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도로를 배회하는 ‘달리는 교회’

담마다사 이병욱 2010. 12. 17. 10:45

 

 

 

도로를 배회하는 달리는 교회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옆에서 코고는 소리에도 잠을 못 이룬다. 또 복도에서 하이힐을 신고똑 똑 똑...”하고 걸어 가는 소리도 귀에 거슬린다. 이외 층간 소음문제, 차량경보기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소리, 심야에 소리지르는 사람등 도시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가지 눈살을 찌 뿌리게 하고, 편안한 잠을 방해 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안면방해죄(安眠妨害罪)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서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런 권리를 침해 하였을 때 법으로 다스리는데, 이를 보통 안면방해죄(安眠妨害罪)라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도시의 이곳 저곳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되고 전등불이 켜져 밤하늘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 때가 되면 연중 행사처럼 듣던 것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기독인들은 이를 새벽송이라 하였다.

 

잠결에 고요한 밤~”하고 부르는 새벽송에 잠이 깨던 기억이 새롭다. 기독인들은 이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고역이었다. 노래도 한 곡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메들리로 연달아 부르고 왁자지껄한 소리에 잠을 깨어 언제 끝나나하고 기다리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은 새벽송을 들을 수 없다. 만일 아파트 단지에서 새벽송을 부르면 당장 경찰에 신고 하는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하이힐을 신고 걸어가는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대인이 편안한 잠을 방해 하는 행위를 용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인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사고방식을 고집한다. 비록 안면방해 행위는 아닐지라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신념을 설명하기에 바쁘다.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선교행위는 일종의 공해나 다름없다.

 

걸어다니기가 겁나

 

공해의 사전적 의미는 산업이나 교통의 발달에 따라 사람이나 생물이 입게 되는 여러가지 피해를 말한다. 자동차의 매연, 공장의 폐수, 여러 종류의 쓰레기 따위로 공기와 물이 더럽혀지고 자연환경이 파괴 되는 문제따위를 말한다.

 

그런 공해도 여러종류가 있다. 납공해, ()공해, 소음공해등 공해 앞에 글자만 넣으면 수십가지 수백가지 공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다. 그 중에 선교공해도 있을 것이다.

 

 

공해는 도시나 농촌할 것 없이 공동체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적()과 같이 취급한다. 그래서 무공해 청정지역을 그리워 하는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탈공해을 위하여 도시탈출도 감행하고, 무공해 농산물을 사먹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꼼짝없이 공해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 공해 중의 하나가 기독교의 선교공해라는 것이다.

 

일요일 오전에 거리를 걸어다니기가 겁난다. 도처에 선교하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차와 커피를 대접하고 사탕과 과일을 나누어 주는데 반드시 자신들의 교회 선전이 들어가 있는 팜플렛을 나누어 준다.

 

 

 

 

 

 

 

길거리 선교

도시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이들은 신기하게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귀신 같이 알아 맞추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을 지나칠 때 예외 없이 (call)’을 받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키 포인트는 복장에 있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정장차림이다. 마치 예식장 가듯이 최고로 잘 차려 입고 다니기 때문에 그들은 차림새로 구분한다. 일요일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의 복장은 대부분 자유롭기 때문이다.

 

 

 

 

 

 

교회가는 가족

일요임에도 불구하고 잘 차려입은 복장이 특징이다.

 

 

 

이렇게 차림새를 보아 신자인지 아닌지 구별하고 접근하기 때문에 거리를 돌아다니기가 여간 부담 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 것도 한 두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집 걸러 하나씩 있다고 할까.

 

구멍가게 보다 더 많은 교회

 

오늘날 도시의 밤하늘은 교회가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십미터에 하나씩 서 있는 교회의 십자가 불빛은 구멍가게 보다 더 많다고 한다. 실제로 어느 동네의 경우 교회가 구멍가게 보다 더 많은 경우를 보았다.

 

 

 

 

 

교회들

좌측에 3, 우측에 2개가 있어서, 거의 한집 걸러 하나씩 보인다.

 

 

 

대한민국에 이처럼 교회가 많다는 것은 속된 말로 장사가 잘 된다라는 것과 같다. 장사를 더 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객을 확보 해야 할 것이다. 그 것도 뜨내기 손님이 아닌 고정고객을 확보해야 안정적으로 유지 되는 것이다.

 

한집 걸러 하나씩 있는 듯한 교회의 십자가를 보면 신자가 확보 되었기 때문에 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좀 더 키우고자 한다. 그래서 전세들어 있는 교회를 벗어나 단독건물로 지어진 크고 웅장한 교회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정된 주민을 놓고 교회끼리 피 튀기는경쟁이 벌어진다. 그 와중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타켓이 되어 거리를 걸어 다닐 때 마다 시달림을 받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도 공해중의 하나로 보아서 선교공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스님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불편을 느끼는 것은 보통시민들만이 아니다. 가장 불편을 호소 하는 사람들이 스님들이다. 불교방송에서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길거리의 전도사들이 지나가는 스님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다는 것이다.

 

스님을 보는 순간 전도사들은 마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스님은 길거리를 걸어 가는 것 조차 큰 스트레스로 여긴다는 말을 들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스님을 뒤쫒아 가는 전도사

출처 http://blog.naver.com/kimnami57

 

 

어떤 중년여인은 길거리를 걸어 가는 스님에 달라 붙어 팔짱을 꼭끼고 자신의 몸을 밀착시킨 다음 귀에 대고예수 믿으세요하며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선교공해는 길거리 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모여 있는 어느 곳에서든지 공해는 있기 마련이다. 전철역의 출구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이크를 들고 하루도 빠짐 없이 전도하는 사람, 전철역앞에서 음악밴드를 구성하여 악기와 함께 노래 부르는 사람들, 관광지에서 화려하고 이색적인 모습으로 예천불지를 외치는 사람등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 든지 볼 수 있다.

 

 

 

 

 

 

 

길거리전도사

관광지에서, 시장에서 사람이 모이는 어느 곳에서든지 '예천불지'를 외치는 전도사

 

 

 

타인을 배려 하는 마음이 있다면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경기장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TV로 중계되어 전국민이 시청하는 월드컵과 같은 축구경기는 매우 좋은 선교대상이다. 그래서 일부 열성 기독선수들은 이를 잘 활용 하여 기도세레모니로서 선교 하기도 한다.

 

 

 

 

 

기도세레모니

남아공월드컵 16강전에 진출한 후  “주여! 주여!”하며 울부짖는 대표선수들

사진 : 국민일보 , http://news.kukinews

 

 

 

TV를 이용한 선교에 있어서 기독연예인들의 연말시상식 소감도 빼 놓을 수 없다. 그들은 한 결 같이 시상식에서 자신의 신에게 감사한다라는 말 부터 한다.

 

국민들이 기독교신자이건 아니건 관계 없이 자신의 신을 들먹인다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행위이다. 이는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한 우월성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 자신의 종교를 아직 믿지 않는 국민에게 그렇게 말을 해도 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이 타인을 배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향하여 일방적으로 자신의 종교를 소개 하고, 전철역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듣든지 말든지 일방적으로 자신의 종교에 대하여 선전한다든가, 축구장에서 누가 무어라고 말하든 말하지 않든 기도세레모니로서 자신의 신앙을 표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자신의 종교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구제해야 될 대상 내지 열등한 인간들로 보기 때문에, 심지어 불교신자라 할지라도 막 대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달리는 교회

 

국민들은 기독인들이 길거리나 축구장, 연말시상소감에서 선교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하여 불편해 한다. 특히 불교를 믿는 불자들의 심기는 더욱 더 불편하다. 그들은 오로지 국민들을선교의 대상’으로 보고, 불자들은 개종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막 대해도 괜찮다는 오만과 불손, 무례함이 가득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오만과 불손, 무례함의 극치를 또 보았다.

 

이제는 사람이 다니는 길거리가 아니라 도로를 통해서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차량에 확성기를 부착한 채 선교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달리는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소리는 마치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차량을 이용하여 자신을 지지 해 달라고 호소 하는 것과 같다.

 

 

 

 

 

 

 

 

 

 

달리는 교회

차량에 고성능 마이크를 부착하고 도로를 배회 하고 있다.

 

 

 

이제 길거리를 넘어 도로까지 진출하여 달리는 교회를 보았다. 도시에 또 하나의 새로운 공해가 발생 된 것이다. 

 

 

 

 

2010-12-1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