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법륜스님의 ‘소승교설에 대한 비판’에 대한 비판

담마다사 이병욱 2011. 4. 7. 20:25

 

 

 

 

 

법륜스님의 소승교설에 대한 비판에 대한 비판

 

 

 

오온, 십이처, 십팔계설이란 아견과 상견의 과정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부분을 바로 대승보살의 입장에서, 깨달음의 입장에서 다시 교정을 했다. 그래서 앞에 무()가 붙었다. 그래서 소승교설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일부 수행자들이 잘못 이해했다. 잘못 이해한 사람을 뭐라고 이름붙였다? 소승이다 이름붙였다 말이에요.”

(법륜스님, 제17강 대승의 공사상 입장에서 본 소승교설의 비판)

 

 

BTN불교TV사이트에서 본 법륜스님의 법문이다.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강좌중에 제17강 대승의 공사상 입장에서 본 소승교설의 비판에서 스님은 오온, 십이처, 십팔계에 대하여 무자를 붙인 이유에 대하여 일부 수행자들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잘 못 이해 하였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이 아님을 강의 도중 누차 강조하였다. 하지만 강의를 들어 보면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 대한 부정임을 부인할 수 없다.

 

스님의 강의를 이번 처음 들어 본 것은 아니다. 이미 2000년대 중반 스님의 인터넷강의는 유명하여 이곳 저곳의 카페나 블로그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불교TV사이트에 올려진 모두 25회에 달하는 반야심경 강의시리즈는 이미 지난 2008년도의 것을 다시 올려 놓은 것이지만 그 중 소승교설에 대한 비판 강의 (제16강 소승교설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비판, 제17강 대승의 공사상 입장에서 본 소승교설의 비판 )를 보면서 몇가지 비판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의 강의내용이 소승교설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비판이지만 그 강의에 대한 또 비판을 하는 것이다.

 

오온과 십이처가 ()’이라는데

 

먼저 스님의 강의를 들어 보면 오온과 십이처에 대하여 ()’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늘 오온설’ ‘십이처설이라고 강의 내내 말을 하였는데. 이는  ()’도 아니고 설이라고 칭하였다.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인 오온과 십이처가 논도 아니고 단지 설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라 한다. 이를 빠알리어 담마(dhamma)라고 한다. 이때 담마의 뜻은 여러가지이지만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84천 법문과 같은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이고, 또 하나는 구경법으로서 담마이다. 서구에서는 전자를  대문자를 사용하여 Dhamma라 하고, 후자는 소문자를 사용하여 dhamma라 한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화한 초기불교 교학에서 dhamma는 설이나 논이아닌 인 것이다. 그래서 오온, 십이처는 설이 아닌 법인 것이다. 그것도 보통법이 아닌 구경법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구경법을 빠알리어로 빠라맛따담마(paramatta dhamma)’라 한다. 이는 궁극적진리로서 법을 말한다. 그렇다면 궁극적진리로서의 법은 몇개나 될까. 초기불교의 아비담마교학에 따르면 모두 82가지이다. 이를 82법이라 한다. 이런 82법을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82구경법(paramatta dhamma)

구경법
(82)

오온
(panca-kkhandha
빤짜칸다)

12
(ayatana,아야따나)

18
(dhatu, 다뚜)

물질 (28)

1. 색온(色蘊)

1. 안처

거친

1. 안계

거친

2. 이처

물질

2. 이계

물질

3. 비처

-12

3. 비계

-12

4. 설처

4. 설계

5. 신처

5. 신계

6. 색처

6. 색계

7. 성처

7. 성계

8. 향처

8. 향계

9. 미처

9. 미계

10. 촉처 (, , 풍의 3물질)

10. 촉계 (, , 풍의 3물질)

11. 마노의 대상 (法處)

미세한

11. 마노의 대상 (法界)

미세한

마음부수 (52)

2. 수온(受蘊)

물질 (16)

물질 (16)

3. 상온(想蘊)

마음부수

마음부수

4. 행온(行蘊)

-52

-52

열반(1)

없음

열반

열반

마음 (1)

5. 식온(識蘊)

12. 마노의 감각장소

12. 안식계

(意處)

13. 이식계

14. 비식계

15. 설식계

16. 신식계

17. 의계

18. 의식계

 

 

 

82법을 보면 크게 물질과 정신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부처님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물질과 정신의 무더기인 오온으로 분해하고, 이를 다시 세분하여 12처와 18계로 구분한 것이다.

 

한편 표를 보면 열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열반도 구경법인 82법에 속해 있는 것이다. 또 표에서 마음은 1개이지만 한순간에 하나의 마음만 있기 때문에 구경법으로서의  마음은 하나이다. 하지만 마음은 마음부수의 마음의 작용에 따라 89가지 마음으로 분류된다.

 

물질 또한 지수화풍과 같은 거친 물질(12)이 있는가 하면 추상적 물질과 같은 미세한 물질(16)도 있다.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화 한 것이 구경법이다. 따라서 매우 논리적으로 설명되어 있는 가르침이 오온설, 십이처설과 같이 단지 ()’에 지나지 않단 말인가.

 

선사들이 이해하고 있는 오온

 

스님은 오온에 대하여 설명할 때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정보를 담은 그릇인 동시에 정보가 분별돼 있는 하나의 그릇이다. 이것을 식이라 해요

(법륜스님, 제17강 대승의 공사상 입장에서 본 소승교설의 비판)

 

 

식에 대하여 저장분별로서 설명하였다. 그리고 하나의 그릇과 같다고 하였다. 특히 어떤 대상에 대하여 느끼고, 인식하고, 행동한 것이 일일이 저장되듯이 식은 컴퓨터의 저장장치와 같은 것이라고 예로서 설명하였다.

 

스님의 강의에서 오온설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우리나라 선사들이 이해하고 있는 오온의 개념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나라 선사들이 알고 있는 오온의 개념은 어떤 것일까. 일반적으로 다음의 예와 같이 설명된다.

 

 

()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고(),

그 꽃이 장미꽃인지 국화꽃인지의 판별작업에 들어가고(),

그 꽃을 꺽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그 꽃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기억에 저장()한다.

 

 

 

이것이 선사들이 이해하고 있는 오온이다. 오온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순차적방식을 들어 설명하는 것이다. 또 한자어 뜻을 풀이하여 설명한다. 그러다보니 행위내지는 행동으로, ‘저장하는 것이나 분별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기불교 교학에 따르면 이와 아주 다르다.

 

초기불교 교학에서 오온은 정신과 물질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된다. 특히 정신과 관련하여 수상행식은 두가지로 나뉘는데, 마음과 마음부수이다. 오온에서 식은 마음이고, 수상행은 마음부수로 본다. 이는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다.

 

마음부수로서의 수상행은 행이 대표한다. 따라서 행은 항상 복수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를 빠알리어로 상카라라 하는데, 구경법에서 총 52가지로 본다. 이를 52가지 심리현상으로도 본다. 그런 52가지 심리현상(마음부수)은 어떤 것일까. 아비담마 교학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52가지 마음부수

2009-08-04   진흙속의연꽃

 
같아지는 마음부수 13
(annasamana-cetasika)

해로운 마음부수 14
(akusala-cetasika)

아름다운 마음부수 25
(sobhanacetasikam)

같아지는 반드시들 7

해로운 반드시들 4

아름다운 반드시들 19

(1) 감각접촉
(
, 팟사, phassa)

(14) 어리석음
(
, 모하, moha)

(28) 믿음
(
, 삿다, saddha)

(2) 느낌
(
, 웨다나, vedana)

(15) 양심 없음
(
無慙, 아히리까, ahirika)

(29) 마음챙김
(
, 사띠, sati)

(3) 인식
(
, 산냐, sanna)

(16) 수치심 없음
(
無愧, 아놋땁빠, anottappa)

(30) 양심
(
, 히리, hiri)

(4) 의도
(
, 쩨따나, cetana)

(17) 들뜸
(
掉擧, 웃닷짜, uddhacca)

(31) 수치심
(
, 옷땁빠, ottappa)

(5) 집중
(
心一境, 에깍가따, ekaggata)

해로운 때때로들 10

(32) 탐욕없음
(
不貪, 알로바, alobha)

(6) 생명기능
(
命根, 지위띤드리야, jiivitindriya)

*탐욕에 관계된 3

(33) 성냄없음
(
不嗔, 아도사, adosa)

(7) 마음에 잡도리함(주의기울임)
(
作意, 마나시까라, manasikara)

(18) 탐욕
(
, 로바, lobha)

(34) 중립
(
따뜨라 맛짯따따, tatramajjhattata)

같아지는 때때로들  6

(19) 사견
(
邪見, 딧티, ditthi)

(35) 몸의 경안
(
輕安, 까야 빳삿디, kayapassaddhi)

(8) 일으킨 생각
(
, 위딱까, vitakka)

(20) 자만
(
, 마나, mana)

(36) 마음의 경안
(
찟따 빳삿디, cittapassaddhi)

(9) 지속적인 고찰
(
, 위짜라, vicara)

*성냄에 관계된 4

(37) 몸의 가벼움
(
까야 라후따, kayalahuta)

(10)결심
(
信解, 아디목카, adhimokkha)

(21) 성냄
(
, 도사, dosa)

(38) 마음의 가벼움
(
찟따 라후따, cittalahuta)

(11)정진
(
精進, 위리야, viiriya)

(22) 질투
(
, 잇사, issa)

(39) 몸의 부드러움
(
까야 무둣따, kayamuduta)

(12)희열
(
喜悅, 삐띠, piiti)

(23) 인색
(
(), 맛차리야, macchariya)

(40) 마음의 부드러움
(
찟따 무둣따, cittamuduta)

(13)열의
(
, 찬다, chanda)

(24) 후회
(
惡作, 꾹꿋쨔, kukucca)

(41) 몸의 적합함
(
適業性, 까야 깜만냐따, kaayakammanannata)

 

*해태에 관계된 2

(42) 마음의 적합함
(
찟따 깜만냐따, cittakammanannata)

※다른것과 같아지는 마음부수는
유익한 마음들에서는 유익한 것이

(25) 해태
(
懈怠, 티나, thina)

(43) 몸의 능숙함
(
練達性, 까야 빠군냐따, kayapaagunannata)

되고, 해로운 마음들에서는 해로
운 것이 되고, 업으로 결정 할 수 없는

(26) 혼침
(
昏沈, 밋다, middha)

(44) 마음의 능숙함
(
찟따 빠군냐따, cittapaagunannata)

무기(無記)인 마음들에서는 무기가
된다.

*의심 1

(45) 몸의 올곧음
(
正直性, 까야 우주가따, kayaujukata)

 

(27) 의심
(
, 위찌낏차, vicikaccha)

(46) 마음의 올곧음
(
찟따 우주가따, cittaujukata)

 

 

절제(위라띠, virati) 3

 

 

(47) 바른 말
(
正語, 삼마 와짜, sama-vaaca)

 

 

(48) 바른 행위
(
正業, 삼마 깜만따, sama-kammanta)

 

 

(49) 바른 생계
(
正命, 삼마 아지와, sama-aajiiva)

 

 

무량 2
(
無量, 압빠만냐, appamananna) 

 

 

(50) 연민
(
, 까루나, karuna)

 

 

(51) 같이 기뻐함
(
, 무디따, mudita)

 

 

어리석음 없음 1
(
不痴, 아모하, amoha)

 

 

(52) 통찰지의 기능
(
慧根, 빤닌드리야, panninindriya)

 

 

이것이 52가지 심리현상이자 마음부수이고 오온에서 말하는 행(상카라)를 말한다. 52가지 안에 2번 느낌(, 웨다나, vedana) 3번 인식(, 산냐, sanna)이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느낌과 인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오온에서 따로 떼어 놓아 행과 함께 수상행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느낌과 인식을 포함하여 모두 52가지 심리현상(또는 구경법 또는 마음부수)은 행으로 표현한다. 이는 우리나라 선사들이 알고 있는 오온에서의 순차적 개념과 아주 다른 것이다. 더구나 식을 저장이나 분별로 아는 것과도 다르다.

 

선사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부처님은 오온에서 행을 심리현상으로 보았고, 이런 심리현상이 상호작용하여 89가지의 마음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보았다.

 

초기불교에서 보는 마음()은 저장이라거나 분별하는 마음이 아니라 52가지 심리현상 중에 2개 또는 그 이상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복합적인 것으로서, 초기불교의 마음은 행으로 대표되는 52가지 심리현상의 상호작용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오온에서의 마음() 수상행식으로 이어지는 순차적 인식내지 저장 또는 분별이 아니라 52가지 구경법의 상호작용이 순간 순간 마음()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아공법유에 대한 오해

 

다음으로 오온에 대하여 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변하지 않은 것, 그리고 그것만의 그것이라고 하는 그 어떤 요소, 이걸 기초로 두고 이세상을 이해한다 이말이요. 자신의 업식, 자신의 눈으로 보는 세계를 버리고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와야 하는데, 그 안경을 끼고 불교를 본다. 그렇게 해서 요소설로 빠져든다. 그래서 이것은 잘못됐다. 그래서 첫번째 오온설에 대해서 앞에 무자를 붙여서 그 법에는 실체가 없음을 다시 깨우치는 것이다.”

(법륜스님, 제17강 대승의 공사상 입장에서 본 소승교설의 비판)

 

 

이는 법유에 관한 내용이라 볼 수 있다. 흔히 대승에서 테라와다불교를 비판할 때 가장 유효하게 써 먹는 수단이 바로 아공법유이다. 아공법유는 문자그대로 아는 공하지만, 법은 실체가 있다라고 보는 것이다. 이와 대비 되는 말이 아공법공이다. “아도 공하지만 법도 공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아공법공이고, 소승은 아공법유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아공법공이나 아공법유이니 하는 말에서 공통적으로 아는 공하다아공이 들어가 있다. 만일 아가 공하지 않고 유()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이미 불교라 볼 수 없다. 무아와 연기를 주장하는 불교에서 나가 있다라는 아유(我有)는 불교도 아닐 뿐더러 삼법인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통적으로 아공까지는 맞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승에서는 스스로 법도 공하다법공이라고 주장하지만, 소승은 법유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소승은 아는 공하지만 법은 실체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법은 그저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아공법유라는 말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불교tv 사이트에서 김종욱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김종욱교수의 설명 (불교로 이해하는 현대철학, 제25강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 공())에 따르면 대승불교가 출현할 당시 부파불교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 설일체유부이었다고 한다. 설일체유부는 문자그대로 일체법이 유()하다보는 부파이다. 특히 설일체유부에서 주장하는 75법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게하는 필름과 같은 것이어서 자성이 있고 고립된 실체성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후발주자로서 대승불교가 도약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겠지만 그 때 당시 최대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설일체유부를 잡으면 일거에 올라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설일체유부의 75법에 대하여 고립된 실체성은 없다(무자성)”주장하고, 이를 ‘연기=관계성=무자성=공’으로 설명하였다.

 

이처럼 설일체유부의 약점을 공격하기 위하여 아공법유를 비판하였는데, 이를  동아시아의 대승불교전통에서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이 초기불교와 테라와다 불교 모두에 대하여 아공법유라고 매도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초기불교와 테라와다에서 부처님이 말한 법이란 어떤 것일까. 대승불교에서 주장하는 것과 똑같이 아공법공이라는 것이다. 이는 82구경법에 관한 표를 보면 알 수 있다. 82법에서 열반과 추상적 물질 10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71법의 특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의 역자 대림스님은 해제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처럼 추상적인 물질 10가지를 제외한 아비담마의 71가지 법을 내안에서 확인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더 깊이 그리고 더 확고하게 무상, , 무아인 제법의 특징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대림스님, 청정도론 해제글에서)

 

 

71가지 법은 설일체유부에서 말하는 항상존재하는 구경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실제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5부 니까야의 주석서이자 동시에 수행지침서인 청정도론에서 제법이 무상, , 무아인 것을 바탕으로 저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스님이 말하는 변하지 않은 것, 그리고 그것만의 그것이라고 하는 그 어떤 요소, 이걸 기초로 두고 이세상을 이해한다고 비판한 것은 초기불교의 교학에 대한 이해 없이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초기불교의 교학에서 71법은 실체가 있어서 항상존재하는 법유가 아니라 법공인 이유는 두가지로 들 수 있다. 하나는 제법은 무상하다는 것이다. 이는 제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말한다. 따라서 71법 또한 발생되었다가 사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71법 중에 탐욕과 성냄이 있는데, 이들은 단지 조건에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무상, 무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 법의 또하나의 특징은 고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탐욕은 거머쥐려하는 특징이 있고, 성냄은 밀쳐내려는특징이 있다. 이처럼 71법은 모두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공상(共相)’이라 하고, 또한 각자 고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상(自相)’이라 한다.

 

이처럼 구경법은 공상과 자상을 특징으로 하는 법공임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아공법유로 해석하는 것은 예로 부터 관행적으로 내려오는 것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12처설은 변증법적 유물론’?

 

다음으로 십이처에 관한 것이다. 스님은 오온과 더불어 십이처앞에 무자를 붙인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치 12처설을 ‘12요소설처럼 이야기한다 이말이에요. 이 세계는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이라고 하는 12개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의 관계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요소설은 불법이 아니다. 그래서 앞에 무자를 붙인다.”

(법륜스님, 제17강 대승의 공사상 입장에서 본 소승교설의 비판)

 

 

무자를 붙이는 이유가 12처설을 12요소설로 잘 못 이해하였기 때문에 무자를  붙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올바로 이해한 것일까. 이에 대하여 스님은 우리에게 제6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여섯번째 까지의 의식은 표면의식이라 하여 드러난 의식으로 보았고, 드러나지 않는 잠재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제7, 8식이라 하였다.

 

또한 12처설에만 의지하면 보이는 것, 듣는 것등만 인식하는 세계를 말하기 때문에 변증법적 유물론과 비슷한 것이라 하였다. 그 결과 세상이 어떻지든지간에 나만 잘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개인적인 문제를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십이처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왜 해체하여 설명하셨을까

 

이상 스님이 설명한 소승교설에 대한 비판 중의 일부를 살펴 보았다. 그렇다면 반야심경에서 무자로 모조리 비판당한 오온과 십이처, 십팔계는 왜 설하셨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초기경전을 보아야 한다. 초기경전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물질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잘 관찰해 보고 주의 깊게 조사해 보면, 물질은 비어 있고, 실속이 없고, 실체가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상윳따 니까야 : 22   칸다 상윳따 45,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서)

 

 

부처님은 초기경전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섯가지 무더기로 분해하여 놓고 보면 실체가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색도 그렇고, 나머지 수상행식도 마찬가지라 한다. 그러므로 오온은 무아인것이라서 집착하지 말라고 하였다.

 

오온이 내것, 나의 자아가 아니기 때문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래도 이해를 하지 못하자 이제 더 구체적으로 해체해 들어간다. 그래서 눈, , 코등의 여섯감각기관과 모양, 소리, 냄새등 여섯감각대상이 부딪쳐 알게 되는 마음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무아인 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몸과 마음에서, 다시 오온으로, 또 다시 12처로 나누어 설명한 것은 무아이기 때문에 자아나 영혼이 없어서 집착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었다. 따라서 실체가 없는 개념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을 때 고통이 소멸되고 해탈과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씀 하신 것이다.

 

그런 오온을 단지 순차적 인식과정으로, 12처를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더구나 법유로 이해한 것은 초기불교의 교학을 제대로 알지 못한데서 나온 오류라 볼 수 있다.

 

소승교설에 대한 비판에 대한 비판

 

법륜스님은 존경하는 선지식중의 한 분이다. 인터넷으로 접한 스님의 다양한 강좌는 많은 감명을 주었고, 특히 즉문즉설과 같은 법문은 불자와 국민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 뿐만 아니라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발로 뛰는 활동가형 스님으로서 가장 인기 있는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스님을 대면한 적은 없지만 먼 발치에서 본 적이 있다. 작년 5월 전국순회 특강당시 살고 있는 곳에 와서 행복특강 강연을 하였기 때문이다. 강연장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고, 로비와 복도에도 청중으로 가득하였다.

 

 

 

 

 

 

 

 

 

 

법륜스님 행복특강(2010.5.1, 안양)

 

 

 

이렇게 활동하는 스님을 폄하하거나 가치를 깍아내리기 위하여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초기불교를 스스로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비판한 것이다.

 

스님이 법문에서 소승교설비판이라는 주제로 오온과 12처에 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이해한 부분을 대승보살사상의 입장에서 다시 교정하려 하였으나 , 스님의 법문을 들어보면 오히려 스님이 잘 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기 위하여 글을 쓴 것이다. 그래서 소승교설에 대한 비판에 대한 비판글이 되었다.

 

 

 

2011-04-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