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통증과 무상(anicca, 아닛짜) 고(dukkha, 둑카) 무아(anatta, 아낫따)

담마다사 이병욱 2011. 3. 7. 10:47

 

 

 

 

통증과 무상(anicca, 아닛짜) (dukkha, 둑카) 무아(anatta, 아낫따)

 

 

 

 

찜질방에서

 

수 년만에 찜질방에 들어갔다. 좀처럼 가지 않은 곳이지만 몸 때문에 가면 좋을 것 같아 가게 되었다.

 

직업병일까 어깨결림이 무척 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 시큰거림이 너무 심해 육체적통증이 정신적 고통으로 전이 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모니터만 바로보는 일만 하다 보니 움직임이 거의 없다. 잔뜩 긴장한 채 단 몇 일 만에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실수해서는 안된다. 한 번 실수는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고객이 떠나 가 버리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사진 http://wisdomquarterly.blogspot.com/2008/07/painful-facts-dukkha.html

 

 

거기에다 거의 매일 블로그에 쓸 글을 올리다 보니 자세는 항상 고정되어 있다. 그런 자세로 수 년간 보내다 보니 기계의 부품이 망가지듯이 어느 날 갑자기 탈이 난 것이다.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을 궁리한 결과 병원에 가기 보다 찜질방에 가기로 하였다.

 

사우나와 함께 있는 찜질방 비용은 6,000원이다. 가급적 오래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요일 오전 이나 오후에 치료를 겸한 찜질방을 찾게 되었는데, 그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기본적으로 땀을 빼고 난 후 들어간 방이 재래식 구들장방이라는 곳이었다. 모두 황토로 도배가 되어 있는 방으로서 바닥은 뜨끈 뜨끈 하여 통증이 있는 환자들이 누워 있기 안성마춤이었다. 그 곳에서 아픈 부위를 대고 지지다 시피하며 보냈다. 병원에 가도 그런 수준의 진료방법인  것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여 조치한 것이다. 그러면서 내부의 숨막힐 듯한 열기를 견디었는데, 호흡을 바라보는 명상이 효과적이었다.

 

강한 대상에 집중하기

 

찜질방은 온도가 매우 높아서 잠시도 앉아 있기 힘들다. 하지만 호흡을 관찰하면 오래 버틸 수 있다. 이는 마음을 현재에 두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박차고 나올 것이다. 현재 처해 있는 상태가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울 때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고통은 더욱 더 배가 되어 참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현재에 오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이 현재에 와 있다면 가장 강한 대상을 느끼게 된다. 그 대상은 언제나 느낄 수 있는 호흡이다. 하지만 호흡은 매일 먹는 과 같은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다른 대상을 찾는 것이다. 이는 반찬과 같은 것이어서  통증일 수도 있고, 간지러움, 가려움등이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강한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강한 대상에 집중하면 그 통증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형성된 모든 것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통증 역시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통증이라고 아는 순간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된다.

 

, 고통이 밀려 오고 있구나

 

통증은 시간차로 몰려 온다. 이는 다리 골절상과 같은 극심한 육체적 통증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만일 통증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부처님이 설한 무상법에 어긋 난다. 형성된 모든 것들은 일어나면 반드시 멸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통증 역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파도가 밀려 오듯이 제2, 3파 식..으로 밀려 오는 것이 통증의 본질이다. 그럴 때 마다 , 고통이 밀려 오고 있구나하고 알아 차리면 된다. 그런데 그 순간이 힘들다고 하여 아파 죽겠네!”라고 소리친다면  육체적 고통(아파)이 정신적 고통(죽겠네!)을 유발하게 되어 더 아프게 된다.  

 

몸이 병들었을 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부처님은 몸은 비록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초기경전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나꿀라삐따 존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장자여, 무엇이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드는 것 입니까? 가르침을 모르는 범부들은 물질은 나의 것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물질이 항상하지 않고 변하는 본성 때문에 물질이 변하고 바꾸어지면, 그 때 슬픔과, 괴로움, 한탄, 절망이 일어 납니다. 이것이 몸도 마음도 병드는 것입니다.

(상윳따니까야: 22 칸다상윳따1)

 

 

육체적 통증이 육체적 통증으로 끝나지 않고, 정신적 통증을 유발하는 이유가 물질 즉, 내몸을 나의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라 한다. 몸이 늙어도 내 몸이 늙고, 몸이 아파도 내 몸이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여 결국 슬픔, 괴로움, 한탄, 절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자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몸이 아플 때 내가 아픈 것이 아니라 오온중의 색온(色蘊)이 아픈 것이라 보면 된다. 또 아플만한 조건이 일어나서 아픈 것이라 보면 된다. 즐거움이나 행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상(anicca, 아닛짜), (dukkhā, 둑카), 무아(anattā, 아낫따)

 

사람들은  즐거움이나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지만 고통이 영원히 지속 되지 않듯이 즐거움이나 행복 역시 일시적이다. 단지 즐거움이나 행복감()’을 느낄 뿐이다.

 

그런 느낌도 내가 느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에 따라 집착이 일어나는데 즐거움이나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일어났다가 사라지므로 무상(anicca, 아닛짜)’한 것이라 본다. 그래서  즐거움이나 행복 역시 고통과 마찬가지로 괴로움(dukkhā, 둑카)’이라는 것이다. 이런 배후에는 항상 이 몸과 마음이 내 것,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오온으로 해체 하여 놓고 이들 오온이 조건에 따라 상호 작용하는 것으로 인식한다면 괴로움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나는 일시적인 나에 지나지 않고 조건에 따라 형성된 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무아(anattā, 아낫따)’라고 하였다.

 

이렇게  모든 현상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라고 법구경에서도 말씀 하셨다.

 

 

 

무상(無常,  anicca, 아닛짜)

 

[Sabbe sakhārā anicca] ti      [삽베 상카라 아닛짜]

yadā paññāya passati             야다 빤냐야 빠싸띠

atha nibbindati dukkhe             아타 닙빈다띠 둑케

esa maggo visuddhiyā             에사 막고 위숫디야.

 

모든 조건지어진 현상은 아닛짜라고

내적 관찰의 지혜로써 이렇게 보는 사람은

둑카에 싫어함을 갖나니

오직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법구경277)

 

 

(,  dukkhā, 둑카)

 

[Sabbe sakārā dukkhā] ti       [삽베 상카라 둑카]

yadā paññāya passati             야다 빤냐야 빠사띠

atha nibbindati dukkhe             아타 닙빈다띠 둑케

esa maggo visuddhiyā             에사 막고 위숫디야

 

모든 조건지어진 현상은 둑카라고

내적 관찰의 지혜로써 이렇게 보는 사람은

둑카에 대해 싫어함을 갖나니

오직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법구경 278)

 

 

무아(無我, anattā, 아낫따)

 

[Sabbe dhammā anattā] ti        [삽베 담마 안앗따]

yadā paññāya passati              야다 빤냐야 빠싸띠

atha nibbindati dukkhe              아타 닙빈다띠 둑케

esa maggo visuddhiyā              에사 막고 위숫디야.

 

모든 담마에는 자아가 없다고

내적 관찰의 지혜로써 이렇게 보는 사람은

둑카에 대하여 싫어함을 갖나니

오직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법구경 279)

 

(법구경 277~279, 거해스님역)

 

 

 

 

 

2011-03-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