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사람사는 곳에 왜 불교가 없을까, 부석사 가는 길에

담마다사 이병욱 2011. 2. 14. 11:10

 

 

 

 

사람사는 곳에 왜 불교가 없을까, 부석사 가는 길에

 

 

일상을 벗어나 기분전환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여행이다. 일단 떠난 다는 것 자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관심을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육근의 대상이 바뀜에 따라 들어 오는 정보 또한 다르기 때문에 현실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서민이나 소시민들에게 있어서 여행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다. TV에서 보는 것 같은 거창한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고, 그렇다고 몇날 몇일 머무는 국내여행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당일치기여행이다. 자동차가 있다면 가까운 곳에 다녀 오는 것이다. 불자들이라면 전통사찰로 등록된 산사가 가장 좋을 것이다.

 

부석사 가는 길에

 

매일 반복되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 보고자 차를 타고 떠났다. 목표는 아직 가 보지 않은 전통사찰이다. 그 중에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고 다녀 오기에 부담이 없는 곳을 고른 결과 부석사가 눈에 띄었다.

 

서산에 있는 부석사는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주지스님의 왕성한 방송이나 언론관련 활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부석사는 수도권에서 가기에 부담 없는 거리이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핸들만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부석사 가는 길에 보는 농촌의 풍경은 삭막하다. 겨울이라 그런지 모두 벌거벗은 모습이다. 거기에다 날씨 마저 추워서 초록의 꽃피는 계절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죽어 있는 듯이 보인다. 더구나 곳곳에 설치된 구제역과 조루인푸엔자(AI)의 감염을 막기 위하여 강제적으로 약품샤워를 당해야 했는데, 이는 더욱 더 농촌의 풍경을 스산하게 만든다.

 

 

 

 

구제역방지를 위한 자동방역시스템

길가 곳곳에 설치된 자동방역시스템에서 하얀 약품세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스산 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교회의 십자가와 성당과 같은 커다란 구조물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 불교가 없다보니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보는 광경중의 하나는 십자가로 상징되는 교회이다. 구멍가게 보다 더 많다는 교회는 불과 이삼십미터 간격으로 서 있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한 건물에 여러교회가 보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십자가의 물결을 불과 몇 백명명 밖에 살지 않은 농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이다.

 

도로를 달리며 바라본 농촌풍경은 마치 유럽의 중세시대를 연상케 한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집들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높은 건물은 항상 교회나 성당이다. 특히 교회는 한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개 있다. 이런 광경을 외국인이 본다면 한국은 기독교국가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그런 농촌의 풍경에 불교는 보이지 않는다. 모두 산에 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 절은 없고, 오로지 산에 가야만 절을 볼 수 있는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조사를 하면 불교인구는 전체국민의 22%가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만을 놓고 따져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문화관광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의 종교인구 분포는 다음과 같다.

 

 

서울, 인천, 경기의 종단별 인구

 

불교

개신교

천주교

인구

서울

1,642,667

(16.8%)

2,222,831

(22.7%)

1,382,264

(14.1%)

9,762,546

인천

348,361

(13.8%)

563,433

(22.3%)

345,843

(13.7%)

2,517,680

경기

1,741,401

(16.8%)

2,260,594

(21.8%)

1,286,104

(12.4%)

10,341,006

 

출처;  문화관광부 한국의 종교현황

 

 

2005-종교별 교세 현황_110214.hwp

 

 

 

위 자료는 지난 2005년에 발표된 종교인구통계이다. 통계를 보면 전국인구의 반이 몰려산다는 서울과 인천, 경기에서 불교인구는 고작 13~16%대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의 평균치인 22%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도권에서 불교는 개신교에 밀려 2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통계를 보면 3위의 천주교와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인천의 경우 불과 0.1% 차이로 천주교를 앞서고 있지만 2011년 현시점에서 역전을 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불교는 인천에서 3등종교로 전락한 셈이 된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서울과 경기에서도 곧 3등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천주교의 경우 매 10년마다 성장률이 30~40%대로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고 있는 반면 불교는 정체 되고 있다면, 2015년 종교인구조사에서 불교는 천주교에도 밀려 3등종교가 될 것임에 틀림 없다.

 

불교는 왜 감동을 주지 못할까

 

3등종교라면 국민들로 부터 외면당한 소수종교라고 볼 수 있다. 소수종교로서 불교는 산중에서만 명맥을 유지해 갈 뿐 사람사는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결과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 절이 없고 산에 가야만 불교를 접할 수 있다면 이는 포교에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기독교신학자인 이찬수 교수는 불교평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통적인 것 보다는 새로운 것에서 희망의 근거를 보는 이들이 많아졌다. 20세기 한국인에게 ‘전근대적인 것’은 극복의 대상이고 서양식 ‘근대’는 추구의 대상이었다.

(어느 불교적 기독교인이 본 불교, 이찬수교수, 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950)

 

 

한국불교가 국민들로 부터 인기가 없고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전근대적이라는 것이다. 불교는 낡고, 오래되고, 전근대적인 이미지를 주어서 전승의 대상이라기 보다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는 충격적인 글이다. 이는 조선이 망한 원인을 유교와 같은 망국적인 종교로 보는 시각과 일치 한다. 따라서 100여년 전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불교는 단지 미신행위나 하고 우상숭배나 하는 종교라는 인식이 현대에 들어 와서도 변함이 없다는 말과 같다.

 

미신행위나 하고 우상숭배를 하는 종교로서 불교가 지금도 인식되고 있다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이는 아직도 불교가 점집이나 무당집의 큰집정도로 여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처럼 기복위주의 불교는 더 큰 기복종교인 기독교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도시나 농촌할 것 없이 사람사는 곳에 불교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불교 보다 더 큰 기복종교가 있고, 그 기복종교는 잘 잘 조직화 되어 있을 뿐만아니라 문명의 종교 내지 개화의 종교로서 인식이 10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극복의 종교로 생각하고, 기독교는 새로운 문물과 문명의 계승의 종교로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수파인 비구승이 다수파인 대처승을 몰아 내면서

 

설령 불교가 국민들의 의식에 있어서 전근대적인 것으로서 계승보다 극복의 종교라고 인식하고 있을 지라도 산중불교로서만 명맥을 유지해 가고 있다는 것은 스님들의 책임이 크다. 이는 한국불교가 모든 불자들의 불교라기 보다 스님들의 불교 내지 스님위주의 불교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불교가 스님들의 불교로 바뀌었을 때 사람사는 곳에 불교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될 것이다. 출가한 스님들이 머무는 곳은 세상과 멀리 떨어진 심산유곡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심산유곡에 가야 불교를 접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하여 고려대 조성택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흔히 비구-대처의 갈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소수파와 다수파의 갈등이었다. 해방 후 한국불교계의 주류는 대처제도를 현실로 인정하면서 대처와 비구를 함께 종단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자는 입장이었다. 그 다수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포교(대처)와 수행(비구)의 제도화를 통해 20세기 초 이래 한국불교의 두 과제인 ‘근대적 유용성’과 ‘한국적 정체성’을 함께 이루고자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비구승만으로 구성 된 소수파에서는 당시의 ‘반일정서’를 등에 업고 왜색불교 추방이라는 미명하에 다수파를 종단에서 몰아내었던 것이다.

(한국불교의 현재적 성찰과 나아갈 방향 , 조성택/고려대 철학과 교수)

 

한국불교의 현재적 성찰과 나아갈 방향.docx

한국불교의 현재적 성찰과 나아갈 방향.pdf

 

 

1960년대 발생하였던 비구와 대처승의 다툼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비구승편을 들어 설명하는 것이 보통이다. 대처승은 일제의 잔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불교를 청산하고 민족불교로 되돌아 가기위하여 대처승을 모조리 몰아내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불교의 재산권을 놓고 서로 다툼을 벌인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1700년의 한국불교 역사에 있어서 조상들이 남겨준 수 많은 문화재와 토지, 산등 불교재산을 놓고 벌인 이권다툼으로 본 것이다.

 

그렇게 하여 소수파인 비구들이 다수파인 대처승을 몰아내고 한국불교를 대표하게 되었는데, 5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 왔을까. 이는 도시는 물론 농촌까지 사람사는 곳에 불교를 접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었고, 불교를 접하려면 깊은 산중에 가야 하는 현실로 된 결과라 주장한다면 지나칠까.

 

그래서일까 조교수는 논문에서 대처승을 잘 활용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고 있다. 대처승을 포교에 활용하고, 비구승을 수행승으로 하였다면 한국불교의 큰 과제이었던 근대적 유용성한국의 정체성을 함께 이루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수파인 비구승이 다수파인 대처승을 몰아 내면서 근대적 유용성으로서 대표되는 포교가 상실되고, 그 대신 한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긴 하였지만 이는 산중불교로 머물고 만 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한국불교가 산중에만 머물고 만 이유에 대하여 동국대 김상현교수는 만해사상을 잘 이어 받지 못한 아쉬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만해는 193110불교에 기고한 조선불교의 개혁안 에서도 승려만의 불교’, ‘사찰만의 불교를 부정하고 대중을 위한 불교를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간에서 가두로’, ‘승려로부대중에게라는 로우건을 내세우면서 대중불교의 건설을 선했던 것이다.

(만해스님과 조선불교 유신론에 대한 토론문, 김상현 동국대 사학과 교수)

 

“불교 유신”을 다시 생각하다..docx

“불교 유신”을 다시 생각하다..pdf

 

 

만해스님은 승려들만의 불교에서 대중을 위한 불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해방후에 일어난 비구와 대처승의 다툼에서 비구승이 모든 것을 차지함으로서 만해가 주장한 대중불교운동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반세기가 흐른 지금 시점에서 불교의 사회적 역할은 축소 되었고, 타종교의 물결이 불교의 안마당에 까지 진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고즈넉한 서산 부석사

 

산중에 가야 불교를 만날 수 있는 현실에서 본 전통사찰은 매우 고즈넉하다. 마치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한 산사의 풍경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해 주기해 충분하다. 부석사도 그런 사찰 중의 하나이다. 더구나 주지스님의 원력으로 템플스테이도 벌이고 있다하니 비록 산중에 있는 사찰일지라도 세상과 소통은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석사전경

 

 

 

 

 서산 부석사는 677년 의상스님에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한다.

 

특히 조선말 근대에 한국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만공선사가 주석한 곳이라 한다.

 

 

 

  

 

극락전의 아미타부처님상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다

 

이제 불교도 산중에 머물러 있지 말고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나와야 한다. 산중의 사찰에서 바라본 사람사는 마을을 보면 마치 중세시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커다란 교회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형성되어 있는 마을은 이제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불교는 언제까지 산중에 머물러 있어야 할까. 이에 대하여 불교평론가인 홍사성님은 자신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국불교가 부처님이 그토록 강조한 교화활동을 등한시하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원인을 추궁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발견될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아마도 ‘깨달음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선불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 나라에서는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 선적(禪的) 깨달음에 있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화두 타파를 불교의 목적, 출가의 목적으로 생각해왔다. 참선 수행이야말로 상구보리(上求菩提)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온 것이다. 상구보리의 짝인 하화중생(下化衆生)이 소홀해진 원인은 실로 여기에서 발견된다. ‘수행’을 위해 ‘교화’를 뒷전으로 밀어낸 것이다.

(깨달음이 불교의 목적인가, 홍사성 불교신문 주필)

 

깨달음이 불교의 목적인가.docx

 

깨달음이 불교의 목적인가.pdf

 

 

한국불교가 깨달음만을 목적으로 하다보니 깊은 산중에 가게 되었고, 그 결과 중생교화는 뒷전에 처졌다는 것이다. 홍사성님은 그런 깨달음의 추구에 대하여 비판한다. 그런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어쨌든 이 글의 결론은 이렇다. 중생은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다. 부처님이 다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깨달은 부처님이 가르친 대로 바르게 살면 된다. 불교에서 바르게 산다는 것은 바른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른 수행은 팔정도와 사념처를 닦는 것을 말한다.

(깨달음이 불교의 목적인가, 홍사성 불교신문 주필)

 

 

한 마디로 불자들은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이라 말한다. 부처님이 이미 깨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이 닦아 놓은 그 길로 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도로를 주행하는 것과 같다.

 

요즘은 차안에 네비게이션이 설치 되어 있어서 목적지의 주소만 입력해 놓으면 알아서 길을 안내해 준다. 부처님도 경전에서 자신은 안내자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도와 같고, 현대식으로 말하면 네비게이션과 같은 것이다.

 

계승의 대상이 되려면

 

지금 부석사를 찾아 가는데 있어서 지도만 있으면 찾아 갈 수 있다. 운전자는 단지 악셀레이터에 발을 올려놓고 핸들만 잡으면 된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가르침이 있다면 부처님이 제시한 그 길로 가기만 하면 된다. 그 길은 일반적으로 사성제, 팔정도, 사념처와 같은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 해당된다. 그 길을 놓아 두고 평생선방에 다닌다든가 심지어 기약없는 무문관수행을 한다는 것은 지도없이 길을 떠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사람사는 곳에 불교를 전파하려면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나와야 한다. 기복으로 유일신교에 당해 낼 수 없으니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래야 이교도들이 항상 대놓고 말하는 미신행위와 우상숭배라는 멍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는 곳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법사는 설법과 수행을 겸비하여 교화 하여야 한다. 이렇게 불교가 기복과 방편에서 벗어나 설법과 수행의 불교로, 한편 불자는 신도에서 수행자로 거듭날 때 불교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계승이 대상이 되지 않을까.

 

 

2011-02-1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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