장료, 그리고 배삯까지 내고 천신만고 끝에 도달 하였는데 문화재관람료 징수를 하는 것이다.

 

물론 조계종신도증이나 65세 이상 노인들은 무료 이지만 대부분 찾는 사람들이 불자들이라기 보다 관광하러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외없이 표를 사야 한다.

 

 

 

청평사 매표소

문화재관람료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고 있다.

어른의 경우 1300원이다.

 

 

 

사찰에서 입장료징수를 하는 것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커다란 논란거리이다. 예전에는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이나 불교문중의 산을 소유한 사찰에서 문화재관람료 또는 주차비 명목으로 바리케이드를 쳐 놓고 입장료를 징수 하였으나 요즘은 그다지 많이 찾아 볼 수 없다.

 

불전함 수입은 얼마나 될까

 

입장료를 받는 것은 종단의 커다란 수입원이다. 이처럼 문화재관람료나 유명기도처에서 나오는 수입등을 종단에 내는 사찰분담금이라 한다.

 

미디어 붓다의 이학종기자가 불교평론에 발표한 ‘한국불교의 시주 현황과 용도’에 관한 논문을 참고하면, 사찰분담금중에 60%는 석굴암, 낙산사와 같이 재정수입을 크게 올리게 해주는 ‘특별분담금수입’과 대구 갓바위와 같이 총무원에서 직영으로 관리하는 ‘직영분담금수입’이 있다.

 

나머지 40%는 재가불자들의 시주금에서 나오는데, 그 시주금 중에 80% 49재와 천도재와 같은 각종 ()’로 인한 것이고, 나머지 20%는 인등비등을 포함한 순수한 재가불자들의 푼돈성격의 불전수입으로 인한 분담금이다.

 

따라서 불자들이 부처님전에 삼배를 하고 불전함에 넣는 보시금과 등을 달 때 내는 인등비를 합하면, 순수한 불자들이 내는 보시금은 조계종 종단의 전체분담금 중에 6% 밖에 차지 하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현상은 불자들의 푼돈성격의 시주금 보다 천도재와 같은 각종 재에 열을 올려 기복방편을 조장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불자들의 푼돈성격의 시주의 고마움을 모르게 되고, 이 것은 일반 불자들이 절에서 그다지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불교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

 

어떤 이는 우리나라 불교가 처한 현실에서 각종기도나 재를 통한 기복과 방편을 쓰지 않으면 사찰재정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정법만 이야기 하면 불자들이 탐탁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안녕, 그리고 각종 소원을 성취해주는 발원을 해주어야 그나마 유지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방편은 장기적으로 보아 불교를 망하게하는 지름길이 된다. 돈이 되는 각종재와 기도로만 불교가 유지 되었을 때 스님들은 수행자가 아니라 천주교 신부와 같은 사제또는 제사장으로 전락된다. 단지 죽은 자를 위한 불교라면 설법이 필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공부를 하지 않게 되고 한번 외운 주문(呪文)’으로 평생먹고 사는 결과가 된다.

 

공부를 하지 않고, 설법도 못하고, 설법이 없는 불교인은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라고 볼 수 없다. 부처님은 깨닫고 난 후에 맨발로 걸식을 하며 길에서 길로, 마을에서 마을로 45년간 늙어서 목숨이 다 하는 순간까지 중생을 교화하며 다녔다. 그런데 한번 외운 다라니나 의식문으로 별다른 공부를 하지 않고 제사장 역할을 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다. 또 조상이 물려준 땅과 문화재를 이용하여 입장료 수입이나 거두어 종단을 유지 하려 한다면 차라리 문화재나 사찰관리인에 더 가깝다. 그런 역할은 차라리 공무원이나 전문관리자에게 밑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부처님이 45년간 보여 주었듯이 스님들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나와야 한다. 그래서 감동적인 설법으로 교화하여야 한다. 절은 출재가 불자들이 수행하는 곳으로 한정하고, 사찰과 문화재는 전문관리인게 맡겨야 한다. 그렇게 하여 각종 재도 없고 입장료 수입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설법과 수행지도로 불자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것도 죽기 살기로하는 것이다. 마치 개신교의 목사가 개척교회를 운영하듯이 하는 것이다. 그래야 불자가 대우를 받는다. 지금과 같이 재와 입장료 수입에 의존하는 한, 불전함에 넣는 보시금은 쳐다 보지도 않는 상황이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자들이 깨어나서 기복과 방편을 거부 하였을 때, ‘비승비속의 승려들은 절에 있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발로 걸어 나가게 될 것이고, 정법만이 남게 되어 불교는 다시 한번 중흥을 맞게 될 것이다.

 

힘차게 쏟아지는 구송폭포

 

입장료를 내고 계곡길을 올라가다 보면 폭포를 만나게 되는데 입장료에 대한 아쉬운 생각을 약간이나마 덜 수 있다. 힘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는 우렁차다. 물이 풍부해서일까 가슴까지 시원하게 적셔주는 것 같다.

 

 

 

 

구송폭포

 

 

 

 

 

 

 

 

 

 

 

 

 

대부분 근래에 지어진 전각들

 

드디어 청평사 경내에 도달 하였다. 문화재관람료 명목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경내에 들어 갔는데, 생각보다 그다지 볼만한 문화재가 없었다. 근래에 지어진 전각이 대부분이다. 입장료를 받을 정도라면 불국사나 해인사, 통도사등과 같이 수 많은 국보급 유물과 유적이 있는 성보박물관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청평사 전경

 

 

 

 

 청평사 경내

청평사는 973(고려 광종24)에 설립되었고,

이자현(李資玄)거사가 1089년에 중건하여 문수원이라 하였다.

지금 보는 대부분의 전각들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이자현(李資玄, 1061-1125))거사 부도

청평사에 도를 닦았던 고려시대의 뛰어난 학자이다.

 

 

 

청평사는 청평사지로 소개 되고 있다. 국보 115호로 지정되었던 극락전이 있었다하나 불타 없어졌고, 지금 보는 전각들은 근래에 신축한 것이다. 다만, 보물제 164호로 지정된 회전문과 돌축대만이 옛모습의 일부를 보여 주고 있다.

 

 

 

 

 청평사 회전문

중문에 해당하는 회전문은 조선명종때인 1545-1567년에 지어졌다. 보물164호이다.

 

 

 

 

 

 청평사 대웅전

 

 

 

 

 

 뒤에서 본 대웅전

 

 

 

 

 

 대웅전의 부처님

 

 

 

 

 

대웅전 돌계단

독특한 문양과 함께 세월의 흔적을 말해 준다.

 

 

 

 

인연이 있어서 찾아 왔을 것

 

청평사는 강원도 깊은 산중의 오지에 있어서일까 매우 한적한 느낌이다. 주말이어서인지 신심 있는 불자들 보다 연인들의 데이트코스처럼 느껴질 정도로 구경하로 온 젊은 사람들 일색이다.

 

이들이 사찰에 온 것은 커다란 인연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와서 이들에게 문화재에 대하여 설명도 해주고, 관심을 보여 주어야 하나 마치 주인 없는 텅빈 집을 보는 것 같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배시간에 맞추어 곧바로 내려 가버린 그들 중에 법당에 올라가 3배를 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극락전

 

 

 

 

 나한전

 

 

 

 

 

 

관음전

 

 

 

 

 

 

산신각

 

 

 

 

종루

 

 

 

 

청평사 주목

수령이 800년 되었다.

 

 

 

 

 

 

 

 

연인들의 데이트코스와 문화재 지킴이

 

청평사를 찾는 이들에게 청평사는 어떤 이미지로 비추어질까. 사오십분 동안 힘겹게 올라와서 입장료를 내고 한 번 휙 둘러보고 서둘러 내려 갔다 오는 것이 전부라면 포교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비록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일지라도 그들이 청평사를 찾아 왔다는 것은 미래의 불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이들을 붙들어 매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할 것이다.

 

스스로 제발로 찾아 오는 이에 대하여 일회성 방문객으로 보고 입장료 부과의 대상으로 간주 한다면, 사찰은 신행과 수행의 도량이 아니라 단지 사찰재산이나 관리 하는  문화재관리인내지 문화재지킴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2010-08-2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