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어떻게 해서 얼굴빛이 맑고 깨끗합니까? 전현수박사의 ‘마음테라피

담마다사 이병욱 2010. 11. 18. 10:54

 

 

 

어떻게 해서 얼굴빛이 맑고 깨끗합니까?  전현수박사의 마음테라피

 

 

 

 

옛날생각이 나서

 

언젠가 예비군동원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느 예비군 교장의 연병장에 천막을 치고 몇일 숙박하며 보냈는데, 첫째날 취침점호가 끝났는데도 왁자지껄하였다. 그 중 어느 하사관출신의 노동자가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군복과 총과 군대와 관련된 것들을 보자 자꾸 옛날 생각이 떠 올라 잠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전성기와 같았던 군대시절을 떠 올리면서 회상에 잠긴 모습이 무척 허무하고 허탈하게 보였다.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만 방심하여도 금새 과거 아니면 미래로 가 있다. 단 몇 분, 아니 단 몇 초도 현재의 마음에 머물기 어렵다.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이에 대하여 인터넷 불교tv에서 정신과 전문의 전현수박사의 강의를 들었다.

 

전현수박사의 마음테라피

 

요즘 인터넷으로 보는 불교tv에 꽤 볼 만한 프로가 많이 생겨 나고 있다. 이제까지 스님들의 법문이나 금강경과 같은 대승경전위주의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으나 불교와 관련된 전문분야의 강좌도 여럿 소개 되고 있다.

 

초끈이론과 화엄사상을 현대물리학과 불교로 접목하려는 강좌, 미술로 보는 불교문화재 강좌, 심지어 주식투자를 경전의 가르침에 비교하여 설명하는 강좌가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그 중 최근 생겨난 강좌가 전현수박사의 마음테라피 (http://www.btn.co.kr/program/Program_datail.asp?ls_StSbCode=CATPR_02&PID=P634)’라는 강좌이다.

 

첫회를 본 소감은 정신치료에 불교의 명상기법이 광범위하게 활용 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계 정신과 의사들의 약 40%는 부처님이 발견한 마음집중(위빠사나)기법을 활용하여 치료에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강좌 역시 사띠(마음집중, mindfullness)를 이용한 행복찾기강좌라 볼 수 있다.

 

노이로제는 왜 생가는가

 

전현수 박사가 강의한 내용은 위빠사나 수행과 거의 일치하고, 또 초기불교의 교학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로 전박사는 2003년 미얀마에서 수행한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수행을 바탕으로 하여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그대로 정신치료에 접목하여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 중 노이로제 치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노이로제(neurose)는 독일어이다. 노이로제는 불안, 갈등, 억압 따위의 감정 체험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신체적 병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인데, 이것이 발전 되면 심장, 위장, 신경계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 노이로제를 다른 말로 신경증이라고 하고, 또 다른 말로 히스테리라고도 한다.

 

노이로제가 일어나는 요인은 무엇일까. 전박사는 이를 불교적 해법으로 설명하였는데 한 마디로 마음이 현재에 머물지 않고 과거나 미래에 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전박사는 불건전한 대상을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과거는 모두 불건전한 대상

 

과거는 좋았던 일도 나빴던 것도 있다. 그런데 좋았던 일보다 나빴던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또 좋았던 일 보다 좋지 않았던 일을 떠 올리는 힘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좋지 않았던 일을 떠 올리게 되면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런 괴로움은 육체에 영향을 주어 물질적 변화를 주게 되고 노이로제를 발전하게 된다고 말한다.

 

내 돈을 떼어 먹고 달아난 그 인간이 갑자기 떠 오르면 불쾌해지면서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이 외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어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죄책감’,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한 후회회한등은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반대로 좋았던 일을 떠 올리게 되면 상황이 더 좋아질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삶의 과정에서 좋았던 일도 있다. 다만 좋지 않았던 일 보다 더 적고, 또 떠오르는 힘도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좋았던 일을 회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좋은 추억은 좋지 않았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

 

그러나 좋은 추억을 항상 떠 올린다는 것은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추억속에 잠겨 있다가 현실로 다시 돌아 오면 괴롭다. 추억은 달콤한 맛은 있지만 부작용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는 모두 불건전한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미래에 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

 

근심 걱정 불안과 막연한 기대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미래의 특징은 근심과 걱정, 불안을 특징으로 하는데, 좋지 않은 미래와 또 하나는 기대와 희망, 계획과 같은 좋은 미래가 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래 역시 좋지 않은 일인 근심, 걱정, 불안이 좋은 것인 기대와 희망 보다 훨씬 더 많고 일으키는 힘도 강하다.

 

근심, 걱정을 하게 되면 살맛이 나지 않을 정도로 괴롭게 된다. 자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미래에 대한 불안, 근심, 걱정을 하게 되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에 미래를 기대하고, 희망을 가지는 것은 건전한 것일까.

 

 

미래를 기대하고, 희망을 갖는 다는 것은 불안, 근심, 걱정, 초조와 같은 안 좋은 미래를 떠 올리는 것 보다 훨씬 낫다. 그런 미래의 기대와 희망도 나름이다. 학생이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대하는 것, 방학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것, 적금을 기다리는 것, 연금으로 노후를 편하게 보내기를 기다리는 것, 좀 더 평수를 넓혀 고급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등은 지금 좋지 않은 것이다. 지금 안 좋은 것을 해야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현재가 안 좋기 때문에 현재를 탈피 하려는 것과 같다. 따라서 기다리며 사는 삶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미래에대한 계획은 어떨까. 여기서 회사나 국가에서 구체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막연히하는 계획을 말한다. 내일은 무엇을 하고 또 모레는 무엇을 하고 하는 식의 계획을 말한다. 그런 계획도 건전한 대상이 아닌 것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

 

이처럼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모두 불건전한 대상과 만나게 되므로 불선심이 일어나 불선심을 쌓게 되어서 결국 노이로제로 발전하게 되리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나 미래는 주로 어디에 있을까. 한 마디로 우리의 생각속에있다는 것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결국 과거나 미래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따라서 생각이 많다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일어난다. 이런 마음의 성질에 대하여 법구경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 하였다.

 

 

Dūragama ekacara           두랑가망 에까짜랑

asarīra guhāsaya              아사리랑 구하사양

ye citta sayamissanti         예 찟땅 상야미싼띠

mokkhanti mīrabandhanā          목칸띠 마라반다나.

 

마음은 끝없이 방황하고 홀로 움직이며

물질이 아니면서도 물질 속에 숨는다.

누구든 마음을 잘 다스리면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리.

(법구경 37게송)

 

 

이처럼 마음은 제 멋대로이다. 물질적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몸은 서울에 있지만 부산에 있는 사람을 생각한다면 부산에 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마음은 홀로 떠 돌아 다니며, 매우 빠르게 일어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이처럼 천방지축 날 뛰는 마음은 콘트롤 할 수 없기 때문에 내것이 아니다. 만일 마음이 내것이라면 내 뜻대로 움직이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내 몸과 마음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라고 말하는 나를 믿을 수 없다. 나의 몸과 마음은 단지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다섯 무더기(오온)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윤회에서 벗어 나는 길이라고 말씀 하셨다.

 

마음을 현재에 두면

 

마음은 현재와 와 있어야 한다. 마음이 현재에 와 있으면 어떤 이득이 생길까.

 

첫째 집중력이 강해진다. 하나의 대상에 몰두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과거와 미래에 가 있다면 마음은 나래를 펼 것이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해서 집중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둘째, 힘이 생긴다. 마음이 현재에 있으면 힘도 생길 뿐만 아니라 세상의 이치나사물의 본질에 대하여도 알게 된다. 그래서 지혜로워지고 무언가 성취하게 된다.

 

이처럼 마음을 현재에 두게 되면 설령 과거의 일 때문에 화가 일어나더라도 그 이유를 알게 되어 그저 순리에 맞게 처리하게 되고, 또 미래의 걱정도 그렇게 일어날 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 것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얼굴빛이 맑고 깨끗합니까?

 

마음을 현재에 둔다는 것은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계행은 자동적으로 지켜지게 되고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게 된다. 또 마음을 현재에 두게 되었을 때 그 얼굴 역시 달라 보인다. 이에 대한 아름다운 게송이 있다.

 

 

한때 부처님께서 숲속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다.

하늘사람이 세존께 다가와서 시구(詩句)로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
하늘사람]

숲에 살면서
고요한 청정의 수행자
하루 한끼를 들면서도
어떻게 해서 얼굴빛이 맑고 깨끗합니까? “

 


[
세존]

지나간 일을 슬퍼하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지 않으며
현재의 삶을 지켜 나아가면
그의 얼굴빛은 맑고 깨끗하리.

아직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며
지나간 일을 슬퍼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때문에 시든 다네
낫으로 잘리 운 푸른 갈대처럼. “


<상윳따니까야 , SN 1.10 Sagāthā Vagga  Aranna Sutta(숲속의 경)>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 수행자들은 숲속에서 살았다. 그런 숲속은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청정도론의 두타행에 따르면 어른이 돌팔매로 던지는 거리 또는 활을 쏘아 화살이 도달 하는 거리에 있었다. 출가 하였다고 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고 심산유곡에 들어가 세상과 등지고 살아 간 것이 아니라 탁발하기 좋은 마을 가까이 살면서 사람들에게 법문도 하고 교화하며 살아 간것이다.

 

수행자들은 오후 불식의 계율에 따라 오직 오전 탁발만으로 공양을 하기 때문에 하루 한 끼만 먹었다. 그런 수행자의 얼굴이 왜 맑고 깨끗한 것일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마음이 항상 현재에 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그 말은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려서 잘 다스리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Gautama Buddha(고따마 붓다)

4세기 사르나트(Sarnath)

 

 

 

불교는 매우 현실적인 종교

 

불교는 매우 현실적인 종교이다. 즐거움에 관하여도 부처님은 현세의 즐거움을 버리고 내세의 즐거움을 추구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마성스님의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죽어서 하늘에 태어나는 것, 즉 생천(生天)을 이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현법(現法)에서 깨달음을 획득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았다. 이것을 현법열반(現法涅槃)이라고 한다. 현법열반(dittha-dhamma-nibbana)은 죽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몸을 가진 상태에서 무지와 탐욕을 벗어나 해탈하기만 하면 곧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마성스님,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 , <[佛敎] 통권 제483, 1996 1월호)

 

 

불교는 죽어서 완성되는 종교가 아니라 살아서 완성되는 종교임을 말한다. 따라서 이 몸을 가진 상태에서 해탈과 열반을 성취 할 수 있는데, 그 방법은 항상 마음이 현재에 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를 대비하지 말자고 오해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오늘 하루를 충실히 생활하면 이미 미래를 대비 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비록 한끼를 먹더라도 그 얼굴 빛이 맑고 깨끗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2010-11-1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