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고통 그 자체도 성스런 진리

담마다사 이병욱 2010. 11. 30. 08:53

 

 

 고통 그 자체도 성스런 진리 

 

 

 

 

 

 

 

고통 그 자체도 성스런 진리

 

부처님이 고통만 강조 하였다면 틀림없이 염세주의자나 허무주의자로 몰렸을 것 입니다. 그리고 부처님 법이 오늘 날 까지 전승 되어 올일도 없었겠지요. 불교tv에서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강의한 아상가 교수에 따르면 부처님이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 한 것은 그 해결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해결방법에 대하여 설명 하기 위하여 반드시 언급 하지 않으면 안될 사항이 고통고통의 원인에 관한 것 이었습니다.

 

 이처럼 고통고통의 원인고통의 소멸고통의 소멸을 이끄는 도를 닦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보았기 때문에 4가지의 성스런 진리에 포함 된 것 입니다. 닙바나만이 성스런 진리가 아니라 고통 그 자체도 성스런 진리라는 것은 부처님의 독특한 사상입니다.

 

()의 여러가지 뜻

 

한자 용어 고()는 여러가지로 불리워 집니다. 고통, 괴로움, 불만족, 불쾌감 등 입니다. 이는 고의 성질에 따라 명칭을 달리 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봅니다. 청정도론에 괴로움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를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고통에 기인한 괴로움(dukkha-dukkha,苦苦)

2. 변화에 기인한 괴로움(viparinama-dukkha, 壞苦)

3. 형성됨에 기인한 괴로움(sankhara-dukkha, 行苦)

4. 감춰진 괴로움(paticchanna-dukkha)

5. 드러난 괴로움(appaticchanna-dukkha)

6. 간접적인 괴로움(pariyana-dukkha)

7. 직접적인 괴로움(nipariyana-dukkha)

(청정도론 2 546p)

 

 

이처럼 괴로움의 종류가 7가지나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이 고고, 괴고, 행고 일 것입니다.

 

그런데 청정도론에서 번역자 대림스님은 고고(苦苦)고통에 기인한 괴로움이라고 번역 하였습니다. 이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의미하지요. 영어로 말하면 ‘suffering’이 됩니다.

 

두번째로 변화에 기인한 괴로움을 괴고라 하는데, 청정도론에서 즐거운 느낌은 그것이 변할 때 괴로운 느낌이 일어 날 원인이 되기 때문에 변화에 기인한 괴로움이라 한다.” 라고 풀이 하고 있습니다. 이를 영어로 표현하면 unsatisfaction이고, 한자어로 不滿足(불만족)이 될 것입니다.

 

또 행고에 대하여 상카라들은 일어나고 사라짐에 대한 압박되기 때문에 형성됨에 기인한 괴로움이라 한다.” 라고 표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말과 영어의 표현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만들어 사용해야 겠지요.

 

둑카(dukkha)

 

현실이 고통스럽다면 고통이라고 부를 것이고, 지금 행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불만족스럽다고 할 것 입니다. ‘불쾌감도 마찬가지 일 것 입니다. 이런 것을 통틀어 한자어로 라 하는데, 과연 한자어 를 제대로 표현 한 것일까요.

 

이럴 경우 초기불교를 공부 하는 부처님의 제자라면 빠알리 삼장을 떠들어 보아야 할 것 입니다. 빠알리 삼장중에서도 가장 먼저 아비담마나 청정도론을 본다면 용어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볼 수 있습니다. 청정도론에서 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용어 풀이를 해 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 진리는 여러가지 위험이 도사리는 소굴이기 때문에 비열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항상함, 아름다움, 행복, 자아가 없기 때문에 비었다. 그러므로 비열()하기 때문에, 비었기()때문에 둑카(괴로움)라 한다.

(청정도론, 2, 537p)

 

 

한자어 고는 빠알리어로 둑카(dukkha)’라 합니다. 청정도론의 설명에 따르면 둑카는 비열하고 비었다라는 의미입니다. 빠알리어 둑카에서 ‘두(du)’는 “비열하다”는 뜻이고,  또 ‘카(kha)’라는 단어는 “비었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문자적 의미로만 본다면 고()가 반드시 괴로움의 의미로만 쓰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세상과 자아는 항상 하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 즐거움, 행복, 영원한 삶을 추구 합니다. 그럴 경우 필연적으로 고통과 괴로움과 불만족, 불쾌감 등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왜냐하면 연기법에 따르면 형성된 모든 것들(상카라들, 유위법)은 변화하고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자어 고가 반드시 고를 대표하는 문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차라리 둑카로 부른다면

 

일반적으로 한자어는 뜻 글자이기 때문에 글자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미지)이라 합니다. 따라서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선종이 일어난 이유도 한자어의 비논리성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지 뜻 글자이고, 또 상징어이기도 한 한자어 로 부르기 보다 차라리 빠알리어 원어인 둑카로 부르는 것이 어떨까.

 

 

 

2010-11-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