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신(神)과 성관자재(聖觀自在), 인도신화로 본 신묘장구대다라니(천수다라니)
“나모라 다나다라...”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시작이다. 우리나라 불자들의 생활경전이라 볼 수 있는 천수경은 이렇게 신묘장구대라니를 중심으로 전송과 후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라니는 해석하지 않는 것이라는데
불자가 되면 누구든지 천수경을 접하게 된다. 불자가 되는 방법은 여러가지 이지만 일반적으로 각 사찰이나 단체에서 운영하는 ‘불교교양대학’에 입교하면서 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그 때 천수경을 처음 접하게 되는데 가장 생소한 부분이 진언과 다라니이다. 보통 짥은 길이의 주문을 진언이라고 하고, 긴 길이의 주문을 다라니라 한다. 그런데 진언이나 다라니는 해석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진언이나 다라니를 해석하지 않는 이유는 부처님의 높은 차원의 의미를 담은 말씀으로서 그 경계에 이르지 못한 이는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것, 다라니의 글자에는 수 많은 뜻을 내포 하고 있어서 해설하지 않는 다는 것, 다라니는 허공의 신장들과 성현들의 이름이어서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풀어서 해설할 수 없다는 것, 다라니를 풀어 해석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이 손상될 수 있다는 것, 다라니는 불가사의한 위신력이 들어 있어서 지송(持誦)하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으므로 해설할 수 없다는 것 등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진언이나 다라니는 해석이나 해설없이 문구 그 자체를 단지 외우는 것이다. 이렇게 다라니를 지송하면 그 공덕 또한 매우 커서, 배고파 죽는 것과 같은 15가지 나쁜죽음을 받지 않고, 늘 좋은 나라에 태어나는 것과 같이 15가지 좋은 태어남의 복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불자들은 항상 천수경을 수지 독송하는데, 그 중에서도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여러번 반복해서 독송한다.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 철야정진기도회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독송열풍은 철야기도회에서 절정을 이룬다. 마치 기독교의 철야기도처럼 사찰마다 매달 토요일 저녁이면 신묘장구대다라니 철야정진기도회가 열리는데 보통 108독을 한다.
저녁 10시에 108참회와 함께 108배를 하고 난후 잠시 쉬었다가 천수경과 함께 시작 한다. 천수경의 독송이 시작 되고 신묘장구대다라니에 이르렀을 때 반복해서 108독을 하는데, 108독이 끝나면 이어서 “일쇄방결도량...”하고 사방찬이 시작되는데 길고도 힘들었던 독송회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이다.
신심있는 불자라면 천수경정도는 외운다. 그러나 마음을 잡고 외우기 전에 1,300여자에 달하는 한문을 외우기란 쉽지 않다. 그런 천수경을 외우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힘든 부분이 아마도 신묘장구대다라니일 것이다.
다라니의 내용을 해석하지 말라 하여 뜻을 모르는 상태에서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범어)를 외우려 하니 어떤 기준이 없어서 특히 외기 힘들다. 그저 무식하게 막무가내로 외우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한번 외우고 나면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암송하게 된다. 더구나 업장을 소멸하고 좋은 곳에 태어는 등의 공덕이 있다하니 더욱 더 집착하게 만든다. 거기에다 부처님의 나라인 인도의 범어라서 더 신뢰가 가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멧돼지형상과 사자의 얼굴
뜻은 모르지만 열심히 외고 독송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대하다 언젠가 해설판을 보게 되었다.
다라니를 해석하면 안된다는 말이 있었지만 해설판을 보니 관세음보살의 보살행에 대한 공덕의 찬탄으로 보였다. 그런데 말미에 ‘멧돼지’와 ‘사자’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룩하신 관세음보살을 한 번 보기만 해도 탐진치가 소멸되고 모든 죄업이 씻은듯이 녹아 내릴 것 같은데, 그런 관세음보살은 중성 이미지로서의 천상의 아름다움 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고려불화의 수월관음도를 보면 얼굴이나 입은 옷이 천상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다.
수월관음도
고려시대불화, 일본경신사 소장
이처럼 한번만 쳐다 보아도 탐진치가 소멸 될 것같아 어서 빨리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데, 천수다라니에서는 여러가지 얼굴모습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멧돼지의 형상도 사자의 얼굴을 한 형상도 보인다. 왜 그런 모습을 보여 줄까.
최근 초기불교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불교계의 현실에서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리니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유는 힌두교의 신들을 찬탄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책도 나오고 구체적 예를 들어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처럼 천수다라니가 힌두신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을 접하면 불자들은 매우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지금까지 믿고 있던 신앙의 체계가 뿌리채 뽑히는듯 흔들리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핑중에 발견한 하나의 논문
뜻을 몰라도 단지 지송하면 좋은 일이 일어 날 것이라고 열심히 외었는데, 그 다라니의 내용이 힌두신을 찬탄한 것이었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일까. 그런데 아니기를 바라지만 사실인 것 같다. 최근 인터넷 서핑중에 발견한 하나의 논문이 그것이다.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에 대한 인도(印度) 신화학적(神話學的) 일고찰(一考察)’이라는 제목의 논문인데, 부제는 ‘성관자재 찬가(聖觀自在 讚歌)]를 통한 신앙적, 내용적 상징 기저(基底) 분석’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과정의 正覺(문상련)님으로 되어 있고, 지금으로 부터 13년전인 1997년 ‘장경각’에서 간행된 ‘미래불교의 향방(목정배교수 회갑기념논문집)’에 실려진 것으로 되어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가 이미 13년전 논문으로 문제제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논문에 어떤 내용이 실려 있을까.
삼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서
먼저 논문의 저자는 서문에서 한 가지 의문을 품는 것으로 논문을 작성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를 해석해 보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의 커다란 의문을 갖게 된다. 다라니의 내용 속에는 많은 신(神)들의 명칭이 등장하고 있는 바, 과연 그 신들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그들 신들의 성격을 밝혀 내는 작업이야 말로 현재 한국불교에 널리 유통되고 있는 천수다라니의 신앙적 성격과 그 기저(基底) 파악의 중요 관건이 될 것이다.
(정각, 천수다라니에 대한 인도 신화학적 일고찰)
이처럼 저자는 다라니 속에 수 많은 신들의 명칭이 등장 하는데 과연 그 신들의 성격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인도의 로케쉬 챤드라 (Lokesh Chandra)의 짤막한 글에서 근거를 찾는다.
로케쉬 챤드라는 그의 글에서 천수다라니에 등장하는 ‘닐라깐타 로케스와라’ 는 ‘하리-하라(Hari-Hara)’의 신격화라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말 천수경에 나오는 ‘니라간타’와 유사한 ‘닐라깐타 로케스와라’는 무엇이고, 또 하리 하라는 무엇일까.
그런데 그 것은 놀라웁게도 힌두교의 ‘시바’와 ‘비시누’를 의미하였다. 이에 대한 근거로서 천수다라니를 중국에 소개한 삼장법사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의 예를 들고 있다.
대당서역기에 관자재보살이 머문다는 남인도의 보타락가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한다.
“秣羅矩吒國의 남쪽 끝에 秣刺耶山이 있다...<중략>... 말라야山 동쪽에 布呾落迦山이 있다. 산길은 위험하고 암곡은 험준하다. 山頂에 연못이 있으며....<중략>... 연못 옆에는 돌로 된 天宮이 있다. 觀自在菩薩이 왕래하며 머무는 곳이다. 보살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身命을 돌보지 않고 강물을 건너 산에 오른다. ‧‧‧‧<중략>‧‧‧ 그런데 산밑의 주민으로서 모습을 보고자 기도드리면 觀自在菩薩은 때로는 自在天의 모습으로, 때로는 塗灰外道(도회외도)의 모습으로 되어 기원하는 사람을 위로하면서 願을 성취시켜 주기도 한다.”
(삼장법사, 대당서역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자재보살이 때로는‘자재천’이나 ‘도회외도’의 모습의 형상을 취한 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재천은 범어로 이스바라(Īśvara)라고 하는데 시바(Śiva)와 같은 말이다. 도회외도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말하는데, 빨래 하는 할머니와 같은 우리나라 설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결국 시바가 아바로키테스바라(Avalokiteśvara, 관자재)즉, 우리말 천수경의 발음인 ‘바로기제새바라야’로 신격화 된 것을 말한다.
시바신앙이 불교로 전이
천수다라니에 왜 시바가 나오게 되었을까. 그 것을 이해 하려면 닐라깐타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닐라깐타는 ‘청경(靑頸)’이라고 번역된다. 청경은 ‘푸른 목’이라는 뜻이다.
푸른 목을 가진 분을 ‘청경세자재’라 하고 범어로 닐라깐타로케스바라(Nīlakaṇṭha Lokeśvara)라고 한다. 그런데 이 청경세자재가 ‘하리-하라’의 신격화라는 것이다. 그런 하리-하라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하리-하라(Hari-Hara)는 북인도에서 비쉬누교의 영역에서 시바신을 믿드록 유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비쉬누(Viṣṇu)와 시바(Śiva)가 결합한 형태의 상을 말한다.
하리-하라(Hari-Hara)
비쉬누와 시바가 결합된 상
사진 : www.exoticindiaart.com/product/PJ64/
이런 측면으로 보았을 때 인도 학자 로케쉬 챤드라가 말한 천수다라니는 시바신앙의 형태가 불교적으로 ‘전이’한 것으로서, 천수다라니의 사상적 모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바신앙이 불교에 전이 되어 천수다라니가 만들어 졌다고 보는데, 이는 닐라깐타가 하리-하라로 신격화 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시바신앙 뿐만 아니라 비쉬누적 신앙도 남아 있어서 바이슈나비즘(Vaiṣṇavism)으로 보는 것이다.
또 인드라신앙의 흔적도 보여서 시바, 비쉬누, 인드라의 삼현이 불교의 법신, 보신, 화신의 대승불교의 삼신사상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27구 천수다라니
참고로 천수다라니의 27구 전문은 다음과 같다.
(1)Namo ratna-trayāya / (2)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bodhisattvāya mahāsattvāya mahākāruṇikāya, / (3)Oṁ sarva-bhayeṣu trāṇa-karāya tasmai namas / (4)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stavaṁ Nīlakaṇṭha-nāma //
(5)hṛdayaṁ vartayiṣyāmi sarvārtha-sādhanaṁ śubhaṁ ajeyaṁ sarva-bhūtānāṁ
bhava-mārga-viśodhakam //
(6)tadyathā / (7)oṁ āloka e, ālokamati lokātikrānta ehy-ehi Hare /
(8)mahābodhisattva smara-smara hṛdayam / (9)kuru-kuru karma sādhaya-sādhaya //
(10)dhuru-dhuru vijayanta e mahāvijayanta e / (11)dhara-dhara dharaṇiṁdhareśvara /
(12)cala-cala malla vimalāmala-mūrtte / (13)ehy-ehi Lokeśvara rāga-viṣaṁ vināśaya
dveṣa-viṣaṁ vināśaya moha-jāla-viṣaṁ vināśaya / (14)huluhulu malla hulu Hare
Padmanābha / (15)sarasara sirisiri suru-suru buddhyā-buddhyā bodhaya-bodhaya /
(16)maitriya Nīlakaṇṭha kāmasya darśanena prahlādāya manaḥ svāhā / (17)siddhāya
svāhā mahāsiddhāya svāhā siddhayogeśvarāya svāhā / (18)Nīlakaṇṭhāya svāhā /
(19)varāhamukha-siṁhamukhāya svāhā / (20)padma-hastāya svāhā /
(21)cakrāyudhāya svāhā / (22)śaṅkha-śabda-nibodhanāya svāhā /
(23)mahālakuṭadharāya svāhā / (24)vāma-skanda-deśa-sthita-kṛṣṇājināya svāhā /
(25)vyāghra-carma-nivasanāya svāhā //
(26)namo ratna-trayāya / (27)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svāhā //
(1)삼보(三寶)께 귀의합니다 / (2)크나큰 자비(慈悲)의 성관자재 보살 마하살께 귀의합니다 / (3)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합니다 / (4)이것을 (즉), 「청경(靑頸:Nīlakaṇṭha)의 명호」인 [성관자재 찬가]를 기억하면서 //
(5)저는 마음을 닦겠읍니다. 일체의 이익 성취와 복과 필승과, 일체 중생들의 삶의 길의 청정(이란 마음)을....//
(6)다시 말하건대 / (7)아! 관(觀)하여 보는 자시여! 출세간(出世間)의 마음, 세속을 초월한 자시여! 오소서, 오소서 하리(Hari)시여[Hare]! / (8)(저의) 마음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소서, 대보살이시여! / (9)의식(儀式)을 행하소서, 행하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 //
(10)수호하소서, 수호하소서! <승리자>시여! <대 승리자>시여! / (11)지지(支持)하소서, 지지하소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이시여! / (12)(이리 저리)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 말라(神)>시여! 부정을 여읜 청정한 <무르떼>시여! / (13)오소서, 오소서, <세자재(世自在)>시여! 탐욕의 독을 파괴하시고, 진에(瞋恚)의 독을 파괴하시고, 치암(癡暗:어리석음)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 / (14)기쁘도다! <말라(神)>시여! 기쁘도다! <하리(Hari)>시여[Hare], <파드마나바>시여! / (15)이리 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 비추어 식별함으로서 깨닫게(이룩하게) 하소서! / (16)정(情)이 깊은 <청경(靑頸)>이시여! 즐거움(kāma)의 마음을 성찰함으로서, <쁘라흐라다(prahlāda)(神)>께 영광이 있기를! / (17)<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성자, <요가의 주>께 영광이 있기를! / (18)<청경>께 영광이 있기를! / (19)<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께 영광이 있기를! / (20)<연꽃을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 (21)<챠크라(원반 모양의 무기)를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 (22)<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 / (23)<큰 방망이(를) 보지(保持)하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 / (24)왼쪽의 공격자 쪽에 있는 <흑색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 (25)<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께 영광이 있기를! //
(26)삼보께 귀의합니다. / (27)성관자재께 귀의합니다. 영광이 있으소서!//
천수다라니는 성관자재의 찬가
천수다라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닐라깐타’이다. 닐라깐타는 푸른 목을 가진 세자재 즉, 청경세자재라고 풀이 되지만 천수다라니에서는 ‘성관자재’로 번역 된다. 한 마디로 천수다라니는 ‘성관자재의 찬가’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라니의 본문에서 성관자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은 서문에 있는 귀의문 뿐이다. 나머지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명호로서 부른다. 마치 부처님의 별칭이 열가지 이듯이 성관자재의 수십가지 여러 별칭을 부르는 것이 후송이다.
천수다라니의 도입부인 귀의문은 어떤 내용일까. 이를 해석문과 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귀의문 내용
(1)삼보(三寶)께 귀의합니다 /
(2)크나큰 자비(慈悲)의 성관자재 보살 마하살께 귀의합니다 /
(3)아!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 되어지는 그에게 귀의합니다 /
(4)이것을 (즉), 「청경(靑頸:Nīlakaṇṭha)의 명호」인 [성관자재 찬가]를 기억하면서
(1)Namo ratna-trayāya /
(2)namaḥ āryāvalokiteśvarāya bodhisattvāya mahāsattvāya mahākāruṇikāya, /
(3)Oṁ sarva-bhayeṣu trāṇa-karāya tasmai namas /
(4)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stavaṁ Nīlakaṇṭha-nāma
(1)나모 라트나-트라야야
(2) 나마 아르야바로키테스바라야 보디삿트바야 마하삿트바야 마하카루니카야
(3) 옴 사르바-바예수 트라나-카라야 타스마이 나마스
(4) 크르트바 이맘 아르야바로키테스바라-스타밤 니라칸타-나마
우리말 천수경
(1)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2)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3)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4)까리 다바 이맘알야 비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
여기서 네번째 구인 “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stavaṁ Nīlakaṇṭha-nāma”기 중요한 데 이는 “청경(Nīlakaṇṭha)의 명호인 성관자재 찬가를 기억하면서”라는 뜻이다.
이 것은 닐라깐타의 기억이 주가 될 것이고, 그 이후는 닐라깐타의 별칭 즉 시바와 비쉬누의 여려이름으로 불려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천수다라니의 가장 핵심인물은 닐라깐타(성관자재, 청경)이다. 그 닐라깐타 즉 성관자재에 대하여 귀의하고 피난처를 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닐라깐타는 과연 누구일까.
왜 푸른 목을 가지게 되었을까
닐라깐타 (nīlakaṇṭha)는 푸른 (Nīla) 목(kaṇṭha)으로 번역 되어 청경(靑頸)이라 한다. 왜 푸른 목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 것은 인도신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닐라깐타와 관련된 신화의 원형은 끄시로다 (kṣīroda)인데, 이는 ‘우유(牛乳)의 대양(Ocean of Milk)’이라는 뜻으로서 인도신화인 라마야나(Rāmāyaṇa)와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에서 찾을 수 있다.
“신들과 악마가 합세하여 1,000년 동안 대양(Ocean)을 저었다. 만다라(Mandara) 산은 그 젓는 막대기, 바수끼(Vāsuki) 용왕은 이것을 흔드는 밧줄 역할을 하였다. 비슈누는 거북이의 모습을 한 채 그의 어깨로 산의 밑바닥을 받혀 들고 신들과 악마가 양쪽에서 밧줄(바수끼 용왕)을 끌어당겼다.
우유의 반죽(Milky Water)으로부터 처음 생겨난 것은 칼라꾸따(kālakūṭa;halāhala)라 불리우는 검은 독연기로, 누군가 이 독연기를 마실 정도로 강한 사람을 발견할 때까지 작업은 중단되어야 했다. 이때 쉬바(śiva)가 등장하여 초연히 자리에 앉아 선정에 들었으며, 우아한 모습으로 컵에 담긴 <죽음의 기운>을 들이켰다. 그는 요가의 힘으로 그 죽음의 기운을 목 속에 유지케 하였는 바, 그의 목은 푸른 색으로 변했고 그로 인해 그는 닐라깐타(nīlakaṇṭha) 즉, 푸른 목[靑頸]이라 불리우게 된 것이다.”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의 내용을 토대로 한 - 하인리히 짐머-H. Zimmer-의 설명)
위 내용처럼 검푸른 목을 갖게 된 시바만이 구원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그 것은 그 만이 해로운 독을 먹을 수 있는 용기와 자비의 마음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말한다.
시바가 독을 ‘기꺼이’ 마심으로서 푸른 목을 가지게 되었지만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자비의 위신력 또한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천수경 서문의 귀의문에서 푸른 목을 가진 닐라깐타를 기억하면서 닐라깐타의 명호인 성관자재에게 귀의 하고 피난처로 삼는 이유가 될 것이다.
닐라깐타(Nilakantha)
시바가 중생을 위하여 기꺼이 독을 마시고 있다.
독을 마신 결과 푸른 목을 갖게 되었다.
닐라깐타는 천수다라니에서 성관자재을 말한다.
사진 ; http://www.indianetzone.com/35/samudra_manthan_churning_ocean.htm
비쉬누의 아바타
천수다라니는 푸른 목을 가진 닐라깐타신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는 귀의문 다음에 후송에서 시바와 비쉬누의 화신(아바타)의 찬가로 이어진다. 앞서 ‘닐라깐타 로케스와라’ 는 ‘하리-하라’의 신격화라고 하였다. 따라서 하리-하라는 비쉬누(Viṣṇu)와 시바(Śiva)가 결합한 형태의 상을 말한다. 이 결합형태가 비쉬누와 시바의 다른 이름 즉, 아바타의 찬가로 이어 지는 데 이는 결국 푸른 목의 닐라깐타를 의미 하며 천수다라니에서는 성관자재이지만 이는 또 시바를 의미 한다.
참고로 비쉬누의 화신(Avata,아바타)은 다음과 같다.
①물고기(Matsya), ②거북이(Kurma), ③멧돼지(Varāha), ④인사자(人獅子:Narasiṁha) ⑤난쟁이(Vamana), ⑥영웅 빠라슈라마(Parashurama), ⑦라마(Ramā;Ramāchandra), ⑧ 목동의 신 끄리슈나(Kṛṣṇa), ⑨붓다(Buddha), ⑩ 예언자적인 구제자 깔낀(Kalkin)
비쉬누의 10가지 화신중에 궁금해 하던 멧돼지외 사자가 보인다. 천수다라니에 나오는 “바라하 목카 싱하 목카야 사바하”가 그것이다. 우리말 천수경에 보이는 ‘바라하’가 멧돼지(Varāha)를 말한다. 또 ‘싱하’가 사자( Narasiṁha)를 말한다.
왜 멧돼지형상을 하였을까
그런데 이들은 모두 몸은 사람인데 얼굴은 멧돼지와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 또한 비쉬누의 화신(아바타)으로서의 형상을 말하고 있는데, 멧돼지 형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마하바라타의 신화가 전해져 온다.
“(카샤파와 그의 부인 디티 사이에는 히라니야끄샤<Hiranyaksha>와 히라니야까쉬뿌<Hiranyakashipu>라 불리우는 아수라인 아들 형제가 있었다.) 그 중 히라니야끄샤(Hiranyaksha)는 오랜 기간 브라흐마신을 위한 희생제와 고행을 실천했던 바, 브라흐마신이 나타나 그에게 소원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모든 신이나 인간, 동물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그들 각각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는 특권을 갖기를 원하였다. 마침내 브라흐마신으로부터 이러한 강력한 힘을 부여받은 히라니야크샤는 신들과 인간들을 정복하였고, 마침내 브라흐마신이 잠든 사이에 그가 갖고 있던 베다 성전(聖典) 조차 훔쳐가 버리는 등 횡포를 일삼았다.
이에 견디다 못한 신들과 인간들이 비슈누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하였는 바, 비슈누는 깊 은 명상 속에서 그 악마(히라니야끄샤;Hiranyaksha)가 브라흐마신에게 소원을 말하는 중에 멧돼지의 이름을 빠뜨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 스스로를 멧돼지의 모습으로 화현한 채 그와 싸움을 벌였다.
그 싸움 도중 악마는 육지를 뽑아 들어 바다 밑에 던져 버리기도 하였는 바, 멧돼지 형상의 비슈누는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그를 죽이고 육지를 들어올렸다”
신화의 내용과 같이 멧돼지의 이름만 빠뜨려서 비쉬누가 멧돼지 형상으로 변하여 악인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이다.
멧돼지 형상 바라하(Varaha)
비쉬누의 세번째 아바타이다.
사진 : http://en.wikipedia.org/wiki/Varaha
한편 인간도 동물도 아닌 비쉬누의 화신으로서의 가장 무서운 존재인 ‘인사자(나라싱하)’는 마하바라타의 신화에 따르면 히라나야까쉬뿌를 조각 조각 찢어 죽였다고 나온다.
인사자(Narasimha)
비쉬누의 네번째 아바타이다.
사진 : http://mantraaonline.com/narasimha-jayanthi/
천수다라니에는 시바와 비쉬누의 화신들 뿐만 아니라 들고 있던 물건 들도 등장한다. 바로 연꽃 (Padma)과 차크라(Cakra, 원반모양), 소라고동(śaṅkha), 방망이 (gada;lakuta)같은 것이다.
이들 지물(持物)은 천수다라니에서 “연꽃을 손에 쥔 자(바나마 하따야 사바하)”거나, “챠크라(원반 모양의 무기)를 손에 쥔 자(자가라 욕다야 사바하)”,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상카섭나녜 모다나야 사바하)”, “방망이를 보지하는 자(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께 대한 찬탄의 구절 등은 모두가 앞의 비쉬누 화신에 대한 찬가에 이어져 그에 부속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시바의 지물
차크라, 연꽃, 소라고동과 같은 지물과 방망이와 같은 무기를 들고 있다.
사진 ; http://www.lotussculpture.com/vishnu1.htm
천수다라니에 등장하는 신들
천수다라니는 성관자재의 찬가인데 이는 인도신화적 관점에서 보면 비쉬누와 쉬바의 화신이 다수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하나의 도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천수다라니에 등장하는 각각 신들의 명칭과 인도 신화에서의 통칭
구 분 |
신들의 명칭 |
인도 신화에서의 통칭 | ||
비쉬누 |
시바 |
인드라 | ||
귀의문 |
(2) 성관자재(āryāvalokiteśva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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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관자재(āryāvalokiteśvara) 청경(nīlakaṇṭ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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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문 |
(7.b) 하레(Ha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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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관자 재 찬가] 청경의 명호 |
(10) 승리자(vijatanta 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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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 (dharaṇiṁdhareśva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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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말라(malla), 무르떼(mūrt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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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세자재(lokeśva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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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말라(malla), 하레(Hare), 파드마나바(padmanāb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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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a) 청경(nīlakaṇṭ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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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b) 쁘라흐라다(prahlā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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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성자(siddha), 요가의 주(yogeśva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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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청경(nīlakaṇṭ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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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 (varāhamukha-siṁhamuk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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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연꽃을 손에 쥔 자(padma-has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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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챠크라를 손에 쥔 자(cakrāyud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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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 (śaṅkha-śabda-nibodha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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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큰 방망이를 보지하는 자 (mahālakuṭadha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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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흑색성자(kṛṣṇāji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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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 (vyāghra-carma-nivasa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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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의문 |
(27) 성관자재(āryāvalokiteśva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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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에서 총 20개 항목에 달하는 신들의 명칭이 소개 되고 있는데, 이중 비쉬누가 11번, 시바가 8번, 인드라가 1번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성관자재 찬가 항목만 본다면 단연 비쉬누가 우위에 있다.
천수다라니의 내용은 닐라깐타의 위업을 부각 하고 있는데, 이는 귀의문에서 제2구인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 보살 마하살께 귀의한다(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라는 대전제의 설정 속에 제4구의 “청경(Nīlakaṇṭha)의 명호인 성관자재 찬가를 기억(까리 다바 이맘알야 비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 ”함이라는 한정을 행해 놓은 채, 이후 전개되는 모든 어구를 닐라깐타(Nīlakaṇṭha)의 다른이름(異名)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을 철야로 하다 보면 졸릴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잠에서 번쩍 깨이게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천수경의 중간에 나오는 “못자 못자”라는 말이 나올 때라고 우스개 이야기를 한다.
그 “못자못자”라는 말은 “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자못자 모다야 모다야” 중에 나오는 말이다. 마치 술술 풀릴 듯 스무스 하게 넘어 가는 이 범어의 문구는 어떤 내용일까.
논문에서는 “sarasara sirisiri, suru-suru”를 “이리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라고 해석 하였다. 이의 참 뜻은 ‘독을 소멸한다’는 것이다. 즉, ‘탐진치’의 삼독을 소멸하는 것을 말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자연스럽게 “비추어 식별함으로서 깨닫게 하소서!(buddhyā-buddhyā bodhaya-bodhaya, 못자못자 모다야 모다야)”로 연결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sarasara sirisiri suru-suru buddhyā-buddhyā bodhaya-bodhaya (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자못자 모다야 모다야)”는 “탐‧진‧치의 독을 소멸하소서, 소멸하소서! 비추어 식별함으로서 깨닫게 하소서!”가 된다. 바로 이 구절이 천수다라니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논문의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천수다라니의 총체적 의미는 일체지를 통한 깨달음, 즉 열반의 획득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쉬누파불교도의 영향
천수다라니가 삼독을 소멸하여 열반의 획득에 목표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의 신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불교의 근본 가르침과 한 참 비껴 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것은 비쉬누와 시바로 대표되는 힌두신의 찬탄에 대한 결과 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논문에서 천수다라니가 탄생한 배경을 벵갈지방을 중심으로 한 ‘비쉬누파불교도’ (Vaiṣṇavite Buddhist)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북인도의 비쉬누신앙의 확산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이를테면 ‘불교의 힌두화’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불자들의 생활경전이나 다름 없는 천수경은 천수다라니를 중심으로 전송과 후송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가장 핵심은 천수다라니이다. 그런데 다라니의 내용이 푸른 목을 가진 닐라깐타의 신격화에 있는데, 그 니라깐타라는 것이 인도신화 마하바라타에서 시바가 독을 ‘기꺼이’ 마심으로서 푸른 목을 가지게 되었지만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자비의 위신력이 있기 때문에, 귀의문에서처럼 푸른 목을 가진 닐라깐타를 기억하면서 닐라깐타의 명호인 성관자재에게 귀의 하고 피난처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붓다와 담마와 상가의 삼보를 귀의처이자 피난처로 삼는 것과 분명히 다른 이야기이다. 따라서 천수다라니는 유신적(有神的) 입장에 근거한 타력적(他力的) 측면이 전제되어 있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과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신론적이며 타력적
매일 아침 bbs불교방송에서 아침예불방송이 끝난후에 반드시 틀어 주는 것이 또한 신묘장구대다라니이다. 이처럼 천수경과 신묘장구대다라리는 우리 불자들과 이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런 천수경의 진언과 신묘장구대다라니는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여 우리말화된 산스크리트어 그대로 독송하고 있다. 그런데 천수다라니의 내용이 힌두교의 시바와 비쉬누신들의 찬탄이라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될까.
정보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는 글로벌화 되어 모든 정보는 오픈 되고 공유화 되기에 이르렀다. 불교도 이와 같은 거센 정보화와 글로벌화의 물결에 자유로울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천수다라니의 내용이 이에 해당 될 것이다. 예전에는 뜻도 모르고 외웠으나 그 뜻을 알고 나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천수다라니의 내용 또한 마찬가지이다.
용왕이 토해낸 독물로 인하여 창조된 세계가 종말을 맞이 할 것 같자 모든 존재를 불쌍하게 여긴 비쉬누신이 대신 이 독물을 기꺼이 들이켜서 구원하였다는데 그 결과 독물의 영향으로 푸른 목(닐라깐타)이 되었다는 것이 천수다라니의 ‘성관자재’이다.
이 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중생을 구원하는 성관자재의 자비행에 대하여 찬탄하고 또한 구원을 바라는 것이 천수다라니의 주된 내용인데 ‘유신론적’이며 ‘타력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른 영향이다.
이제 숨길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다. 너무나 명백하게 밝혀진 내용을 보면 한국불교계에 닥칠 혼란과 커다란 위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초기불교의 도입으로 인하여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한국불교가 커다란 위기에 처했을 때 초기불교가 대안이 될 것으로 말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초기불교는 철저하게 부처님 당시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에 외도가 발 붙일 염려가 없다. 바로 이런점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남북이 대치하고 종교적으로 유일신교와 대치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사상과 문화가 충돌하고 있는 한국적 특수상황에서 불교가 존립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천수다라니는 전세계적으로 닐라깐타 다라니 음악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매월 철야기도회가 있고, 또한 매일 아침 bbs불교방송에서는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하며 여전히 방송을 타고 있다.
2010-09-09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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