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어떻게 해야 번뇌를 끊을 수 있을까, 삽바사와경(모든 번뇌의 경)

담마다사 이병욱 2011. 4. 14. 09:57

 

 

 

 

 

어떻게 해야 번뇌를 끊을 수 있을까, 삽바사와경(모든 번뇌의 경)

 

 

 

()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할까

 

불교경전을 보면 경전의 제목을 한자어로 표시한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대승경전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글로벌시대에 접하는 초기경전의 제목은 한자어가 그다지 많지 않다. 대부분 원어로 표기된 것들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일아스님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썻다.

 

 

빠알리 경전의 제목이나 지명이나 이름 등의 고유명사들을 한자나 한국말로 번역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면 디가 니까야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장부 경전이라고 하는 것도 한국 불자만 알아듣는 이름이 된다. 이제는 원어 그대로 국제적인 안목을 키워야 한다. 또한 빠알리 경전의 이름들을 예를 들면 디가 니까야긴 길이의 경전이라고 한글로 풀어 쓰려는 시도도 있는데, 이것 또한 한국불교의 고립을 자초할 뿐 불교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지금은 국제화시대이다. 전 세계 공통의 원어 발음 그대로 빠알리 경전 제목이나, 지명, 고유한 이름등,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

(일아스님, ‘아소까-각문과 역사적 연구에서)

 

 

경전의 이름이나 지명, 이름등의 고유명사를 한글로 풀어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순녀(順女)’라는 이름이 있는데, 누군가 영어로 번역하여 온순한 여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무우왕도 마찬가지이다. 빠알리어로 아소까(Asoka)’슬픔이 없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역경전에서는 근심이 없는 왕이라 하여 무우왕(無憂王)’으로 뜻풀이 번역을 하는 것은 스스로 한국불교의 고립화를 자초할 뿐이라 한다.  

 

초기불교경전인 니까야가 번역되어 소개 되면서 가장 곤혹스럽고 난처한 것은 경의 제목을 어떻게 붙이는가 일 것이다. 니까야와 60~70% 내용이 같은 아함경의 경우 상당수가 한역뜻풀이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최근 번역된 니까야의 경의 제목을 보면 한글뜻풀이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작자가 즉흥적으로 붙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가려뽑은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보는 경의 제목중에 ‘항아리 경’ ‘소금덩이 경’ ‘졸고 있음 경’과 이름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차라리 빠알리 원어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부처님이 스스로 설한 삽바사와경(모든 번뇌의 경)

 

맛지마니까야에 ‘번뇌’에 관한 경이 있다. 빠알리어 경의 제목은 ‘삽바사와(Sabbāsava sutta, MN 2 PTS: M i 6)이다.  이를 우리말로 풀이한다면 ‘모든 번뇌의 경’이 된다.

 

삽바사와는 삽바(Sabbā)와 아사와(āsava)의 결합어이다. 삽바가 모든이라는 뜻이고, 아사와는 번뇌라는 뜻이다. 이 삽바사와경에 대한 해설을 스리랑카의 담마키띠비구로 부터 들었다(1 빨리어 강좌).

 

담마키띠비구의 설명에 따르면 삽바사와경은 독특하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의 경들이 제자가 부처님께 여쭈어 보고 부처님이 설명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이 삽바사와경은 부처님이 스스로 생각해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한다. 경의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나는 모든 번뇌에서 자신을 수호하는 법문(모든 번뇌를 단속하는 법문)[sabbāsavasavarapariyāya]에 관해 설할 것이다. 듣고 잘 새겨라. 내가 설명할 것이다.”

(삽바와경, 전재성박사 번역)

 

 

부처님은 비구들을 불러 모으시고서 자신이 생각한 바를 스스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가지 번뇌

 

그런 경의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담마키띠비구는 다음의 세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첫째, ‘까마 아사와(kāma āsava)’이다. 이를 욕망에 기인한 번뇌라 한다. 육근과 육경이 부딪쳤을 때 육근을 즐김에 따른 번뇌라는 것이다. 특히 안이비설신과 같은 오근을 즐김에 따라 생겨나는 번뇌를 빤짜까마(paca kāma)’라 한다.

 

눈으로는 형상을 즐기고, 귀로는 소리를 즐기고, 혀로는 맛을 즐기는 것등이다. 눈으로 형상을 즐기는 것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 하였다.

 

 

눈의 시야에 들어온 형상의 대상을 감각적 욕망으로 즐기면서 형상에 대한 갈애가 일어날 때 그것을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라 한다.

(청정도론, 17장 통찰지의 토양)

 

 

이러한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는 뿌리 깊은 것이어서 아라한이 되어야만 없어진지다고 한다.

 

눈으로 형상을 즐기는 것 뿐만 아니라 귀로도 소리를 즐긴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 소리를 즐기게 되는데, 이때 소리에 대한 갈애가 일어난다. 맛에 대한 갈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나 맛집을 순례하는 식도락가처럼 먹기 위해서 사는사람들이 좋은 예일 것이다.

 

이처럼 오근을 즐김에 따라 더욱 더 갈구하고 바라는 갈애가 일어나는데, 이는 욕망에 기인하여 번뇌가 일어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 ‘바와 아사와(bhāva āsava)’이다. 이를 존재에 기인한 번뇌라 한다. 이는 죽고 싶지 않는 것을 말한다. 죽더라도 저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바란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무너지지 않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이 상견(常見)이다. 그래서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D.i.14)”라는 견해가 일어나는데, 이런 견해에 대한 취착 때문에 계와 의식으로 청정해진다고 믿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자아를 영원한 것이라고 거머쥘 때(탐욕) 그 자아를 청정케 하고자 그에게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이 일어나는데, 이는 죽어서도 천상에 태어나 영원히 살고 싶은 욕구(상견)이다. 따라서 존재에 기인한 번뇌는 상견과 탐욕이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아윗자 아사와(avijja āsava)’이다. 이를 무명에 기인한 번뇌라 한다. 자연이나 사물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되는 번뇌를 말한다. 특히 원인과 결과에 따른 인과(因果)’를 몰랐을 때 더욱 더 그렇다.

 

우리나라 스님들이나 불자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말이 인연(因緣)’이다. 그래서 서로 만난 것도 인연이라하고, 헤어지는 것도 인연이 다 되어서라고 한다. 이때 인과 연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단지 인연또는 인과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인연과이다. 그래서 테라와다불교 전통에서는 세가지로 부른다. , 원인과 조건과 결과이다. 이를 붙여 부르면 인연과(因緣果)’가 된다.

 

빠알리어에서 ()’은 원인의 뜻으로 헤뚜(hetu)’라 한다. 그리고 ()’은 조건의 뜻으로 빠띳짜(patiica)’라 한다. 여기에다 ()’를 결과라 하는데 빠알리어로 팔라(phala)’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불자들이 말하는 인연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인연과(因緣果)’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연과를 빠알리어로 읽으면헤뚜 빠띳짜 팔라(hetu pattica phala)’가 된다.

 

무명은 모르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세상의 끝을 찾아 우주 끝까지 가려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1미터 몇십센티 되는 몸안에 우주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 이 세상의 끝을 다 볼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항상 헤뚜 빠띳짜 팔라(hetu pattica phala, 因緣果 )’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번뇌를 제거할 수 있을까

 

번뇌가 일어나는 원인이 크게욕망에 기인한 번뇌(kāma āsava)’ ‘존재에 기인한 번뇌(bhāva āsava)’ ‘무명에 기인한 번뇌(avijja āsava)’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해결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비구들을 불러 놓고 스스로 삽바사와경을 설했다고 한다.

 

삽바사와경에서 번뇌를 제거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음과 같이 일곱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관찰에 의해서 제거되는 번뇌

둘쩨, 다스림에 의해서 제거되는 번뇌

셋째, 수용에 의해서 제거되는 번뇌

넷째, 인내에 의해서 제거되는 번뇌

다섯째, 피함에 의해서 제거되는 번뇌

여섯째, 제거에 의해서 제거되는 번뇌

일곱째, 닦음에 의해서 제거되는 번뇌

 

 

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관찰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Dassanā pahātabbāsavā)

 

 

불교에서는 있다” “없다라고 판단을 내리면 번뇌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바른 견해(samma ditti, 정견)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올바른 견해가 앞서 언급된 인연과라는 것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라는 존재는 없다. 그래서 나의 몸과 마음을 오온, 12, 18계로 분석하면 나가 없음이 드러난다.  이처럼 관찰에 의하여 번뇌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호에 의해 끊어져야 하는 번뇌(Savarā pahātabbāsavā )

 

이는 우리의 육근과 육경이 만났을 때 감각기관을 단속하여 번뇌를 끊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어떤 형상을 본다고 할 때, 본다라고 하기 보다 보여진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귀에 들려지고, 맛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되어지는것이다.

 

우리는 보기 싫은 것도 보아야 하고, 듣기 싫은 것도 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눈을 감고 살거나 귀를 막고 살면 되는 것일까. 세상의 오염원을 피하여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도를 닦고 지내면 번뇌로 부터 해방되는 것일까. 설령 그렇다고 해서 늘 들어 오는 생각마져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 동조궁의 삼불원(東照宮 三不)

귀를 막고, 입과 눈을 가리고 있다.

사진 www.reggie.net/photo.php%3Falbid...age%3Djp

 

 

눈으로 보이는 대상을 보지 않으면 번뇌가 끊어진다는 단순한 생각을 한다면, 눈이 보이지 않는 장님은 번뇌가 없어야 할 것이다. 또 귀가 들리지 않는 귀머거리역시 번뇌가 없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장님이나 귀머거리라고 해서 번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고 해서 번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콘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면으로 보았을 때 비록 세속에서 사는 재가자일지라도 감각기관을 잘 다스리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감각기관의 수호에 관한 이야기가 율장에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성질 급한 비구가 부처님이 탁발 나갔을 때 담마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탁발이 끝난 후에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질 급한 비구는 재차 재촉하는 것이었다. 세번을 재촉하자 부처님은 매우 짧은 가르침을 주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라 한다.

 

 

suttam suttamattam(숫땀 숫따맛땅)   들을 때는 들려지는 것만 있게 하고

dittam dittamattam(딧땀 딧따맛땅)    볼 때는 보여지는 것만 있게 하고

mutam mutamattam(뭇땀 뭇따맛땅)      생각할 때는 생각만 있게 하라.

 

 

이 게송은 매우 심오한 뜻을 내포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그 성질 급한 비구는 이 게송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위 게송은 무슨 뜻일까.

 

그림을 보았는데 갖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구입하기 위하여 돈을 벌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집착하게 되는 것이 번뇌이다. 따라서 그림을 볼 때는 그것은 물건이다”. “그것은 그림이다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라한의 마음이라 한다.

 

노래를 들을 때 또는 들려질 때가 있다. 들려진 노래를 듣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노래를 듣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노래가 들릴 때 단지 노래를 들었구나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노래를 듣고나서 노래가 좋아 CD를 구매하려 한다든가, 구매하기 위한 돈을 벌려고 했을 때 번뇌가 된다는 것이다.

 

어떤 생각이 들어오면 막을 수 없다. 수행이 된 사람이라면 , 어떤 생각이 들어 왔구나라고 생알아차리며 생각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날의 선행 또는 악행을 떠 올리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집착이 된다. 이런 것이 번뇌의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짧은 게송에서 들을 때는 들려지는 것만 있게 하고, 볼 때는 보여지는 것만 있게 하고, 생각할 때는 생각만 있게 하라고 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행복할 수 있다고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이다.

 

삽바사와경의 전문

 

위의 내용이 모두 포함된 삽바사와경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삽바사와경

(Sabbāsava sutta, 모든 번뇌의 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급고독원)에 계셨다.

 

2.

그 때 세존께서는 “수행승들이여(Bhikkhavo)”라고 수행승들(bhikkhū)을 불렀다. 수행승들은 “세존이시여”라고 대답했다.

 

3.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나는 모든 번뇌에서 자신을 수호하는 법문(모든 번뇌를 단속하는 법문)[sabbāsavasavarapariyāya]에 관해 설할 것이다. 듣고 잘 새겨라. 내가 설명할 것이다.”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행승들은 대답했다.

 

4.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나는 번뇌의 소멸에 대한 앎과 봄이 없어서가 아니라 번뇌의 소멸에 관해 잘 알고 또한 잘 보기 때문에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번뇌의 소멸에 관해 잘 알고 또한 보는가?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기울이는 것(yoniso manasikāra, 如理作意)과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활동을 기울이는 것(ayoniso manasikāra, 非如理作意)이 있는데, 수행승들이여,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활동을 기울이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가 생겨나고 생겨난 번뇌는 더욱 증가한다. 그러나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기울이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번뇌는 끊어진다.

 

5.

수행승들이여, 관찰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수호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수용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인내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피함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제거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수행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다.

 

관찰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Dassanā pahātabbāsavā)

 

6.

수행승들이여, 관찰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āsavā dassanā pahātabbā)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의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assutavā puthujjāna)은 고귀한 님(ariyāna)을 인정하지 않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지 않고, 참사람(sappurisa)을 인정하지 않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리지 않는다.

 

그들은 정신활동을 기울여야 할 것에 대해 잘 모르고,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잘 모른다. 그들은 정신활동을 기울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므로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에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정신활동을 기울여야 할 것들에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는다.

 

7.

수행승들이여,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은 어떠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들에 정신활동을 기울이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겨난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가 증가하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존재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겨난 존재에 의한 번뇌가 증가하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무명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겨난 무명에 의한 번뇌가 증가한다면, 그것들은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8.

수행승들이여,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있지 않지만, 정신활동을 기울여야만 할 것들은 어떠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들에 정신활동을 기울이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가 끊어지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존재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존재에 의한 번뇌가 끊어지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무명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무명에 의한 번뇌가 끊어진다면, 그것들은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있지 않지만 정신활동을 기울여야 할 것들이다.

 

9.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에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정신활동을 기울여야 할 것들에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서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겨난 번뇌가 성장한다.

 

그는 이와 같이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활동을 기울인다. ‘나는 과거세에 있었을까? 나는 과거세에 없었을까? 나는 과거세에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거세에 어떻게 지냈을까? 나는 과거세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했을까? 나는 미래세에 있을까? 나는 미래세에 없을까? 나는 미래세에 무엇이 될까? 나는 미래세에 어떻게 지낼까? 나는 미래세에 무엇이 되어 무엇으로 변할까? 또는 현세에 이것에 대해 의심한다. 나는 있는가? 나는 없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있는가? 이 존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와 같이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활동을 기울이면 6가지 견해 가운데 하나의 견해가 생겨난다. ‘나의 자아는 있다’라는 견해가 실제로 확고하게 생겨난다든가 ‘나의 자아는 없다’라는 견해가 실제로 확고하게 생겨난다든가 ‘자아에 의해서 자아를 자각한다.’라는 견해가 실제로 확고하게 생겨난다든가 ‘자아에 의해서 무아를 자각한다.’라는 견해가 실제로 확고하게 생겨난다든가 ‘무아에 의해서 자아를 자각한다.’라는 견해가 실제로 확고하게 생겨난다. 또는 이와 같이 ‘나의 이 자아는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서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를 체험하는데 그 나의 자아는 항상하고 항주하고 항존하는 것으로 변화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라는 견해가 생겨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견해의 심취, 견해의 정글, 견해의 험로, 견해의 왜곡, 견해의 몸부림, 견해의 결박이라고 부른다. 수행승들이여 ‘견해의 결박에 묶인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10.

수행승들이여, 세상의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ariyāna)을 인정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잘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sappurisa)을 인정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잘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린다.

 

그는 정신활동을 기울여야 할 것에 대해서도 잘 알고,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도 잘 안다. 그는 정신활동을 기울여야 할 것에 대해서도 잘 알고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도 잘 알기 때문에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에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고, 정신활동을 기울여야 할 것에 정신활동을 기울인다.

 

11.

수행승들이여,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은 어떠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들에 정신활동을 기울이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겨난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가 증가하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존재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겨난 존재에 의한 번뇌가 증가하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무명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겨난 무명에 의한 번뇌가 증가한다면, 그것들은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12.

수행승들이여,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있지 않지만, 정신활동을 기울여야만 할 것들은 어떠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들에 정신활동을 기울이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가 끊어지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존재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존재에 의한 번뇌가 끊어지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무명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무명에 의한 번뇌가 끊어진다면, 그것들은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있지 않지만 정신활동을 기울여야만 할 것들이다.

 

13.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에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고, 정신활동을 기울여야 할 것에 정신활동을 기울임으로서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번뇌가 끊어진다.

 

그는 이와 같이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기울이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기울인다. 이와 같이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기울임으로서 3가지 결박개체가 있다는 견해, 의심, 규범과 금계에 대한 집착을 끊어버린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관찰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라고 한다.

 

수호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Savarā pahātabbāsavā )

 

14.

수행승들이여, 수호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란 어떠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1)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시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한다. 수행승들이여, 시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시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2)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청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한다. 수행승들이여, 청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청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3)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후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한다. 수행승들이여, 후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후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4)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미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한다. 수행승들이여, 미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미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5)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촉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한다. 수행승들이여, 촉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촉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6)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정신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한다. 수행승들이여, 정신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정신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잘 다스려서 수호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잘 다스려서 수호하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수호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라고 한다.

 

수용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 (Paisevanā pahātabbāsavā )

 

15.

수행승들이여, 수용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라 어떠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추위를 막고 더위를 막거나 등에, 모기, 바람, 열기, 뱀과의 접촉을 막거나 수치스러운 곳을 가리기 위하여 의복을 수용한다.

 

또는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향락을 위한 것이 아니고 취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매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이 몸을 지탱하고 건강을 지키고 상해를 방지하고 청정한 삶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나는 예전의 고통을 끊고 새로운 고통을 일으키지 않고 건강하고 허물없이 안온하리라.’고 생각하며 음식을 수용한다.

 

또는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추위를 막고 더위를 막거나 등에 모기 바람 열기 뱀과의 접촉을 막거나 계절의 위난을 제거하거나 홀로 명상하기 위하여 처소를 수용한다.

 

또는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이미 생겨난 질병의 고통을 막고 최상의 안온을 얻기 위하여 필수약품을 수용한다.

 

수행승들이여, 수용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가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수용하면 곤혹과 고뇌가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을 수용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라고 한다.

 

인내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Adhivāsanā pahātabbāsavā)

 

16.

수행승들이여, 인내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목마름, 등에 모기 바람 열기 뱀과의 접촉을 견디어 내고, 잘못 표현되고 악의적으로 표현된 말을 견디어 낼 수 있고, 괴롭고 아프고 저리고 찌르고 불쾌하고 치명적인 신체적인 느낌이 생겨난 것을 참아낸다.

수행승들이여, 인내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가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인내하면 곤혹과 고뇌가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을 인내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라고 한다.

 

피함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Parivajjanā pahātabbāsavā )

 

17.

수행승들이여, 피함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사나운 코끼리를 피하고 사나운 말을 피하고 사나운 소를 피하고 사나운 개를 피하고 뱀, 말뚝, 가시덤불, 갱도, 절벽, 웅덩이, 늪지를 피한다. 그리고 총명한 길벗은 앉기에 적당하지 않은 자리에 앉고, 가기에 적당하지 않은 장소로 가고, 사귀기에 적당하지 않은 악한 친구와 사귀면, 악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될 것이기 때문에, 성찰하여 그러한 적당하지 않은 자리, 그러한 적당하지 않은 장소, 그러한 악한 친구를 피한다.

 

수행승들이여, 피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가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피하면 곤혹과 고뇌가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을 피함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라고 한다.

 

제거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Vinodanā pahātabbāsavā )

 

18.

수행승들이여, 제거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이미 생겨난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매인 사유를 용인하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버리고 없애버리며, 이미 생겨난 분노에 매인 사유를 용인하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버리고 없애버리며, 이미 생겨난 폭력에 매인 사유를 용인하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버리고 없애버리며, 이미 생겨난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용인하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버리고 없애버린다.

 

수행승들이여, 제거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가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제거하면 곤혹과 고뇌가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을 제거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라고 한다.

 

수행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Bhāvanā pahātabbāsavā )

 

19.

수행승들이여, 수행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은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여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서 열반으로 회향하는 새김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하며,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여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서 열반으로 회향하는 탐구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하며,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여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서 열반으로 회향하는 정진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하며,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여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서 열반으로 회향하는 희열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하며,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여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서 열반으로 회향하는 안온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하며,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여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서 열반으로 회향하는 집중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하며,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여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서 열반으로 회향하는 평정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수행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가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수행하면 곤혹과 고뇌가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을 수행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라고 한다.

 

20.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관찰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를 관찰에 의해서 끊고, 수호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를 수호에 의해서 끊고, 수용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를 수호에 의해서 끊고, 인내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를 인내에 의해서 끊고, 피함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를 피함에 의해서 끊고, 제거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를 제거에 의해서 끊고, 수행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를 수행에 의해서 끊는다면,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은 모든 번뇌를 잘 다스려서 수호한자, 갈애를 끊고 결박을 푼 자, 올바로 교만을 끊어서 괴로움을 끝낸 자라고 불린다.

 

21.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시자,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서 하신 말씀에 만족하여 기뻐했다.

 

모든 번뇌의 경이 끝났다.

 

(Sabbāsava sutta , 바-와 숫따, 전재성님 번역, 맛지마 니까야 2번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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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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