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상카라둑카(sankhara-dukkha, 行苦)는 무엇일까

담마다사 이병욱 2011. 3. 19. 10:31

 

 

 

상카라둑카(sankhara-dukkha, 行苦)는 무엇일까

 

 

 

통증이 심하면 -“하고 소리지른다. 하지만 그런 통증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이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멋진 경치를 보았을 때 -“하고 탄성을 자아낸다. 눈으로 형상을 즐긴 그 장면도 상황이 바뀌면 그 감정이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즐거운 느낌도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둑카둑카(dukkha-dukkha)

 

아프면 육체적고통과 정신적고통을 동시에 받는다. 이처럼 고통 그 자체를 청정도론에서는 둑카-둑카(dukkha-dukkha)’라 한다. 이를 한자어로 고고(苦苦)’라 하고 영어로 ‘suffering’ 이라 한다. 괴로움이 육체와 정신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것을 말한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둑카둑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괴로운느낌은

고유성질로서도,

이름에 따라서도 괴롭기 때문에

고통에 기인한 괴로움이라 한다.

(청정도론, 16장 기능과 진리)

 

 

둑카둑카는 고통에 기인한 괴로움으로서 고통 그 자체라 볼 수 있다. 몸이 아파서 고통을 느낄 때, 그로 인하여 정신적으로 고통 받을 때가 대표적인 경우라 볼 수 있다.

 

허전하고 불만족스럽고 불쾌한

 

하지만 괴로움의 종류는 매우 많다. 그런 괴로움 중에 불만족이 있다. 육체와 정신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 않지만 무언가 허전하고 텅빈것같은 불쾌한느낌이다. 이를테면 즐겁게 놀고난 다음에 느끼는 허전함, 허무함 같은 것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거나, 참았던 소변이나 대변을 보았을 때, 그 순간 배설의 기쁨을 느끼지만 그런 행복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런 좋았던 감정, 즐거웠던 기분은 그 때 그 순간 뿐이다. 따라서 즐겁고 행복했던 그 마음이 지속되지 않아 불만이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기쁨, 즐거움, 행복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불만족으로 바뀐다. 그런 괴로움을 청정도론에서는 위빠리나마-둑카(viparinama-dukkha)’라 하였다. 이를 한자어로 괴고(壞苦)’라 하고, 영어로 unsatisfaction일 것이다. 이를 청정도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즐거운 느낌은 그것이 변할 때

괴로운 느낌이 일어 날 원인이 되기 때문에

변화에 기인한 괴로움이라 한다.

(청정도론, 16장 기능과 진리)

 

 

 

그런데 이런 불만족은 매우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변화에 기인하는 것은 모두 불만족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빛나고 아름답고 젊던 육체도 주름이 생기고 병이 생기고 몸의 기능이 하나 둘 상실되어 감에 따라 늙어가는 것도 불만족이다. 마찬가지로 계절이 바뀜에 따라 느끼는 감정 역시 불만족이다.

 

꽃이 피고 상큼하고 따뜻한 봄날은 왜 이리 짧은 것일까. 항상 무더운 여름과 혹독하게 추운 겨울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과 가을의 날씨는 오래 지속되지 않아 불만이다. 이처럼 좋았던 느낌, 즐겁고 행복했던 감정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시간과 함께 항상변해 간다. 그래서 불만이고, 불만족이고, 괴로움이고, 더 심하게 표현 하면 고통이다.

 

 

 

 

 

 

 

상카라둑카(sankhara-dukkha, 行苦)에 대한 잘 못된 해석

 

다음으로 상카라둑카(sankhara-dukkha)’ 가 있다. 이를 한자어로 행고()라 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영어로 Dukkha as conditioned states(http://sathmaga.org/2010/07/31/the-first-noble-truth-dukkha/)’ 로 설명되어 있다. 조건지워진 상태로서의 고통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 상카라둑카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일까 상카라둑카에 대한 잘 못된 해석이 난무한다고 한다. 그런 좋은 예가 있다.

 

 

‘일체 유위법은 苦이며 그러므로 물질도 苦입니다. 苦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하는 의문은 잠시 내려놓으시고 일단 부처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떻게 관찰하더라도 苦일 수밖에 없다고 설파하셨다고 받아들이셔야 합니다.5)

(초기불전 연구원. 각묵스님)

 

 

위 글은 인터넷서핑 중에 다음블로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명 후박나무님의 글 책상은 그 자체는 고통이 아니다(http://blog.daum.net/whoami555/11099208)라는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책상은 그 자체는 고통이 아니다-후박니무.docx 

책상은 그 자체는 고통이 아니다-후박니무.pdf

 

 

 

 

후박나무님의 글에서

 

후박나무님은 글에서 고를 확대해석한 결과 이런 오류가 발생하였다고 지적하였는데, 초전법륜경에서 오취온이 라는 것은 오온 그 자체가 고가 아니라 오온에 취착하는 것이 고통인데, 그 것은 원인으로서 고통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

 

만일 오온 그 자체, 또는 형성된 것 모두가 고통이라면 책상도 고통을 느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책상이 고통을 느낄리 만무하기 때문에 고는 어디까지나 심리적상태이고 느낌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라는 느낌은 갈애와 취착이 그 원인이 발생된 것일 뿐이지 일체가 모두 고는 아니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도 확인 할 수 있는 사항이라 한다.

 

 

라훌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육체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법을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SN. 2.Bandhasutta)

  

 

부처님이 묻고 라훌라가 답변하는 형식이다. 이 법문에서 부처님의 관심사는 지금 여기에서 느낄 수 있는 우리의 마음과 몸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 대상은 항상 오온십이처십팔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후박나무님은 5온은 무아임을 드러내기 위하여 설명하는 것이고, 12처는 의식이 발생하는 영역을, 18계는 발생한 식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이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발생된 것이 무아이고, 무상하고, 고통인 것일 뿐이지 물질 그 자체, 삼라만상 그 자체가 고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빠알리어 삽베 상카라(Sabbe sakhārā)’를 잘 못 해석한 결과로도 본다.

 

일반적으로 삽베상카라에 대하여 무상을 말할 때 제행이라 하여 제행무상이 되고, 무아를 말할 때 일체라 하여 일체개고라 한다. 그런데 이 일체에 대하여 오해가 생겨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괴로운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를 적용하면 책상도 괴로움을 느껴야 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때의 일체는 부처님이 강조한 ‘5’ ‘12’ ‘18일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싶었을까. 무상일까, 고통일까, 무아일까. 정답은 무아라고 한다. 부처님이 무상’ ‘’ ‘무아를 설한 목적은 바로 무아을 설명하기 위하여 무상과 고를 동원하였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나라고 할 만한 자아가 없다는 것 즉, 무아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상카라둑카(sankhara-dukkha, 行苦)는 무엇일까

 

부처님은 사성제에서 분명히 갈애가 고통의 원인이라고 말씀 하셨다. 따라서 갈애와 갈애가 더욱 더 강화된 집착을 제거 하는 길이 열반에 이르는 길이고, 또한 윤회를 종식하는 방법이라 하셨다. 따라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 형성된 모든 것들이 고라는 등식은 폐기 되어야 하고, 책상은 결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카라둑카(행고)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일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펑온한 느낌과 나머지 삼계에 속하는 상카라들은

일어나고 사라짐에 대한 압박되기 때문에

형성됨에 기인한 괴로움이라 한다.

(청정도론, 16장 기능과 진리)

 

 

상카라둑카에 대하여 형성됨에 대한 기인한 괴로움이라 하였다. 그 것은 일어나고 사라짐에 대한 압박 때문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상카라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아니라 오온에서의 (상카라)’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상카라는 항상 복수의 의미이다. 그런 행은 얼마나 될까.

 

52가지 심리현상

 

초기불교에서는 52가지로 본다. 흔히 구경법(paramatta dhamma, 빠라맛따 담마)라 불리우는 52법이다. 그런 52법 중에는 느낌(, vedana), 인식(, sañña)등 오온에 포함 된 법 뿐만 아니라 탐욕(lobha), 성냄(dosa), 자만(mana)등의 해로운 법과 믿음 (saddha), 양심 (hiri), 연민 (karuna)등과 같이 유익한 법에 이르기 까지 총 52개의 법이 있는데, 이를 52가지 심리현상이라 한다.

 

이들 52가지 법은 각자 고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자상(自相)’이라 하고, 또 모두 일어났다고 사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공상(共相)’이라 한다. 이처럼 자상과 공상을 가진 52가지 심리현상을 상카라들이라 하는데, 이를 오온에서는 복수로 사용하여 이라 한다.

 

오온에서 이런 행은 수상행을 대표한다다. ‘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따로 밖으로 떼어 놓아 과 함께 수상행이 되어 오온이라 불린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오온은 색수상행식이라기 보다 색행식’, 이렇게 3온이라 불러야 맞을 것이다.

 

일체는 52가지 심리현상인가

 

청정도론에서도 설명된 것과 같이 상카라둑카(행고)는 존재 그 자체, 물질 그 자체가 고가 아니라 52가지 심리현상 즉,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이 괴로움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삼법인에 있어서 일체개고라고 하였을 때 그 일체(삽베 상카라, Sabbe sakhārā)’는 당연히 52가지 심리 현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011-03-19

진흙속의연꽃

책상은 그 자체는 고통이 아니다-후박니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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