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세상의 창조와 범망경(Brahmajala Sutta)

담마다사 이병욱 2011. 3. 1. 16:23

 

 

 

세상의 창조와 범망경(Brahmajala Sutta)

 

 

고령화시대를 맞이하여 노인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고한다. 그런데 특별히 돈벌이 수단이 없는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TV시청밖에 없다고 한다.

 

아무 하는 일 없이 시간이 남아 돌았을 때 사람들은 무료함과 권태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무언가 흥미거리를 찾아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게 된다. 책을 본다든가, 오락을 한다든가 하는 행위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라 볼 수 있다. 그런 현상은 아이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은 심심하면 모래놀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아이들은 모래성을 만들었다 부수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간이 남아 돌면 참을 수 없는 무료함과 권태로움, 심심함을 느낀다. 그런 느낌은 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심심하던 차에

 

디가 니까야의 범망경(Brahmajāla Sutta)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 홀로 살았기 때문에 싫증과 초조함이 생겨,, 다른 중생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갈망하였다).

(디가 니까야, 범망경 梵網經- Brahmajāla Sutta, D1, 2.3)

 

 

 

 

 

사진  : http://www.inannareturns.com/gita/krishna26.htm

 

 

어느 때 세상이 팽창할 때 텅빈 범천(색계 초선천)이 출현하였는데, 바로 위의 천상인 색계 광음천에서 공덕이 다한 자가 떨어져 길고 긴 세월을 혼자 살다 심심함, 무료함, 권태에 못이겨 누군가 옆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독백형식으로 말하는 장면이다.

 

그 이전에 어떤 사건이 있었을까. 청정도론의 설명에 따르면 세상이 수축될 때 지옥에서 부터 범천까지 모조리 불에 타 버린다고 한다. 그 이유는 중생들의 탐욕이 치성하여 겁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후 세상이 팽창의 시대에 접어 들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세상이 가장 늦게 탄 색계 초선천인 범천이라는 것이다.

 

창조주와 피조물

 

텅빈 범천에 최초로 나타난 존재는 바로 윗 천상에서 공덕이 다하여 아래 세상으로 떨어진 자이다. 그런데 홀로 오랜 시간 무료함과 권태로움에 심심 하던차 , 어느 때 또 한 무리의 존재들이 태어났다. 그 존재들 역시 공덕이 다하여 아래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러자 먼저 태어난 존재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들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아버지다. 나야말로 이 중생들의 창조자이다.”

(디가 니까야, 범망경 梵網經- Brahmajāla Sutta, D1, 2.5)

 

 

먼저 태어난 존재는 왜 이런 착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전에 자신이 , 다른 중생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였는데, 실제로 그런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편 뒤에 태어난 존재들은 먼저 온 존재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 존자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들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아버지다. 이 존귀하신 범천이야말로 우리들의 창조자이시다.”

(디가 니까야, 범망경 梵網經- Brahmajāla Sutta, D1, 2.5)

 

 

뒤에 태어난 존재들은 왜 이렇게 착각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우리는 이 분이 여기에 먼저 계신것을 보았고 우리는 후에 생겨 났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범천에서 먼저 태어난 존재는 수명이 더 길었고, 더 아름답고, 더 힘이 세었다고 한다. 그 뒤에 태어난 존재는 수명이 더 짧았고, 더 못 생겼으며, 더 힘이 약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 어떤 존재가 수명이 다하여 죽게 되었다. 그는 다시 그 곳에서 태어나게 되었는데, 그가 나중에 출가하여 집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열심히 수행하여 전생의 삶을 기억하는 삼매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바로 전의 전생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런 그가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이 존자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존재하는 것들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아버지다. 이 존귀하신 범천이야말로 우리들의 창조자이시다.”

(디가 니까야, 범망경 梵網經- Brahmajāla Sutta, D1, 2.6)

 

 

오직 바로 전의 전생밖에 기억하지 못한 수행자가 가장 먼저 온 존재에 대하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은 영속 그 자체’, ‘존재 그 자체로 계신 것처럼 느낀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고,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어서 이 곳에 태어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아와 세상은 영속하다고

 

세상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치성하였을 때 불과 물과 바람으로서 주기적으로 스스로 파괴되며 성주괴공을 거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불교의 세계관이다. 마찬가지로 생명이 있는 존재들 역시 생노병사를 거듭하며 윤회하고, 마음 역시 찰나생 찰나멸 하며 생주이멸하는 것으로 본다.

 

이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변하는 것이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어서 무상한 것으로 보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부처님 당시의 브라만들은 세상은 고정되고 불변하고 영원한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불변하는 자아 또는 영혼이 있어서 마치 옷을 갈아 입듯이 몸만 바꾸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는  마치 산꼭대기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성문의 기둥 역시 움직이지 않느 것처럼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 브라만들은 이 곳 저 곳으로 치달리며 윤회하며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 존재 그 자체로 본 것이다. 그런 예가 바로 위에 언급한 범천에서 먼저 온 자와 나중에 온 자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 볼 수 있다.

 

대망어죄(大妄語罪)

 

그런데 부처님은 범망경에서 그런 인식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브라만들이 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영속론자 그 사문·바라문들이 네 가지 경우로 영속하는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디가 니까야, 범망경 梵網經- Brahmajāla Sutta, D1, 3.32)

 

 

자아와 세상이 영원하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그렇게 느끼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 이는 견해와 갈애에 동요되어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한다.

 

견해가 일어나는 원인

 

그러면서 부처님은 이와 같은 견해가 일어나는 원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연기적 구조로 설명하였다.

 

 

그들 모두는

1) 여섯 가지 감각장소(,)을 통해

2) (갖가지 대상과 맞닿아) 계속해서 일어나는 감각접촉으로 인해

3) (사견의 느낌을) 경험한다.

4) 그런 느낌이 그들에게 갈애를 생기게 하고,

5) 갈애는 취착을 생기게 하고,

6) 취착은 존재를 생기게 하고,

7) 존재는 태어남을 생기게 하고,

8) 태어남은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울 생기게 한다.

(디가 니까야, 범망경 梵網經- Brahmajāla Sutta, D1, 3.58)

 

 

자아와 세상이 저 흔들림 없이 서 있는 산처럼 영원한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이는 결국 태어남, 늙음, 죽음, 근심, 탄식, 육체적고통, 정신적고통, 절망을 생기게 할 뿐이라 한다.

 

부처님의 제자라면

 

그러면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섯 가지 감각접촉이 일어나는 감각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이들 모든 (견해들)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꿰뚫어 안다."

(디가 니까야, 범망경 梵網經- Brahmajāla Sutta, D1, 3.71)

 

 

여섯감각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오온의 작용을 꿰뚫어 아는 것이라 한다. 현상들이 단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 그 어디에도 고정된 자아나 영원불변의 영혼, 더구나 변치 않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브라만들은 자아와 세상이 영원하고, 이 자아와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단지 현상은 무상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초월적 존재가 심심해서 누군가 옆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실제로 누군가 옆에 있게 되었을 때 자신이 창조한 것으로 착각하는 가 하면, 나중에 태어난 자는 자신 보다 먼저 온자에 대하여 자신을 창조한 것으로 착각한 것 역시 연기의 법칙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된 삿된 견해(邪見)’로 보는 것이다.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으로 귀결

 

범망경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견해를 가진 자들에 대하여 심도 있게 분류하여 설명한 경이다. 그런 견해는 자아와 세상이 영속한다는 영속론자들을 비롯하여 모두 62가지로 분류 된다. 이런 삿된 견해가 발생되는 이유에 대하여 각묵스님은 해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중요한 것은 이 경험된 것은 대상과 감각기능과 알음알이의 세 가지가 서로 조우할 때 일어나는 감각접촉[, phassa]에 조건 지워진 조건발생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조건 발생을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라고 말한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견해를 감각기능감각대상알음알이[]의 삼사화합(三事和合)에서 기인한 감각접촉의 산물이라고 불교의 연기 구조로 명쾌하게 정의하신다.

(디가니까야 범망경 해제, 각묵스님)

 

 

62가지 견해가 일어나는 원인에 대하여 감각기관과 감각대상, 그리고 알음알이의 삼사화합물로 보았는데, 이를 연기적 구조로 설명하였고, 이런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로 정리된 불교 만대의 진리인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으로 귀결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범망경전문

 

범망경은 이웃블로그 (http://blog.daum.net/_blog/ProfileView.do?blogid=0AYg9&fvc=B0804&btype=0&navi=0#ajax_history_0) 에서 보게 되었다. 전문을 올려 놓아서 참고 하였다. 그런 범망경은 계율과 관련되어 있는 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범망경을 중요시하게 보는 이유는 자아와 세상이 영속하다는가, 어떤 초월적 존재나 절대자가 원인 없이 세상을 창조 하였다 등의 견해에 대하여 연기법적으로 부순것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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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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