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화내는 이에게 같이 화내지 말라

담마다사 이병욱 2011. 3. 30. 14:48

 

 

 

 

화내는 이에게 같이 화내지 말라

 

 

생김새가 다른 이유

 

사람들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다. 쌍동이일지라도 자세히 뜯어 보면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자신과 똑 같은 사람이 없는 이유에 대하여 생물학적으로 종의 유지와 번식에 있다고 한다.

 

양성생식으로 개체를 유지하는 존재는 유전형질이 완전히 같을 수 없다. 이는 박테리아처럼 자기복제를 하는 개체와 비교된다.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은 유전자가 모두 동일하다. 따라서 자기복제를 통하여 개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유전자가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한 순간에 전멸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성생식으로 개체를 유지하는 존재는 단기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불가능하고, 반대로 한 순간에 몰살되는 경우가 없다. 이는 유전자가 모두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똑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그 주된 이유는 개체를 유지 보전하기에 매우 적합한 시스템으로 진화해 온 이유중의 하나라고 한다.

 

축적된 성향

 

사람의 얼굴이 서로 다르듯이 사람의 마음 역시 서로 다르다. 아름다운 마음을 낼 때가 있는가 하면, 해로운 마음을 낼 때도 있다. 이는 본바탕이 그렇다기 보다 불교에서는 조건으로 본다.

 

해로운마음을 낼 때는 해로운 마음이 일어날 조건이 성숙된 것으로 본다. 성내고, 질투하고, 자만하는 것 모두 그 상황에서 조건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크게 선심, 불선심, 과보심, 작용심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눈다.

 

이중 과보심은 과거나 전생과 관련이 있는 마음이다. 과거나 전생에 지은 업이 익을 조건을 만나 발현되는 마음으로 본다. 이를 다른 말로 축적된 성향이라고 한다.

 

축적된 성향은 자신도 제어가 잘 되지 않는다. 도둑질을 하면 나쁜 것일 줄 알면서도 손이 가는 것은 과거전생부터 이어져 온 축적된 성향이라고 한다. 성내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장 천박한 사람은

 

성을 잘 내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성낼 조건을 만나면 즉각적으로 화를 내게 된다. 그 때 상대방 역시 맞 받아 치게 되어 있다. 이제까지 축적된 성향대로 살아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성내는 것을 가장 천박하게 본다.

 

 

 

 

 

 

 

사진http://www.businesspundit.com/how-anger-helps-businesses-and-politicians-gain-consumers/

 

 

 

불교에서 극복해야 할 대표적인 해로운 마음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인데, 이 셋 중 가장 쉽게 드러나는 것이 성내는 마음이라 한다. 성내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서든지 쉽게 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내는 모습 하나만 보아도 그 사람의 인격이나 됨됨이를 어느 정도 파악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탐욕은 좀처럼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밥을 먹을 때 보면 알 수가 있다고 한다. 밥을 먹을 때 미친듯이 퍼 넣는다든가, 동시에 두가지 세가지 반찬을 밀어 넣는 행위 같은 것이다.

 

어리석음은 여간해서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어리석은지 아닌지 판단하기 매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탐욕과 성냄의 보스이기 때문에, 욕심부리고 성내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것이 어리석음이라 한다.

 

탐욕과 성냄의 결과는 항상 고통을 수반한다. 이런 원인과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성내고 탐욕을 부리는데,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을 잘 내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동시에 어리석은 사람으로 간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화를 내었을 때

 

상대방이 화를 내었을 때, 그것도 아무 이유없이 화를 내었을 때 당하는 사람 역시 화가 나게 되어 있다. 이럴때 부처님은 어떤 말을 하셨을까. 초기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분노를 극복하여

우정을 시들게 하지 말라.

잘못이 없는 이를 헐뜯지 말며,

분열시키는 말을 하지 말라.

분노에 의해 악한 이들은 무너진다.

마치 눈사태가 무너지듯이.

 

분노에 정복당하지 말라.

화내는 이에게 같이 화내지 말라.

성내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는 이는

항상 부처님 안에 사는 사람일세.

분노에 의해 악한 이들은 무너진다

마치 눈사태가 무너지듯이.

(상윳따니까야: 11 삭까 상윳따 3:4-5)

 

 

위 게송에서 가장 주목되는 문구는 화내는 이에게 같이 화내지 말라.”이다. 이 말뜻은 무엇일까. 청정도론의 자애수행편에 따르면 상대방에 대하여 적개심이 일어났을 때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반조하라는 말이 있다. 이를 빠알리어로 깜마삿까따(kammassakata)’라 한다.

 

화냄으로 인하여 그 업이 장차 자신을 해로움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업이 자신의 주인이고, 동시에 상속자임을 반조하라는 것이다. 이때 화내는 업이란 무엇일까.

 

화내는 이에게 같이 화내지 말라

 

화를 내는 사람은 화내는 업을 지을 수 밖에 없는데, 그 모습은 한 손에 시뻘건 숯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을 한 움큼 움켜 쥐고 던질 태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화를 받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결국 시뻘건 숯을 든 손은 타들어 갈 것이고, 똥을 든 손은 구린내로 진동할 것이다.

 

비슷한 내용으로  법구경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도 설명하셨다.

 

 

Yo appaduṭṭhassa narassa dussati         요 압빠둣타싸 나라싸 두싸띠

suddhassa posassa anagaassa          숫다싸 뽀사싸 아낭가나싸

tameva bala pacceti pāpa                 따메와 발랑 빳쩨띠 빠방

sukhumo rajo pativātava khitto.           수쿠모 자조 빠띠와땅와 킷또.

 

분노하지 않고 청정하고 허물없는

그런 사람에게 화를 내면

그 악은 바로 그 어리석은 자에게 돌아가나니

마치 바람을 향해 던지 가는 먼지처럼.

(법구경 125번 게송, 청정도론에서)

 

 

화를 내는 자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바람을 안고 서서 재(먼지)를 뒤집어 씌우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먼지를 자신이 뒤집어 씌게 될 것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 자신의 주인임을

 

상대방이 똥을 들고서 똥칠을 하기 위하여 화를 내었을 때, 화가 난다고 하여 똑같이 화를 내었다면 똥칠을 받게 될 것이다. 또 바람을 안고 던지는 재처럼 온갖 오물을 잔뜩 뒤집어 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에 대하여 적개심이 일어 났을 때 화를 화로서 앙갚음 한다면 그 화냄으로 인한 업이 반드시 해로움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에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항상 반조해야 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201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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